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민주당2016. 3. 10. 19:16


1.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청래 (마포 을) 더민주당 국회의원을 탈락시킬 때, 마포(을) 주민들의 정청래 평가서와 같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잣대를 제시하지 않았다.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홍창선은 '정청래'에게만 해당하는 '잣대'가 있었다는 애매한 말만 흘렸다. 정청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의 공천심사 탈락은 정치적인 '거래' 성격이 띤다. 


정청래는 왜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는가? 


첫번째 이유는 정청래는 국민의당과의 관계 때문에 희생양이 되었다. 당대표격인 김종인이 국민의당 내부에서 '비-야권통합'파인 안철수를 고립시키고 야권통합파들 (김한길, 천정배 등)을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다. 3월 7일 국민의당 문병호는 새누리당 김을동,윤상현,홍문종,한선교,이정현과 더민주당 정청래,이목희,이해찬,김경협,전해철 등 5명을 낙선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부응해 더민주당 김종인은 우선 '막말논란'의 혐의를 씌워 정청래를 제일 먼저 공천 탈락시킴으로써 국민의당 야권통합파와 협상 여지를 더 열어놓았다.


국민의당은 정청래 1인 탈락은 불만족스럽다고 논평했으나, 호남-광주를 제외하고 서울-경기권역에서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 후보 연합 및 단일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번째 정청래를 공천심사에서 탈락시킨 이유는 김종인의 '정치 관점'과 2016 총선과 2017년 대선 단기 목표과도 연결되어 있다. 김종인이 문재인의 요구를 수락해서 비상대책위원장과 선거 총사령관이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발언은 '총선 승리'이다. 김종인으로서는 총선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2017년 대선까지 '대통령 메이커'로서 자기 위치를 확고하게 할 수 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이후, '팽' 당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민주당 내부 정파들 사이 균형을 만들고, 특정 계파에 힘이 실리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가하면서 김종인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정청래의 탈락은 김종인의 용인술과 2016~2017년 더민주당의 운영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세번째 민주당 운영과 관련해서, 김종인의 권한이 막강해졌기 때문에, 정청래와 같이 '당선권'에 있더라도 탈락시킬 수 있었다. 현재 더민주당 내부에는 김종인 권력에 대한 어떠한 민주적 견제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내 규칙도 김종인 1인 체제를 위해 다음과 같이 개정되었다. 


2월 29일 비공개 당무회의 (더민주당)에서 당헌을 고쳤다. 더민주당 당현 22조 중 당규의 제정과 개정 폐지, 당헌 당규의 유권 해석 권한을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넘긴 것이다. 이를 통해 김종인은 공천과 경선 규칙을 명시한 당규를 자기 뜻대로 '수정' '집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청래가 친노로 분류되건 더민주당 급진파로 구분되건, 김종인의 천하무적 '공천권한' 앞에서는 어느 계파도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이라는 관점에서보면, 당원들이나 유권자들의 '참여 민주주의'라는 시각에서보면, 더민주당은 5공화국이나 6공화국 노태우정부 시절로 후퇴한 느낌이다.


2. 정청래 탈락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모아오고 총선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가?


정청래 탈락이 보수파 유권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현재 국민의당 내부 야권통합파와 김한길 같은 '새누리당 개헌선 저지파'와 더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김종인이 국민의당 요구 중에 하나를 들어준 것이다. 


더민주당 입장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2~6% 사이 접전을 치르는 곳에서 국민의당과 정의당과 같은 다른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의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친노 5인 중' 1명의 희생양, 정청래를 탈락시킨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0석을 차지한 정통민주당 표를 흡수했을 경우, 새누리당이 151석 과반수 이상 차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에는 '정통민주당'의 표가 다 야권 후보로 돌아간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 그러나 '정통민주당' 지지자들 상당수는 호남관련 유권자들이라는 점에서 (서울과 수도권) 이러한 가설과 주장은 무시할 순 없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2석을 얻지 못하고, 146석을 얻었다면, 박근혜의 위치도, 대선 후보로서 지위 확보도 흔들렸을 수 있다. 왜냐하면 총선이 새누리당에게 승리가 아니라 '그저 그런 평타'나 '실패' 평가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본다면, 더민주당은 2012년 총선과 같은 '박빙 승부'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국민의당과 서울과 수도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손잡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3. 정청래 탈락에 대한 저항과 재심 가능성


정청래 의원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유권자들은 '정청래 구하기'에 나설 것이다. 김종인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국민의당과의 후보 조정과 단일화 (야권 통합) 때문에,국민의당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당을 위해 정청래 의원이 '희생'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정청래와 '더민주당' 사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어떤 선물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관건이 될 것이다.


