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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탐사. 기획부동산. 소득주도성장?…노동소득은 부동산 ‘불장’ 앞에 무력했다

by 원시 2021. 12. 31.

소득주도성장?…노동소득은 부동산 ‘불장’ 앞에 무력했다
등록 :2021-12-31 13:59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⑩]


부동산 ‘투신’ 없이 신분 상승 없다


계급을 결정짓는 부동산의 힘이 이번 정부에서 더 세졌다. 이른바 ‘부동산 불장’의 시절을 거치면서다. 서울 한남3구역 랜드마크인 한광교회 주변에 오래된 주택이 빼곡하다. 한강 건너 강남아파트 밀집지역이 멀리 보인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겨레> 탐사기획팀은 언론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해 서민들을 자극해 땅을 사라 노골적으로 떠미는 부동산 기획의 세계를 밀착 보도했다. 잘 드러나지 않는 기획의 세계도 있다. 1천만~2천만원만으로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올해 많았다. 부자들은 돈 안 된다 비웃어도 처지에 맞게 투자하라는 안내는 적어도 어떤 중하위 계층에겐 복음이고 믿음이었다. 그들을 만났다. 2022년에도 희망은 희망일 수 있을까.

부동산 생태계에서 모두 승자가 될 수 없음에도 계층 구분 없이 부동산에 뛰어드는 이유는 자명하다.
데이터 분석 결과, 지난 수년 동안 ‘상위 20%’로 진입하고 계층을 차별화하는 비결로서 부동산의 힘은 더 세졌다. 이 집단과의 층고는 부동산으로 더 높아졌다. 부동산, 그중에서도 비거주 부동산에 대한 ‘투신’ 없이, 계급은 추락하며 상위 진입은 애초 불가능해진다는 얘기가 이 사회의 진리가 되어온 셈이다.
이를 확인하고자 세 유형의 데이터를 주로 분석했다. 최근 5분위(상위 20%)와 1분위(하위 20%) 간 자산불평등 양상을 보여줄 ①소득분위별 부동산 점유율(2015~2020년), 두 정권별 자산 격차 증감 폭을 보기 위한 ②소득분위별 부동산 자산 격차(2012~2016, 2017~2020년), 상류층끼리도 부동산에 따른 차이가 발생했는지 볼 법한 ③상위 5-4분위 간 부동산 자산 격차(2020년)다.
순자산 상위 20%, 부동산 63%·비거주 부동산 77% 보유
1. 우선 5년 전보다 부의 집중도가 심화됐다. 국내 가구 전체가 보유한 부동산의 절반 이상은 상위 20%가 주인이다. 순자산 5분위가 점유한 부동산 자산 비율은 2015년 62.20%에서 2020년 63.41%로 늘고, 소득 5분위의 전체 부동산 중 점유 비율도 각 연도 43.72%에서 43.75%로 커졌다. 반면 자산·소득 1분위의 부동산 자산 점유비율은 각기 0.83%(2015년)에서 0.66%(2020년), 7.74%에서 6.52%로 떨어졌다. 부동산이 없어 1분위로 추락하거나 머물기 쉽고, 부동산이 없이 5분위로 오르긴 더 험난해진 것이다.
2020년만 보면, 국내 순자산의 62%(7362.8조원 중 4565.5조원)를 소유한 상위 20%는 부동산 자산의 경우 63.4%(전체 6485.4조원 중 4112.5조원)를 갖고 있다. 부동산 자산은 거주주택, 거주주택 외 부동산, 계약금·중도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순자산 5분위의 전체 비거주 부동산 자산 중 소유분은 76.8%(2553.6조원 중 1960.6조원)에 이른다. 전체가 보유한 비거주 부동산 자산의 5분의 4 가까이를 5분위가 깔고 앉은 것으로, 비거주 부동산을 선두로 하는 ‘자산의 위계’를 잘 보여준다.(<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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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 들어 더 벌어진 자산불평등
2. 전 정부를 지나 현 정부에서 자산불평등은 완화되었을까. 더 벌어졌다. 당장 소득 1분위와 5분위의 부동산 자산 격차 변화를 견주면, 전 정부 때 5.8배(2012년)에서 4.6배(2015년)로까지 두 분위 간 격차가 완화되던 것이, 이번 정부 들어 5.1배(2017년)에서 5.7배(2020년)로까지 매해 늘며 1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현 정부에서 두 계층이 소유한 거주주택 자산의 가격차는 3.6~4.2배 사이 등락을 거듭하기도 했으나 특히 비거주 부동산 자산이 2017년 7.9배에서 2020년 9배까지 꾸준히 증가한 탓이다. 비거주 부동산의 보유 목적은 분류되지 않아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비거주 부동산이 계층 간을 이격시켜왔다는 분석을 피할 순 없다.(<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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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년 동안 부동산 액면가만 보면, 소득 5분위의 자산 축적이 돋보인다. 주거 부동산은 1.31배, 비거주는 1.15배 증가로 두 부문에서 다른 소득계층을 앞섰다. 이미 부동산 자산이 5억~6억원대로 단위가 가장 큰데도 가장 크게 상승했다는 말은, 1억~2억원 미만의 저소득 분위들(하위 40%)로선 더 많이 집값이 뛴들 결코 진입할 수 없는 세계가 머리 위에서 구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이 또한 그나마 부동산을 소유한 저소득층의 얘기다.(이상 데이터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진미윤 센터장 제공)
국토교통부가 수집하는 주택자산가액(주택 소유 가구를 상대로 조사한 주택값)의 ‘증언’도 비슷하다. 전국 평균이 2억4000만원에서 3억2400만원으로 35% 증가하는 4년(2017~2020년) 동안, 주택자산 5분위(상위 20%)의 평균값은 2017년 6억4000만원에서 2020년 9억3900만원으로 46.7% 올랐다. 같은 기간 4200만원에서 4500만원으로 7% 증가한 1분위(하위 20%)와 크게 대비된다.
그 땅의 격차만큼이 더 커진 절망, 박탈감의 두께라 할 것이다. 실제 계층별 소득격차가 그리 벌어지진 않았다.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순자산을 나라살림연구소와 추가 분석한 결과, 이번 정부 4년(2017~2020년) 동안 순자산 5분위(상위 20%)의 가구소득은 2017년 1억409만원에서 1억922만원으로 513만원(4.9%), 1분위 소득은 2536만원에서 2823만원으로 287만원 증가(11.3%)했다. 소득 증가 폭은 1분위가 훨씬(6.4%포인트) 컸다. 부동산은 달랐다. 순자산 1분위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은 1041만원(2017년)에서 1061만원(2020년)으로 20만원 는 반면, 5분위는 8억733만원에서 10억1320만원으로 2억587만원 올랐다.(<표3>)

종합하자면 지난 4년간 자산 상위 20%-하위 20% 집단 간 소득격차는 4.1배에서 3.87배로 감소한 동안, 부동산 자산 격차는 77.6배에서 95.5배로 증가했다. 특히 비거주 부동산 자산 증가분은 순자산 5분위가 6434만원(2017년 4억3025만원→2020년 4억9459만원)으로 나머지 모든 계층의 비거주 부동산 자산 증가분 합산치(2435만원)보다 많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작동했을 수 있으나 종국에 부동산으로 무력해진 꼴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부동산 ‘불장’이 될수록 소득으론 부동산 자산 불평등을 극복할 수 없게 된다”며 “최근 있었던 부동산 가격 상승은 고액 자산가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가치에 집중됐다”고 말했다. 진희선 연세대 특임교수(도시공학)는 “최근 15년간 주택 공급은 800만호가 늘었는데, 자가 보유자의 비율은 60%를 유지하고 있다. 모두 다주택자가 소위 ‘줍줍’ 해 부동산 가격 폭등 때는 이득을 얻었다”고 짚었다.
순자산 상위 20%의 ‘비거주 부동산’, 바로 밑 계층에도 ‘박탈감’
3. 순자산 4분위(상위 21~40%)는 5분위 다음으로 ‘비례 만족’ 하는 삶이었을까. 4~5분위의 부동산 자산은 공히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들 간에도 차이는 발생했다. 비거주 부동산 탓이다. 2020년 기준, 순자산 5분위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 중 비거주 부동산 비율은 48.8%(10억1320만원 중 4억9459만원)를 차지했지만, 4분위는 30.2%(3억3899만원 중 1억227만원)에 그쳤다. 이와 함께, 두 집단의 거주용 부동산 자산 격차는 2.19배(5억1861만원-2억3673만원), 금융자산 격차는 2.29배(2억5542만원-1억1140만원)인 데 반해, 비거주 부동산 자산 격차는 4.8배(4억9459만원-1억227만원)에 달했다.(<표4>) 1~3분위는 부동산 전체 자산이 줄거나 소폭 느는 데 그쳐 비할 바가 못 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비거주용 부동산을 사들이는 투기는 주택 가격이 계속 올라야 유지되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실거주 목적으로 다주택자 집을 산 사람이 피해를 본다”며 “특정 계층에 몰려 있는 부동산의 양도 차익 환수에 정부가 게으르게 나설 경우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주요 대선 후보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와 이에 격동하는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을 공식화하고 있다. 해법이 될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공급 중심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다. 공급과 동시에 보유세도 강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미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모호한 물량 호수가 아니라 양질의 저렴한 주거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며 “주거안정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시장에 떠넘기고 금융에 의지하게끔 해선 안 되고, 삶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게 맞춤형 세제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3월 이뤄질 부동산의 심판이 가져올 부동산의 새 풍경은 과연 무엇일지 아직 알 수 없다.
장필수 김완 임인택 기자 feel@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5523.html?_fr=mt2#csidx21fc0463f34b6a6bef842622bb1e130

 

부동산 ‘불장’ 3년,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아파트 주인이 됐다
등록 :2021-12-31 04:59수정 :2021-12-31 09:26김완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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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⑨] 10살 집주인들
“부자들은 돈이 안된다고 비웃을 수 있지만…”
부동산 불장 3년, 중하위 계층으로 번진 ‘갭투자’
문산아파트 376세대 전수조사…10대 집주인 10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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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탐사기획팀은 언론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해 서민들을 자극해 땅을 사라 노골적으로 떠미는 부동산 기획의 세계를 밀착 보도했다. 잘 드러나지 않는 기획의 세계도 있다. 1천만~2천만원만으로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올해 많았다. 부자들은 돈 안 된다 비웃어도 처지에 맞게 투자하라는 안내는 적어도 어떤 중하위 계층에겐 복음이고 믿음이었다. 그들을 만났다. 2022년에도 희망은 희망일 수 있을까.

