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튼의 [자연철학 방법]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자연철학이란 자연의 구조(틀)와 운동과정을 발견하는 것이고, 될 수 있는 한 이것들을 일반 규칙들이나 법칙들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이러한 규칙들을 수립하고, 그럼으로써 자연세계 사물들의 원인들과 결과들을 설명해내는 것이다.” 뉴튼는 근대인이다. 이러한 뉴튼 자연철학 방법은 신(God)의 뜻과 말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의 손가락 가리킴(teleology: 목적론)을 끌여들이지 않아도 된다.
근대인들은 뉴튼의 방법에 따라, 자연세계 사실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 도덕, 사회적 규범, 정치까지 다 ‘규칙과 법칙’의 대상으로 환원시켰고, 자연의 인과관계처럼 그것들을 다루웠다. 한마디로 자연대상처럼 수치화되어, 질적인 것을 양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그런 인간의 활동까지도 ‘환원’시켰다. 이러한 뉴튼적 세계관에 철학적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 에드문트 훗설 Edmund Husserl이다. [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적 현상학: 현상학적 철학 서설:1936/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Eine Einleitung in die phänomenologische Philosophie
] 이 책의 배경은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훗설의 철학적 반성이고, 서구 근대-자본주의화 과정에 대한 문명분석이기도 하다. 그의 비판 대상은 뉴튼과 갈리레이 갈레레오의 [자연철학 방법]에 깔린 세계관이다.
그런데 훗설의 대안은 고대 아테네 (그리스) 문화적 전통의 재해석이고, 그것으로 복귀이며, 그 핵심은 우리 인간의 총체적 삶의 터전인 ‘생활세계’ 안에서 진, 선,미의 추구와 창조이다. 인간 자체가 자연대상을 다루는 학문의 논리체계 안에서 ‘수동적 통제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진-선-미를 추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주체로, 다시 말해서 관찰가능한 수치화 가능한 ‘파편화된’ 원자가 아니라, 삶의 추구 방향이 무엇인가, 타인의 감정은 어떠한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할 줄 아는 총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서구 유럽의 학문과 사회는 이러한 진-선-미 총체적인 문명을 달성하지 못하고, 뉴튼의 세계관에 기초한 기술효율성만을 비대칭적이고 불균형하게 발달시킴으로써, 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인류 전체를 파괴하는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훗설의 생각을 배워서, 소련사회주의 역시 수동적 체제 도구로 전락해버린 노동자와 시민들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제시되는데, 그러한 흐름들이 Enzo Paci, Karel Kosik, Paul Piccone 의 “현상학적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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