'서울대생 조국 사퇴 데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9.09.15 김상봉 철학자의 "서울대 촛불은 도깨비 불"글을 읽고, 몇가지 비판적 메모. (1)
한국정치/민주당2019. 9. 15. 16:14

Nakjung Kim

September 13 at 12:37 AM · 



김상봉 철학자의 "서울대 촛불은 도깨비 불"글을 읽고, 몇가지 비판적 메모.


 1) 소통과 사실에 기초한 글이 아니다. 김상봉교수가 정의당 김종철의 '마지막 발언은 상대방에게 넘긴다'는 문장을 실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교수의 글에는 서울대생들의 주장들과 그 근거들에 대한 비판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이 긴 글의 핵심요지는 특권층 서울대생들이 조국 딸을 비난하는 것은 50보 100보다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더 비난의 강도를 높여 서울대생 데모 이유는 그들이 조국 딸과 똑같은 스펙쌓기 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야유했다.


김교수는 서울대생들의 논쟁들과 집회 발언들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학생들이 외친 구호는, 조국 교수의 진보적 발언들과 책 내용들이 그 행동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생 주장 논거들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고, 김교수는 서울대생들은 시위 자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는 조국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에 대한 검토가 빠져있다.그래서 김교수 글이 풍부하지 못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대생 촛불은 불장난이고 도깨비불이라는 김상봉 교수의 글은 91년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치워라와 박홍의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의 순한 맛이다. 이데올로기만 다를 뿐이다.



한때 유행처럼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 정치토론법이 유행했다. 하버마스의 이상적 대화 상황의 조건들 중에 하나는 상대방에게 말할 권리를 나와 동등하게 주라는 것이다.



2. 김교수 글은 민주주의가 결여되어 있다. 한국의 좌파와 진보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좌파와 질적으로 다른 한국 진보와 좌파, 조국교수의 사회주의의 특질이 바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태도이디.



왜냐하면 우리는 30년 군사독재 하에서 획일적 전체주의와 군사적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화 운동과 노동해방 여성 해방을 외치고, 평화공존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길다고 김자르던 가위로 머리 자르던 윤리 교사에게 민주주의를 배웠다. 386은 너무 잘 알 것이다.



난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학생들이 조국 교수를 비판하는 데모에서 '공정성'만 언급하고, '계급 차별'을 주창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첫번째 이유는 사실이 아니다. 두 가지 내용들이 다 들어있었다. 두번째 서울대 총학생회장 등 주류파가 '계급 차별'은 살짝 제외하고 부르조아 공정성, 형식적 절차적 공정성만을 외쳤다고 해도, 그것은 정치적 데모이다.



당연히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제한적 의미의 공정성 주창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리버럴리스트 정당인 민주당은 자기 정당의 가치와 정확히 부합하는 공정성 fairness 주장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Liberalism 의미는 역사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에서 나왔다. 의견과 신념이 다르더라도 차이를 서로 포용하는 사람이 리버럴리스트이다.



유시민과 김상봉 교수의 글은 적어도 리버럴리스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의견이 다르다 해서, 유시민은 서울대 데모를 자유한국당의 배후조종 정도로 비하하면서 물반 고기반이라고 조롱했고, 김교수는 불장난이자 도깨비불이라 야유를 보냈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의 글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2019년 9월 서울대생 촛불시위는 사회주의나 정의당 혁명지도부의 지도를 받지 않는, 어쩌면 단일 사안에 대한 즉각적 일시적 데모에 가깝다. 서울대 고려대 촛불을 너희도 특권층인데 조국을 봉변할 자격이 없다는 김상봉 교수의 글이 정당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이 있다.



3. 김상봉 교수의 글은 저자의 의도와 반대로 전남대 동신대 학생들의 지적 실천적 능력을 무시했다. 김교수의 진단은 간단하다. 조국 논란은 태풍 속 서울대 찻잔이라는 것이다. 이런 진단은 수동적 공격성 passive aggressive 정치 행위에 가깝다.



비록 서울대생들이 부르조아 공정성, 마이클 샌델류의 정의론 수준, 존 롤즈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 즉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국 교수 딸, 나경원 아들 이슈를 한국 교육제도의 변혁 기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남대 동신대 경북대 충남대 제주대 학생들도 이번 조국 논란에 대해 정치적 입장들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조국후보자는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에 서울대생들이 자기 학교 교수가 부끄럽다고 들고 일어난 것 뿐이다.



전남대 교수 딸 아들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했다면 전남대생들도 민주광장에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아니 금남로 충장로로 진출했을 것이다.



경북대생들도 조국 딸 논란에 입장을 표명해서 좋은 호응을 받았다. 김교수의 글은 전남대 동신대생들의 지적 실천적 능력을 자의적으로 폄하한 결과를 낳았다.



