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8. 8. 26. 17:28



생활 속 좌파의 의미 (메모)2008.03.0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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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좌파의 숙제: 쓰레기 대 문화재

2003-04-22 06:25:39


 


우리나라 곳곳이 다 문화재다. 동네 밭이라도, 혹은 저수지, 보 하나 파더라도, 옛날부터 깨진 그릇이 우르르 나오곤 했다. 우리나라는 왠만하면 다 문화재로 둘러싸여 있다. 다 모르고, '현대화'다 '새마을 운동'이다 해서, 선조들이 물려준 것 다 버리고, 그게 왜 "여기에 있었는지"를 반성할 시간도 없었다. 


세계에서 한강 이남처럼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지닌 곳도 드물다. 어쩌면 철학과 사변이 불필요할 정도로 살기 좋은 곳, 그 속에서 피어난 문명에 대해서 되돌아 볼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좌파는, 인간은 그저 죽도록 일하거나 돈만 산더미처럼 버는 경제적인 동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운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좌파의 운동인 것이다. 유럽에서 좌파의 등장, 그 철학적 배경에는, 인간의 자유란 노동의 경계, 안과 바깥의 그 경계사이의 긴장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긴장을 제대로 해결한 역사적 주체는 아직까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동의 의미를 물었다. 노동만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그 힘든 노동만을 찬양만 했을라면, 우리가 개미와 벌과 무엇이 달라겠는가 ? 이러한 심미안을 놓치게 될 때, 좌파는 다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다. 그것이 20세기가 남겨놓고 간 숙제였다. 이 온 동네가 다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고, 소위 민이라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들어놓은 문명이 거기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다음 봄에는, 곡갱이 들고, 할아버지 논이라도 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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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매립장 부지서 청동기 주거지 확인[23191] 


재단법인 경북도 문화재연구원(원장.윤용진)은 19일 포항시 남구 호동산 8-24 일대 쓰레기매립장 확장 예정부지에서 청동기 및 삼국시대 주거지 160여기와 무문토기 및 돌도끼, 항아리 등 각종 유물 100여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원인 이날 오전 현장 설명회를 갖고 2001년 8월부터 최근까지 발굴조사한 1만2천800㎡에 대한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연구원은 조사지역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청동기시대 수혈 주거지(길이 8.3m, 너비 4.8m, 깊이 45㎝)를 발견했으며, 주거지의 평면 형태와 벽 등 시설은 이미 발견된 포항을 비롯한 경주나 울산권을 대표하는 형태를 띠고있어 경북 동해안 일대 청동기시대 취락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곳에서는 4-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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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서현순 4.00.00 00:00

오천년 역사 품은 한반도 남도에, 옛 자취 아련하다 애달픈 대운하. 을숙도 바라보니 낙동강을 아느냐, 원 그려 우는 마음 부산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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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4.00.00 00:00

원시님...참 좋은 글이네요.....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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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서현순/ 부산가기 전에 구포라는 곳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멀리서 보고 반해버렸어요. 정말 우리 나라 강은 너무나 멋있는데, 낙동강, 아 그 갱상도 보리 문댕이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해요. 어쩌다가 진보의 고향 대구가 깡보수 한나라당 아지트로 되었는지 한숨만 나오는데... 낙동강 이거 살리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터인데. 풀, 새, 물, 태양, 달, 이것으로도 충분한데. 우리나라 강이 대부분 동서로 흐르는데,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잖아요. 그 묘미 하며...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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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7:00

