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배우 강수연 추모.

by 원시 2022. 5. 8.

 

강수연의 죽음과 한국 문화.

 

 

한국일보 보도.

 


“제겐 등대 같은 분” 강수연 추모 잇달아… 영화인장으로
입력 2022.05.07 20:23 수정 2022.05.07 21:18
 
 11  4
김지미 신영균 안성기 박중훈 등 장례위 고문


배우 강수연이 2011년 3월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영화 ‘정이’의 연상호 감독)

영화계가 슬픔에 빠졌다. 7일 오후 56세로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과의 갑작스런 이별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고인은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후 병원으로 이송돼 입원 치료를 받다 이날 숨졌다.

고인과 ‘고래사냥2’(1985)를 함께 한 배창호 감독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0년 전쯤 고인과 공감대가 생겨 함께 추진하던 영화 기획이 있었으나 잘 안 됐다”며 “(고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슬퍼했다. 배 감독은 “원래 ‘고래사냥’(1984) 1편 주인공으로 고인을 검토해 처음 대면을 했었다”며 “고교생이라 나이가 맞지 않다는 생각에 단념하고 다음 작품에 꼭 함께 하자 약속했는데 그 영화가 ‘고래사냥2’”라고 고인과의 인연을 돌아보기도 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회사 넷플릭스는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사 공식 계정에 글을 올리고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였던 빛나는 배우 강수연 님께서 금일 영면하셨다, 항상 현장에서 멋진 연기, 좋은 에너지 보여주신 故 강수연 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지난해 7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영화 ‘정이’ 출연을 발표하며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고인은 단편영화 ‘주리’(2013)에 출연 한 이후 연기를 중단했었다. ‘정이’는 촬영을 마쳐 후반 작업 중이며 올해 공개 예정이다. ‘정이’는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인류가 살기 힘들어진 22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든 피난처에서 내전이 일어난 가운데 전설적 용병의 뇌를 복제해 전투로봇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인은 인공지능(AI) 연구팀장 서현을 연기했다. ‘정이’는 ‘달빛 길어올리기’(2011) 이후 고인이 11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극영화로 고인의 유작이 됐다.


아역배우 시절 강수연.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김규리는 이날 SNS에 글을 올리고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저는 영화 '화장'으로 영화제에 참석했었지요”라며 고인과의 인연을 되짚었다. 그는 “‘화장’ 행사장에는 이춘연 (전 씨네2000)사장님과 강수연 선배님께서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면서 힘을 보태주셨었다, 너무 감사했었다”며 “저희에게, 저에겐 등대 같은 분이셨다”고 덧붙였다. 김규리는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장례식은 고인이 영화계에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김동호(전 부산영화제 이사장) 강릉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배우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감독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제작자 황기성씨가 고문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 조문은 8일부터다. 발인 11일.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경향신문 

 

 

 

배우 강수연 사망 소식에 영화계 애도 물결…"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배우"
오경민 기자입력 : 2022.05.08 11:42

 

 


지난 7일 별세한 영화배우 강수연씨의 빈소가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화계에서는 고인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배우 강수연씨가 지난 7일 5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 안팎으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7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강 전 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쓰셨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집행위원장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헌신했다. 고인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고 애도를 전했다. 고인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을 맡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영화제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하면서 부산시 등과 갈등을 겪고 감사원 감사, 보이콧 등에 직면해 영화제 존폐까지 거론되던 시기에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같은 날 전주국제영화제도 “고인은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기점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이후 한국 영화계의 빛나는 별로 활약했다”며 “고인의 영면을 바란다. 그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유산을 잊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는 고인의 출연작인 <경마장 가는 길>(1991)을 상영했다.


올해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를 고인과 함께 작업한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한국 영화 그 자체였던 분”이라며 “편히 쉬시라.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정이>는 기후 변화로 더 이상 살기 어려워져 내전이 일어난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연합군은 뛰어난 인간인 ‘정이’의 뇌를 복제해 인간형 전투로봇을 만들고자 하는데, 고인은 이 뇌 복제와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의 팀장 ‘서현’ 역을 맡았다. 2013년 단편영화 <주리>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던 고인에게 <정이>가 마지막 작품이 됐다.