“서울에 어마어마한 집들 투기한 사람도 많은데, 나는 파주 끝자락 문산에 돈 천만원 주고 겨우 집을 샀는데… 왜 취재를 하는 거죠?”
지난 11월 말, 서울 마포구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만난 양회승(가명·40대)씨는 말끝을 흐렸다. 양씨는 2012년생, 2016년생 4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운다. ‘문산에 돈 천만원 주고 집을 산 사람’이란 그의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갭투자로 1천만원 남짓을 주고 아파트를 산 것은 맞다. 하지만 명의상 집을 산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이들이다.
채 10살도 안 된 양씨의 아이들은 파주 아파트의 ‘집주인’들이다. 게다가 다주택자다. 양씨는 올 5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리의 ○○아파트 10층과 11층을 각각 아이들 이름으로 샀다. 9월에는 그 아파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 5층을 나란히 또 갭투자 방식으로 샀다. 총 4채의 아파트를 사는 데 5천여만원을 긁어 썼다.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시면 선물하기 좋은 아파트입니다’. 가입자가 176만명에 이르는 한 인터넷 부동산 투자 카페에 게시된 글 제목이다. 부동산 세제 개편을 앞두고 있던 올 초부터 갑자기 늘기 시작한 유형의 부동산 호객이었다. 지난 9월에 올려진 글은 지난달까지만도 조회수가 3만여회에 달한다. 자세한 문의를 원한다는 댓글도 160개 달렸다. 이 글뿐만 아니다. 다른 부동산 카페에도 ‘미성년 아파트’, ‘미성년 증여’, ‘미성년 투자 유망’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관련 게시글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문재인 정부 내내 부동산 ‘불장’이 이어졌고, 정부는 분기마다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사이 중하위 자산계층을 특히 자극할 만한 투자 방법이 시장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2015년 개정된 증여세 면제 한도(미성년 자녀 2천만원, 성년 5천만원)가 여력이 되는 이들의 ‘갭투자’ 전략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며 기저층으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증여세 면제 한도 내에서 자녀 명의로 수도권 저평가 아파트나 서울 구옥 빌라에 ‘갭투자’하는 양태가 더해지기까지 부동산 기획자들의 움직임 또한 기민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겨레>가 확인한 부동산 투자 카페 게시글은 가격대별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서울 구로구(6억대, 캡투자 1억원 안팎), 경기 남양주시(3억대, 캡투자 5천만원 안팎), 파주시(1억 중반, 갭투자 2천만원 안팎), 강원도 양양(1억 이하, 단기임대 가능)까지 4개 아파트 단지를 “미성년 자녀 선물 아파트”라고 소개한다. ‘1:1 채팅’으로 직접 문의도 가능하다며 “필요하다면 법률 상담도 무료로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곤 방점을 찍는다.
“부자들은 돈이 안 된다고 비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없는 이들은 1, 2천만원의 수익도 절실합니다. 부자들이 말하는 상급지도 좋지만 돈 상황에 맞는 투자도 필요한 때입니다.”
게시글 작성자는 소개한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을 본인도 직접 초등학생 자녀 명의로 샀다고 밝혔다.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지 않아 1천만원 남짓의 갭투자로 구매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증여세는 200만원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향후 “정말 장점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 가치가) 천지개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한겨레> 기자가 취업한 데를 포함해, 호재와 미래 가치를 강조하며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파는 것”이라거나 “너무 좋은 땅이라 내 가족도 이미 샀다”며 욕망을 자극하고 고객을 유인하는, 숱한 기획부동산의 흔한 영업방식과 유사하다.
부동산 투자 카페 등에서 ‘미성년자 자녀 선물 아파트’로 소개된 아파트 가운데 하나인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를 진짜 구매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한겨레>가 이 아파트 376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결과,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10대 이하(0~19살)는 양회승씨의 아이들을 포함해 모두 10명이었다. 이 어린 집주인들의 실거주지는 서울 양천·구로구, 용인 수지구, 충남 논산시 등 다양했는데 이 가운데 6건이 2021년 5~8월 사이에 집중 거래됐다. 보이지 않은 기획의 손짓들이 이어지던 때다. 때마침 정부는 7·10 부동산대책을 시행하며 1억원 미만 매입 주택은 취득, 양도, 종부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주택 수 산정에서도 빼고, 비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양도세 중과도 면제했다. 결국 정부가 바란 서민주거안정은 서민 투자, 서민 투기로도 연결됐다.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에서 가장 어린 집주인은 양씨의 5살 둘째아이로, 전체 10명 가운데 8명이 10살 미만의 어린이였다.
양씨는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와 구로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서울에 살며 “내 집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마포 소재의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산다. 양씨는 왜 본인 이름이 아닌 아이 이름으로 파주에 집을 산 것일까. 같은 갭투자로 그나마 더 가깝고 ‘부동산 불패’라 얘기되는 서울권에서 단 한 채라도 모색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양씨는 고개부터 저었다. “집값이 너무 올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양씨는 “서울에서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며 “아이들 태어나고 2년 반 동안 겨울이면 씻길 때마다 입김이 나오는 집에 살았다. 지금 신촌, 마포 아파트들이 15억, 20억씩 간다. ‘넘사벽’이다. 나는 못 산다. 우리 부부는 바둥거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아이들은 나랑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돈 천만원씩 겨우 들여 파주 끝자락 문산에 아파트를 산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주목을 받았던 운정새도시. 2012년 파주운정새도시 공사현장으로, 2015년 들어 광주 태전지구, 수원 권선동 등과 함께 그해 상반기 수도권 청약시장 기상도를 결정짓는 ‘빅4’로 꼽히곤 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주목을 받았던 운정새도시. 2012년 파주운정새도시 공사현장으로, 2015년 들어 광주 태전지구, 수원 권선동 등과 함께 그해 상반기 수도권 청약시장 기상도를 결정짓는 ‘빅4’로 꼽히곤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부동산 투기 생태는 비교적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 상위 20%들이 주목하는 강남 재건축에서 땅값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언론이 주목하고 흐름은 강남 전체, 이윽고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부동산 문제로 온 사회가 떠들썩해지고, 정부가 투기지구를 지정한다, 규제를 강화한다 나서지만 보통 늦었다. 이미 수도권 전역에서 아파트값이 들썩인다. 정부가 강경책을 추가하면 투기지구 지정이 안 된 수도권 경계지로까지 투기 심리가 모여든다. 풍선처럼, 속절없이 번져가는 먹물처럼, 땅이 부풀어 오르고 생존과 투기의 욕망에 물들어간다. 개발 전망이 불투명한 지역조차 들끓고 만다. 중상위층만 움직인 탓은 아니다. 파주 지역 부동산중개업자는 “부동산 ‘불장’이 이어지며, 소득 계층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 투자가 확산됐다. 비과세 증여를 통해 공시지가 1억 이하의 주택을 사주는 투자가 늘었다. 올해 들어 나타난 특이한 현상인데, 이런 주택들의 특징은 장기 보유 시 가격 상승을 노려볼 만하단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액의 갭투자라도 할 수 있는 이들을 자극해 ‘부동산은 어디든 승리한다’는 믿음을 주입해주는 이들은 대놓고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기획부동산이 더 개인화하고 진화한 형태이기도 하다. 소득 기준으로만 보면, 언제 실현될지 모를 ‘미래 이익’을 목적으로 ‘오늘’ 부동산에 투자하는 덴 더 많은 논리와 설득이 요구되지만, 이 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장기적인 호재가 있는데 아직 가격은 저렴하다’ 같은, 시장 질서에서 공존하기 힘든 조건을 섞어 사람의 마음을 부추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거나 논의가 진행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계획이 단골처럼 강조되고, 인근에 조성된 배후도시와의 직선거리 같은 숫자들이 또 다른 스펙이 된다. 이들의 유인에 따라, 저소득층이 끝물에 오를 때 바로 부동산 투기의 한 주기가 마무리되고, 즈음해 서울의 부동산값은 떨어지기도 한다.
케이비(KB)국민은행 주택매매가격 월간 시계열 통계를 살펴보면, 경기도 아파트값의 올해 누적 상승률은 10월까지 26.48%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 13.21%의 갑절을 뛰어넘었다. 지역별로 보면, 오산이 44.43%로 가장 높았고 이어 시흥 39.66%, 동두천 37.77%, 의왕 33.36%, 의정부 32.33%를 기록했다. 상위 5개 지역에 갑자기 인구가 늘진 않았다. 서울로 출퇴근하기엔 꽤 먼 지역들이다. 공통점은 아직 비조정대상지역인 수도권 끝자락들이란 점이다. 의정부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실수요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구축 아파트에 대한 갭투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부류에조차 양씨의 동네는 아직 포함되지 않고 있고, 2002년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했다는 2021년 전국 아파트값은 당장 서울에서 내림세로 돌아선 구역들이 이달부터 생겨나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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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아이들 이름으로 아파트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정부 탓”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돈 없는 사람들은 집 사려고 해도 대출을 다 막아놓고, 몇 년 전에 8억 주고 산 아파트는 15억, 20억을 만들어서 서민들은 하늘만 쳐다보게 됐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던 양씨의 부인은 “돈이 없어서 몇억원으로는 못 하지만 2천만원 이하 투자면 할 수 있는 건 하는 게, 행여 잃더라도 경험치가 쌓이니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씨만의 선택일 리는 없다. 2019년 332건이었던 10대 이하 주택 구입 건수는 2020년 728건으로 늘었고, 자료가 집계된 올해 8월 기준으로는 이미 지난해보다 많은 946건을 기록(올 국정감사 공개자료,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했다. 물론 이 중 갭이 적은 아파트를 자녀 명의로 ‘저렴하게’ 증여한 경우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파주 문산의 한 공인중개사가 들려준 얘긴 이렇다.
“(올 초) 보유세 강화 얘기가 나오고 나서 올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동네에서) 어린이 명의로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올해 이런 거래만 10건 가까이 했다.”
어린 집주인들의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한겨레>가 전수조사를 진행한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의 경우 주로 노인들이 세를 살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한결같이 취재를 거부하거나 말을 아꼈다. 한 노인 세입자는 “일없다”며 “‘얼라집’에 사는 게 뭔 자랑이겠냐”고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어렵게 통화가 닿은 또 다른 노인 세입자 쪽은 “문제가 없다고 해서 계약은 했지만 솔직히 불안했다”며 “사는 게 가능했으니까 샀겠지만, 문산에 어린이 명의로 집을 산 것을 보면 돈 많은 사람도 아닐 텐데 이렇게도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파악한 결과, 이곳에 노인 세입자들이 많은 이유는, 출퇴근 지장 없이 실거주하는 대신 무주택자로 수당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의 집값이 오르면 역으로 이러한 수요자들에게도 매력이 줄게 된다. 오히려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단 얘기다. 어떻게 될까. 일단 문산 지역은 지난 수년 동안 시세변동이 크지 않았다.
아이 이름으로 부동산 갭투자를 시작한 양씨는 올해 본격적인 ‘매물 사냥’에 나서며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다. 하루에 몇번씩 부동산 투자 카페에 드나들며 투자 정보를 구한다. 파주 문산 당동리 아파트를 아이들 이름으로 사고 “괜찮은 방식”인 것 같아 지인에게 추천하고 있다고도 했다. 20년 넘게 회사에서 일했던 양씨는 이제 직접 이름 없는 부동산 기획자로 거듭나는 중이다. 아이 이름으로 갭투자를 계속할 계획인지 물었다. 양씨는 확신해 말했다.
“공급이 확 풀리려면 10년이 흘러갈 텐데, 그땐 우리 아이들에게 답이 있을까요? 가만있으면 바보 되는 것 아니에요?”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끊어지고, 노동소득으로 자산소득을 쫓을 수 없는 사회. 중하위 계층에겐 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들이 차라리 오늘만큼은 희망을 주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김완 장필수 기자 funnybone@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5466.html#csidx4b70a1b26100c18aa1c262d1974abf3  