2013.07.12 23:00

평화노동당 (노동 해제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를 말해야

원시 조회 수 453 댓글 2


평화노동당 : (노동 해제 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로서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평화노동당의 당명은 노동 패러다임 바깥, 일터를 포함하긴 하지만 생활터전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삶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자유와 평등, 행복의 실현을 담고자 한다. 만약 노동 바깥인데 왜 ‘노동당’ 명칭을 쓰느냐?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다면 그 비판은 수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명칭에 노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실천주체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노동정치, 노동해방정치, 또 진보정당 좌파정치는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 노동당>에서 초점을 맞추는 정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극단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자.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민주당도 진보좌파정당도 아닌,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다. 이 문제를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행위라고 서술한다고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한국의 노동자 대다수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리버럴리스트 민주당에 투표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 대다수가 보수-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계급 혹은 노동 패러다임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질문은 당연히 던질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러한 유효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 구성요소들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의식 사이에는 샛강이 아니라 한강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정치의식들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가족,지역,종교,가치관,계급,계층,정치적 경험들, 문화 등 수없이 많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나 정치적 의식은 계급과 연관되지만, 계급/노동 패러다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의식규정요소들 사이에 위계순서,우선성(경제,정치,문화 요소들)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성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쳐다보면, 직종 숫자 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97년 IMF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 이후, 자본과 국가권력이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 천가지 직종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계급의식들을 천차만별이다. 당장에 민주노총 내부 조합원들 사이에도 정치의식들이 다르고 계급의식이 단일하지 않다.


우리 당은 이러한 다양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실천들과의 정치적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사진 2009.jpg 


 (향후 30년간 한국 좌파 정당 운동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로 떠오를 도시 공간 정치라는 주제. 어떤 토론회장,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치적 주제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최근 “노동 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해보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토론한 노동계급의식의 정치적 집결체로서 정당운동이 왜 실패했는가? 그에 대한 대안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적 기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심성’ 강조에 앞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들의 분화에 대한 정치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과거 사회당을 보면, 이미 구정치의 영역 (노동, 복지, 군사, 안보, 안전 등) 뿐만 아니라, 신정치와 새 사회운동의 영역인 평화, 녹색, 여성, 생태, 인종차별반대, 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 집단의 정치적 헤게모니 선점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로 되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굳이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자유나 해방과 구별해서 말하자면, 삶의 터전에서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위에서 말한 노동자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의 형성 지역, 그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다. 좁게 말하면 도시공간이다. 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가 규정한 삶이란 어떠한가?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삶의 터전인 쉼터, 놀이터, 집터 역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분열되어 있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구로 민중의 집.jpg 

 ( 좌파 정당이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기 시도를 하고 있다. 구로 민중의 집 사진. 보수적 시민사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노동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또 진보좌파정당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삶의 터전, 일터, 놀이터 쉽터, 집터 등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과 돈,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재산권 생산수단,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뉴타운 건설 등, 쉼터 놀이터에서 문화 스포츠 활동에서 계급차별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계급적이다.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 역시 계급계층차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과 자산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에 돌입해야 한다. 좌파 정치의 중요한 주제들은 일터와 ‘노동’ 안 패러다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일터를 포함한 포괄적인 삶의 터전 속에서 계급계층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좌파 정당의 정치적 임무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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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2012. 6. 26. 17:44

 왜 유시민의 "구좌파" 발언이 문제가 되었는가?


새로운 진보정당은 진짜 새로와지려면, 문 좀 팍팍 엽시다 ~ 일하는 사람들 오게 하고  

 

원시, 2008-03-04 22:09:24 (코멘트: 1개, 조회수: 720번)  

 


첫번째, 평등, 생태, 평화, 연대 등에 새로운 가치들을 고정시킬 필요는 없다. 이는 자주 평등이라는 민주노동당식 슬로건의 양적 확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니 왜 자유는 들어가지 않은가? 그게 자유주의자건 맑스주의자건 자유는 중요하다. 따라서 열린 가치 쳬계, 다양한 실천에 근거한 가치 개념들을 더욱더 개방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 1) 이명박 정부의 실정, 오륀지 사건, 법학전문대학원, 대학 등록금 인상 등 교육, 2) 국토해양 장관 이명박 운하 프로젝트, 신도시 건설 계획, 도시,건설,교통 부서 3) 대안적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과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가능하게 할 노동부 4) 서민과 노동자,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은 소득에 비해 늘어나는 현실, 의료혜택의 양극화 (특히 노인 어린이 여성 노동자 등은 심각한 편차 발생), 병원이 비지니스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비내각과 진보행정부를 대표할 비례대표명부는 반드시 이러한 과제들을 실천할 수 있는 대표성 진지구축성 책임성 내구성을 갖춘 인물들을 뽑아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신 정치 (교육, 가족, 생태, 소수자 권리, 여성 등)와 구 정치 (경제 성장, 고용정책, 노동,안보, 군사 등)를 창의적으로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들은 하나의 참고자료이고, 우리 상황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정치 실천 영역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실천들 (그게 구정치 구좌파의 내용이건, 신정치 신좌파의 내용이건)을 적극적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흘러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정당에서는 그런 정치적 공간과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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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치 개념들과 정치적 이념 (구좌파 내용과 신좌파의 내용들의 사례)