3월 7일 정청래는 '공천 심사 탈락'을 예견하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사과문'을 썼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4. 김종인 체제는 성공할 것인가?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박근혜의 폭정과 외교 실책, 살림살이의 악화로 인한 민심 피폐 때문에, 2017년 정권 교체에 대한 요구가 높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김종인의 '시혜' 복지노선과 시민참여보다는 관료-테크노크라트형 '복지체제' 노선에도 불구하고, 과거 새정치연합보다 더민주당은 안정화될 것이다. 


특히 413총선 국면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더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들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노선, 새누리당과 차별성이 떨어지는 경제 정책들, 당내 민주주의 약화, 의회와 일상을 연결하는 참여민주주의 쇠퇴, 새로운 지도자 그룹 등장 지연 등)과 김종인의 관료주의형 복지노선은 413 총선 이후에도 더민주당의 해결과제로 남을 것이다. 


더민주당 내부에서는 김종인식 보수적 안보논리, 중국-북한-러시아와의 외교 노선 부재,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편협한 경제주의적 시각, 민주노총의 사회참여 반대와 같은 반-민주적 정치 노선등과 경쟁할 '리버벌 혁신그룹'이 있어야 한다.


더민주당 바깥에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이 더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도록 실력을 길러야 한다. 이 두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은 힘들 것이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제행정 관료 (재정학) 김종인을 모셔와서 당내 분란을 해결해야 할 만큼 '지도력 부재', 당내 민주주의 오작동을 보여줬다. 


근본적으로도 더민주당 변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는. 자칫하면 2015년 한화 이글스 감독 김성근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순위는 올랐으되 김성근의 '소통' 부재는 도마 위에 올랐다. 김종인 체제도 413 총선 과정에 보여준 리더십과 정치노선을 고려할 때, 그럴 가능성이 크다. 


   


(출처: sbs 비디오 머그 : 김종인은 웃지 않고 박수만 치고, 정청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더더더를 외쳤다) 


(출처: JTBC 뉴스 정치부 회의) 
























(일명 아재 개그로 통한 정청래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비꼼: 친박 비박만 있는 게 아니다. 조롱박도 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33649.html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34271.html?_fr=mt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01/20160301002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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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내부 분열 위기에 몰렸고, 자칫 상황이 악화되면 당의 존립성마다 위태롭게 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애초에 설정했던 정치적 좌표는 제 3 지대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 제 3의 보수적이면서 합리적인 무당파를 지지층으로 만든다는 전략이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새누리당의 거점인 영남과 충북,강원 등에서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거나 전혀 변화가 없는 반면, 오히려 호남과 광주에서도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김한길을 비롯한 서울,경기권에서 출마할 예정인 국민의당 국회의원들과 후보자들이다. 국민의당 내부 분열의 신호탄이다. 


안철수가 죽을 각오로 광야에 나가겠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국민의당 내부 계파들은 흔들리고 있고, 침몰할 지도 모를 국민의당 호에서 탈출할 계획B까지 짜고 있다. 다선 의원인 김한길의 본능적 생존 방식과 CEO 성공 경험에 휩싸여 정치와 사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철수와의 차이다.  


왜 창당 2개월 3개월 만에, 심지어 총선을 치르기 전에도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지리멸렬해졌는가? 안철수의 목표는 대권 도전이고, 나머지 국회의원들은 413총선 당선이 급하기 때문에, 국민의당은 전체적으로 목표점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두번째는 안철수현상 출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로 남아 있는 '도대체 안철수의 새 정치는 무엇인가?'를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그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안철수의 정치경력은 너무나 일천하고 짧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건실한 '연구소'와 '두뇌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운동과 결합된 정당도 아니다. 

 

세번째는 호남의 민심에 대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오판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2017년 대선에서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극우적 정권과 반-노동자적 부자/재벌친화 정권을 교체하라는 신호를 야당들에게 (민주당,정의당 등) 보냈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 호남 유권자들의 신호를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으로만 축소해 이해했다. 국민의당 창당 이후 '(더)민주당'을 능가하는 당 혁신의 모양새를, 인적 구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안철수는 빈곤하고 무력한 안쓰러운 '독야청청'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국민의당은 총선 전에 무력화될 수도 있다.