 

 

순수의 땅에 ‘욕망’이 들어가 좌절만 남겼다

등록 :2021-12-29 10:59수정 :2021-12-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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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⑧] 판매 토지 세갈래 검증
시와 개발자에 진척상황 묻고
복수의 감정평가로 가치분석
값은 터무니 없고 쓸모도 적어
<한겨레> 탐사기획팀은 언론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해 서민들을 자극해 땅을 사도록 떠미는 부동산 기획의 세계를 밀착 보도했다. “돈 없는 이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쪼개 판다”는 그들의 말과 ‘사람에게 속아도 땅은 믿는다’는 중하류 인생의 말은 어울렸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덜 가진 자들이 반전을 꾀하며 산 땅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순수의 땅은 어떻게 욕망의 땅이 되었을까. 그 땅의 말을 들어보았다.지난 첫회 보기 : “엄마도, 돈 벌 수 있어”…1500만원짜리 ‘욕망의 덫’을 보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76.html
경기 평택시 현덕면 인광리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현덕면 일대 지적도를 보고 있는 <한겨레> 기자. 이곳에서도 맹지의 땅(공시지가 32만원 남짓)이 평당 450만원에 팔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순수의 땅이 어떻게 욕망의 땅이 되었는가. 욕망은 현실화되는가. <한겨레>는 기획부동산들이 ‘내일’의 개발 호재를 앞세워 팔아온 주요 부지들의 ‘오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3가지 검증을 거쳤다. 1. 복수의 감정평가 전문가들에게 해당 토지의 가격 분석을 의뢰했다. 2. 토지 소재 지방자치단체와 개발사업 주체 사업자들에게 개발 진행 정도를 확인해 향후 호재 달성 가능성을 살폈다. 3. 기획부동산 판매가격과 주변 시세를 비교 분석해 이익 실현 여부를 따졌다.감정평가 결과, 해당 토지들의 판매가는 모두 터무니없었다. 당진 땅은 감정평가액이 평당 38만원이었는데, 판매가격은 130만원으로 3배 이상 높았다. 기획부동산이 인구유입 요인이라고 홍보한 석문역 건설안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석문역은 여객이 아닌 화물전용선으로 현재 부지조차 선정되지 않았다. 내년 상반기에나 기본계획이 고시될 예정”이라며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진시 건설도시국 관계자는 “도로 연결이 안 되어 있는 땅이라 용도지역을 변경할 수 없다”고도 했다.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은 판매가격에 대해 “어떻게 그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난해 평당 30만원도 비싸다고 거래가 안 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최근 취업해 일했던 기획부동산 ㅎ사에서 평당 130만원에 판매한 충남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의 한 임야. 절반은 깎아 고구마밭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남은 언덕은 무덤이 있는 필지와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기자가 최근 일했던 ㅎ사에서 평당 130만원에 판매했던 충남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의 한 임야. 지적도상 살펴보면 인근 임야 또한 이미 기획부동산에 팔려 필지가 분할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산 땅도 마찬가지였다. 판매는 평당 244만원에 이뤄지고 있는데 감정평가액은 47만원에 그쳐 5배쯤 차이 났다. 학교와 인접한 부지라 ‘학세권’이라고 설명되는데 오히려 그 점이 개발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교육환경보호구역으로서 개발 규제가 더 까다롭다. 오히려 소방도로 계획이 있어 공공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예산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학교 정화구역 관련 법에 의해 개발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취업해 일했던 기획부동산 ㅈ사가 판매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의 한 밭. 해당 밭 인근 논밭도 다른 기획부동산에 팔려 여러개의 다각형 필지로 쪼개졌다.
기자가 지난달 일했던 기획부동산 ㅈ사가 판매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의 한 밭. 땅 소유주는 이전에도 다른 기획부동산과 거래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51명이 지분을 쪼개 공유지분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시흥 땅의 경우 ‘개발제한구역’이라 당장의 검증이 사실상 무의미한 토지였다. 2015년도 8월 판매가격은 평당 48만원이었으나, 감정평가액은 25만원, 공시지가는 8만원이다. 시흥시 도시주택국 관계자는 “건축물 설치가 금지돼 있고, 개발될 가능성도 굉장히 낮다”고 말했다.
홍지아(가명·42살)씨가 2015년 구매한 경기 시흥시 군자동의 한 임야는 개발제한구역이기에 땅의 가치를 검증해보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다.
김완 장필수 기자 funnybone@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5180.html#csidxb8632ba9044198da0ee41b1e00b1309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⑦] 쓸모없는 땅들의 쓸모
기획부동산 “5년 안 평택처럼, 3년 안 1.5배”
지자체·국토부 확인해보니 맹지라 가치 적어
주민 “평당 150만원 팔다니 미친 사람들”
12월7일 오후 해무가 잔뜩 낀 충남 당진시 석문면 일대. ㅎ사는 석문면 일대 임야를 평당 130만∼150만원에 팔았다. 오른쪽 상단에 미분양으로 텅 빈 석문국가산업단지가 보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 탐사기획팀은 언론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해 서민들을 자극해 땅을 사도록 떠미는 부동산 기획의 세계를 밀착 보도했다. “돈 없는 이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쪼개 판다”는 그들의 말과 ‘사람에게 속아도 땅은 믿는다’는 중하류 인생의 말은 어울렸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덜 가진 자들이 반전을 꾀하며 산 땅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순수의 땅은 어떻게 욕망의 땅이 되었을까. 그 땅의 말을 들어보았다.
석문면은 충남 당진시의 최북서부에 위치한 어촌이었다. 35년 전까지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던 땅이다. 여객선이 드나들었고, 바다와 맞닿은 땅은 주로 염전이었다. 간척지를 ‘개발’해 농경지와 국가산업단지(산단)를 만들겠다던 전두환 정부는 3년의 시차를 두고 2개의 방조제 공사 계획을 밝혔다. 대호 방조제와 석문 방조제다. 두 방조제 사이에 놓이게 된 석문면은 이제 한 면만 바다와 닿은 채 농지와 산단을 땅으로 품게 됐다.
“땅 가치가 없으면 누가 삽니까. 3년 안에 1.5배는 보는 거고 그 이상을 보는 거죠.”땅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거침없었다. 지난 11월5일 서울 강남의 기획부동산 ㅎ사 응접실에서 만난 박정자(가명·59살) 부장은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통정리 땅을 두고 “뒤로는 굴뚝 없는 첨단 공장들이 들어설 석문국가산업단지가 있어 공장 공사 인력 등을 포함해 최대 75만명의 유동인구가 유입되고 인근에는 석문역이 2025년 개통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영원히 망하지 않을 기간산업 제철소들이 현재 가치를 보장하고,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소 산업단지’가 땅의 미래가치를 끌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석문국가산업단지 일대를 놓고선 “5년 안에, 삼성 공장이 들어선 평택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완벽한 조건이어서 듣는 사람이 다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말에 쐐기가 박혔다. “평택이면 그냥 500만원이 넘을 이런 땅을 평당 150만원에 사는 건 행운입니다. 당진시장이 보증하는 입지라서 먼저 잡는 사람이 바로 돈 버는 임자”라고 했다.하지만 <한겨레>가 지난 11월3일, 16일, 19일 세 차례에 걸쳐 확인 취재한 현장의 땅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삼화리·통정리 땅은 논밭을 낀 야트막한 임야였고 뭣보다 두 곳 모두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맹지’였다. 먼저 삼화리 땅은 항공사진으로 보면 일대는 더할 나위 없는 농촌의 형상(<그림 1>)이다. “유동인구를 보장하고 500m 내에 있다”는 석문역은 여객은 취급하지 않는 화물 전용역이었다. 오래전부터 지역민들은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나마 아무리 빨라도 2027년 개통 예정으로, 아직 부지 선정조차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림 1>. ㅎ사에서 평당 130만원에 판매했던 충남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의 한 임야. ㅎ사는 한 필지에서 8개 필지로 쪼개진 뒤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팔았다. 지적도상 살펴보면 인근 임야 또한 이미 기획부동산에 팔려 필지가 분할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통정리 땅 맞은편에 집을 짓고 사는 40대 남성은 “3년 전에 도로에 붙어 있는 이 땅을 평당 30만원 주고 샀다. 도로도 안 붙어 있는 저 땅을 150만원에 파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뭘 취재하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지역 상권 문제도 있으니 답변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ㅎ사는 통정리 땅 인근의 38번 도로가 확장된다고 소개했지만, 당진시 관계자는 “38번 도로는 확장공사 계획이 없으며, 석문국가산업단지는 여전히 30%가량이 미분양 상태”라고 밝혔다.