2007년도 한국정치판에 등장한 단어, 가치 (value)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상정도 3가지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가치와 주체 혁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왜 이념이나 정치노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가치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심상정 뿐만 아니라, 권영길도 통합민주당 등 자유주의자들도 가치연정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이 서구 유럽과 북미에서 이룩한 사회복지국가를 어느정도 달성했기 때문인가?




가치(value) 개념은, 맑스주의자들에게 친숙한 용어이다. 맑스의 노동 가치론 (labor theory of value)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 개념은 맑스의 상품 분석에서 비롯되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지시하지 않는다. 1970년대 사회복지국가를 논의하면서, 서구 정치 정당들의 이념적 지형 변화, 신사회운동 (NSM) 을 설명하면서 등장한 용어가 바로 가치 개념이다. 소위 말해서 정통적인 계급 정치 (class-based politics)에서 가치 정치(value-based politics)로 이전을 설명하면서 등장한 용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 보수주의 정당, 종교 및 군소 민족주의 정당들이 다같이 합의한 게 사회복지국가 모델이다. 이 사회복지 국가 모델 (코포라티즘) 하에서는, 계급갈등이 더 이상 사회 문제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 산업, 후기자본주의, 사회복지국가 하에서 사회 문제는 가치들 (즉 여성, 문화, 심리 동기, 가족, 환경, 인종, 이민 노동자, 신지역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96년 한국에도 잠시 다녀온 독일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 책을 한 구절 보자. 의사소통 행위론이라는 책, (Juergen Habermas (1982) ,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and 2, 577) 2권 맨 뒤에 뒤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참고로 하버마스는 신좌파이지만, 독일 사민당 (SPD)에 투표한 소위 개혁주의자이다. 구정치(alte Politik)와 신정치(neuen Politik)를 구별 분리한 사람들은 힐데브란트(Hildebrandt), 달튼(Dalton), 반즈(Barnes), 카세(Kaase) 등이 1977년에서 1979 년 사이에 사용한 용어이다. 이것을 하버마스가 인용했다. 정치란 경제, 정치, 사회, 안보, 군사 분야를 가리키고, 신정치 주제란 삶의질, 평등권, 자아실현, 참여, 인권과 관련된 주제들이다.


그렇다면 하버마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신사회운동의 이론적 정리 논평이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 이론 핵심이다. 사회복지 국가에서 사회비판의 잠재력은 어디에 있는가를 해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신사회 운동 (같은책 578) - 반핵, 환경운동, 평화, 지역 풀뿌리, 농촌으로 내려가 살기 운동, 노인, 게이, 청소년, 장애인 권익 운동, 종교 근본주의, 세금 저항 운동, 학부모협회 운동, 여성해방운동, 모더니즘 반대 운동 등 - 이런 모든 새로운 형식의 사회 저항 형태들을 사회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새롭게 독일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은, 과거 사회주의자들(구좌파)의 주제였던 경제, 경제성장, 분배를 둘러싼 계급폭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1960-1980년까지) 이제 새로운 운동은, 문화적 재생산, 사회통합, 개인의 삶의 영역(personality)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영역, 즉 생활세계(Lebenswelt)가 식민화되는 것에 사람들이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제 분배문제 아니라, 삶의 형식의 문법(Grammatik von Lebenswelt)에서 새로운 갈등은 폭발한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생각의 핵심이다.




