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노동2018. 1. 17. 17:14

자료:


한국 최저임금 논의 


1980년~ 1992년 신문 자료 일부 검토 : 역순


0. 1999년 7월 21일자.


1999년 9월~ 2000년 8월: 5인 이상 사업장

시급 1600원

일급 1만 2800원

월급 36만 1600원






1. 1993년도 시행, 시급 1005원, 일급 8040원, 월 22만 7000원 

1988년 최저임금제 실시 이후 최소 인상액





 

2.   1987년 영화표 가격이 3000원, 1990년은 4000원이었다.


최저임금에 비해 영화 표값이 지금보다 비쌌다.






3.  1988년 10월 13일자.


시급 600원,

일급 4800원

월급 14만 4000원







4.  1987년 7월, 8월 한국 노동자 대투쟁 당시, 동아일보 보도


미국 노조 총연맹 AFL-CIO 도 한국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운동을 지지했다.





5.1984. 12월 19일자 동아일보

10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 28만 명 대상으로 최저임금 도입  - 월급 10만원을 최저임금으로 하겠다. 노동부 발표
: 전체 9.8% 
월급 20만원 미만은 47%,
- 10인 미만 사업장은 이보다 급여가 훨씬 더 열악했다. 


후생복지 시설(실질임금 인상 방법으로 간주): 50인 이상 고용하는 회사는 '목욕탕 (샤워시설)'을 두도록 했다.

 




6. 매일경제, 1980년 4월 21일자 


최저임금 기준: 2인 가족 생계비의 60%인 11만원을 제안했다. (당시 한국노총 부위원장 이춘선 )

한국이 일본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일본의 자본투여가 한국 기업에 비해서 많기 때문이라고 보고, 한국 노동자만 탓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이춘선 부위원장은 한국이 일본도 따라잡을 수 있는 근거를, '일본은 야간 작업을 못하는데, 한국은 야간 작업도 할 수 있고 3교대를 노동자들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당시 한국 노총의 '야간 노동' 인식의 한계도 보여준다. 


전경련 신봉식 (상무이사)는 한국 노동자 임금이 대만보다 결코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업의 지불능력만 말하지 말고, 국제 경쟁력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한국의 경쟁력의 근원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국제 시장에서 가격경쟁의 우위의 비밀열쇠였음을 전경련도 알고 있다.


 김황조 연세대 교수는 케인지안 '유효수요' 창출과 노동자 임금 인상을 연결시켰다.

 (1) 최저생계비 결정은 생계비를 최저한으로 설정, 생산성에 상응한 지불능력로 그 중간에 결정 

(2) 주장 이유: 한국 기업에서도 노동자 생계비를 보장하면 유효수요가 늘어나 기업 이윤도 증가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생계비 보전을 위한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3) 기업의 핑계는 근거없다. 지불능력이 없다고들 기업이 말하는데, 오히려 임금 인상이 생산성을 높여 지불능력을 높여준다. 선진국의 경우, 이미 고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임금인상과 생산성 상관관계가 느슨하지만, 한국처럼 저임금인 곳에서는 임금인상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1980년 02 21 경향신문;


서울대 임종철 교수: “1980년대 적정 임금 수준”에서 다름과 같이 밝혔다.


대기업 이윤이 증가한 이유는 공산품 가격 인상되었고, 대기업의 지불 능력이 커졌다.

환율 금리 인상 및 해외요인 등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고물가 시대에 생활할 수 있을 정도 생활임금을 지급할 능력을 기업이 가지고 있다.

80년대 한국 기업 경영은 구매력의 증대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증대와 동시에 비용 절감을 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리 대폭 인하와 부가세율 및 특별소비세율 인하조정 전제:

기업은 민간주도형 경제 수립을 통해 경제적 결정권을 회복해야 한다 (정경유착 근절 의미)

그 결정권에 따른 의무사항인 노동자 생활임금 지급, 소비자에 대한 질좋고 값싼 상품 공급,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 등을 이행하라.






.






참고 자료: 1995년 김황조 교수 소개


저자와...] '세계각국의 노사관계' 펴낸 김황조 <교수>


1995.07.25




"세계각국의 노사관계를 살펴보면 여건변화에 대응, 변신을 거듭해온 사실

을 알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정보화와 국제화에 따른 무한경쟁상황에서

노조도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고 있죠"


"세계각국의 노사관계"(세경사간)를 펴낸 김황조교수(연세대.경영학)는 

노사 모두가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양측 모두가 몰락할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책은 노사관계의 국제비교를 통해 한국노사관계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한 연구서.미국을 비롯 영국 호주 독일 스웨덴 일본 소련 

유고슬라비아및 한국의 노사관계를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 단체교섭상황,

노조의 변화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종신고용을 지향했던 일본기업에서 노조가 먼저 직능급제의 도입을 요구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노조가 환경보건운동에까지 참여하고

있죠"


노조가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살아나야함을 

인식함에 따라 노사관계도 급변하고 있다는 것.


"노사관계는 그나라의 문화적인 배경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특수성이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중에서 일반적

이고 보편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위해 책을 쓰게 됐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노동조합이 사용자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맺을수 있다는 사실을 찾을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경우 노.사.정체제가 가장 잘 구축되어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일본이나 독일도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이러한 나라들의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적인 노사관계이지요. 정부도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펼쳐 가고요.