배우 문성근도 전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 명복을 빈다”는 글을 올렸다. 문성근은 1991년 개봉한 영화 <경마장 가는 길>에서 고인과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로 두 사람은 청룡영화상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원조 월드스타’ 영화배우 강수연이 지난 7일 향년 56세로 별세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고인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7일 결국 숨졌다. 사진은 2007년 MBC 드라마 <문희> 제작발표회장에서 강수연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배우 김규리도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고인과 만난 것을 회상하는 추모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썼다. 김규리는 국화 사진과 함께 “고인을 보며 저도 나중에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저에게 등대같은 분”이라며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아직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존경하고 사랑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을 게재했다.


감독 겸 배우인 양익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누나 같았고 따듯했고 사랑스럽던 분이 돌아가셨다. 누나라고 한번 불러봤어야 했는데…”라는 글을 올렸다. 작곡가 김형석, 가수 윤종신, 배우 봉태규 등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맡았다. 장례위원은 강우석, 강제규, 강혜정, 권영락, 김난숙, 김한민, 김호정, 류승완, 명계남, 문성근, 문소리, 민규동, 박광수, 박기용, 박정범, 방은진, 배창호, 변승민, 변영주, 봉준호, 설경구, 신철, 심재명, 양익준, 예지원, 원동연, 유인택, 유지태, 윤제균, 이광국, 이용관, 이은, 이장호, 이준동, 이창동, 이현승, 전도연, 장선우, 정상진, 정우성, 주희, 차승재, 채윤희, 최동훈, 최재원, 최정화, 허문영, 허민회, 홍정인 등으로 구성됐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를 통해 영결식을 생중계하기로 했다. 다만 조문을 비롯한 장례 절차는 유족의 의사에 따라 취재진 등에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다.

 

강수연은 누구···한국 최초의 '월드스타'로 불렸던 배우
선명수 기자입력 : 2022.05.07 20:29 

 



7일 향년 56세로 별세한 강수연씨는 한국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였다. 대중을 매혹하는 스타성을 가진 동시 작가 감독의 영화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한 드문 배우였다.


강씨는 5일 오후 5시14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통증을 호소하다가 가족의 신고로 출동한 소방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뇌출혈 증세를 보인 강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날 세상을 떴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4세 때부터 아역배우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50년 넘게 배우로 살았다. 동아시아 배우 중 처음으로 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에서 처음으로 ‘월드 스타’라 불린 배우다.


1969년 동양방송 전속 아역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강씨는 드라마와 영화 수십편에 잇따라 출연하며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10대 시절 영화 <핏줄>(1975) <별 3형제>(1977) <비둘기의 합창>(1978) <슬픔은 이제 그만>(1978) <어딘가에 엄마가>(1978) 등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 얼굴을 알렸다. 1983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TV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배우 손창민씨와 함께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주목을 받았다.


고인은 고등학교 졸업한 후 1985년 <고래사냥 2>를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1987년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을 줄줄이 흥행시키며 그해 대종상에서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해 출연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는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해외에서 주목을 받으며 동아시아 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강씨에게는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1989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선 삭발을 한 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고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은 강씨는 이후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을 흥행시키며 ‘영화계 흥행보증수표’로 불렸다. 그는 대중적인 영화에서 스타성을 발휘했고, 임권택·장선우 등 작가 감독의 영화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한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였다.


2001년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 강수연씨는 같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 전인화씨와 함께 SBS 연기대상 대상을 함께 수상했다. 고인은 <써클>(2003) <한반도>(2006) <주리>(2013)등 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부산시의 압력을 받은 뒤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이 물러나자, 강수연씨는 이듬해부터 3년간 김동호 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함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부산영화제에서 물러난 뒤에는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강수연씨는 올해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정이> 촬영을 마치고 약 9년만에 영화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김동호 이사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임권택·배창호·임상수·정지영 감독 등이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 8일 오전 10시부터 조문을 받는다. 영결식은 11일 치러진다.

 

 

중앙일보 보도.

 

영화제가 독이 든 성배였나…월드스타 강수연은 너무 젊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08 12:05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중앙포토]

너무 일찍 도착한, 너무나 이르게 떠난 강수연을 기다리며
강수연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안 것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를 통해서다. 대학생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운 이례적인 영화였고, 미미(강수연)와 철수(박중훈)가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청청한 차림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미미 혹은 강수연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나이를 보여주었다. 한 시대의 상징이자 청춘의 표상으로 가까이 있는 그녀로 다가왔다.

