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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최저임금 이야기 1.

by 원시 2022. 1. 11.

2021.dec.11.
원시

생명과 정치. 삶의 무게. 


최저임금 이야기 1. 


202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량 저하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연구를 한  ‘데이비드 카드’다. 그런데 국내 언론도 경제학과도 조용하다. 최저임금제도 폐지하자는 윤석열이 등장하질 않나. 지적 풍토를 생각하면, 방정맞은 ‘비참함’이다. 뭐 하나라도 20년, 30년, 40년 해도 부족할 판에. 요새는 사회적 경제가 제목이 뭘로 바뀌었나? 하도 자주 바뀌니 정신도 없다. 


아니러니하다. 최저임금인상을 맹폭했던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국내 한 교수가 그나마 제일 정확하게 저 내용을 설명했다. (한겨레,경향,조선,중앙,한국일보,한경,매경 비교해보길)


공동 연구자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카드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앨런 크루거이다. 이 둘은 1995년에 ‘최저임금 올리더라도 해고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새 관찰 및 발견’을 발표했다. 


이들은 맑스 방법론 가지고 연구한 것도 아니고, 진짜 일일이 수작업을 해서 (A 항 최저임금)과 (B항 고용) 관계를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새 발견 new findings’을 한 건데, 이런 발표는 아직까지도 논쟁중이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경제학 원론 교과서의 독단을 교정했다. 


한국의 경우, 경제학과에서 ‘최저임금’ 연구하는 사람은 2~3명 정도같고, 노동운동과 노조에서는 주로 하고 있다. 조순과 정운찬 교수가 쓴 ‘경제학 원론’ 역시 미국 교과서를 카피한 것이라서,  미국 주류경제학자들이 지난 40년 넘게 교리로 받들던 ‘임금이 증가하면 고용이 감소한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사람좋고 스마트한 앨런 크루거 교수가 2019년에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최저임금 주제를연구하는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교수인 두베(Dube)가 통곡을 하며 쓴 추모사가 애절하다. 앨런 크루거는 오바마 내각에 참여했고, 최저임금을 50개 주에서 다 올려라고 주창했다. ‘온건한’ 버니 샌더스 정도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임금)주도 성장’ (포스트 케인지안 주장)을 실현할 대책들을 산업 부문별로, 노조와 비노조 노동자 등 차이, 서울과 지역의 차이, OECD국가들 중 ‘식당’등 사적 서비스 (자영업) 비율이 가장 높은 편임,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마디로 준비가 부족한 채, ‘최저임금’만 올리겠다고 발표했다가, 보수파들의 맹공격을 받고 후퇴해버렸다.


홍남기 등 관료 탓만 해서는 안된다. 실패 이유들은 준비주체의 부족이었다. 더 큰 정치적 그림에서는,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의 이해관계 상충 요소들을 고려하지 못한 점, 그리고 노-사-정 위원회의 권력균형에 실패한 점, 보수 언론을 뛰어넘는 ‘최저임금 연구자들’의 지원이 거의 없거나 부족했다는 점이다. 


단순화시켜 보자. 자본가의 저항을 우선 무시하고, 자본가가 협력했다고 가정하자.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이 200만원이 아니라 250만원이었다고 가정하고, 50만원 인상분 중에, 월 2회에서 월 6회로 늘렸다고 하면, 
짜장면 식당 주인의 이윤도 늘어나고, 아르바이트 하거나 직원을 더 고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노동자 임금(A정의) 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다. (B 정의:  임금은 소정 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 노동력 재생산 비용 중에, 외식비가 늘어나면, 자본가에게 손해일 것이고, 자영업자에게는 이익이다.


더 좋은 그림. 비정규 노동자건, 자영업자건, 소득이 늘어나면, 소량이라고 하더라도, 세금을 조금 더 내야 하고 (이렇게 설계해야 함), 누진세 직접세율을 높여서, 복지 재원과 공공 투자(공공 주택 건설, 공공 사업)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이 소득(임금) 주도 성장론의 주요 요체들 중에 하나다.


지난 4년에 대한 평가, 연구 논문이 많지 않다. 잘 연구하면 노벨상도 받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어디에선가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2.  앨런 크루거. 


책 제목에 ‘종말’ ‘종언’ ‘죽음’ ‘틀렸다’ 이런 단어를 쓰면, 신뢰성이 더 떨어짐. 그런데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콜랜더의 심정은 이해가 됨. 데이비드 콜랜더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죽음’ 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주된 요지는 ‘현대 경제학’은 새로운 사상과 방법에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까, 제도학파나 맑스주의 경제학도 기죽지 말고, 엄밀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랭킹 높은 대학에 교수가 되어라는 것임.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음. 