미국에서는 최근 경영혁신붐이 이는데 따라 노조도 혁신바람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김교수는 노사관계를 단계별로 보면 전제적인 노사관계에서 가부장적인 

온정적 노사관계, 완화적 노사관계, 민주적인 노사관계로 발전한다고 설명

한다.


한국의 경우 완화적 노사관계에서 민주주의 노사관계로 발전하는 단계에 

있다는 것.



"87년이후 우리 노사관계는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정부나

사용자, 노조 모두 많은 경험을 쌓아왔지요. 노동조합의 성격도 정치지향

에서 실리위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낙관적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는 특히 한국경제신문이 전개하고 있는 노사화합켐페인이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노사관계학회회장을 맡고 있다.


< 오춘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6일자).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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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5. 8. 4. 21:15

김수행 선생님이 마르크스의  <자본:정치경제학 비판>을 번역하고 대학 교재로 강의를 했던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1980년~1990년대  그 <자본> 책은 번역서 이상이었다. 사람들 가치관을 흔들어놨고 그 초점을 이동시켰다.  한국에서 직업 차별을 당하고, 장시간 잔업과 철야 노동을 하는데도 그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름없는 노동자들을 ‘정치적 시민’으로 복권시켰고, 박정희 말대로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깔았던 한국시민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서울 구로공단 한 회사 굴뚝에 "내가 흘린 땀방울, 조국 근대화 초석이 된다"라고 써져 있었다)


 당시 한강의 기적의 상징 수도 서울,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1주일에 평균 50~60시간 넘게 일했다.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공장과 회사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행 선생의 <자본> 강의와 연구는, 이러한 한국 노동자들이 자기 생존에 필요한 ‘필요노동시간’과 회사의 이윤을 위한 “잉여노동시간” 비율 문제가 공정한가 사회정의 원칙인가를 따져묻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사회적 신분 차별을 받았던 노동자들이 ‘누구를 위한 노동’을 하고 있고, ‘무엇을 위한 노동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저항할 때, 마르크스의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이라는 비판틀은 노동자가 ‘조국 근대화의 진정한 초석’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한국 노동자들이 외친 것은 단순한 ‘임금을 올려달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넘어서 사농공상이라는 뿌리깊은 신분차별 타파 선언이었고, 불공정한 노동계약관계 법을 폐지하고, 궁극적으로는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자기들 스스로 결정할 정치적 권한을 외친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은  자본주의를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진화의 산물이고,  봉건 신분제보다 더 우월하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사회경제정치제도일 뿐이다. 누군가가 이 ‘미성숙한’ ‘불공정한’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인류 보편사 과정에서, 한국은1948년 이후 남한에서 20세기 정치적 이념들 중 한 축을 담당한 사회주의가 불법화되면서, 그 자본주의 대안운동과 담론은 단절되었다. 김수행 선생의 <자본> 완간 번역은 이러한 강제로 단절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제시를 다시 본궤도에 올리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2015년 한국 자본주의는 97년 IMF 긴축 통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경쟁’ ‘시민 내전 전쟁터’로 돌변했다.  마르크스 <자본>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사회적 현상들, 즉 세계최고 고학력, 노동소득의 종말과 빌딩 땅 등 자산소득 계층의 대물림, 선진자본주의화 속에 강고하게 자리잡은 ‘봉건제적 신분 차별화’,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는데 동네 치킨집 자영업은 증가하는 비합리적인 경쟁의 구조화, 자산소득(빌딩,땅소유주)계층을 위한 사적 서비스업종 증가, 시중 400조이라는 자본파업 현상 등을 새로운 <정치경제학 비판: 자본>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시민권을 상실해버린, 노동시간 주권을 상실해버린 청년을 비롯한 노동 안과 바깥 사람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과제 완수가  15년 넘게 준비하고, 6년 넘게 땀흘려 마르크스 <자본 1, 2,3>을 번역한 김수행 선생님, 그리고 20년 넘게 제자들을 친조카, 동생들처럼, 친구처럼 허물없이 도와준 멘토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서둘러 가셨습니까? 마르크스가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그러나 끝내 밟지 못했던 미국 땅,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보시고 미국 자본주의 특성에 대해서 공부해보자고 하셔야죠?  2008년 미국 금융공황 이후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당신들 말이야, 뭐하고 있어? 그렇게 공부해서 언제 다 할라고” 카랑카랑한 죽비가 그립습니다. 김수행 선생님이 즐겨 썼던,  “당신들 말이야~”, 이 말은 스스로 ‘주체’와 ‘주인’ 이 되어 달라는 선생님식 주문인데, 선생님 걸어온 길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데도, 그 성과는 미미한 이 현주소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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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26일. 경향신문 기사 중에서. 

난 이때까지만 해도,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선배들과 동료들과 함께 움직였다. 

사람은 때가 되어야 만나는 것 같다. 가까운 거리건 먼 거리건 간에 '마음'이 중요하다.

92년 당시 구로공단 하루 급료가 16000원 ~ 19000원 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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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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