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제 5장. The second partition of Palestine.
책: 팔레스타인의 두번째 분리 : 하마스와 파타의 권력투쟁 (2022)
2007년 무력 충돌.
하마스 총선 승리에 대한 국가별 반응.
하마스 선거 승리 인정 국가 –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예멘, 중국, 러시아.
하마스에 대한 조건부 인정 및 경제 제재 유지 – 이스라엘, 미국, 유럽연합.
총선 직후, 서안 지구 라말라(Ramallah) 의회 건물 앞에서, 파타와 하마스간의 무력 충돌 발생.
그 이후 몇 달 간 다른 지역으로 두 진영 충돌 확산.
팔레스타인 인권센터 (PCHR)에 따르면, 파타와 하마스간의 무력 충돌 피해자 현황.
350명 사망 (20명 어린이, 18명 여성), 1900명 부상당함.
무력 충돌 내용 – 공공기관 건물 공격, 무장 세력(개인, 부족) 충돌, 국제 기구 공격, 외국인 납치, 팔레스타인 정부 치안 서비스 (경찰)과 무장 그룹 간 충돌, 팔레스타인 정부 공무원들에 대한 공격.
하마스가 자체, 2006년 4월 20일, 가자 지구 ‘정부군’을 창설 (the Executive Force: EF 행정 집행 군) 발표 이후, 파타와 하마스간 무력 충돌 격화됨.
기존 PA 정부군이 하마스 정부군 (EF)의 지휘를 따르지 않음.
파타 압바스 대통령과 하마스의 권력투쟁- 파타 출신 마무드 압바스는 경찰들에게 집에 머무르면서 임금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마스의 ‘정부군,행정군 EF’는 정치적 적들을 협박하고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됨.
2006년 5월 22일. 무력 충돌 발생.
가자 지구, 경찰청 근처 팔레스타인 의회 건물 앞에서 파타와 하마스가 총격전을 벌임.
6월 한달 내내, 혈투 낭자. – 하마스의 군사조직 알-카쌈 여단 (Al-Qassam Brigades)와 파타의 군사조직 (알-악사 순교 여단 al-Aqsa Martyrs Brigades) 까지도 혈투에 참여.
납치, 수류탄 투하, 로켓 발사.
2007년 2월 18일.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새 행정부 조각을 할 때, 새 국회가 소집됨.
압바스 정치 입장 발표 1) 이스라엘과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
2) 유럽연합과 미국은 협상을 지지하라.
3)법치를 강화하기 위해 개혁안을 만들겠다. ‘1개의 정당한 무기와 정치적 다원주의’ 실천
4) 대 이스라엘 시민 발표 “일방주의 해법 시대는 끝났다 (unilateral) ‘서안 지구 분할’, 요르단 계곡의 몰수’, 예루살렘의 고립화를 비난했다.
하마스 상층 대표, 아지즈 두아익 (Aziz Duaik)의 발언. 하마스는 파타와의 ‘단일 통일 정부’를 선호한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단독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
하니예 (Haniyeh) 발표. “우리 하마스가 파타와의 단일 정부를 형성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집권 능력이 없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통일 정부 형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인식, 차기 팔레스타인 정부는 상당히 힘든 국내 정치적 과제에 직면할 것이고, 제한된 자원으로 그 현안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아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다.
2006년 2월 후반기.
압바스는 자기가 주어진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
이스라엘의 반응.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 Ehud Olmert 발표 주요 내용.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를 명시한 하마스 헌장을 폐기할 것을 요구.
2월 초순 이스라엘 정부는 1월치에서, 5400만 달러를 팔레스타인 정부에 이전함 (세관, 부가 가치세 수입임) 하마스가 새 정부 구성하는 것은 인정, 그러나 경제 제재는 유지.
매월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정부에 이전해야 하는 ‘돈’ (세금)을 하마스에게 주지 않고 가지고 있음.
하마스 출신 새 국회의원들의 이동을 제한.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로 이동)
이스라엘 총리 에후브 올메르트 발표 “새 정부의 수장이 하마스 대표가 된다면, 팔레스타인 정부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셈이다.”
하마스는 올메르트 수상을 비판. 팔레스타인들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팔레스타인 인민의 민주주의’를 존중하라. 그리고 이스라엘과 그 동맹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한다면, 하마스는 새로운 대안들이 있다고 발표.