우리가 귀닮아 들을 필요가 있는 하버마스가 지적한 정치적 의견은 무엇인가? 노동자들에게 실업 보험에 들게 하고,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행정부에서 돈으로, 노동부에서 그 실업급여로 때우려고 한 것을, 하버마스가 '자활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하버마스가 독일식 “사회경제 시장”에 근거한 사회복지국가를 행정가 치료주의라고 비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실업보험금이나 타먹는 천덕꾸러기로 노동자가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고용안정 등과 같은 경제투쟁을 뛰어넘어서, 참여경영, 자주관리등 공장 평의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기존 사회주의자들 외침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정치, 구정치 분류법 말고도, 물질주의적 가치와 탈-물질주의적 가치로 구분한 경우도 있다. 로날드 잉글하트 (Ronald Inglehart)가 1977년에 발표한 책, “조용한 혁명: 서방 대중들 사이에서 변하고 있는 가치와 정치 스타일” 에서, 1945년에서 1975년 “황금기 시대(the golden age)” 에서 나타난 두가지 가치들, 하나는 물질주의적 가치들 (구정치 주제들: 경제, 정치적 성장과 안정), 다른 하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 즉 표현적 가치 (신정치 주제들)이다.




아주 대표적인 정치적 표출이, 유럽 전역에 펼쳐진 68혁명시, 프랑스 공산당의 초기 입장은 그야말로 구정치영역에 머물렀고, 프랑스 학생들은 후자 신정치 주제들을 전면에 내걸고 나왔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68년 프라하의 봄이 발생했고, ‘인간적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소련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외교방침에 일격을 가했다.




가치 개념은, 이러한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발생한 정치 현실과 계급투쟁, 사회운동의 변동사를 담고 있다. 사회주의자들 내부나 정통맑스주의자들 내부에서도 논란은 심심치 않았다. (알려졌다시피, 구좌파와 신좌파 논쟁 등)


2004년 경, 유시민 정치 비판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구 정치 주제들과 신 정치 주제들, 다시 말해서, 정치 경제 안보 민족과 같은 구정치 영역들과, 신정치 주제들, 환경, 학생운동, 성소수자, 여성운동, 이주민 노동자, 인종주의 반대 투쟁, 일상정치, 시민운동 활성화 등, 이 두가지들이 다 같이 착종되어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압도적으로 구 정치 영역들이 전면에 나왔다. 이것은 구정치 신정치 가치 개념들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80년대 후반부터 공격적으로 변한 전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 체계 자체가 가져온 경제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은 자본에 노골적으로 노출된 무방비 도시였다.




그렇다면, 신 진보당이 말하는 가치 개념은 무엇인가? 가치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는, 과거의 이념적 지형과 정치 노선, 그리고 정치적 활동 주체들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되는가를 말해줘야 한다. 이런 가치 개념을 두고, 한국 노동운동은 과연 어떻게 변화 혁신되어야 하는가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노동자 노동자 갈등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실천적 해답을 내놓으면서 ‘가치 (value)’ 혁신을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서, 한국 좌익은 이념, 가치, 정치노선, 대중정당 등에 대해서 보다더 주체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그 내용들을 채워나갔으면 한다. 남의 나라들 경험과 경험정리 등은 물론 폭넓고 개방적으로 공부해야겠지만 말이다. 심상정이 말한 푸른 진보, 젊고 역동적 (green, young, and dynamic progressive) 진보의 함의는 이해는 가나, 다른 말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푸른진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아마도,지역공동체 풀뿌리 공동체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환경 생태운동에서도 많이 지적되었듯이'그린 녹색 푸른' 단어들을 남발하는 것도 공해다.


