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익씨 유서 전문
입력 : 2003.10.17 14:30-
금속노조 한지중공업지회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이던 크레인의 운전석에서 노란색 봉투에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 라는 제목의 3장은 가족에게 남긴 것이며 지난 9월9일 작성한 것이어서 김지회장은 한달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동지 여러분’ 이라는 제목의 1장은 10월 4일에 작성됐다.
다음은 유서의 전문이다.
-유서-
오랫만에 맑고 구름없는 밤이구나. 내일모레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원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전면 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한번 하지 않고 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단기 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수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당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용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몇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 놈의 보수언론은 입만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달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농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고 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까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빨리 가는 것 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바퀴달린 신발)인지 뭔지를 집에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지 며칠 안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 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지 십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징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라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2003년 9월 9일
김주익
-조합원 동지 여러분-
회사의 경영진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대의원 이상 간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노동조합을 사수할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생존권도 지켜낼수 있습니다.
동지들!나의 죽음의 형태가 어떠하든간에 나의 주검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10.4. 김주익
원문보기: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0310171430581?www
민주노총 2003. 10. 21 기자회견문 >
민주노총은 129일째 고공농성 끝에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의 명복을 빌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긴장이 고조되는 노동정국과 관련 다음과 같이 태도를 밝힙니다.
1. 우리는 사용주들의 손해배상·가압류와 노동탄압을 방관하고 부추기는 노무현 정권의 강경 노동정책이 중단되지 않으면, 언제 또 다시 제2의 김주익과 배달호와 같은 참극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절박한 마음을 떨칠 수 없습니다.
민주노총은 노무현 정권이 노동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손배가압류·노동자 대량구속·사용자 대항권 강화·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등 친사용자 노동탄압정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10월22일·29일과 11월5일 대규모 부산집회에 이어 11월9일 서울에서 10만 노동자가 참가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강력한 대정부 투쟁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가 노동탄압정책을 계속한다면 민주노총은 재신임 정국과 연계해 노동탄압정책을 강력히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노무현 정권은 두산중공업 배달호 동지가 재벌의 가혹한 손해배상 가압류·노동탄압을 분신자살로 고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출범했습니다.
출범 당시 노무현 정권은 △ 손배 가압류 남용 방지제도 마련 △ 비폭력 불법파업 불구속 수사 △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차별철폐 △ 대화와 타협으로 파업 해결 등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이루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6월 들어 강경한 노동탄압정책으로 돌변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철도파업을 경찰병력을 투입해 무력 진압한 이래 현재까지 파업현장에 모두 다섯 차례 경찰병력을 투입했으며, 출범 8개월만에 이틀에 한 명 꼴로 무려 132명의 노동자를 구속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운동을 경제를 망치는 부도덕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을 입버릇처럼 쏟아내더니 결국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하는 이른바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노무현 정권은 정부 자신이 철도파업에 대해 75억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고, 사용주들은 이에 편승해 배달호 동지 분신자살 이후 화물연대·흥국생명·이구·인천지하철 등 여섯 개 사업장에서 새롭게 손배가압류를 제기했으며, 현재까지도 46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1천3백 억대 손배가압류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한진중공업의 가공할 노동탄압을 바로잡고 대화와 타협으로 파업을 해결하기는커녕,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를 방관하고 노조간부 6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경찰병력 투입을 꾀하며, 노동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김주익 지회장을 자살로 내몬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의 노동탄압정책이 계속되는 한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참극이 벌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2. 노동자들의 참혹한 희생 뒤에는 천민재벌의 시대에 뒤떨어진 혹독한 노동탄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두산에 이어 한진중공업에서 똑똑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한진재벌이 혹독한 노동탄압으로 김지회장을 자살로 몰고 간 데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태를 올바로 수습하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기필코 응징하겠습니다.
한진재벌은 지난 90년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직후부터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노조활동에 앞장선 113명의 노조간부에게 총 18억대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제기하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감당할 없는 노동탄압을 계속해왔습니다.
특히 한진중공업은 지난 해 239억의 당기순이익을 내고도 회장과 대주주 임원들에게 100억 넘게 배당했을 뿐, 노동자 650여명을 강제로 내쫓고 임금동결을 강요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노조 조합비를 모두 가압류하고 노조 간부 20명의 월급과 퇴직금을 가압류한 것도 모자라 살고 있는 집까지 가압류했습니다.