<한겨레> 기자가 취업했던 기획부동산 ㅎ사에서 지난달 평당 150만원에 판매한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의 한 임야.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석문면 땅의 내일은 홍지아(가명·42살)씨가 지난날 샀던 땅의 오늘일지 모른다. 홍씨는 기획부동산에 의해 땅을 산 피해자다. 경매회사를 겸하는 경기 남부권의 한 부동산업체에서 일하던 ‘아는 언니’의 권유로 땅을 산 때가 2015년 여름이다. 지분투자 방식으로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의 산○○○번지를 100평 샀다. 평당 48만원을 줬다. 그 땅은 예나 지금이나 공시지가가 8만원 안팎이다. 홍씨에게 땅을 권한 언니는 오래전부터 부동산 쪽 일을 했었는데 “정말 좋은 땅이 있어 나는 물론 엄마랑 동생도 샀다”고 했다. 홍씨도 ‘재테크는 부동산’이란 생각으로 공부하며, 나름 시흥 지역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언니가 땅을 가족들에게도 팔았다고 하니 믿음이 갔다. 홍씨는 “답사를 가서 본 풍경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론 시흥시청이 보이고, 옆으로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 들어서 있었다. 땅을 팔던 언니는 “여기는 무조건 5년 안에 개발되고, 그럼 5배 오른다. 옆으로 장현지구, 은계지구가 들어왔는데 이제 다 포화이고 개발할 수 있는 땅은 이제 여기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필지가 워낙 커서 여러 명이 사야 하는데 구매자 중에 “삼성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홀린 듯 구매했다.7천여평 한 필지는 쪼개져 그렇게 51명의 땅이 됐다(<그림 3>). 홍씨는 “여러 명이 동시에 투자를 한다는 점이 오히려 의심을 줄였다. 다들 똑똑하게 판단했으리라 생각했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아파트 살 돈을 모았거나, 분양을 받았다면 주머니가 더 좋았을 텐데….” 7천평 땅의 지분을 나눠 사들인 상당수는 홍씨처럼 문턱 낮아진 투기가 자신에게 온 기회라고 여긴 사람들이다. 다만 그땐 그게 ‘쪼개기’라는 걸 몰랐을 사람들.
<그림 3> 홍씨가 구매한 경기 시흥시 군자동의 한 임야는 개발제한구역이기에 검증 절차를 밟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땅 개발은 민간개발 내지 공적개발로 이뤄진다. 지분이 쪼개진 땅은 어떤 형태의 개발도 쉽지 않다. 민간 개발업자는 개발하려는 필지의 공동 지분 소유자가 많을 경우 개발 대상의 후순위로 놓는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지가 가치 있다면 지분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서라도 사들인다. 다만 그 과정이 지난해 선호하지 않을 뿐이다. 땅 임자들을 전부 접촉해야 하는데, 상속이 이뤄지면 상속자가 누군지 주소도 알 수 없는 일이 흔하다. ‘기적적’으로 모두가 동의한다고 해도 민간 개발업자는 공시지가 또는 주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보상가를 정하거나 환지방식 보상(개발 뒤 일정 규모의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을 적용하는데, 지분 소유자 경우 환지 보상에선 제외된다. 홍씨 땅의 경우 공시지가가 8만원 안팎이니, 민간 개발업자가 100%를 더 쳐준다고 해도 보상가는 16만원이 될 것이다. 홍씨는 이미 그 땅을 48만원에 샀다. 6년 전에 말이다.공적개발의 경우 모든 과정이 충족되어 개발이 이뤄진다 해도 ‘공익사업 토지보상법’에 따라 공시지가 1.5배의 보상 뒤 처분하게 된다.‘결정적’으로 홍씨가 산 땅은 장현지구와 은계지구 사이에 묶인 개발제한구역이다. 길 없는 맹지에다 시흥시청이나 아파트 단지와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홍씨는 “2번이나 답사를 갔다”고 했는데, ‘기획자’가 다른 땅을 보여준 게 아닐지 의심될 정도였다. 솔깃해진 순간부터, 심지어 어떤 개발이 발생하더라도 그 땅으론 수익을 좀처럼 낼 수 없는 부동산 기획 세계에 포획된 셈이다.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은 가능할까.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기획부동산 전문 법률사무소 포유의 김경남 변호사는 “쪼개진 지분은 원칙적으로 은행 대출이 불가하다. 대출은 필지 전체에 대해 해주는 것인데 공유지분으로 쪼개진 필지의 경우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홍씨는 그럼에도 여전히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등기는 나왔으니까, 자식한테라도 물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소송을 걸 수도 없고, 판매한 언니는 연락도 안 되고…, 포기하고 있으면 그래도 언젠가는 뭐가 되지 않을까요.”
홍씨가 2015년 기획부동산을 통해 사들인 경기 시흥시 군자동의 한 임야 앞에는 ‘개발제한구역’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기 남부권의 평택, 안산, 시흥 등을 주 무대로 삼던 ‘부동산 기획’이 서해안 인근 중부권으로 뻗쳐 내려온 건 10여년 전이다. 경기도 땅값이 가파르게 오른 것이 크게 작용했다. 모든 부동산 기획자들은 저렴한 땅을 비싸게 팔려고 한다. 경기도 일대의 땅을 중개했던 한 업자는 “땅을 보는 논리야 뭐 간단합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거나, 지금 가치가 없는 땅을 오른다고 해서 팔거나. 땅의 이익 실현은 어차피 당장이 아니니까 훗날 오를 거란 믿음으로 거래를 하는 건데 경기도보다 중부권 땅이 더 싸고, 호재야 미래의 일인데 평택이나 당진이나 엎어치나 메치나 같은 거죠. 당진 쪽 땅 그렇게 판 지 오래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발 호재는 같고요”라고 말했다.평택 등 경기남부권 땅을 설명할 때 등장했던 호재가 중부권 땅들에 그대로 등장한다. 역세권이니, 학세권이니, 유동인구 유입이, 주변 산업단지가 있으니 배후도시 확장 수요가 있을 것이란 등 판박이다.<한겨레> 취재에 응한 중부권(당진시·서산시·평택시·예산군)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부동산 기획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판 땅들에 대해 “파는 사람만 돈을 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중개업자는 “중부권 땅을 무대 삼아 뜨내기로 하다가 땅 한군데 팔면 사업자 죽이고 회사 없애고 뜨는 영업”인데 “(그렇게 산 땅은) 개발이 되든 수용이 되든 본전도 못 건진다”고 말했다. 공시지가가 10만~30만원 안팎인 땅들을 기획부동산들은 이미 최소 4~5배, 많게는 8~10배까지 올려서 팔았다. 실제, <한겨레> 기자가 취업했던 기획부동산업체 2곳도 땅값을 공시지가 대비 6~11배, 실거래가 대비 4~5배로 부풀려 팔고 있었다. 공시지가가 평당 37만원인 예산 땅(<그림 2>)은 학교 담벼락 옆에 붙어 있단 이유로 ‘학세권’으로 포장되며 평당 244만원에 팔리고 있다. 현지 부동산업계 정보로, 이 부지는 오히려 향후 소방도로로 공공수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토지 수용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이뤄진다. 기획부동산에서 산 땅은 설령 천운이 따라 개발이 된다 한들 워낙 비싼 값에 땅을 구매해 이득이 발생하기 어렵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중개업자는 “그런 땅을 사는 순간 이미 그 돈을 잃은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그림 2> ㅈ사가 판매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의 한 밭. 해당 밭 인근 논밭도 다른 기획부동산에 팔려 여러개의 다각형 필지로 쪼개졌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부동산 기획자에게 땅을 판 원주인들은 이런 ‘거품’ 거래의 실태를 알고 있을까. 어렵게 <한겨레>가 만난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땅임자 김종술(가명·62살)씨는 “나야 내놓은 값만 받으면 되는데, 부동산들이 그렇게 파는 것이 나랑 뭔 상관이냐”는 말부터 던졌다. 김씨는 10여년 전 본인도 땅을 비싸게 샀다고 했다. 당시 평당 20만원을 치렀는데 “외지인이라 시세를 몰라 2배 정도 비싼 금액을 줬다”고 했다. 땅을 같이 산 사람과 관계가 틀어진 김씨는 본인 명의의 땅 953평을 2년 전 지역 부동산에 내놓았다. 시세보다 조금 비싼 평당 30만원이었다. 당시 부동산은 공장지 매입을 원한 인근 주민에게 이 땅을 팔고자 했다. 하지만 평당 30만원이란 얘기에 “너무 비싸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땅 매입을 제안받았던 주민은 “여기 땅은 길도 없고, 길을 내려면 앞에 논을 따로 구매해야 되는데 그게 더 비쌀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났다. 길 연결된 땅들도 30만원이면 충분히 사는데 왜 맹지를 사겠느냐”고 되물었다. 그 주민은 “얼마 전부터 저거 땅을 보러들 다니는데, 알고들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2년 가까이 팔리지 않던 그 땅은 기획부동산을 거쳐 11평씩 쪼개져 평당 130만원에 팔려 이달 초 분할 등기됐다. 가격을 말해주며 그래도 주변 개발 호재들이 있으니 오르지 않겠느냐 묻자 그는 “나 죽고 손주가 내 나이나 되면 그 가격일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김종술씨가 소유했다가 ㅎ사에 판매한 충남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의 한 임야. 관리를 하지 않아 말라 비틀어진 고구마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확인한 기획부동산 판매 토지들을 검토한 김경남 변호사(법률사무소 포유)도 이렇게 평가했다. “투자 가치가 낮다. 회사에서 실제 가치보다 높게 팔고 있어 회사에서 말하는 수익이 안 나온다. 민간 개발업자는 주변에 싼 땅을 매입하지 몇배나 비싼 이 땅을 사지는 않기에 민간개발로 수익이 나오기가 어렵다. 공적개발을 하더라도 매매가액만큼 보상받기 어렵다. 결국 어떤 목적으로든 투자수익을 달성하기 어렵다.”이 땅을 구입한 사람들은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아니다. 당진시 석문농협의 토지 대출 전담 직원은 “5천만원에 땅을 샀다는 외지인들이 천만원이라도 대출해달라는 문의가 올해만 10번 넘게 있었다. 그 땅들은 쪼개 놓아서 대출이 안 된다. ‘나 이 땅 오른다고 해서 2천만원 주고 샀는데, 자식 결혼을 시켜야 해서 그런데, (절반인) 천만원 대출도 안 되느냐’고 하던 분도 있었다. ‘사기당하신 거예요’ 이렇게 말할 순 없으니까 ‘그냥 대출이 안 됩니다’ 하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석문 방조제 공사가 한창이던 1991년, 정부는 메워질 땅에 2001년까지 수송용 기계, 정밀화학, 조립금속, 일반기계, 섬유, 기타 제조업 공장을 입주시키겠다고 밝혔다. 노태우 정권에서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그 계획은 30년째 진행 중이다. 그사이 석문면 일대, 중부권 땅들은 잘리고 나뉘어 외지인들에게 팔려 나갔다. 오래된 개발 호재들을 믿고 기획자들이 편의로 나눈 땅의 주인이 되고 있다. 돈 없는 이들도 땅을 살 수 있다는 게 근래 그들의 말이다. 그 30년 동안 부동산은 계층 이동의 ‘문’이 되었을까. 부동산 열차는 꼬리칸까지 투자 욕망을 가득 싣고 오늘도 달린다.김완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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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5156.html#csidxa22cad8b5e8f7cdaadb9a3e99d306ae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⑥] 사실상 불법 다단계
기본급 있고 업무지휘 감독
“근로기준법상 위법성 크다”
다단계로 땅 팔아도 불법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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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신입들은 그 말들을 적고, 새겨 영업에 활용해야 했다. 다만 다단계 판매방식으로, 본인들도 결국 사도록 떠밀려야 했다. 다단계로 땅을 거래해도 괜찮을까.