(김한길은 서울 광진구 지역구에서도 당선이 힘든 상황에 몰렸다. 김한길은 '새누리당의 개헌 저지'라는 정치적 목표를 내걸었다. 안철수가 옆 자리에 있어도 '고립 정치'를 하지 말라고 비판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3870.html?_fr=mt2 김한길은 친노 인사들의 공천을 반대했고, 그게 만족스러우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통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안철수의 정치적 목표는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에, 413총선은 일종의 정치적 세몰이 실험대이자 중간다리 역할을 할 뿐이다.)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과 2016년 안철수회장의 '국민의당'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정주영 현대 회장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게 노동자들을 쮜어짜서 번 돈, 피눈물을 흘리면서 수백억원 정치자금을 헌납하면서 정치를 배웠고, 안철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IT 산업 원조를 받으면서 정치적 혜택을 보면서 CEO가 되었다. 보수정당의 정치 생리를 정주영은 아주 잘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 돈을 쓰면서 최불암, 강부자, 이주일 등을 사오고 현대 기업을 조직적 선거운동원으로 부려먹었다. 그리고 그게 통했고 적중해서 1992년 4월 총선에서 31석을 얻었고, 그해 12월 대선 후보로도 나갈 수 있었다. 


반면에 안철수는 정치 학습 시간이 너무 짧았고, 보수 정당의 생리, 보수적 국회의원들의 생존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안철수는 한상진, 최장집 등 교수들을 포진시키거나 윤여준 등 멘토를 빌려왔지만, 현실 여의도 국회 기계 속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녹슬어버렸다.)

 


김종인의 발언은 이미 국민의당 내부 사람들과 '소통'이 있었고, 플랜 B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당과 야당 통합을 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서울과 경기권에서 5~6%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접전에서 더민주당이 새누리당을 이기기 위함이다. 김종인과 더민주당이 그것을 모를리는 없다. 

안철수 길들이기가 김종인의 단기 목표다.




한상진 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를 공격하고 비난했지만, 출발부터 이승만 국부론에서 주저앉은데다 현실 정치에서 새로운 신무기는 가진 게 없다는 게 드러나고 말았다.




'정복군 사령관'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승부에서 졌음을 한상진 위원장이 자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복군 사령관이고 오만하다는 말은 관심있는 유권자들이 평할 것이지, 뛰는 실전 선수들이 할 말은 아니다. 한상진의 정신적 무기력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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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기자회견 (3월 6일) 목표와 한계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3월 6일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국민의당 내부에서 그의 ‘지도력’를 재확인하고, 더민주당과의 통합과 선거연대를 놓고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함이다. 안철수에게 중요한 것은 2017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지, 413총선은 그 예비전 성격을 띨 뿐이다.  


안철수 기자회견 핵심은 세가지이다. 첫번째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영토를 뺏어온 사람은 안철수이지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가 아니다.  2017년 대선 후보로서 안철수 자신이 자격조건을 갖췄다는 주장이자, 국민의당이 더민주당과 분리된 이유이기도 하다. 


두번째 주장은 413 총선은 더민주당과의 협력보다는 정책대결을 펼치는 2017년 대선 예비전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호남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국민의당은 더민주당과 선거연대를 하지 않겠다. 총선에서 실패하더라도 국민의당 이름으로 끝까지 총선에 임하겠다. 


세번째 는 김종인의 ‘국민의당’과 ‘더민주당’의 야권 연대설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천정배 지역구에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를 전략공천했고, 더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국회의원들이 원래 ‘더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는 것을 공표하겠다고 한 점은 김종인의 이중 속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안철수의 ‘국민의당’ 독자노선에 대한 천명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지금까지 더민주당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THHAD 배치 논란 국면에서도 국민의당과 더민주당의 노선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테러방지법’과 정의당과 더민주당 위주의 ‘필리버스터’ 국면에서는 오히려 안철수는 양비론을 주장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안철수의 민주주의 관점이 흐릿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아울러 호남과 광주 지역에서 국민의당 국회의원 출마자들과 서울/수도권 지역의 출마자들 사이에는 더민주당과의 선거연대에 대한 의견 차이가 크다. 천정배와 권은희 의원등은 호남에서는 더민주당과 경쟁하고, 수도권에서는 더민주당과 ‘선거연대’와 ‘후보조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선거연대 문제는 413 총선 직전까지 국민의당 내부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안철수는 더민주당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국민의당에 입당한 통일성이 결여된 국회의원들 ‘단속’하는데 에너지를 뺏길 수 있다. 