이스라엘 정부의 ‘하마스’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 팔레스타인들의 여행, 상품, 금융을 제한함.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검문소 보안 안전 강화.
이미 2000년 제2차 인티파다 (민중 봉기) 이후, 팔레스타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함.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주도 팔레스타인 정부에 지원금을 송금하지 말라고 요구.
팔레스타인을 위해 징수하던 ‘관세’를 동결해버렸다. 관세는 매월 5천만 달러 정도였고, 팔레스타인 정부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했기 때문에, 하마스에게는 상당한 경제 제재였다.
나예프 라주브 (Jayef Rajoub) 하마스 지도자는, 이러한 관세 동결은 ‘대낮에 날강도’라고 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를 비난했다.
2006년 3월, 미국과 유럽연합 역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했다.
그 이유는, 하마스가 폭력노선을 철회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93년 오슬로 협정과 같은 기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협정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테러’ 관련 법에 따라, 하마스는 테러리스트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원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없다 (미국 개인, 단체로부터)
팔레스타인 정부 예산 삭감의 의미. 팔레스타인 정부가 고용하는 ‘공공 서비스 분야’ 직원들 숫자는 14만명이다. 이 중 5만 8000명은 치안과 안보 담당군이다. 14만명은 팔레스타인 가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규모 노동력이다.
“중동 평화 과정”을 위한 유엔 특별 코디네이터, 알바로 드 소토 Alvaro De Soto는 징수된 세금은 팔레스타인 정부로 이관되어야 한다.
전 미 대통령이자, 팔레스타인 총선 국제 감시단원이었던, 지미 카터 역시 이스라엘 정부의 ‘관세’ 동결 조치를 비판했다.
당시 이스라엘 여론조사, 절반 이상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와의 협상 찬성.
가망없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 하마스 접근.
Mantra 만트라 (신비한 형태의 인디아 힌두이즘의 주문)만 외우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딜레마. 팔레스타인 선거는 찬성하고 지원하면서, 하마스 선거결과는 부정하고 경제제재 조치를 함.
선거 직후, 유럽연합이 하마스에게 요구한 3가지 사항 1) 폭력 철회와 무장 해제 2) 이스라엘 국가 승인 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 간의 협정 인정
미국 부시 정부도 유럽연합과 동일한 입장. 하마스의 헌장를 폐기해야 한다. 하마스는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미국의 개인 단체는 하마스에게 기부나 지원금을 보낼 수 없고, 이는 불법이다.
하마스 지도자, 무사 아부 마르죽(Musa Abu Marzook) – 하마스는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정당한 민족 해방운동이다.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칼레드 메샬 (Khaled Meshal) – 시리아 거주, 이란 방문, 원조 부탁.
이란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경제 제재 1년 동안에, 1억 2천만 달러를 하마스에 원조했다.
러시아 푸틴. 하마스의 선거 승리 인정과 정부 승인.
아랍국가들, 하마스가 93년 오슬로 협정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바꿀 것을 주문함.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가 하마스에게 요구한 것은, 2002년 아랍 리그 평화 계획안을 수용하라 완전한 평화와 이스라엘 승인 조건 – 이스라엘이 1967년 국경선으로 물러나 줄 것. 총회 결정 사항에 따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이스라엘이 수용한다는 조건을 내걸다.
하마스-이스라엘 충돌 .
2006년 6월 25일. 하마스가 이스라엘-가자 지구 근처, 케렘 샬롬 (Kerem Shalom) 에서 급습을 강행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략한 이후에, 이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8명 하마스 대원이 지하 터널을 이용, 이스라엘 탱크를 덫에 빠뜨리고,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사살하고, 상병 길라드 샬리트 (Gilad Shalit)를 포로로 잡았다.
이스라엘은 갈리드 샬리트를 구출하기 위해, ‘여름 비 작전 Operation Summer Rains’를 가자 지구에 감행.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의 3개의 교량을 파괴하고, 주요 전기발전소를 공격했다.
2006년 8월 14일 종전 선언. 유엔이 중재자로 나섬.
파타-하마스간의 충돌.
팔레스타인 정부 구성에서, 파타와 하마스간 자기 인물 심기 경쟁 발생. 군대 내부 파타-하마스 정파 갈등. 팔레스타인 의회 기능, 입법을 마비시켰다.
2007년 메카 협정.
