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history)2019. 5. 17. 19:06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준 이후,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광주 518.  아직 성대한 국가 기념식일 수 없는 이유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 범죄자들을 사면했다. 이 잘못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전두환 범죄집단 중, 정호용은 1000억대 자산가가 되었고, 박희도 이상훈 등 행동대장들은 극우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좌파척결"을 외치고 있다.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은  407억원 자산을 보유한 미래한국재단 대표로 있고, 허삼수는 연매출 수십억원대 광고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두환이 자기를 "사랑으로 돌아주신" 은인이라고 표현하며, 취재하는 뉴스타파 기자에게 "이제 재미있게 살아라. 재미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봐라"고 충고했다. 

결국 518 광주 학살자들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셈이다. 2019년 지만원, 자유한국당의 이종명, 김순혜, 김진태의 518 왜곡과 폄훼 발언 이후, 실력있는 언론인들이 518 사살명령자를 찾기 위한 취재를 하고 있어서, 그 동안 은폐된 전두환 노태우 범죄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방해공작 때문에 정치권과 의회는 518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해준 것에 대해 반성적으로 재평가하고, 518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이 광주 518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고, 자유한국당은 민자당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자유한국당도 광주 518 기념식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2월 10일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은 "광주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라고 했고, 김순례는 "518 광주 유공자들이 국민 세금을 축내는 괴물"이라고 욕했다. 이에 대한 나경원은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라며 이종명과 김순혜를 인정했다. 

어느 나경원이 진짜 나경원이냐? 2월의 나경원이냐? 아니면 5월의 나경원이냐? 봄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변신하는 카멜레온 나경원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적은 예산에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 뉴스타파에 감사드린다.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군사반란, 이른바 12∙12사건은 전두환 쿠데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전두환은 ‘빛의 고을’ 광주를 피로 물들였다. 공식 통계로만 220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고 31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1980년 광주학살은 전두환이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벌인 쿠데타라는 것이 역사적, 법적 평가다. 이미 1997년 대법원은 12·12와 5·18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과 그의 측근들에게 무기징역 등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그 해, 정부는 5월 18일을 ‘민주화운동기념일’로 지정했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지 22년이 지났지만, 전두환 쿠데타의 핵심세력과 이들을 추종하는 집단은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 매도하고 있다. 12·12와 5·18은 쿠데타가 아니고,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려왔다는 따위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뉴스타파는 전두환 쿠데타 40년,  5·18민주화운동 39년을 맞아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의 지난 40년 행적을 추적했다.





취재진은 먼저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거나 5·18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 측근 77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전두환이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1997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당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과 5·18 진압부대 대대장급 이상 간부, 그리고 광주항쟁 진압으로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고등학교 졸업명부, 육사동문회 명부,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수첩, 검찰수사자료와 재판기록 등을 단서로 추적해 77명 중 47명의 연락처나 주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망한 사람은 19명이었다.

행적이 확인된 47명 중 상당수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고위 관료와 정치인,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장·차관이 된 사람이 14명, 공기업의 대표나 감사가 된 사람이 11명,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도 9명이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8명이었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도 7명이나 됐다. 이 중 6명은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과 그 후신인 민자당 소속이었다. 군 최고 계급인 대장에 오른 인물도 18명에 달했다. (복수 직책 거친 인물은 중복 카운트-편집자)

전두환 쿠데타 부역자 47명 중 14명 장차관 지내...국회의원도 7명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 강남과 용산, 경기도 분당과 과천 일대의 고급 아파트나 주택에 살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도 여럿 확인됐다. 사망한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과 유학성 전 안기부장의 재산은 가족에게 고스란히 상속돼 있었다.

서울 강남과 서초, 경기 분당, 과천 일대 땅부자 된 전두환 잔당들

‘5공 설계자’로 널리 알려진 허화평 전 보안사 비서실장은 10년 넘게 미래한국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본부를 둔 이 재단은 청와대 인근에 서울사무소를 두고 있었다.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은 1983년 대통령 전두환이 만든 현대사회연구소라는 이름의 관변단체였다. 설립 당시 기록을 확인해 보니, 현대사회연구소의 설립자금 94억 원은 전두환이 재벌기업 등에서 뜯어낸 돈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영무 김앤장 설립자,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등이 이 연구소의 이사를 지낸 사실도 드러났다. 2005년 미래한국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 연구소는 현재 407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허화평은 개인재산으로 서울 강남 압구정에 50억 원 상당의 건물, 청와대 인근에 1000제곱미터 규모의 대저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허화평 자택 인근 주민들은 허화평의 집을 ‘전두환이 준 선물’로 알고 있었다.    