대부분의 기획부동산 업체는 기본급과 각종 복리후생 등을 미끼로 사람들을 모집해 사실상 불법 다단계 영업을 하고 있다. 신입 직원에게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고자 ‘사업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데, 실제 계약서 내용과 업무 방식을 보면 근로기준법상 위법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획부동산 ㅎ사는 면접을 통과한 지원자들에게 ‘근로계약서’ 대신 ‘사업계약서’와 사업규칙, 이행각서 등을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채용 공고에는 ‘기본급 월180만(실적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이라고 적시돼 있지만, 신입 차장이 서명해야 하는 사업계약서에는 ‘기본급’이 ‘업무보조금’이라는 용어로 대체돼 있고 정해진 액수 또한 명시돼 있지 않다.
막상 신입 차장들은 모두 사업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10:00~16:00) 동안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고, 임원·부장들한테 ‘단계별 통화’ 방법 등을 배워 영업에 나선다. 구체적인 업무 지휘와 감독을 받는 셈이다. 대법원은 2006년 판례를 통해 △기본급이 정해져 있고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근무 시간·장소가 지정되고 근로자가 이를 따라야 하는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지담 유은수 노무사는 “채용 공고 및 사업계약서와 실제 근무한 사람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ㅎ사 차장들은 고용노동부나 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차장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다면, 35~4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는 5인 이상 사업장인 ㅎ사는 근로기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계약서 ‘제1조 1항’은 “갑의 형편이나 방침에 따라 계약 해지할 수 있다”인데 이를 근거로 임의·자의적으로 해고할 경우 위법하다. 5인 이상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약 후 실업무일 10일을 교육기간으로 정하며, 이 기간 내 계약 해지 시에는 업무보조금(3만원)을 지급하지 않는다”(제3조 3항), “퇴사시 실근무일수(의) 60%(만) 지급한다”(제5조 3항) 등의 조항은 임금체불에 해당한다. 유 노무사는 “수습기간에도 최소한 최저임금의 90% 이상은 지급해야 한다. 언제 퇴사를 해도 근무한 날과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 마음대로 공제하면 근로기준법 43조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ㅎ사처럼 직급을 차장, 부장, 임원 등으로 구분해 상품 계약 건수당 직급별로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는 ‘다단계 판매업자’로 공정거래위원회나 관할 관청에 등록해야 한다. 문제는 ‘토지’의 경우 다단계 판매업자가 취급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단계 판매 상품은 가격이 160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래서 해당 영업 방식의 기획부동산들은 관할 관청 등록 요건인 ‘직접판매·특수판매 공제조합 가입’도 하지 않은 불법 다단계 영업자일 수밖에 없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58조는 미등록 다단계 판매업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방문판매법 위반을 입증하려면 실제 거래 내역으로 수당 지급 체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여건상 이를 다 밝히긴 쉽지 않아 경찰은 사기 혐의 입증에 주력한다”며 “강남에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많지만 영업신고도 하지 않다보니 여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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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796.html#csidxc402b61ce66e819be9ae5c2d1543c7d 

 

그들은 장차장에게 근로계약서 아닌 사업계약서 내밀었다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⑥] 사실상 불법 다단계기본급 있고 업무지휘 감독“근로기준법상 위법성 크다”다단계로 땅 팔아도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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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⑤] 과거 판결문 역이용하는 기획부동산
5년치 사기사건 10건 비교하니
과거 피해금액 수억대로 큰 편
최근 ‘덜 가진 자들’ 쉽게 포섭
사기죄 구성요건 교묘히 피해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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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판다는 오늘의 기획부동산과 과거의 기획부동산을 비교해봤다. ☞기사 보기