2001년에 개봉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이들의 선배라 할 수 있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을 나란히 놓으면 19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의 대학생이 보인다(‘엽기적인 그녀’가 개봉한 것은 2001년이지만 여주인공은 1978년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개봉한 순서대로 영자, 미미 그리고 그녀라고 불리는 여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남자 주인공과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며 청춘을 대변한다. 그것은 매번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청치마를 입은 미미는 80년대의 상징이었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사진 태흥영화사 제공. 연합뉴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 [사진 태흥영화사 제공. 연합뉴스]

하지만 강수연은 미미를 금방 떠나버렸다. ‘씨받이’(1986)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보다 한해 먼저 개봉했지만 1987년에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대학생 미미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확고히 만들어 준 것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였다.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강수연의 이름 앞에는 ‘월드 스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강수연은 시대를 벗어나 조선 시대 나이 어린 씨받이를 연기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인물이었고, 세속적인 삶을 통과한 후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성과 속’을 아우르는 여인의 초상이 되었다. 20대 여대생 미미는 원숙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월드 스타라는 명칭은 그녀를 너무나 일찍 중심에 있는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두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1980년대 말의 한국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제 막 문호를 개방한 상태였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동유럽 영화제 수상작들을 국내에서 상영하는 행사들이 있었고, 이러한 상호 교류의 결과로 1989년에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세 편이나 초청된다. 당시 모스크바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영화제에 초청받거나 수상하는 일은 ‘국위 선양’쯤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국제영화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영화를 비롯한 여러 대중문화 분야에 사전 검열제도가 철폐되고, 1996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자유롭게 영화들이 오가면서 해외의 영화제 관계자들의 왕래했고, 90년대 후반부터 칸을 중심으로 한국 영화들이 선을 보이고 수상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월드 스타 강수연은 사건(event)이기보다는 하나의 해프닝(happening)에 가까웠다. 만일 강수연이 2000년대 들어 여우주연상을 이처럼 수상했다면 그녀가 등장하는 국제적인 작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은 강수연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여전히 유령처럼 붙어 있는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떼고, 강수연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왔는지 기억하고 싶어서다. 언론은 ‘월드 스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녀에게 원숙하고 화려한 모습을 암묵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월드 스타 강수연은 너무나 젊었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 [중앙포토]
영화 '경마장 가는 길'. [중앙포토]

개인적으로 강수연 선배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임상수 감독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촬영 현장이었다. 우연히 따라갔던 현장에서 촬영이 끝난 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콧소리가 섞인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가 있다. 젊은 감독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배라는 명칭을 싫어해서 “누나”라고 부르라고 종종 말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풍문처럼 한 술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만남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29살의 동갑내기 세 여성 중 하나인 호정을 연기한 강수연은 더 이상 월드 스타도, 통통 튀는 여대생도 아니었다. 빠르게 변하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서 일과 섹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웃집 누이로 보였다.

공교롭게도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대표적 출연작을 극장에서 다 보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는 원작 소설을 읽었음에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고, ‘베를린 리포트’(1991)에서 입양된 상처받은 영혼을 연기하는 모습은 인상이 깊었지만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이었다. 누군가는 야한 영화쯤으로 기억할지 몰라도 꽤나 적나라한 한국 사회의 묘사와 인물들의 대사들이 훗날 코리안 뉴웨이브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했다. 월드 스타였던 강수연은 1990년대 초반에 새롭게 등장한 박광수·장선우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까이 있기보다는 어딘가 신비해 보이고 멀리있는 대상으로 보였다. 그런 점에서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전환점이었다. 다른 여배우들과의 호흡 속에서, 이전의 남성 파트너로서의 인물과는 다른 그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녀에게 새로운 얼굴을 완전히 부여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이후의 강수연을 만난 것은 주로 영화제에서였다. 부산영화제에서 일하면서 페스티벌 레이디처럼 나타나 구원투수 역할을 자청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사극 ‘여인천하’가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고 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다. 그 후 영화제에 직접 뛰어든 상황들은 대략 알고들 있을 것이다. ‘다이빙 벨’ 사건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거쳐(이 역시 구원투수의 역할로 시작됐다) 단독 위원장이 됐고, 끝내 영화제를 떠난 후 한동안 침묵했다. 너무나 일찍 영화제를 통해 월드 스타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그녀를 침묵하게 한 것 또한 국제영화제였다. 그런 점에서 영화제는 그녀에게 독이 든 성배가 아니었을까.