2007년 1~2 월,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서, 파타와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로 인해, 무법 천지가 되었다. 가자 지구에서 폭력은 범죄 발생 증가로 이어졌다. 파타와 하마스가 서로 죽이는 동안, 길거리 치안은 완전히 방치되었다.
팔레스타인 언론은, 차량 절도, 납치와 같은 범죄들이 가자 지구에서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정적인 결과, 해외에서 자원봉사하러 온 외국인들과 해외군사 자문단이 가자 지구를 떠나고 말았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 보호를 위한 유엔 기구 (UNRWA: the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모두 가자 지구를 떠나는 계획도 세웠다.
사우디 아라비아 왕, 압둘라 (Abdullah)가 파타와 하마스를 메카로 초대해, 협정을 맺게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중재 배경에는, 911 테러 사건 이후, 실추된 국력을 아랍 세계에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사우디를 비난하는 미국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하마스 대표는 이스마일 하니예 (Haniyeh)와 칼레드 마샬 (Khaled Mashaal).
파타의 대표는 압바스와 달란 (Dahlan)
메카 협상안은 ‘2006년 5월 죄수 문서 Prisoners Document of May 2006’에 기초해서 작성되었다.
죄수 문서 작성자는 당시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 중인, 파타의 마르완 바르구티 (Marwan Barghouti)와 하마스의 압둘 칼레크 알-나췌(Abdul Khaleq al-Natsche) 등 몇 유명한 죄수들이 작성했다.
파타와 하마스의 4가지 메카 협정 내용들.
(1) 유혈 투쟁 중지 및 예방. 점령지 해방을 위해 민족적 단결을 강조. 팔레스타인들의 의견 불일치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은 ‘대화’임을 강조.
(2) 파타와 하마스가 승인한 세부 규칙들에 따라 팔레스타인 단일 정부를 구성.
(3)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를 혁신하고 활성화하는데 박차를 가하자. 카이로와 다마스커스 각서에 기초한 예비위원회를 가동시키자.
(4) 팔레스타인 의회에서 제정한 법과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초해 정치적 파트너십 원칙들을 강조.
그러나 메카협정들은 큰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실패 이유들
(1) 미국, 유럽연합, 이스라엘의 모호한 역할
(2) 팔레스타인의 이해관계 충돌.
미국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하마스의 지도자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발표. 하마스의 총리 하니예를 국제기준에 미달한다고 비난.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접촉.
2007년 3월 20일. 미국 예루살렘 총영사, 제이콥 월리스 Jacob Walles 와 파예드 (팔레스타인 재무장관 Fayyad)가 라말마에서 회담.
4월 17일,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가 파예드와 1시간 30분 회담.
미국은 아랍과 유럽연합이 팔레스타인에 지원금을 보낼 방법을 모색.
부시는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에게 지원금을 보낼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8600만 달러를 파타가 주도하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지원하기로. 그러나 미 하원은 이를 보류함.
미 의회는, 파타와 하마스가 공동 단일정부를 수립하면, 8600만 달러가 결국 하마스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함.
유럽연합.
영국과 독일은 하마스에 적대적이고, 팔레스타인 원조기금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거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지원금 재개 의향 표출.
5월 1일 EU 정책을 무시하고, 유럽연합 의회 의원들이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 대표 하니예를 면담.
2007년 2월 15일, 논란이 많았던 팔레스타인 총리였던 이스마일 하니예가 사임함으로써, 파타와 하마스의 단일 정부 구성에 힘이 모아졌다.
2007년 4월 중순,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와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 회담. 올메르트는 압바스가 ‘하마스’와 통일정부에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 압바스는 내정간섭 말라고 대답.
회담후, 올메르트 총리는 팔레스타인은 유럽연합의 3가지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 그렇지 않으면 경제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2007년 6월 7일. ‘6일 팔레스타인 내전’. 팔레스타인 161명 사망 (어린이 7명, 여자 11명), 700명 부상자 발생.
2007년 5월 19일, 파타와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지속되자, 이집트 정부가 양측의 종전을 위해 중재자로 나섰다. 그러나 이 종전도 몇 주 정도 이어지고, 다시 무력 충돌이 발생. 6일간 팔레스타인 내전이 발발함.
하마스가 무력으로 가자 지구 점령. 마무드 압바스의 대통령 건물 등 팔레스타인 정부 건물들을 점령함. 팔레스타인 인권센터(PCHR)에 의하면, 가자 지구에서 파타와 하바스의 무력충돌은 ‘초법적이고 제 멋대로 살육’이었다고 보도.