안철수의 ‘담대한 변화’ 슬로건은 거창했으나, 실제 정치에서는 ‘담대한 변화’를 보여주기에는 그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의 팀워크 수준이 너무 낮아보인다. 








(안철수는 김종인과 더민주당이 새누리당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경북,대구,부산,경남,충청,강원,제주 등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나 무당파들이 국민의당으로 이동하게끔 만들지 못하고 있다. )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히려 하강하자, 더민주당과 김종인은 국민의당에 적극적으로 선거연대와 야권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안철수 연설 전문: 3월 6일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60306115847872




3월 5일 언론보도. 김한길과 안철수는 야권 후보 조정 및 선거연대를 놓고 의견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3월 5일만 하더라도, 천정배는 수도권에서는 더민주당과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3월 6일 안철수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호남 및 수도권에서 더민주당과의 후보 조정 문제와 단일화 협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3월 6일 기자회견은 국민의당 내부 의견 일치를 위한 안철수의 '강공'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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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6. 1. 27. 10:53

김종인 (민주당 선대위, 비대위 위원장) 인터뷰 - 김주하 아나운서


이 인터뷰 도중에, 시청율을 의식해서였는지, 김주하 아나운서는 "전두환 국보위에 참여한 분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은 두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첫번째는 전두환 국보위 (국가보위 비상 대책위원회, 1980년 5월 창설) 참여 문제는, 호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문제 삼고 비판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전두환 노태우 육군 소장들이 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 광주학살을 저지르면서 정권 찬탈을 위해 국보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김종인이 5공화국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것은 찬/반 논란이 있다. 그러나 독재정권 하에서 경제 테크니션으로 활동한 김종인에게 1212 쿠데타나 518 광주학살의 책임까지 물을 순 없다. 전두환 노태우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나 민주화운동 참여시민들은 당연히 전두환과 민정당, 그리고 당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종인에 대해서 비판적일 것이고, 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인은 공식적으로 '국보위 참여'를 사과했는가? 아직 한 적은 없다.

김종인은 공식적으로 6공화국 노태우 정부시절 뇌물수수에 대해서 사과한 적이 있는가? 있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6개월 정도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민주당은 안철수-김한길-박지원 등 중도보수파들의 탈당 이후, 김종인을 영입함으로써 당의 분열을 막고 있다.

그만큼 민주당 정당의 기초와 주춧돌이 허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총선 이후 설사 민주당이 좋은 성적이나 '방어전'을 치르더라도

민주당의 기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제 4공화국 박정희 시절부터 정계에 등장해, 제 5공화국 전두환, 제 6공화국 노태우, 그리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 안철수까지 김종인을 끌어들이거나 이용해먹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 김종인은 집안 대대로 국가의 '공인'으로서 좌우를 막론하고, 군사 파쇼와 민간 정부를 넘나들며,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까지 두루 거치면서 40년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김종인이 독일 뮌스터 대학시절 공부하고, 당시 서독에서 배운 '복지국가' 정책들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1,2차 세계대전 범죄국가들로서, 내부로는 계급투쟁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을 가라앉히고, 국제적으로는 상호파괴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중단하자는 사회적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합의를 이뤄냈다. 그 시기가 1945년에서 1973년 정도 30년간 사회복지 황금기 시절이었다. 


당시 후진국이었고 가난했던 한국에서 서독으로 유학간 김종인이 몸소 체험한 것은 교육, 의료, 실업 보험, 노인 연금 등을 보장한 '가족중심형' 서독 복지국가 체제였다. 김종인은 박정희 군사독재건 유신체제건 간에, <재정학> 전문가로서 욕심이 있었고, 국가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해서 교육,의료,주택,고용,연금,국방 등은 물론이고 공공투자까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김종인의 정부의 '경제' 참여와 큰 정부론은 1997년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IMF의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에 굴복한 것과는 결이 다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 재벌' '선 성장 후 분배' '노골적인 노동조합 탄압'과 '해고의 자유' 노선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김종인은 사회주의자는 아니다.왜냐하면 김종인의 '복지'정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참고: 한상진 "김종인 영입은 독약"이다. 2016.01.26 (한겨레)  -> 한상진은 위와 같은 배경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27946.html




1월 20일, 2016 


김종인은 항간에서 말하는 안철수 멘토설을 부정했다. 