12·12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을 지냈고 허화평과 함께 ‘3허’로 불리며 5공의 실권자로 행세했던 허삼수는 현재 수십억 원대 연매출을 올리는 광고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두환 세력 중 재산이 많기로는 5·18 당시 특전사령관을 지낸 정호용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정호용은 본인과 가족 명의로 경기도 과천에만 3채의 대저택과 대규모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서울 강남구·용산구·종로구, 강원도 평창 등에도 수십 건의 토지와 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993년 국회의원이던 정호용이 신고한 93억 원대 재산목록을 토대로 추적한 결과, 정호용 일가의 부동산 자산은 현재 1000억 원대로 불어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5·18 왜곡하며 소위 ‘태극기 부대’가 된 전두환 잔당

전두환 쿠데타 세력들 중에는 12·12와 5·18을 왜곡, 폄훼하는 활동에 발벗고 나선 이들도 많았다. 12·12 당시 1공수여단장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불법 장악해 실형을 받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5·18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차장이었던 이상훈 전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박희도는 현재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이라는 보수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대불총이 주최한 한 행사에서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광주의) 무장 폭도들은 민주화 투사가 되고 이를 진압한 국군이 반란자가 되어 훈장마저 박탈당한 처지에 놓인 상태다.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12·12 당시 1공수여단장)
대불총에는 12·12 쿠데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이었던 신윤희도 몸담고 있다.

이상훈은 소위 ‘태극기부대’의 핵심세력으로 꼽히는 애국단체총협의회의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4월, 조선일보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친북노래’라는 주장이 담긴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박희도와 신윤희, 그리고 이상훈이 활동하는 대불총과 애국단체총연협의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인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행정안전부에서 각각 3억 원과 4억 원의 민간단체지원금을 받았다.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 잔당들

뉴스타파가 지난 3개월 동안 추적해 만난 전두환 쿠데타의 핵심인물 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고 5·18 당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장세동도 그 중 하나였다. 전두환 정권에서 안기부장을 지내며 ‘5공 2인자’로 불리기도 했던 장세동은 현재 5∙18 직전 광주에 머물며 학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의혹을 부인했다.  

5∙18 직전 광주에 내려간 것은 정상적인 절차였다. 2군사령관 요청으로 2개 부대가 광주에 내려갔는데, 이들을 마중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갔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이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5·18당시 특전사령관 작전참모)
취재 : 한상진 홍여진 박경현 강민수 강현석 강혜인
촬영 :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오준식
내레이션: 조경아
데이터 : 최윤원 김강민 
편집 : 정지성 박서영 김은 
CG :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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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2019. 5. 17. 03:20

계엄군 11 공수부대는 광주 YWCA 건물과 광주 도청 진압 작전에서 스턴수류탄을 사용했다. 강한 빛과 소음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스턴Sturn 수류탄은 당시 신무기였다.

다시말해서 11 공수부대는 광주 시민들을 전쟁터에서 적군으로 간주하고, 신무기를 사용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출처: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17354&pDate=20190516




계엄군, 광주서 신무기…시민 상대로 '성능시험' 정황

[JTBC]  입력 2019-05-16 22:23-

[앵커]


헬기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는 5월 21일과 27일입니다. 특히 5월 27일 새벽은 전남도청 강제진압 작전이 있었던 시간이지요. 계엄군은 이날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발견된 문건에는 시민을 상대로 신무기의 성능을 시험한 정황까지 발견됐습니다.


김나한 기자입니다.


[기자]


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을 장악한 11공수는 YWCA 건물의 시민들을 향했습니다.


계엄군은 '과감한 공격으로 3명을 사살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문건은 더 자세합니다.



YWCA 건물 2층의 시민들에게 M203 유탄발사기로 3발을 쏘고, 2층으로 들어가서는 스턴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강한 빛과 소음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스턴수류탄은 신무기였습니다.



3공수 책임장교의 검찰 진술조서에는 "국내에서는 처음 사용하는 것이니까 사용 후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책임장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수기에는 "특수탄을 사용해 시민 200명을 순간적으로 무력화 시켰다"고 나와 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광주에서 새로운 전술무기를 사용을 하고 효과를 확인했던, 그런 전장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는거죠.]


다시 80년 5월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


공수부대가 포위하듯 전남도청을 둘러싸고 민원실을 맡은 특공중대가 스턴수류탄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검시조서에는 시민 대부분이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고 숨진 것으로 나옵니다.


작전을 마친 뒤 계엄군은 '평소 연마한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자평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조승우·김석훈)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17354&pDate=20190516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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