하마스 대원이 파타 대원 2명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려버리기도. 하마스는 파타 정치인들을 납치 감금. 하마스는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정부 지지자들을 살해하거나, 부상당한 파타 대원들에 총격을 가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정부와 연계된 일반 가정집, 아파트, 병원, 앰뷸런스, 의료진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팔레스타인 161명 사망 (어린이 7명, 여자 11명) , 700명 부상자 발생.
1947년 유엔 결정 181호, 팔레스타인 분리 계획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분할되었다. 2007년은 팔레스타인이 다시 파타와 하마스, 파타의 서안 지구, 하마스의 가자 지구로 분리되었다.
2007년 10월 하반기. 팔레스타인 정부군 3500명이 나블루스 (Nablus)에 있는 하마스의 요새 앞에 주둔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파타와 하마스를 이간질하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을 구사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파타’를 지원하다. 2007년 겨울, 파타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는 툴카렘(Tulkarem)에 500명 병사를 파견했다. 동시에 파타는 하마스에 대한 지원금을 차단했다.
하마스와 파타의 경쟁.
2008년 3월,미국, 이스라엘, EU, 유엔은 팔레스타인 정부를 돕고, 서안 지구 6만 명을 지원하는 하마스의 ‘다와 dawa’ 복지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경제 네트워크를 창설했다.
팔레스타인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파타와 하마스의 분열책을 분쇄하기 하기위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기 집권의 강경책을 바꿔, 평화 협상 제안. 조지 부시의 발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2개 국가 수립, 폭력 거부, 이스라엘 국가 승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협정을 승인하는 국가들에게 국제회의를 제안함. 2007년 11월 후반기에, 애나폴리스 Annapolis에서 국제 회의를 개최하자고 발표.
https://georgewbush-whitehouse.archives.gov/news/releases/2007/11/20071127-2.html
시리아가 막판에 회담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함.
그러나 시리아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지원금을 보내는데, 왜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시리아가 평화회담에 참여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음.
조지 부시의 애나폴리스 회담에 초청받지 못한 하마스와 지지자들은 반미 시위를 가자지구에서 펼침.
하마스 지도자, 마무드 알-자하 (Mahmoud al-Zaha)는, 이스라엘과 협상하려는 자는 배신자라고 발언했고, 이스마일 하니예는 모든 아랍국가들은 조지 부시 애나폴리스 회담에 참석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칼레드 마샬 (Khaled Mashal)은 애나폴리스 회담 이후,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제 3, 제4의 인티파다를 일으킬 것이다”고 발표.
2007년 6월 하마스의 가자 지구 점령 이후,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바꾸었다. 가자 지구에 대한 제제 조치는 기존대로 유지하되, 서안 지구에서는 압바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신 서안지구 응급정부로 지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미국은 서안 지구, 파타 출신 압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정부에 경제-군사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동결된 관세, 3억~4억 달러가 압바스 정부에 지원금으로 사용됨.
서안지구에는 국제 원조가 활발해진 반면에,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은 경제 제재 조치로 인해 고통받았다.가자지구의 59% 전력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공급받아옴, 가자 지구의 ‘생산’의 95%의 주원료는 이스라엘로부터 수입해옴. 의료 서비스 역시, 고난이도 치료는 모두 이스라엘에 의존해왔음.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책. 연료 제공 삭감. 2007년 12월 초순까지, 150 주유소 들 중 100개가 문을 닫을 지경.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불평이 생겨남. 하마스 전투요원들이 가자 지구 병원에서 연료를 훔치거나 빼돌려 그들의 차량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불평함.
2008년 1월까지 가자 지구 유일한 전력 발전소에 공급되던 연료의 50%를 삭감시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이러한 강경책을 비난하는 아랍 국가들의 시위가, 암만, 카이로, 카타르, 바레인에서 터져나옴.
이집트 무바락 (Mubarak) 대통령은 여론에 밀려, 가자 지구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이 이집트로 넘어올 수 있게끔 국경을 개방했다.
2008년 사나 협정 (Sana’a, Accord of 2008) – 예멘.
2008년 1월 하마스와 파타 무력 충돌 발생. 가자 지구 남쪽 칸 유니스 (Khan Younis) 이슬람 사원모스크 바깥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40명 부상자가 발생.
하마스 주장, 파타 지지자들이 이스람 사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해 총를 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파타와 하마스간의 충돌은 가자 지구 다른 곳으로 확산되었음.