안철수는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명분도 없고, 정당 정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김종인은 러브콜을 받은 적도 있다.

전두환 국보위에 참여한 것은, 부가가치세 폐지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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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부가가치세 폐지 방지를 위해서 전두환의 '국보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 김종인을 영입하려고 했다. 



김종인은 6공화국 노태우 정부시절 3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두 차례 뇌물 수수 혐의와 공모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아래 사건은 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공천 룰을 지킬 것인가?


20% 공천 물갈이는 예정대로 하겠다.






총선 전 야권 통합은 불가능하다.








안철수의 목표는 2017년 대선이 목표다.





민주당으로부터 토사구팽 당하는 게 두렵지 않느냐?

김종인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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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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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인 이분 쎄다는 느낌이 팍. . .잘할것같습니다.

    2016.02.06 12:04 [ ADDR : EDIT/ DEL : REPLY ]
  2. 생각없다는 말 진짜일거라 믿는 내가 바보다.

    2016.05.16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민주당2016. 1. 21. 19:12

유창선 박사가 다음과 같이 김종인에 대한 논평을 했다. "김종인 은 전두환 국보위 참가를 반성하라.” “김종인이 제 1 야당의 점령군으로 된 듯한 광경은 비극이고 희극이다” 그리고 “역사는 정파에 우선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창선 박사의 주장은 몇 가지 헛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필자가 보기에는 5공 청산 전두환-노태우 광주학살 책임 문제를 김종인에게만 떠 넘기는 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재정학(세금) 전문가로서 전두환과 민정당에서 일한 김종인보다는 이제 제 5공화국 청산 책임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더 있다. ‘역사가 정파에 우선한다’는 유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516군사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과 DJP 연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맨 먼저 비판당해야 한다. 



또한 김영삼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전두환-노태우는 1997년 대선 전후로 사면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 바로잡기 성격도 있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김영삼과 신한국당이 96년 총선을 앞두고, 전두환-노태우 일파를 뇌물수수죄와 1212 군사쿠데타 사건으로 구속시킴으로써, 당시 정적 김대중 ‘새정치 국민회의’을 압도적으로 꺾고 총선에서 승리할 계획을 짰던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에게도 ‘역사는 정파에 우선하지’ 않았다. 프랑스 드골이 친-나치 프랑인들 (콜레버레이터)을 처단했듯이, 전두환-노태우를 비롯 1212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모든 소령 이상 장교들을 법정에 세우고 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김영삼은 프랑스처럼 체계적으로 1212 군사쿠데타 헌법질서 교란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전두환 노태우 일파들만 법정에 세운 다음, 1997년 대선 전후로 그들을 전부 사면조치해줬고, 결국 역사 바로잡기는 실패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이후 김영삼의 신한국당 시절 사람들을 대거 기용했고, 박정희 기념관까지 건립했다. 한화갑을 특사로 보내 소위 ‘동진정책’을 폈고, 동서화해를 전두환-노태우 사면과 등치시키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이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창했으나, 당 내부와 한나라당으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없는 일로 하자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난 김종인의 5공 국보위 참여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2차례에 대해서 옹호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 문제는 반대로 비판적이다. 



그러나 2016년 유박사의 ‘김종인’ 비판 역시 타당성이 떨어진다. 위에서 밝힌대로, ‘역사 바로잡기’는 참모 정책전문가 김종인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실세들이 오히려 더 책임을 지고 반성을 해야 한다.  


두 번째, 현재 민주당이 김종인을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를 배신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비판할 수 있고, 안철수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인 중도보수 유권자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박사가 오히려 김종인에게 물어야 할 내용은, 과연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무엇이고, 현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는데, 이념과 가치 및 정책들을 구현할 국회의원들을 선발하는데 진짜 도움이 되는가? 이런 질문들이다. 



5공과 6공화국 정치에 대해서,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종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두 차례나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전두환 민정당에서 두 차례나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하면서 ‘재정 정책’을 담당했으며, 금융실명제 무산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민주당의 체질 개선 및 총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민주당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 이념 가치별로 더 분화되는 게 낫다.