참고: 글쓴이는 위에 등장하는 저자들의 정치적 입장과는 다릅니다. 참고사항으로 하버마스나 잉글하트를 가져옴.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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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http://www.newjinbo.org/xe/479372008.03.04 03:04:10872


현재 2008년 독일 녹색당보다는, 70년대 말, 80년대 말까지의 녹색당의 정치활동이, 우리가 새로운 진보운동을 펼쳐나가는데, 유의미한 참고 자료들을 제시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노동= 평등, 생태=환경보전이라는 단순 이분법이 아니라, 노동과 생태, 평등과 생태적 가치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우선 초점에 더 맞춰야 할 것이다. 지금 당연히, 새로운 진보정당은 살벌한 약육강식을 강요하는 이명박식 자본주의 “자본주의에 친절한 명바귀 정부 business-friendly government)”를 비판해야 하고, 정치 제 1 과제로 삼아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역시 선결과제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생태라는 가치는, 자기 지역에서 ‘푸른진보’ 공동체 (주거, 먹거리, 어린이, 노인, 여성 등 삶의 질 고양 및 직접 참여 등) 운동을 내걸고 있는 생태주의 운동은 어떠한 방향성을 띠어야 하는가?  그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생태’라는 가치를 내걸 때, 고민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참고자료로, 1980년대 독일 녹색당의 정치활동 내용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물론 한국은 독일과 다르다. 한국 정치 지형과 다른 점은, 첫번째로, 한국은 97년 이후, 노골적이고 살벌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복지 안전망을 갖추지 않은 채, 정비하기도 전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수용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 좌파들은, 이중 삼중 부담을 지고 있다. 보수 정당과, 언론등은 사회복지체제를 비효율성과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진보신당 연대회의, 새로운 좌파운동은, 그렇다면 사회복지 체제 구축의 정치화와, 반자본주의적인 생태 가치들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접목시킬 것인가? 독일의 녹색당의 우경화, 사민주의의 관료화를 방지할 수 있을까? 고민의 주제이다

 


독일 녹색당은 환경/생태의 주제들을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생태-맑스주의자라고 명명되기도 했다. 반면 프랑스 Les Verts 는 생태문제가 다른 사회문제의 기본이라는 입장에서, 비-맑스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흐름들은 한국에서, 불교, 도교에 근거한 생태주의 운동, 생활운동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초기 독일 녹색당의 정치 강령들과 정책들을 보면, 반 자본주의적 노선과 노동자 및 노동조합과의 연대 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전반핵 평화라는 주제도, 녹색당이 사회민주당보다 더 적극적이었고 일관되었다. 한국의 미군기지 토양 오염 문제는 심각한데, 반미라는 관점 더하기 생태오염과 파괴라는 관점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설해야 한다.

 


1983년 독일 의회 진출, 5.3%로 27석 확보했다. 이는 기존 독일 사민당이 NATO 미사일 기지 건설 등에서 오락가락 입장을 보인 탓에 유권자들이 실망하고, 녹색당의 일관된 반대 운동, 반핵, 평화, 여권운동. 의회정치 비판. 신사회운동의 기수로서 입지 구축도 한 몫했다.

 


독일에서 녹색당 창립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기존 전통적인 사민당의 보수적인 사회주의 탓이 크고, 관료주의적인 정당운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1980년대 초기 독일 녹색당은 사민당에 비해서 더 반자본주의적이었고, 또한 직접 민주주의적인 경향과 시민의 직접행동을 장려하는 공화주의적 성질을 띠었다. 따라서, 한국과의 정치 지형과 한국좌파들이 직면한 정치 과제는, 1980년대 독일이나 2008년 독일과는 상당히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진보신당 연대회의)은 97년 이후 형성된 한국자본주의의 극랄한 공격성을 방어하면서,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들면서, 동시에, 대안적인 삶의 양식들을 지역, 일터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1980년에서 1986년 사이 독일 녹색당의 반 자본주의적 성격과, 정통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활동은 우리가 귀 기울여 참고할 만하다.

 


1980년 Federal Program 독일 녹색당 “경제와 노동” 편

 


기본인식: 자본이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자본측이 강조하는 경제성장, 경쟁력 증대, 이윤추구는 생태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자본주도 체제하에서는 인간노동은 소외되고 비인간적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자본주도 경제성장, 경쟁력 증대, 이윤추구는 물리적인 자연을 낭비하고 파괴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다 기술혁신과 발달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나 행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이윤추구에 복무한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비롯한 기존 정치정당들은 이러한 자본주도의 경제성장, 경쟁 가속화 전쟁, 이윤추구 등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균형의 파괴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그 체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데 복무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자본주의 비판은 이러한 사회적 균형 파괴를 바꾸는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들과 결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비판과 1980년 독일 녹색당 창립자 들의 생각은 유사하다.