2008년 3월 23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파타와 하마스 간의 평화협정이 맺어졌으나 오래 가지 못했음.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포위, 하마스와 파타의 균열책 .
2007년 10월 이후 경제 제재로 인해, 가자지구 상점들은 상품 부족, 병원은 항생제와 마취제 부족.
미국은 서안지구 파타와 가자지구 하마스의 분열을 노리고, 파타 압바스 서안지구에 지원금을 6배로 증액, 4억 3500만 달러를 지원. 압바스의 지원 호소로, 국제사회는 74억 달러 지원금을 팔레스타인에 보냄, 이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예산의 총합보다 2배가 더 많았음.
이스라엘 총리 올메르트는, 서안 지구 나블루스에 있는 ‘파타’ 주도 팔레스타인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지원을 받았을 수 있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정책을 180도로 바꿈.
2008년 3월, 이스라엘 국방장관 에후드 바락(Ehud Barak)은 압바스 팔레스타인 ‘파타’ 정부에 무기 공급함.
2008년 애니폴리스 회담 직후, 하마스는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편지를 보내, 하마스는 미국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미국 유럽연합과 회담을 하고 싶다고 함.
2008년 1월, 조지 부시 방문시, 미국 대통령을 무슬림 피를 빠는 흡혈귀로 묘사하는 시위. 하마스는 미국이 파타와 하바스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부시를 비난. 부시의 “난쟁이 팔레스타인 국가” 정책을 거부한다고 선언.
2009년 1월 3일,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지구를 공격.1440명 팔레스타인 사망자, 5000명 부상자 발생. 그 이후 양측 종전 선언.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 지구에서 철수함.
이집트에서 국제 기부국가들 회의 후, 이스라엘 가자 지구 공격 이후, 가자 지구 복구하기 위해 미국이 4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함.
팔레스타인 총리 살람 파예는 경제 지원에 감사하나, 이스라엘의 포위 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가자 지구의 재건은 불가능하다고 발표.
버럭 오바마는 2개의 국가 주장. 평화는 협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발언.
팔레스타인 대통령 압바스는 2009년 5월 28일 오마바와 백악관에서 회담. (그 이후, 6월 9일, 그리고 2010년 9월)
2010년 7월, 팔레스타인의 외교적 지위가 높아져서, PLO 대표부 미국 파견단이 됨 (PLO General Delegation to the US)
2010년 12월에는 미국과 팔레스타인 정부가 정보 기술능력 촉진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출점.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비-정규 회원 참관 국가’로 승인함.
유럽연합의 이중잣대는 유지. 하마스와 알-카에다는 테러단체로 규정. 그러나 헤즈볼라는 테러단체 명단에서 빠져있음. 그 이유는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레바논과의 외교적 이해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임.
그러나 미국의 경우, 하마스, 알-카에다, 헤즈볼라를 모두 ‘테러리스트’로 규정.
2009년 7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2개 국가 채택을 선언.
팔레스타인을 유엔 정국 회원국으로 만들고 향후 실행 조항 시간표를 만들자고 함.
2011년 아랍의 봄은 이 지역 정치를 바꿔놓음.
아랍 국가들의 시민들이 아랍 국가들의 전제주의와 독재에 저항했다.
2010년 12월 18일, 튀지니아 (Tunisia)에서 촉발된 시위가 아랍 전역으로 퍼졌다.
모하메드 부아지지 (Mohamed Bouaziz)의 분신자살은 아랍의 봄 시위를 격발시켜,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로 퍼졌다. 이집트 무바락, 리비아 가디파(Gaddafi)는 시민들에 의해 축출되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파타와 하마스에 압력을 행사해, 단일정부안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2011년 4월 2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주의 하마스와 세속주의 민족주의 파타가 ‘단일 정부’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2012년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
출처.
책: 팔레스타인의 두번째 분리 : 하마스와 파타의 권력투쟁 (2022)
제 5장 팔레스타인의 두번째 분리.
저자 – 숩하쉬 싱 (Subhash Singh)
원제: THE SECOND PARTITION OF PALESTINE
Hamas–Fatah Struggle for Power
2007 . june 10 to june 15 . time line.
https://www.hrw.org/news/2007/06/12/gaza-armed-palestinian-groups-commit-grave-crimes
https://www.reuters.com/article/us-palestinian-reprisals-idUSL14749263200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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