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위한 행진곡
어떤 운동가 한 분이 개인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대중정당'의 노래로 부적절한 이유를 1) 낙관적이고 대중적인 정서라기보다는 패배적이며 2) 소수의 도덕적 우월감(과 고립감)이 묻어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다수 대중에게 거부감(혹은 거리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우선은 개인적인 취향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음악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사적으로 문제점이 많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진보진영과 운동가들이 얼마나 좁은 세계에서 살아왔는가를 반영하는 한 사례라고 본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는 할 수 없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조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나, 모짜르트의 <터키행진곡>과 같은 장조가 아니다. 패배적인 것이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두운 색채를 띤 이유가 바로 이 '단조'에 있다.
(출처: 인터넷 익명 :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왜 대중화 다양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대중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이 노래가 비-대중적이고 패배적이라고 해석하는가?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래퍼 송으로 편곡될 수 없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서울 시향에서 연주하면 그 운동의 숭고한 정신이 부르조아로 타락하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바이올린 독주로도, 한갑득류 거문고 연구로, 장윤정의 트로트로도, 2NE1의 댄스 곡으로도 다양하게 불리워질 수 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해석을 보면서, 느낀점은 지난 15년간 20년간 얼마나 진보진영 운동가들이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가 결여되어 있는가이다.
그래서 <대중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비대중성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승해야 할 광주정신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종다양하게 해석되고, 대중들 스스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하듯이,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편곡될 수 있도록 그런 정치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러한 다양한 참여와 해석을 수정주의니 청산주의니 대중 추수주의니 하는 용어로 비판한다면 그런 견해야말로 속좁은 견해이고 비-대중적인 판단일 것이다.
왜 우리들 세계를 좁게 해석하는가?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음악 작곡자 편곡자들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형식 음악으로 연주되고 애창될 있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현장이나 조건이면, <님을 위한 행진곡> Jazz 형식이나 관현악 연주곡, 가야금 독주 형식으로도 1~2분 연주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광주항쟁을 광주와 전라도에 갇히게 하지 말고, 부산-마산 항쟁을 부산 마산에만 갇히게 하지 말아야 하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 역시, 운동권을 비롯한 어느 특정 세력과 사람, 집단의 한 가지 장르 노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연주되고 색다른 버전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고 진정한 <대중성>의 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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