“피해자 A와 2010년 2월10일 이 사건 임야 중 429m를 7400만원에 분양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 2010년 6월경까지 피해자 73명으로부터 합계 54억4천만원을 편취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5고합697 판결, 2018년 1월12일 선고)
“2015년 7월15일 피해자 B로부터 토지대금 명목으로 회사 명의 계좌로 5292만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해 2016년 10월11일까지 피해자 32명으로부터 합계 12억275만원을 교부받았다.”(울산지법 2018고단3893 판결, 2020년 2월19일 선고)
사기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기획부동산 사건들의 전말을 추리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을 노린 게 두드러진다. 개인별 피해규모가 크다. 하지만 기획부동산 사기가 사회문제화된 뒤로는 판매단가를 낮춰 ‘손쉬운 투기’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덜 가진’ 자도 상대적으로 쉽게 포섭되는 형태다.
<한겨레>가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와 법무법인 포유를 통해 확보한 최근 5년(2016~2021년)간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판결문 10건을 분석해보니, 과거 1억~2억원대까지의 피해금액이 1인당 300만원대까지 내려간 추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가지 큰 이유가 보인다. 단가를 낮춰 처벌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중하위 소득계층까지를 상대로 한 박리다매로 매출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전체 10건 중 1인당 피해금액이 1000만원 이하인 사례가 들어간 판결문은 4건이었는데, 계약 체결 시점이 모두 2018년 전후였다. 판매된 토지는 용도상 모두 임야였다. 최소 피해금액은 349만5천원(50평)으로, 광주에서 지사 5곳을 거느리며 활동한 기획부동산그룹이 2018년 7월 한 피해자에게 팔아치운 건이었다. 이들은 1년간 활동하며 경기 광주·성남·하남시와 서울 도봉구에 있는 개발 불가능 임야를 53명에게 매입가격보다 4배 비싸게 팔아 6억4천여만원을 챙겼다. 피해자 대부분은 해당 업체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다. 재판부는 대표이사(징역 2년6개월)와 사장(징역 2년), 전무(1년6개월)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하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바지사장’을 대표자로 진술하도록 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공범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조율하기도 하는 등 범행 은폐에 적극적이어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5년(2016~2021년)간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판결문 10건 분석을 통해 파악한 기획부동산의 영업 변화 양상.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5년(2016~2021년)간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판결문 10건 분석을 통해 파악한 기획부동산의 영업 변화 양상.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판결문에 드러난 계약 체결 시점은 2010년부터 두루 걸쳐져 있었다. 1인당 피해금액은 최소 2천만원대에서 2억원대까지 다양했지만 ‘2010년 2월 7400만원’, ‘2012년 11월 7644만원’, ‘2015년 7월 5292만원’, ‘2015년 7월 8412만원’ 등 체결한 지 5년이 넘은 계약들 중에선 피해 금액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포유 법률사무소 김경남 변호사는 “처벌받는 사례를 지켜본 기획부동산들이 최근 더 낮은 이윤을 추구하는 대신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취업한 ㅎ사는 다단계 방식으로 ‘바지사장’을 두고 영업한 점에서 위 광주 기획부동산과 유사하다. 하지만 토지 판매에서 사기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제 처벌 사례를 학습한 기획부동산들의 영업 방식은 사기죄 구성요건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수사기관은 기획부동산이 판매하는 토지를 놓고 △개발제한구역 등 개발이 불가능한 용도인지 △진입로가 확보돼 있는지 △시세보다 얼마나 비싸게 팔았는지 △공유지분 등기자들을 위한 처분계획을 마련했는지 등을 따져 사기 혐의를 입증한다.
이에 기획부동산은 과거처럼 개발이 아예 불가능한 ‘개발제한구역’ 부지 대신 4층 이하 건축물은 지을 수 있는 ‘계획관리지역’ 내 임야를 판매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이 ‘건축물 건축’이 아닌데도 업체는 “우리 회사는 그린벨트를 파는 사기 업체가 아니고 필요하면 건물까지 올릴 수 있다”는 말로 피해자를 안심시킨다.
ㅎ사는 충남 당진시 석문면 일대 계획관리지역에 포함된 ‘맹지 임야’를 시세보다 4~5배 비싸게 팔았다. 직원과 체결한 ‘토지매매계약서’를 보면 공유지분 등기자들을 위해 “매수인은 매도 시 매도권한을 매도 회사에 위임한다”는 처분계획도 수기로 남겨뒀다.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울 만큼 비싼 가격에 땅을 팔았기에 투자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처분계획이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김 변호사는 “수익률과 관련해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이미 공개된 개발 호재를 바탕으로 답사까지 시켜주는 방식으로 사기죄를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변화에 따라 사법당국의 태도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실제 수익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종전 판례에는 개발 호재를 허위로 알리는 등 거짓말을 해야 사기로 인정하는 추세였는데, 최근 들어 토지를 투자상품으로 보고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느냐를 보고 있다”며 “신설된 기획부동산들을 보면 법망을 피해갈 정도로만 운영하는데 결국 투자수익이 나기 어려운 땅을 판다는 점에선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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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 피해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진 수년이 걸린다. 업체들이 토지 매수 권유를 하며 “최소 5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설득해서다. 이를 믿고 막연히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잠재적 피해자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판결문에 드러난 피해액도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764.html#csidx324a9ffc9b60f4f89cc7ba0bd44036a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④]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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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기 어려운 부동산 피식자들의 생태계에서 한국말이 어눌해 취업이 안되던 중국 동포는 중국 사람에게 땅을 팔 수 있는 능통자 대접을 받았고, 코인 투자 실패자와 만년 구직자가 서로를 ‘차장’으로 부르며 “돈이 없지만, 땅은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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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언변이 좋고 사교성 있는 사람, 시간이 많지만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
기획부동산 업체에 결국 50~60대 여성들이 머무르는 이유다. 이들은 30~40대에 견줘 상대적으로 돈도 시간도 있는 반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ㅎ사는 임원 3명을 제외한 모든 부장과 (젊은 인력을 혼합해 구성한 영업4부를 제외한 모든 부서의) 차장이 50~60대 여성이었다. 마음씨 좋은 주변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시한폭탄’ 같은 땅을 팔고 또 사는 것이다.
실제 ‘어머니’ 차장들의 영업 무기는 모성애이기도 했다. “자식들 남겨줄 거 있어?”, “자녀들 위해서라도 땅을 사두셔야지요”와 같은 말은 논리에서 영업이 막힐 때마다 내뱉는 단골 멘트였다.
온라인 구인광고로 주로 유입되는 30~40대들과 달리 50~60대 여성들 대부분은 지인의 소개나 ‘벼룩시장’ 구인광고 등을 통해 기획부동산을 접한다. “집에서 할 것도 없으면서 여기 와서 돈이나 벌어. 퇴근하면 바로 3만원 준다니까”, “여기 오면 부동산 배울 수 있어. 보험보다 여기가 훨씬 많이 벌어”와 같은 달콤한 말들에 낚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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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이들이 식당 일이나 청소 일을 하다 앉아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한다. “이 나이에 식당, 청소 빼면 부동산이나 보험뿐이야. 나는 원래 보험을 했는데, 이것도 모집을 해야 하다 보니 힘들더라고.” 영업4부에서 함께 일한 진선영(가명·61) 차장은 ㅎ사에서 먼저 일하던 지인을 통해 발을 들였다. 지인이 보험 영업을 했던 진 차장에게 상품 하나를 가입해주며 건넨 말, “시간 나면 회사에 한번 들러 설명이라도 들어봐.” 평생 남들 앞에서 어깨 펴고 살아본 적 없는 5060 여성들은 기획부동산에서 들은 정보를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빠른 정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욕망을 넘어 인생에서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정보라는 걸 믿게 됐을 때 그들은 더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다. 번듯한 건물에 있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부동산 투기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된 현실에서 오히려 성공할 거란 믿음으로 임한다.
다단계 영업 특성상 토지를 사고팔 신입 차장이 계속 공급돼야 하기에 기획부동산은 인력 공급책 직원을 따로 둔다. 진 차장은 바로 영업4부의 인력 공급을 맡았는데, 자신이 끌어들인 신입 차장이 계약을 따내면 판매 대금의 0.2%를 수수료로 챙겼다. 박 부장과 진 차장이 함께 장단을 맞춰가며 내게 그랬듯 신입 차장들에게 토지 매입을 권유한 이유이다. 진 차장도 이미 ㅎ사가 파는 평택, 당진, 화성 땅을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구입해 갖고 있었다. 영업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입사했지만, “회사에서 월급 받는데 눈치 보이고 사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판매단가가 높을 땐 박 부장과 절반씩 갹출해서까지 땅을 샀다. 회사가 지난 9~10월 판매했던 당진시 석문면 일대 임야까지 친언니 명의로 계약하고 계약금(150만원)까지 걸어뒀는데, 이는 진 차장이 지인들 상대로 영업할 때 옹근 재료가 됐다. “(가격이 오르는) 확실한 땅이라 나도 언니 명의로 계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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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에서 일하며 땅을 사들인 이들의 미래는 무엇일까. 정화순(가명·66)씨는 2018년 1월부터 8월까지 기획부동산 ‘ㅈ경매’에서 ‘정 과장’으로 일하며 본인 명의로 1억3436만원어치의 땅을 구매했다. 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두 아들도 어머니 정 과장의 권유로 각각 6380만원, 4044만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세 모자는 경기도 일대와 대전, 원주, 세종에 있는 개발제한구역 내 임야, 보전녹지지역, 농림지역을 총 2억3860만원어치 샀다. 노후 준비 겸 시작한 일이었다. 이혼 뒤 아이 셋을 홀로 키웠던 옆팀 직원은 7억원을 투자했고, 여든이 넘은 친정아버지에게 땅을 판 직원도 있었다.
“회사가 이상하니 환불받자”는 아들의 전화 한통이 파국의 시작이었다. 처음 회사는 “그런 회사 아니고 모두 해명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필요하면) 환불이나 보상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회사는 돌변해 “소란을 피우면 영업방해죄로 고소할 것이고, 법으로 하면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다. 정씨와 아들은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회사 임원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ㅈ경매 쪽은 “정당한 영업 방식이었고,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몫”이라며 혐의를 부인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획부동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멍청하게 속아서 땅을 샀나’ 말하지만, 하루종일 그들의 말에 세뇌돼 있으면 어쩔 수가 없어요. 이들은 바퀴벌레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또다른 지능화된 사기 수법을 계속 만들어낼 겁니다.” 이 사건으로 남편과 이혼한 정씨는 울분에 찬 심경을 문자로 대신했다.
ㅎ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일대. 여기엔 중장년 여성들이 다수 일하며 땅을 팔거나, 직접 사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10월27일부터 11월6일까지 ㅎ사에서 영업 차장으로 근무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ㅎ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일대. 여기엔 중장년 여성들이 다수 일하며 땅을 팔거나, 직접 사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10월27일부터 11월6일까지 ㅎ사에서 영업 차장으로 근무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 저한테 거짓말하셨어요?”
ㅎ사에서 영업4부 ‘장필수 차장’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의 판매 토지를 사라고 유도한 박 부장과 진 차장에게 결국 물었다. 퇴사 뒤, 그들이 말한 개발 호재와 수익률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하나둘 확인하면서다.
진 차장은 “필수씨가 가장 구매할 가능성이 크니 옆에서 챙기라는 부장 지시를 받았다”고 어렵사리 말문을 연 뒤 “나이가 젊으니 미리 땅을 사두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친언니 명의로 계약금을 걸어놓았다”며 기자에게 권했던 토지의 경우 “계약금 150만원 중 100만원은 박 부장이 빌려준 돈”이라고 했다.
박 부장은 ㅎ사의 ‘바지사장’이기도 하다.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그는 “이 회사 대표를 하는 이유는 기획부동산을 오래 다녀본 입장에서 ㅎ사를 믿고, ㅎ사에서 분양한 토지만큼 (많이) 바뀌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업용 개발 호재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장을 가봐서 알고 (모두)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회사로 방문하면 서류로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부장은 직원들에게 스스로 땅 부자라는 점을 과시하곤 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땅만 있을 뿐 집 한 채 없는 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 역시 사실상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였다.
퇴사 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심혜선씨는 지난 11월1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친구의 친언니가 기획부동산에 사기를 당해 수차례 ‘거기 빨리 나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ㅎ사가) 그린벨트 안에 수백명씩 들어가 있는 그런 땅을 판 게 아니지 않으냐”며 “회사가 서민들을 위해 그렇게 쪼개서 판다는데,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단 시세보다 비싸게 사더라도 5년 뒤에 오르면 이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 호재들의 한계를 설명해도 심씨가 매료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굳건해 보였다.
기획부동산은 한 해에도 여러차례 이름을 바꾸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ㅎ사 또한 올해 ‘ㅍ○○’이라는 사명을 쓰다 변경했다. 구인공고 또한 사명을 달리해 여러건 올린다.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에 ‘부동산 영업’으로 검색하면 채용 공고만 2600여건이 뜬다. 불법 떴다방 식으로 영업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이들의 실제 규모는 추산하기도 어렵다. 다만 업계에선 “서울 강남에만 300여곳 될 것”이라 추정할 뿐이고, 지난 3월부터 이달 12일까지 기획부동산 관련 불법행위로 경찰이 단속해 검찰에 송치한 이들만 528명(서울·경기 관할만 403명, 76.3%,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이른다.
전국의 기획자들이 더 많은 ‘심혜선들’을 자극하고, 어떤 ‘심혜선들’은 마침내 각지의 기획부동산으로 유입될 것이다.
ㅈ사에서 만난 중국동포 하씨는 내게 첫인사처럼 대뜸 “꿈이 없어요? 왜 이런 일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퇴근길 ‘기획부동산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전수해주곤 했다.
“이런 회사 다니려면 질문이 없어야 해.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해.”
그런 그가 마지막 기자로서 만났을 때 했던 말은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는 건가요? (땅이 거래될 때마다) 세금 많이 받아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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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492.html#csidx08107bfe550af89a6f93c7014bd73ed 

 

“자녀들 남겨줄 거 있어?” ‘시한폭탄’ 같은 땅을 사고 파는 사람들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④]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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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투자로 1억 날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 뿐” 그는 믿었다
등록 :2021-12-23 06:59수정 :2021-12-23 10:01장필수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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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도 땅은 믿는 ‘차장들’…패배가 뻔한 부동산 게임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③]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한국말 어눌해 취업 안되던 중국 동포 ‘중국어 능통자’로 대접
코인 투자 실패자, 만년 구직자가 나누는 땅에 대한 욕망
“돈이 없어 물러가지만, 땅은 꼭 사고 싶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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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 2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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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취업한 기획부동산 ㅈ사에는 중국동포도 있었다. 중국 연변 출신의 하영순(가명)씨가 부동산업계에 투신한 지는 2년 정도 된다. 50살 이주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 일을 전전하다 평소 관심사였던 아파트 분양 대행사에 취업했고 “한국에서 돈 벌려면 부동산을 해야 한다”는 말을 공인중개사한테 들었다.
들쑥날쑥한 높낮이 억양에 어눌한 한국어 말투 때문에도 하씨는 취업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세계’에 오니 일순 사내 유일의 중국인 영업이 가능한 ‘중국어 능통자’로 대접받았다. 중국동포들이 모이는 각종 모임에 참석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다음 이들을 상대로 땅을 팔았다. 중국 사람들도 한국 부동산은 오른다고 생각해서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땅을 팔 뿐 사진 않는다고 했다. 2019년 5월 이전 회사로부터 충남 서산시 팔봉면 대황리에 있는 보전관리지역 ‘임야’를 추천받아 612만원을 주고 34평을 ‘지분 쪼개기’(한 필지를 놓고 다수가 공유지분을 사들이는 투기 행위)로 사들였다. “회사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서 연천 땅을 팔아서 사려고 했는데 외국 사람이라서 등기가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팔봉면 이 땅을 (회사가) 추천해 샀어.” 600만원이 넘는 비싼 수업료를 낸 뒤 기획부동산 판매 물건지의 태반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업계를 떠나진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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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급할수록, 땅을 통한 반전의 욕망이 클수록 업계에서 성실했고, 믿음 또한 두터웠다. 기획부동산 ㅎ사에서 만난 심혜선(가명·36) 차장은 코인투자로 1억원을 잃었다. 그의 꿈은 서울에서 카페 하나를 차리는 것이었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뿐”이라는 말과 함께 기획부동산에 입사한 그는 며칠 만에 “부동산업이 돈을 많이 벌고 자영업보다는 낫겠다”, “부동산을 배워서 돈을 벌게 된다면 아예 전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담당 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파트 가격은 지금 꼭짓점이고 앞으로 대세는 공공임대인데 굳이 고점에 사기보다는 여유 자금으로 땅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설득해.” 영업4부 박정자(가명) 부장은 ‘토지 대신 아파트에 투자하고 싶다’는 심 차장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선 말했다. 114 영업(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서류를 보고 무작위로 시도하는 전화영업)이 쉽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달은 심 차장은 지인과 가족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는데, 때로 박 부장과 상황극을 모의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식사 때 박 부장이 전화 걸어 땅 이야기를 꺼내 흥미나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시나리오를 짜는 식이다. 심 차장은 지인, 가족들에게 외면당할 때마다 “우리가 첫 고객이었고 그다음이 우리 지인인 것 같다”고 푸념하면서도 “여기는 정말 좋은 땅을 선별해서 파는 것 같아요. 우리 땅 좋은 거 맞죠?”라고 물었다. “누나가 기획부동산에서 사기를 당한 적 있는데 수법이 똑같다”는 친구의 조언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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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사 입사 동기였던 허성태(가명·42) 차장은 입사 첫날부터 박 부장 앞에서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전직 보험 영업맨으로 ‘지인 판매’의 험난함을 익히 아는 듯 보였다. 인천에 사는 그는 왕복 4시간 출퇴근 사투를 감내하며 강남 부동산업체에 진입했다. “부동산 한번 제대로 배워보려면 강남 바닥에서 굴러야 한다”고 믿었다. 지방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했지만, 바라던 사무직이 되기에는 스펙이 늘 발목을 잡았다. 제대로 된 사무직이 되어보지 못한 채 주차관리요원, 호텔 서비스업, 공사판 일용직, 택배 분류 작업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전전했다. 그러다 허리까지 다쳤다. “스펙 없고 마흔 넘으면 몸 쓰는 일 말고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 하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허 차장은 티브이 속 공인중개사가 빌딩 투자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부동산 투자’ 쪽 진로를 결행하게 됐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박 부장과 동료들에게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부동산 컨설턴트 얘기를 꺼내고선 “저도 그 사람처럼 빌딩을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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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인·본인 영업 판매로 굴러가는 기획부동산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면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생긴다. 심 차장, 허 차장 등 3040 신입 차장들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1000만원이 없거나 빌릴 수도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땅에 대한 믿음을 버렸단 말은 아니다. “전 아는 사람도 없어서 다니기 어렵게 됐어요. 좋은 회사인 것 같으니 필수씨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잘 다녀봐요.” 허 차장은 전화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퇴사 뒤 만난 심 차장의 말은 더 깊이 박혔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임원과 부장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요. 돈이 없어서 그만뒀지… 땅을 정말 사고 싶었거든요.”
이를 아는 탓인지 박 부장은 부서 차장들이 나갈 때마다 “(예전 나간 이들도) 우리 토지가 좋으니 돈 생기면 꼭 사러 온다고 한다”며 ‘땅에 대한 욕망’을 만져주고 격려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447.html#csidx846f5248e4079dc8b60148e9cb8a80c 

