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8. 8. 17. 14:38
바람의 정지와 몇 초 행복감 -

행복감은 사람마다 고유하다. 그것도 살면서 잠시다. 하지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행복감이 있기도 하다.  운좋게 나에게도 그게 찾아왔다. 다섯 살때는 다리만 아팠기 때문에 느끼질 못했다. 열 여섯살이 되어서야 그것이 몇 초간 온 몸을 휩싸고 나서 급속도로 어디론가 빠져 나갔다. 무당 단골네 집이 보이는 그 길 위에서 바람은 정지했었고, 그 순간 내가 살아있음과 바람의 정지 속으로 소멸해버렸음을 동시에 느꼈다. 
행복감은 그냥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열 두해를 꼬박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에 단 몇 초라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큰 도로에서 10리, 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맨 처음 할머니 집 가는 길, 지금은 고개로 보이지만, 그 때는 산 두 개를 넘어가는 것 같았다. 삼촌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업어주기도 했고, 내가 걷기도 했다. 두 번째 고개에서는 소나무 그늘에 잠시 쉬었다. 
꼬마 시절 그 두 고개를 오를 때면  무릎에 손을 짚어 가면서 힘을 냈다. 땅을 쳐다볼 뿐 하늘이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 후로 대학 들어올 때까지 일년에 여름,겨울방학 두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다. 그러니까 그곳은 나에게는 제 2의 고향인 셈이다. 
어느새인가 그 두 고개를 넘어갈 때 무릎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고, 고개마다 쉬지 않게될 정도로 키가 커졌고 다리에 힘도 생겼다. 두 팔을 올려 할머니 허리춤을 잡았던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내가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며 인사를 하게 되었다. 

고개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할머니 고향집 화담 마을 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무당 단골네집 도착하기 전에 있었다. 

바람의 정지를 만난 건 열 여섯 살 되던 여름 방학이었다. 
그 두 번째 고개를 넘고 난 후였다.  바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길 위에서 멈출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뭉게 구름, 하판 하늘, 소나무 숲, 모두 멈춰 섰다. 그들을 따라 나도 정지해야 했다. 외압은 없었지만 자발적인 ‘정지’의 외압이었다. 
그런 외압 속에서 분명히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렇게 살아 있구나’였다. 그리고 ‘이 정지 속으로 빠져들어도 여한이 없겠다’였다. 강렬한 생명에 대한 의지와 자연의 정지 속으로 소멸에 대한 수용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정지의 바람과 정적을 깨고, 앞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고, 옆 논 벼들이 "쏴~아"하고 일제히 다시 바람결을 타기 시작했다. 

혼자 잠시 길 위에 서 있었던 이유는 정지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바람도 숨을 죽이는 그 순간이 있었고, 마치 그 바람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단골네 무당집 안 마당이 보였다. 개펄 옆 외딴 집이었고 담이 높아서, 대나무 깃발만 보여 늘 신비한 성채였다. 지금도 그 집에 누가 살고 있을까? 

이런 황홀경같은 바람의 정지를 어렸을 때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너무 단순했는데 그것도 몰랐다. 
똑같은 길을 스무번 넘게 걷고 또 걸었다. 이제는 키도 다리도 성장이 멈췄다. 한참 후에 그 십리 길을 다시 걷는다면 다섯살 때 걸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리가 아플 것이다. 

사는 게 반복이고, 그 속에 사람들도 되풀이되고, 희로애락도, 일희일비도 한번 왔다가 다시 한번 떠나간다.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사람 마음도 그런 측면이 있다.

어머니의 권유로 더 이상 새 책을 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멀리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가다가 우연히 알게 된 그 십리 길이었다. 처음에는 두 고개 마다 다리가 아파서 쉬었다. 울지 않았던 게 용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돌이켜봐도 가장 행복감이 컸던 순간은 그 다리가 아팠던 길 위에서 정지의 바람을 만났던 때이다.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일도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만, 바람 속으로 스며드는 것 역시 비교불가능한 행복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그렇게 걷는 길을 잃어버려서 정지의 바람 길을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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