아직 직접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래 책은 김종인의 책, <재정학>, 80년 6월 16일자. 신문에서 소개한 것이다. 아니러니하다. 


김종인의 <재정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이나 당시 캐나다 등 주요 복지국가에서 재정정책을 수립할 때, 케인지안들의 제안과 주장들이 관철되었고, 그런 복지정책을 참고했다고 김종인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종인의 논리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우선시하고, 정부의 '산업정책' 개입 약화 경향, 자본 통제 약화 등 이런 정책들은 오류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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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러니하게 안철수 멘토였다가 이제는 경쟁자가 된 김종인(민주당)의 할아버지가 속한 당 이름이 바로 '국민의당' (1963~64)이었다.

국민의당을 만든 사람들은 김종인의 할아버지인 김병로, 허정, 김도연, 이범석 등이었다. 61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공화당 후보를 63년 10월 15일 대선에서 이기고 군정을 끝내기 위해서, 민정당 (윤보선), 신정당 (허정), 민우회 (이범석) 등 갈라진 야당들이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의하고 만든 당 이름이 바로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1963년 7월 15일에 발족했으나, 후보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9월 14일에야 비로서 창당을 하게 된다.

하지만 민정당의 윤보선은 불참하게 되고, 신정당과 민우회만 합쳐서 국민의당 을 만든다. 윤보선과 민정당에서 함께 했던 김종인의 할아버지 김병로는 이 때 국민의당으로 오게 된다.

김병로는 허정과 윤보선을 집으로 불러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허정은 윤보선 대통령이 5-16군사쿠데타 당시, 쿠데타를 불법이라 선언하지 않고, 오히려 쿠데타를 인정해버렸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허정의 주장은, 윤보선은 군사 쿠데타에 협조하거나 방조했기 때문에 윤보선은 야당 대선후보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허정은 만약 김병로가 야당 대선 후보가 되면, 자신은 후보 사퇴를 하겠다고 윤보선에게 제안했다. 
(일종의 동반사퇴론이었다)

그러나 윤보선 (민정당 후보)은 이러한 허정의 제안을 거절해버렸다. 결국 야당후보 통합은 실패로 돌아가고, 국민의당 (허정 후보), 민정당 (윤보선), 변영태, 송요찬(자유민주당:쿠데타 주역 김재춘이 만든 당)등이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그러다가 10월 2일 허정이 후보 사퇴를 하면서 민정당 윤보선을 지지한다고 발표했고, 송요찬도 역시 사퇴했다.

그 결과 10월 15일 제 5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공화당 박정희와 민정당 윤보선의 대결로 압축되었던 것이다. 김병로는 64년 1월에 사망하고, 국민의당은 1964년 12월에 민주당으로 흡수통합되었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1887~1964]는 민주당에 결합한 김종인의 할아버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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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 14일, 국민의당 간판이 들어서다



9월 14일자 경향신문: 야대열 4파로 분산

대통령 후보 허정, 윤보선, 변영태, 송요찬씨로





1963년 9월 14일자 동아일보, <상처뿐인 이름 국민의당>이라고 적다.
야당 통합사 "곡절 60일간을 본다" 특집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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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9월 14일만 해도, 야당이 분열되었으나,
아래 10월 3일자 경향신문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의당" 대선 후보 허정이 사퇴하고,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은 흥분과 비창의 쌍주.
민정당은 최고의 고무적인 선물 "위대한 결심" 놀랐다는 간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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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자 경향신문:
윤보선 (민정당) 지원키로; 민정,국민의당, 민주,자민 4개 정당 범야단일 전선 곧 형성:
윤보선씨 당선되면 총리는 타정당서 선출하기로.




기호 5번 민정당 후보 윤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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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선 결과는 15만표 차이로 박정희가 윤보선을 이기고, 제 5대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은 윤보선과 같은 민정당 소속이었다.


