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Nov.15
수능 단상 1. 대학 2학년까지는 전 국민이 다 의무적으로 다녀야 한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다. 21세기에는 대학 1은 고 13학년이고, 대 2는 고 14학년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75년까지 한국은 이모 고모 삼촌 형수 제수씨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다 같이 논에서 일했다, 즉 직장 공간이 같았다는 말이다. 그 논에서 허리춤을 부여잡고 같이 노동했다.
1991년을 기점으로 한국 도시인구는 80퍼센트를 넘었다. 직업종류도 지난 40년간 3천~5천가지로 증가했다. 복잡사회가 되었고, 그 복잡사회에 대한 이해가 바로 대학의 사회적 임무가 되어야 한다. 삼성재벌이 성균관대학 경영하지 못하도록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
재벌이 대학을 이윤마켓으로 전락해버린다고 해서, 대학이라는 교육제도를, 인류진보의 공간으로서 대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다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공동체 공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970년대 고등학교 지식 정도는 이제 대학 1, 2, 3학년 수준이다. 사회의 복잡도 증가를 고려해 교육 수준들과 학교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
수능 단상 2.
한국좌파의 정치적 임무.
전 인류사와 200년 사회주의 운동에 전무후무한 역사적 특수성. 그것은 한국 고용, 즉 노동자 구성에서, 사교육 서비스 노동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율 또한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 운동을 선언해야 한다.
1. 교과 내용 중복, 예습 학습 학원강사들을 공교육 교사로 다 전환해야 한다. 일정한 자격 시함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과 내용 학원이 불필요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합의 해야 한다.
수능 시험 단상 3 : 생리통의 실재와 실존에 대해
특별히 생각없이 살다가, 언젠가부터 여자들이 학력고사나 수능, 각종 자격시험에 불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리통이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이것도 일종의 무지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건 내 존재 자체의 무한한 한계이자, 유한한 경험의 한계이기도 하다.
역지사지해서, 내가 국가관장 시험을 보는데 생리통으로 두뇌 회전율이 99%이하로 떨어졌다면, 헌법재판소나 교육부에 찾아가서 항의할 것 같다. 우리 할머니들을 대동하고 시위에 돌입할 수도 있다.
캐나다도 대학, 고교에서 여학생들 평균 점수가 남자보다 높은지는 이제 한 세대가 더 지나가고 있다. 이런 장기 경주에서는 생리통이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과거 학력고사나 현재 수능시험과 같이 하루 시험보는 것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대안을 법률로 만들기 전에, 우선 그만큼 우리 한국이 시험은 강조하지만, 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행정편의적일 때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대안적 장치들은 여러가지 각도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위스퍼 날개 사러 뛰어다다가 예전에 가끔 떠올린 생각이다.
형수님도 제수씨도 모내기 줄잡고, 논에서 허리춤 부여잡고 같이 일하던 농경시대로 뒤덜아갈 수도 없고 말이다.
4. 한국 사람들, 문자 발명 이후, 전 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오래 공부를 하지만,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고 있어 문제여 문제 ~ 이런 미친 공동체 파괴적 질주는 멈춰야 한다.
수능(대입시험제도)과 기득권 강화를 깨기 위해서는:
교육문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고, 정치적 진보세력과 좌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 계약서 하나 작성할 줄 모르고, 이과 학생들은 고등 때, 법 자체를 배우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다. 지금 한국은 인류 문화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한다.
수능이 문제가 아니다. 직장내 승진 공부나 입사 학원공부 하는 국가는 많지가 않다.
(대안) 자녀들이 18세 이전에 최소한 미래 직업들을 견학하고, 실제 인턴으로 일해 보거나, 체험하도록 교과 내용과 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
100세 시대는 현실이다. 평생 할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과정이 교육 내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전쟁이 난 나라만큼 홧병이나 심리적 상처가 많은 나라, 사회적 인정 갯수가, 신석기 시대처럼 몇 개로 제한되어 있는 나라, 사회 변혁을 힘들게 하는 주요한 장벽들이다.
80년대 학생운동한 세대들이 가장 좋아했던 형용사가 "치열하다. 치열하게 고민하라 " 아니였나 ?
다른 주제는 놔두고라도 교육 문제는 자기 자녀들 문제인데, 걸핏하면 '이민간다고 하고,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지도 않았구나.' 학원해서 국회의원되느라 바빴으니. 그건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철학에 앞선다는 인지상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우리들의 에너지 방전만을 막고, 건강한 흐름을 만드는 것도, 좌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다. 학부모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우리들 아이들의 현실과 미래를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실천기회들을 공동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민간다고 ?" 요샌 역이민도 늘고 있다. "캐나다가 제주도 아래 위치해 있으면 모를까 ?" 로스쿨 간다고 학점 잘 주라고 학생들이 요구(정치질+사정)하는 게 미국 캐나다 대학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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