그렇지 않은 측면의 한 사례를 보면, ‘너가 하는 경제학은 경제학이 아니다.’ ‘너가 하는 법학이나야구는, 법학이나 야구가 아니다’라고 아예 문을 닫는 경우가 있음. 누굴 탓하기 전에 현실이 그러함.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랭킹 1~10위에서 학위하고 온 사람들은 장하준 교수의 작업을 ‘(자기들) 경제학’으로 간주하지 않음. 옛날에는 궤간 (철도 간 폭-트랙 게이지) 거리가 다 달랐죠? 610 mm 부터 1676 mm 까지 다양했다고 함. 한국은 유럽처럼 표준 1435 mm 를 씀. 양 철로 폭이 1미터 43.5 cm-임. 아예 서로 궤간이 다르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차이가 ‘진리’의 차이라고 생각해버림. 


경제학 뿐만 아니라, 대학은 그 나라 정치 경제 현실 힘관계의 반영임.


다시 조금만 더 언급. 데이비드 콜랜더 요지는, 


아래 미국의 10명 스타 경제학자를 예를 들면서, 이들의 방법론이 ‘신고전파’의 모델링이 아니라, 그것과 별도의 방법을 강구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로머, 버즈 브록, 리처드 탈러, 윌리엄 보몰, 조지 애커롭, 조 스티글리츠, 데이비드 카드, 앨런 크루거, 폴 크루그먼, 켄 애로우, 아마탸 센, 토마스 셸링.


학적 엄밀성을 무기로, 신고전파 ‘균형이론’ 모델링이 아니더라도, 앨런 크루거나 데이비드 카드와 같은 다양한 관찰 검증방법 등을 도입해서,  새로운 경제학을 창출하라. 


그런데 198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경제적 현실은 빈익빈 부익부이고, 최악의 불평등 ‘선진국’이 되었다.  1950년~1980년까지 30년간 누렸던 어메리컨 드림은 트럼프 ‘백인우월주의’로 파탄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균형이론 모델이건 아니건, 맑스건 제도학파건 간에, 앨런 크루거, 아린드라짓 두베(Dube) 교수처럼 ‘최저임금’ 연구자들이 주류가 되어야, 불평등 해결과 노동권 보장이 현실화될텐데. 


무슨 고뇌가 그를 괴롭혔는지, 아니면 인간의 삶 자체가 앨런 크루거의 병인지도 모르겠다. 다 정도 차이일 뿐이다.  경제도, 정치도, 학문도 다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이렇게 다들 실존이 너무 어렵다. 


David Romer, Buz Brock, Richard Thaler, William Baumol, George Akerlof, Joe Stiglitz, David Card, Alan Krueger, Paul Krugman, Ken Arrow, Amartya Sen, Thomas Shelling, etc.


Journal of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Volume 22, Number 2, 2000 


THE DEATH OF NEOCLASSICAL ECONOMICS BY DAVID COLANDER


VI. TOP MODERN ECONOMISTS 


My argument is not that neoclassical economic ideas are not still used; they are. My argument is only that they are not constraining attributes; they are not requirements of what a current economist must do to have a reasonably good chance for success.

 

 One can work in a quite different vein and still be considered 
Consider the following names: David Romer, Buz Brock, Richard Thaler, William Baumol, George Akerlof, Joe Stiglitz, David Card, Alan Krueger, Paul Krugman, Ken Arrow, Amartya Sen, Thomas Shelling, etc.


 I could go on, but these should make my point. Each is considered a top modern economist, but each operates outside the “neoclassical framework” in portions of his work.


 Now one could argue that the economists listed above are actually heterodox economists who are deviating from the neoclassical core that is modern economics. 
But such an argument would be wrong. 


First, these researchers do not see themselves as heterodox economists, and thus classifying them as heterodox would violate the criterion that a classification should be acceptable to its practitioners. 


Second, all of them are highly respected economists with jobs at, or offers from, top graduate schools. If the term heterodox is to be meaningful, it should be denied as an approach to problems that is not accepted as legitimate. 
Thus, my litmus test of heterodox economists is their ability to get jobs at major graduate schools. 
Marxist and Institutionalist economists are heterodox economists; those on the above list are not. 


The reality is that, when it comes to content, modern economics is open to new ideas. (I’m not saying totally open, but I am saying at least begrudgingly open.) There are disagreements about content, and about how consistent with general equilibrium theory models should be, but in terms of content, there is significant flexibility, especially at the cutting edge.


 

 

주. (8 Schumpeter writes: “Multiple equilibria are not necessarily useless, but from the standpoint of any exact science the existence of a uniquely determined equilibrium is, of course, of the utmost importance, even if proof has to be purchased at the price of very restrictive assumptions; without any possibility of proving the existence of (a) uniquely determined equilibrium—or at all events, of a small number of possible equilibria—at however high a level of abstraction, a � eld of phenomena is really a chaos that is not under analytical control” (1954). THE DEATH OF NEOCLASSICAL ECONOMICS 137 mainst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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