 


또한 녹색당은 자본주의 광고산업을 비판한다. 광고산업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해주는 고리인데, 광고산업이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고 현혹해서 양적인 소비경제를 조장하고, 결국에 낭비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공공 방송이나 미디어에서 (한국의 공영방송 KBS, MBC등)이러한 광고를 전면 금지할 것을 주창하기도 했다.

 


1980년 연방 프로그램에서, 녹색당은 억압자의 권리를 옹호한다. 여성은 단순히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 전통적인 주부가 아니라, 여성 역시 경제와 정치에 남자와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주창한다. 여성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직업이 보다 여성에게 평등하게 또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야, 특히 남자 노동자들이 집안 가사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Mitbestimmung am Arbeitplatz)에 대한 보다 더 급진적 요구를 녹색당은 주창했다. 이는 1970년대 서독 사민당 정부 (SPD)에서 입법화된 적도 있다.  녹색당은 보다 더 나아가서, 노동자 공장 사무실에서 노동자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가 고용, 투자, 기술혁신 등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노동현장이 보다 더 노동자에게 재미를 가져다주고,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주창했다. 녹색당은 이러한 노동자 사회/경제 평의회 위원회 (economic and social council)이 전체 경제를 계획하고 조율하면서, 장차 국가, 정당을 대체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1980년 녹색당 프로그램은, 이러한 노동자의 참여의 극대화를 위해서, 노동조합의 대표들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따라서 녹색당은 노동자의 노조 결성의 자유, 정치 참여 보장, 고용과 임금 협상, 노동조합 간부의 해고 방지 등을 제안했다. 

 

1986년 재건 프로그램 (the Reconstruction Program of 1986) 에서는, 녹색당 국가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의 역할 강조는 전통적인 맑스의 입장 (부르주아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를 집행하는 위원회)보다는 사회복지 국가에서 국가의 적극적 시장개입론과 가깝다. 녹색당은 민간기업들을 재구조조정하기 위해서는 세금 정책, 법적 규제, 보조금 정책들을 국가가 써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민간기업의 재구조조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피해는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또한 국가가 대중교통수단과 국민보건 건강 정책들을 확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1987년 녹색당은 소련보다는 미국이 세계 평화와 안전의 주요한 적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경제적 권력은 군사 경제적 팽창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독일 녹색당의 NATO 미사일 기지 독일 건설 반대 등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동독일 체제에 대해서는, 그 체제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했지만, 동독 정부가 동독시민들의 정치 권리를 탄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묵과하지 않았다.

 


1986년 재건 프로그램 (the Reconstruction Program of 1986)에서는, 녹색당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사민당이 써온 “완전고용정책” 보다는, 노동시간 단축하자고 주창했다. 그 이유는, 전통적인 사민당 정책이 경제성장론이 노동시간을 증대시키고, 이러한 노동시간의 증대는 위에서 지적한 생태균형을 파괴하고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것이다.


[참고] 위 정보는, Tad Shull(1999). Redefinining Red and Green: Ideology and Strategy in European Political Ecolog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Albany. 참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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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환경운동연합 최열, 녹색연합 장원씨 말고, 좋은 사례들이 있으면 소개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나쁜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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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 2003년 9월호에 번역되어 실렸던 프리더 오토 볼프 교수(전 독일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 현 자유베를인대학 명예교수)의 글 "독일 녹색당, 어떻게 된 일인가?"가 떠오릅니다. 