4. 서울대생 촛불 시위를 조국의 봉변이라고 비난한 것은 사태를 호도한 것이다. 난 조국 교수에 대한 인권침해는 비판해왔다. 부친묘소 비석까지 공개한 김진태는 의원 자격없다.



그러나 딸의 논문 제 1저자는 교수로서 조국 후보자가 직접 나서서 말렸어야 할 사안이다. 정말 인간적으로 조국 교수를 이해하고, 이 모든 논란이 종료될 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2007년 조국 교수가 2017년 정치권에 일할 줄 누가, 오이디푸스도 오딧세이도 예측했겠는가?



이러한 인간의 슬픈 미래를 불확실함을 서로 주체성으로 한탄할 수는 있겠다.



철학개론 논리학 시간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배운다. 김상봉 교수글은 서울대 촛불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이 조국 딸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 속에 전남 화순 너릿재 아래 사는 학생들도, 대구 남산동 학생도, 마산 돝섬 수퍼 딸도 있을 수 있다. 김교수의 글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김상봉 교수 글 -> 


http://bit.ly/31otZGr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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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면] 김상봉 교수의 글에 반(反)함 / 이동건

    등록 :2019-09-11 17:15수정 :2019-09-11 19:29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악의를 품은 이아고의 교묘한 계략으로 자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악 그 자체로 묘사되는 이아고지만 그 역시 사연은 있었다.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은 신참내기 오셀로가 장수가 된 후 오랫동안 공을 세운 자신 대신 다른 이를 부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질투심으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던 이아고의 전략은 자신과 같이 오셀로의 심부에 ‘질투심’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서울대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서울대생들이 학생증을 검사하고 서울대생만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에서부터 비판을 시작한다.

    내부와 외부를 나눌 까닭은 무엇이며 누가 오든 마다할 까닭은 또 무엇이냐고. 지식인들은 조국 교수의 장관 임명에 사활을 건 듯 다양한 논의를 전개한다.

    얼마 전, 유시민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에 자유한국당이 어른거린다며 참여자들이 과연 서울대생인지 모르겠다는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한쪽에서는 너희들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다른 한쪽에서는 왜 정체를 묻냐며 서울대생들을 토끼몰이 한다.


    서울대생이 집회에서 학생증을 검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만의 집회가 아닌 우파 정치세력의 개입이 있다는 유시민의 주장에 대해 자신들의 순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답변이지 않나.

    그런데 김 교수는 서울대생들이 나와 너를 구분하고 있으며 학벌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특권계층으로 일반화한다.

    두 사람이 서울대생들에게 서로 다른 요구를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드러난다.

    즉 “서울대생은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이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 스카이캐슬행 입시열차에 자발적으로 탄 권력계층이다. 그러니 입 다물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 비극에서 운명의 신 모이라는 가계의 저주를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것이었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사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푼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 바로 자신이라는 오이디푸스의 자만심과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길가에서 아비를 죽인 그의 어리석음이었다.

    이와 같이 조국 법무부 장관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것은 그의 자식, 아내의 악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모른 그의 무지 때문인 것이다. 자신은 몰랐다는 일관된 답변은 그가 무지했다는 것을 토로한 것이며 법리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의 비극은 스스로의 무지로 스스로에게 닥쳤을 뿐이다.


    현재 여당의 지지 동력은 첫째, 조국 사태를 검찰의 악랄함에 우롱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신경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시이며 그 가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아픔을 생산한다.

    우린 아직 그를 환송하지 못했으니 노 전 대통령은 유령으로서 아직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다음으로 질투심이다. 앞서 오셀로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듯이 이제 한국 사회의 체제에 삽입된 학벌주의는 서울대생에 대한 과도한 증오심과 비아냥거림을 만들고 있다.

    김 교수가 몸담았던 ‘학벌 없는 사회’가 더 이상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만으로는 답이 없으니 자본과 맞서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라졌다.

    이제 ‘서울대생=입사=권력자’의 등식은 깨지고 있다.

    이미 서울대생 안에서 또 다른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서울대생은 모두 기득권자라고 포박하는 것은 타당한가.

    그들 모두는 질투의 대상인가.

    김 교수는 서울대생들의 촛불시위에는 어떤 공공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서울대생들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며 든 촛불에도 공공성은 존재한다.

    공직자에게 필요한 인격의 일관성 요구, 그리고 허구에 불과하지만 공정성의 마지노선인 입시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공공성의 가치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는 학생증을 확인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는 서울대생이 아니라 조국 장관에 대한 지지 여부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여 새로운 이념적 학생증을 배부하는 작금의 상황이다.

    오이디푸스와 오셀로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파멸시킴으로써 자기책임의 윤리를 완수한 영웅이 됐다. 조국 장관이 소인배로 머물지 아니면 대인이 될지는 이제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동건 성균관대 서양철학 전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09365.html#csidx48b4910e53778c19ead9c9438068677

    2020.03.06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