 

“코인 투자로 1억 날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 뿐” 그는 믿었다

속아도 땅은 믿는 ‘차장들’…패배가 뻔한 부동산 게임[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③]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한국말 어눌해 취업 안되던 중국 동포 ‘중국어 능통자’로 대접코인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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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②]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월말부터 기획부동산 2곳 서류면접 후 입사
‘장 차장’ 되어 보고들은 그들만의 비밀·실태
■ 지난 1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기사 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76.html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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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직접 일한 기획부동산은 모두 2곳(ㅎ·ㅈ사)이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ㅈ사에선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에 있는 밭을 평당 244만원에 팔았다. ㅎ사와 비슷하게 실거래가의 4~5배였다.
회사별로 토지의 최소 판매 평수와 가격이 달랐지만, 약속이나 한 듯 최소 구매금액은 ‘1500만원대’로 형성돼 있었다. ㅎ사는 11평(1460만~1650만원), ㅈ사는 6.36평(1554만원)을 최소 판매 단위로 삼아 ‘지분 쪼개기’(한 필지를 서로 모르는 다수가 살 수 있게 지분을 회사가 분할) 방식으로 판매했다. 두 회사 임원들은 조회·석회 시간을 틈타 지분 쪼개기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투자 방법”임을 강조했다.
기존의 기획부동산들은 군사보호지역, 비오톱(생물서식공간) 1등급,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등 개발이 제한된 토지를 ‘뻥 브리핑’(허위 개발 정보를 제공)해 팔아 문제가 됐다. 개인별 피해 규모가 적어도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대로 중상위 계층이 주로 포섭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합법적’ 테두리에서 덜 가진 이들, 더 작은 욕망까지 타깃 삼는 변화가 뚜렷하다. 최근 몇년의 부동산값 폭등이 남 일이었던, 남 일일 수밖에 없던, 그렇게 ‘가만히’ 더 가난해지고 만 이들을 위해서란 듯 말이다.
실제 회사에선 아예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부동산 판매사기 사건들을 ‘과거 사례’로 나열해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정상적인 업체”임을 강조하고, 세뇌하는 수단이다. 가장 최근 사건 가운데 하나인 가수 태연 가족의 사기 사건 기사(거래는 2019년)를 보여주며 “이 땅은 비오톱 1등급 임야다. 우리가 파는 땅은 절대 그런 땅이 아니다. 비오톱 땅을 팔아서도 2500억원을 남겼다는데, 우리는 좋은 땅을 파니 그보다 더 많이 팔아야 된다”고 당당하게 소리치기도 했다. 당당함 대신 호기심이 커졌다. ‘2019년조차 노골적 사기가 먹혔구나.’
ㅎ사의 영업 방식은 단순하다. 하지만 간단하진 않다.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서류를 보고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이른바 ‘114 영업’. 그런데 그 기반인 ‘전화번호부’가 대체로 무용지물이다. 회사가 나눠준 수백명의 휴대전화 번호 중 상당수는 결번 또는 정지된 번호인데, 이럴 경우 “끝자리나 중간 자리를 바꿔서 다시 전화하라”고 지시한다. 운 좋게 생판 모르는 사람과 연결이 되더라도 쉽게 넘어올 리 없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나 사라” 따져오기 십상이다. 최선의, 그러나 대개 최후가 되고 마는 멘트를 던져야 할 순간이다. “저도 샀는데요?”
기획부동산들은 “인사→본인·회사 소개→공감대(나이·고향·취미) 형성→재테크 대화→투자 권유로 이어지는 ‘단계별 통화’”를 강조하지만 그건 애초 불가능하다. 기획부동산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장들을 늘려가는 이유다. 회사의 진짜 실체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차장들이 이들 회사의 유일한 ‘고객’이란 사실. 회사는 차장들에게 지인과 가족 상대의 영업도 처음부터 권하진 않는다. 하지만 114 영업이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체감할 때쯤, 제안이 들어온다.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톰브라운 니트를 입은 한 상무가 말했다. “하루 삼사백통 전화를 해서 받는 사람은 10% 내외고 그중에서도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도 안 돼요. 114보다 빠른 게 연고이고 마감을 앞두고는 이제 연고도 병행해야겠죠?” 직원이 고객으로 전환되는 ‘연고 압박’이다.
(왼쪽) 장 차장이 앉았던 자리. 유선 전화와 티슈만이 제공됐고, 칸막이에 ‘2030 당진개발계획도’, ‘아파트 단지’ ‘ㅎ사 계좌번호’ ‘영업 4부 구호’ ‘회사 주소’가 적인 종이가 붙여져 있다. 책상 위에 놓은 서류는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용 전화번호부. (오른쪽)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 기록 카드. 통화한 고객과 관련한 정보를 기록해 담당 부장에게 보고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왼쪽) 장 차장이 앉았던 자리. 유선 전화와 티슈만이 제공됐고, 칸막이에 ‘2030 당진개발계획도’, ‘아파트 단지’ ‘ㅎ사 계좌번호’ ‘영업 4부 구호’ ‘회사 주소’가 적인 종이가 붙여져 있다. 책상 위에 놓은 서류는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용 전화번호부. (오른쪽) ㅎ사에서 제공한 114 영업 기록 카드. 통화한 고객과 관련한 정보를 기록해 담당 부장에게 보고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기획부동산은 3단계를 거쳐 직원을 고객화한다. 이벤트성 상금(금 1돈 등), 성과급(토지 판매 대금의 2%)을 미끼로 차장들을 자극한다. 시상금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들뜨면, 부장들은 “우리가 먼저 상금을 챙겨야 하니 본인 명의로라도 일단 계약금을 걸어놓고 이달 안으로 고객에게 팔자”, “우리끼리 돈 모아서 일단 (계약서를) 쓰고 상금은 나눠 가진 뒤 고객에게 떠넘기자”고 제안한다. 영업은 원래 “벼랑 끝에서 해야 되는 것”이라고 내몬다.
월말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 임원들이 대놓고 나선다. 세번째 압박 카드다. “손님을 붙잡아 계약금을 ‘땡기든지’, 아니면 차장님들이 (먼저 가계약해) 잡아놓고, 시한을 줄 테니 이번달까지만 (고객 돈으로) 잔금을 넣으면 된다”고 압박한다. 180㎝가 넘는 키에 몸무게가 100㎏이 넘는 권일성(가명) 상무는 “오늘 계약 따낼 사람 손 들어봐라, 끝날 때 다시 확인하겠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정계약’(토지매매계약서상 계약금만 회사 계좌로 입금한 상태)을 만들어 놓으라” 엄포를 놓으며 아침 조회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렇게 해 보통 1500만원대 금액의 10%가량인 150만원 정도를 계약금으로 걸게 되는 차장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에게 땅을 팔아야 하거나, 결국 잔금까지 직접 치러 살 수밖에 없는 블랙홀로 진입하게 된다.
움츠러든 차장들을 달래는 역할은 부장이 맡았다. 단골 레퍼토리는 ‘영업10부 에이스’ 김미선(가명) 차장 이야기였다. 박 부장은 “김 차장님이 회사에서 산 평택 도대리 땅이 (평당) 28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올랐어. 초등학교 선생인 친동생이 교장, 교감까지 다 데리고 와서 지난달에만 2억원어치 팔았다”며 올해 일흔을 넘긴 김 차장이 본인은 돈도 벌고 주변에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시상금 욕심, 제2, 제3의 김 차장이 되고 싶은 욕망, “회사가 파는 토지가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삼박자가 갖춰질 때쯤 차장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걸어둘 ‘정계약’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담당 부장이 허리춤을 깊숙이 찌른다. “어차피 오를 땅인데 자기가 하나 사두면 좋잖아. 이번에 시상금도 걸려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누군가에게 땅뙈기를 비싸게 팔았을 기획부동산의 가해자와 그러한 땅을 살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뒤섞이는 순간이다. 이른바 피라미드 영업의 ‘물고 물리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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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구매할 여력 되지 않아요?” ㅎ사 입사 7일 만인 11월4일, 박 부장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가던 중 단도직입적으로 토지 구매를 권했다. 앞서 박 부장은 “마포에 살고 여유가 되니까, (영업) 천천히 해요”, “여차하면 지를 수 있잖아요?”와 같은 말을 스쳐 지나가듯 던져왔지만, 이날만큼은 집요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마자 11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새 물건지 정보가 가득 찬 서류 뭉치를 가져와 “본인 이름으로 계약 한 건 올려야 하지 않겠나. 계약금 150만원부터 일단 걸고 (150만원이) 없으면 100만원만이라도 걸어라”고 독촉했다. 박 부장과 특히 가까운 진선영(61살·가명) 차장도 거들었다. “나도 친언니 이름으로 11평 계약했다. 계약을 해야 회사가 믿음을 준다”고 설득했다. ‘70만원밖에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니, “30만원 빌려줄 테니 계약서부터 쓰자”고 박 부장은 말했다. 성과가 없자, 퇴근 직전인 오후 4시 박 부장은 들으란 듯 ‘신입 차장’을 상대로 한 영업 경과를 누군가에게 휴대전화로 보고했다. 명품 스카프를 두른 박 부장이 빠르게 훑던 이력서의 ‘주소란’에 눈길을 세운 채 “마포에 사네, 자가, 전세?” 하다 부모의 직업까지 구체적으로 묻던 10월의 면접일 풍경이 스쳐갔다.