1963년 2월 15일 동아일보,
윤보선, 김병로, 허정
당시 범야세력 총집결 단계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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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1887~1966는 민주당에 결합한 김종인의 할아버지다 )
    1964으로 고쳐야 합니다^^

    2016.01.18 01:36 [ ADDR : EDIT/ DEL : REPLY ]
  2. 통일이/ 예. 본문 글에는 64년 1월이라고 해놓고, 아래 사진 설명에다는 66년으로 적어놨더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2016.01.18 02: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안철수가 말한  '국민의당'의 최고인재들은 누구인가? 그 중에 한 명은 한상진 전 교수다. 11일 이승만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 땅에 도입하고 굳게 세우신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 (1대~3대)을 평가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11월 27일에 제헌헌법 (1948년 헌법)을 억지로 뜯어고쳐서 장기집권을 하고자 했다. 원래 헌법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미 48년~52년  (1대 대통령), 52년~56년 (2대 대통령) 두 번을 했기 때문에, 56년~60년 3대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과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1월 27일에, 초대 대통령에게 국한해서 대통령 중임안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짜로 한 '개헌'을 국회에서 표결했다.


개헌안 통과는 정족수의 3분의 2였다. 당시 203명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는 136명이었다. 203의 3분의 2는 135.33333 이었기 때문이다. 


1954년 11월 27일 국회 표결에서 찬성 135표, 기권 7표, 반대 60표가 나왔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136명에 1표가 부족해서,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당시 자유당 최순주 국회부의장도 '부결' 판결을 내리고 국회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이기붕 (자유당) 국회의장은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33 에서 소수점 이하가 반올림이 되지 않는 '의미없는' 숫자라는 수학 논리를 가져온다. 따라서 '개헌안' 표결에 필요한 숫자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고 우긴다. 이게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안이다.


11월 29일 국회를 다시 소집한 자유당은 최순주 부의장이 27일은 표 계산을 잘못했다고 하면서 135명이 '개헌안'에 필요한 숫자라고 발표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은 자유당 당원이자 자기 사설비서였던 정치깡패 이정재 등을 국회 안에 배치시키고, 욕설과 협박을 야당의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통과는 세계 현대 정치사의 10대 부정 부패 사건에 해당할만큼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안철수와 한상진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한 이승만을 반대로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한상진 전 사회학과 교수가 54년 세계정치사의 치욕적인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모를리는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곡학아세(曲學阿世)일 뿐인가? 






당시 신문 기사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954년 11월 27일 '개헌안' 부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1면과 사설

"개헌안 부결" "아슬아슬한 1표 차이"



동아일보 사설 


"(부결 시킴으로써) 우리 조국의 민주정치의 위기가 수습되었다" 





11월 29일, 다시 열린 국회. 자유당은 정치 깡패들, 이정재 (이기붕 의장 개인 비서 겸 자유당 당원)를 국회 안으로 배치시키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버리자, 국회의장 이기붕이 개헌 통과 봉을 두들겼다. 






11월 30일자 경향신문 1면,  이철승 의원이 국회의장 최순주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회서 난투극 !"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향신문 12월 1자 사설에서는, 자유당이 정치깡패 이정재를 국회에 투입시켰다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폭력단이 의장내부에 출현횡행하였다 하는 것은 세계의정사에서도 미증유의 사태일 일뿐 아니라, 아무리 후진적인 이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동아일보 11월 30일자 논평:

"어느 편으로 결정되어야 할 지 의문시될 때에는 현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

indubio prostatus quo "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인데, 자유당식 셈법으로 사사오입해서 0.3333를 버리고, 135명이 '개헌' 가능선이 된다는 주장이다. 



12월 7일자 동아일보 "단상단하" 코너.

유진산이 폭력배 이정재를 국회로 끌어들인 자유당 이기붕의장을 비판했다. '무뢰한'이라는 표현이 있다. 





(419 혁명 이후, 이정재는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1961년 6월 석방된다. 그리고 1961년 박정희 군사쿠데타 이후, 10월에 사형당했으나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 사형이었다. ) 



조폭 동원 정치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 민주당 연설회 :


조폭들과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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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5월 25일  조병옥 (민주당) 연설 방해, 앰프에 불을 지르다.






장충단 공원 연설, 조병옥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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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선친은 미국에 유학 가서 이승만의 분탕질을 직접 경험하셨고, 안창호 선생님으로부터 이승만의 문제에 대해 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유신헌법을 배운 유일한 세대입니다. 종신대통령이 되기 위한 헌법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헌법이라고 배웠습니다. 한상진, 정말 또라이네요. 이 자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할 듯합니다.

    2016.01.17 02: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선친의 경험은 참 중요해 보이는데요. 어떤 증언록이나 기록이 있는가요?

      2016.01.25 00:32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