오토 볼프는 독일 녹색당내 좌파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생태사회주의자인데, 위에서 말씀하신 녹색당의 좌파적 색채가 90년대 이후 급속히 탈색되어 왔음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더군요. 그는 작년 말 번역되어 출간된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Socialist Register 제43호 (2007)에도 (한글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네요) 비슷한 취지의 글을 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녹색당의 실패 (우경화) 요인들을 열거하면서 그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 소위 구 좌파와 신 좌파가 자신들 사이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 즉,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구 좌파들은 생태사회주의자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반자본주의, 좌파 의제들들 자신들의 것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했으며, 역으로 신 좌파들은 구 좌파를 설득해내는데 실패했음. 이 와중에 한편으로는 반자본주의 논의와 실천이 "개량"이냐 "혁명"이냐라는 진부한 구도에 의해 왜곡되어 버렸으며, 다른 한편으로 (생태사회주의, 좌파 생태주의의 입장을 처음부터 강하게 견지하지는 않았던) 신사회운동 진영은 실제 자신들의 주장이 갖고 있는 반자본주의적 면모에 눈을 감아 버리는 것으로 스스로의 자율성을 옹호하려함. 


* 그 결과는.. 녹색당이건 혹은 녹색당과 연정하는 사민당이건 보수주의 정당보다는 분명 생태환경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진일보한 대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진정한 좌파 녹색정치의 길을 정립하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인데..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고 보이고.. 진보신당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습니다.. 아무튼.. 프리더 오토 볼프 교수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독일 녹색당내 좌파로서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은 듯 하고.. 그와 비슷한 생태사회주의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활동가/학자/정치인으로는 영국 녹색당의 데렉 월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는 영국 녹색당 내 좌파들의 블럭인 "녹색좌파 (Green Left)"를 이끌고 있는데, 위에서 기술하신 7-80년대 독일 녹색당(내 좌파)의 입장과 유사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블럭의 홈페이지 주소가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반면 70-80년대 영국 노동당, 녹색당 혹은 그 외의 좌파 정치조직이나 환경운동 단체들에 참여하고 있는 생태사회주의/녹색좌파 활동가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체로 존재하면서 활발한 토론의 공간을 제공해왔던 사회주의 환경.자원 협의회(Socialist Environment and Resources Association)는... 이후 점차 노동당과의 조직적 연계를 더 분명히 해나갔고 현재는 70여명이 넘는 노동당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데 이르게 되었지만.. 


오히려 초기의 좌파적 색채는 상당히 탈색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참여 노동당 국회의원들 중 노동당 좌파도 있기는 합니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조직의 성격이 상당히 우경화되었달까요. 토니 블레어류의 제3의 길 탓이 크겠지만 영국 노동당내 전통적 좌파들의 경우는 책임이 없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노동당 녹색파가 녹색당 좌파보다 덜 반자본주의이고 덜 사회주의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생태.환경 이슈에 대한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이 곧 "좌파"라고 잘못 판단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좌파라면 생태.환경 이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얘기해야지 그냥 거부하고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발을 빼는 것은 답이 될 수 없겠지요.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이들이 우경화라고 비판하고 있는) 막연하게 생태를 거론하면서 밖에서 얘기되는 것들을 적당히 받아들이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와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생태.환경 이슈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보수적 입장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위험하지 않을까 싶네요. 두서 없이 생각나는 바 몇 자 적어 봅니다.

삭제 수정 댓글 4.0.0 0:0:0삶과노동

잘 읽고있습니다. 진보신당의 총선대비 '법적창당'이 주는 시기적 한계가 실질적 창당을 준비하는 보다 고단한 시기에 유야무야 어설프게 뿌리내릴 수 없도록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려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럼, 대중성의 담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 해야하는가가 아닌가 합니다. 


적지 않은 혹자들이 노동자,민중의 이야기를 뒤로 슬쩍 밀어내고 그 자리에 보다 세련되고 이쁜 그 무엇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입니다. 우리는 계급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움직이는 자본,탄압하는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함께 움직이는 노동, 탄압에 조직화된 연대와 투쟁만이 본질입니다. 그 속에 다양성도,부문도 존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거꾸로 되면, 즉 끝까지 놓지 말아야할 계급성을 망각하면 우리는 죽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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