ㅎ사에서 10월27일부터 일주일간 성사되었다고 보고된 정계약(가계약금까지 납입)은 16건이었다. 가까이서 바로 확인된 최소 3건이 차장 본인 또는 가족 명의의 계약이었다. 전체 직원 계약건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땅을 팔아 돈을 벌러 기획부동산에 모여든 이들이 없는 돈을 끌어모아 땅을 사버린 것이다. 이들은 “값이 오를 좋은 땅 정보를 알았고, 천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데 적은 돈이라도 투자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차피 오를 땅 아니냐”, “내 이름으로 넣어 놓고 나면 회사도 나를 믿어줘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영업10부의 6개월차 장일영(가명) 차장은 “내 명의 등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샀으니 너도 믿고 사’라고 말하면 고객이 따라온다. 내가 먼저 사니 망설였던 사람들도 다 (따라) 샀다”며 “만약 살 계획이 있으면 미리 사서 영업하는 게 낫다”며 지금이라도 땅을 사라고 권했다.
장 차장처럼 회사에서 땅을 산 차장들은 ‘내가 산 땅은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두터워 보였다. 믿음이 영업의 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 믿음은 사실 그들의 오늘 삶을 버티게 하는 동력일 것이다.
“나 못 믿어? 나 믿고 일단 와서 설명만 들어봐.”
“진짜 돈 천만원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그러면 이런 좋은 땅 못 산다니까.”
“엄마, 엄마도 돈 벌 수 있다니까.”
과연 개발될 땅일까, 이들에게 땅에 대한 믿음은 어쩌다 필요했을까, 그리고 또 믿음을 필요로 하는 전화 너머 그들은 누구일까.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333.html#csidx7f3805111e862d8b181b28a289dd149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 유혹과 압박이 오갔다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②]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10월말부터 기획부동산 2곳 서류면접 후 입사‘장 차장’ 되어 보고들은 그들만의 비밀·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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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①]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월말부터 기획부동산 2곳 서류면접 후 입사
‘장 차장’ 되어 보고들은 그들만의 비밀·실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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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이죠.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파는 것이니 영업할 때 당당해도 됩니다!
기획부동산 ㅎ사에 입사한 지 나흘째 되던 11월1일, 박정자(가명·59살) 부장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영끌’도 있는 이들이 한다는 땅의 통념을 깨는 놀라운 말은, 곧 자연스러워졌다. 이후 조회나 석회에서도 반복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땅은 유산자의 것을 넘어 ‘만인의 욕망’으로 개발되는 중이고, 그 공정에 기획부동산이 있다.
“엄마, 엄마도 돈 벌 수 있어.”
연두색 칸막이 너머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11월5일 오후 2시께 심혜선(가명·36살) 차장은 회사에서 알려준 각종 개발 호재를 조곤조곤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11월 입사 첫날 “저 빨리 돈 벌어야 해요”가 인사말이기도 했던 심 차장은 그리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부모님과 오빠에게 ‘땅 매입’을 권하게 된 것이다.
청주에서 베이킹 카페를 운영하다 서울로 온 심 차장은 남들도 다 한다기에 손을 댔던 코인 투자로 1억원을 날렸다고 한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뿐”이라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획부동산을 제 발로 찾아 들어왔다.
‘돈 때문에 절박하신 분’, ‘부동산 배우면서 돈 버실 분’, ‘재테크해서 노후준비하고 싶으신 분’을 찾는다는 이 회사 광고를 심 차장이 놓쳤을까. 기자 역시 온라인 구인광고로 알게 된 ㅎ사(서울 강남구)에 정식으로 서류 지원해 인사실장, 담당 부장과 일대일 면접한 게 10월26일 오후 2시께다. 이력서를 손에 쥔 채 “서울에서 대학 나오고 이쪽 일 경험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마지막까지 연신 의중을 떠보는 박 부장에게 진짜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돈 많이 벌고 싶습니다.”
“뭣보다 눈빛이 살아 있고 ‘돈 벌고 싶다’고 하니 믿어볼게요.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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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기자는 ‘장 차장’이 되어, 취업에 실패해온 40대 남성은 같은 날 ‘허 차장’으로, 무너진 자영업자는 나흘 뒤 ‘심 차장’으로 ㅎ사의 영업4부에 배치됐다. 서울 강남 선릉역 번듯한 오피스 건물에 입주한 ㅎ사는 각기 4명 안팎으로 구성된 영업1부부터 10부까지 있는데, 통째 빈 부서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직원이 모두 나갔거나, 그래서 곧 ‘신입’들로 채울 부서들이고 그 생몰의 ‘무한반복’이 이 회사의 본질이란 걸 이내 파악할 수 있었다. 강남 일대에만 이러한 기획부동산이 300여개로 추정되고, 그들이 이젠 저소득층까지 노려 개발될 리 없는 땅조차 상품으로 기획해내고 있다.
ㅎ사는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삼화리 일대 임야 2곳을 각각 평당 130만원, 150만원에 팔았다. 현지 실거래가에 견줘 최대 4~5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임원들은 쿠팡과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와 마트와 식당에서 파는 소주의 가격 차이를 언급하며 “4억원짜리 땅을 11억원에 파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직원들에겐 각오나 다짐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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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으로 뭉친 4부 ㅎ의 최고 부서! 된다 된다 계! 약! 번다 번다 돈! 돈! 영업4부 파이팅 파이팅 얍!
실제 회사의 하루는 구호로 시작된다. 영업4부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젊은 피’를 수혈해 조직한 부서였다. 기존 팀원인 60대 차장 2명에 3040세대를 투입해 ‘신구’ 조화를 이뤄내겠다는 게 회사의 목표라고 박 부장이 말했다. 우렁찬 박수와 함께 부서별 구호 파도타기가 끝나면 조회가 시작된다. 거듭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에이스 부서로 정평이 난 영업10부의 정인영(68살) 부장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게 우리나라 속담이야. 욕심을 이용하란 말이야! 주변에 크게 오른 땅 말하면서 기대감을 품게 하고, 우리가 파는 땅 얘기를 하란 거야”라고 신입 차장들에게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곤 했다. 그는 올해만 15억원어치 땅을 팔아 성과급으로 1억5천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필지로 땅 못 사는 사람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판 땅은 그 가운데 얼마일까.
“부동산은 망하지 않아. 내 딸이 직업 군인이야. 진급 못 하면 아예 기획부동산에서 일하려고 한다는 거 아니야. 직장생활 하면서 이런 돈 평생 못 만져. 정말 잘한 선택이야.” 그는 눈이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자주 엄지척을 날렸다. 그의 ‘응원’을 무시하는 신입들은 없다. 베테랑 정 부장과 신입들의 욕망, 아니 꿈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 ㅎ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10부’의 실적 현황. 계약을 따낸 직원의 이름과 수수료가 적힌 종이를 벽면에 붙여두었다. (오른쪽) ㅎ사 사무실 내부. 중앙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칸막이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중앙 무대에는 물건지 설명을 위해 화이트보드, 티브이, 빔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사진 왼쪽) ㅎ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영업10부’의 실적 현황. 계약을 따낸 직원의 이름과 수수료가 적힌 종이를 벽면에 붙여두었다. (오른쪽) ㅎ사 사무실 내부. 중앙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칸막이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중앙 무대에는 물건지 설명을 위해 화이트보드, 티브이, 빔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회사 사무실 구조는 ‘공장식 콜센터’라 할 만하다.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4자리 또는 6자리씩 칸막이로 구분된 책상이 일렬로 놓여 있다. 흔한 컴퓨터 한대 없이 책상 위엔 유선전화기만 달랑 놓여 있다. 칸막이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2030 당진시 개발계획도’와 회사 계좌번호가 찍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 벽면에는 개인별 실적이 적힌 종이가 부서 단위별로 게시돼 있다. 영업 경쟁을 유도한다. 부서별로 실적 격차가 제법 큰 게 눈에 들어왔다. 영업10부 뒤 벽면은 실적을 붙일 자리가 모자라는 반면, 단 한건 올리지 못한 부서도 있었다. ㅎ사에서 일한 열흘간 2개 부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고 빠르게 새 사람들로 채워졌다.
매일 아침 10시30분부터 1시간 반쯤 진행되는 조회에서 임원들은 우리가 파는 ‘물건지’가 어째서 좋은 땅인지, 개발 호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침이 튈 정도로 열렬히 주입시켰다. 화면에는 지자체 홍보 동영상, 경제지 기사 스크랩, 국토부 보도자료 등이 연신 띄워졌다. “우리가 파는 땅은 차원이 달라요”, “개발이 확정됐으니 돈 빌려서라도 이 땅은 사야 합니다”, “지금이 아닌 미래 값어치로 보라고 고객을 설득하세요”와 같은 ‘확신의 언어’들이 촤르르 쏟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단 하나 금기가 있었다. 회사가 파는 토지의 지번은 고객에게 절대 먼저 알려줘서는 안 된다. 물건지를 설명하는 대면 미팅을 만들어 고객이 회사로 직접 방문하는 ‘내사’가 확정되고 난 뒤에야 지번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교육받는다. 고객이 앞서 땅의 ‘실체’를 달리 파악하거나 평가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명품을 즐겨 입는 한정원(가명·40대 초반) 상무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임야를 놓고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장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갖가지 교육 정보들을 받아 적다 조회가 끝나면 일제히 부산을 떨며 전화통을 붙들었다.
“지금 은행 이자가 1%도 안 되는데!”, “그때 파주에 땅 산 사람들은 돈을 엄청 벌었다니까 그러네!”, “이 당진 땅은 죽으면 새끼한테 물려줘도 돼. 나 못 믿어?” 고성과 읍소 사이에서 중부권의 지번 모를 땅들을 질주하던 차장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면, 사장을 포함한 3명의 임원들이 중앙 통로를 오가며 호통을 쳤다. “왜 이리 조용해. 절간이야, 오늘은 영업 안 할 거야?” 좁은 양계장의 닭처럼 붙어 앉은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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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76.html#csidx0ecbdacac4af3fa80f033225ade40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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