심지어 올해 들어서는 150억대 파업손실을 물어내라며 일반 노조원들의 임금·부동산·예금통장·자동차 등 모든 재산을 가압류하겠다고 압박해 노조를 벼랑으로 내몰아 결국 김지회장 자살이란 참극을 빚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한진재벌이 노조를 말살하려는 야욕에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데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한진재벌이 이번 일을 계기로 노조를 대등한 경영의 상대로 인정하고
△ 노동탄압 사과
△ 2002년과 2003년 임단협 체결
△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 징계와 해고 원상회복 등 노조의 소박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은 악덕 한진재벌을 응징하기 위한 전국투쟁으로 나아갈 것임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3. 김주익 지회장은 유서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인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고, 보수언론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라며 절규했습니다.
사용주들과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난 8개월 동안 노동운동에 대해 균형을 잃은 태도로 매도하고 비방하며 정권과 사용주들의 노동탄압을 부추겨온 보수언론은 김주익 지회장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재벌에게 돈 받고 부유층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정치집단이나, 재벌 광고를 받으려 재벌회사 사보나 다름없는 언론으로 전락한 보수신문의 횡포가 계속된다면,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사회 갈등은 결국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사회 각 분야의 개혁정책과 함께 과거 정권과 다른 노동정책을 펴겠다는 공약을 믿고 기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과 8개월만에 개혁이란 개혁은 모두 포기하다 미국에 굴종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고, 군사독재를 뺨치는 강경 노동정책으로 회귀한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권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은 모든 양심세력과 함께 노무현 정권 심판운동으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2003년 10월 2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자 울린 고 김주익씨 두자녀의 편지
입력 : 2003.10.21 18:38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41)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가운데, 생전에 고공 크레인에서 생활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의 자녀들이 보낸 편지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김위원장은 노조를 상대로 한 회사의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 철회 등을 요구하며 35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129일째 혼자 농성을 벌여오다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위원장은 부인 박성희씨(36)와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12살·7살 아들과 10살 난 딸이 그들이다. 고인은 유서에서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크레인에서 내려가면 바퀴 달린 신발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자녀들이 보낸 편지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딸이 보낸 편지는 추석 뒷날인 9월12일 쓴 것이다. 고인은 이미 9월9일 첫번째 유서를 써놓았다.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께.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 줄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돼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빠 자랑도 하는데….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참! 어제 무서웠죠? 우리는 오빠가 아빠 노릇 잘해요. 사랑해요!”
7살 난 막내도 크레인에서 농성중인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다.
“아빠한테 메시지 어떻게 보네요. 네? 알면 편지로 보내주세요. 편지지 없으면 집에 와서 가르쳐주세요. 그래도 안되면 억지로 안가르쳐줘도 돼요. 아빠, 형아가 누나하고 나를 노예로 삼았어요. 아빠가 빨리 와서 형아를 많이 혼내주세요. 아빠, 우리 어젯밤에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어요. 그래서 촛불을 켜고 그림자 놀이도 하고 핸드폰 벨소리를 듣고 엄마랑 누나랑 형아랑 다같이 잤어요. 그래서 무섭지도 않았어요. 아빠, 빨리 오세요”
자녀들이 보낸 편지 내용은 순진하다. 아버지를 오죽 기다렸으면, 아이들이 일자리를 구해 줄테니 내려오라고 했을 정도다. 이 편지를 읽은 노동자들은 지난 17일 유서 공개 때와 마찬가지를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김위원장의 형 주현씨는 19일 새벽 빈소에 마련된 방명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주익아 내동생아/한이 한이 서리고 맺혀서/네 영혼인들 네 갈 길은 있을까?/아마 이곳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주익아 내 동생아 이 형이 너무너무 미안하구나/할 말이 없다 주익아/방황하고 있을 네 영혼을 어떻게 하면 편히 쉬게 할 수 있을까/이 세상에서의 무겁고 고단한 짐을 벗어던지렴…/주익아 보고 싶다/네 목소리를 듣고 싶다”
〈윤성효기자 ysh@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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