젊은 감독들을 통해 그녀가 종종 술을 사주거나 격려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침묵하는 세월 속에서도 ‘가오’를 중시하는 기질은 여전했고, 젊은 감독들은 함께 영화 작업을 해보기를 청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를 기다린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의 필모그래피를 반복하며 피로해 보이는 연상호 감독에게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고, 강수연을 선택하여 SF를 시도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찾을 수가 있을까?


8일 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늘어선 추모 화환들. [사진 나원정 기자]
8일 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늘어선 추모 화환들. [사진 나원정 기자]

하지만 우리에게 도착한 또 한 번의 때 이른 소식은 영화가 아니라 죽음이다. 아마 그녀의 생몰 연대를 확인하게 된다면 생각보다 젊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20대 초반에 세계적인 영화제 주연상을 수상했고, 임권택과 코리안 뉴웨이브의 페르소나였던 그녀를 우리는 너무 일찍 높은 자리에 올려둔 채 외면해 버렸다. 한참 젊었던 그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도 전에 월드 스타라는 명칭과 함께 떠나보냈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애도를 하기 전에 그녀의 얼굴이 담긴 영화를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그럴 때만이 비로소 영화와 함께 살아왔던 그녀의 삶을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그녀를 만난 것은 영화 속이거나 영화들로 둘러쌓인 영화제가 전부였다. 일본의 어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하든, 어느 영화 현장에 있든 영화를 벗어난 강수연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마지막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될 수가 있다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상용 영화평론가ㆍ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강수연 1966~2022
연상호·류승완·박정자…강수연 애도물결 "한국 이미지 바닥일 때 세계정상"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21:24

업데이트 2022.05.08 00:35


나원정 기자 
김하나 기자 
구독

7일 한국 최초 월드스타 배우 강수연(1966~2022)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가 슬픔에 잠겼다. 강수연은 지난 5일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치료를 받아오다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4살에 아역배우 데뷔해 반세기 동안 4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영화 역사로 살았다. 1987년 아시아 최초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씨받이’), 1989년 한국 최초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배우상(‘아제 아제 바라아제’) 수상이란 진기록도 세웠다.

배우 강수연이 7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이자, 충무로 대소사에 앞장선 대장부였다. 사진은 지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 중이던 강수연이 영화잡지 인터뷰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배우 강수연이 7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이자, 충무로 대소사에 앞장선 대장부였다. 사진은 지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 중이던 강수연이 영화잡지 인터뷰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연상호 "강수연은 한국영화 그 자체" 
 연상호 감독은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이라고 표현했다. 강수연의 유고작이 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지난 1월까지 함께 찍은 그는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추모했다.
 전날 백상예술대상 수상 무대에서 강수연의 쾌차를 빌었던 류승완 감독도 애도를 표했다. “제 영화 ‘베테랑’(2015)에서 주인공 서도철이 부패 형사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하는 대사는, 김동호 위원장님의 사진전 참석 후 뒤풀이에서 강수연 선배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다가 쓴 대사였다”라며 고인에게 “그동안 좋은 작품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편안히 쉬시길”이라 전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란 말이 바로 강수연"
1989년 8월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왼쪽부터 두번째)과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강수연씨(세번째) [사진 제공 김동호]
1989년 8월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왼쪽부터 두번째)과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강수연씨(세번째) [사진 제공 김동호]

이명세 감독은 “이거 말도 안 된다. 너무 젊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영화 ‘지독한 사랑’(1996)을 강수연과 함께했다. “당당한 배우, 자기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바로 강수연을 보여주는 말”이라며 “강수연은 아역 배우로서도 빛났고, 성공한 청춘스타였고, 어린 나이에 최초로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한 세계적 배우”라 한국영화에서의 의미를 짚었다. 또 “영화인들이 힘들 때면 많은 위로를 건넸다”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2015년 취임해 2017년 사퇴) 이후 연기자로서 그 독보적인 얼굴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지 않을까 하던 차에 연상호 감독 작품 한다는 소식 듣고 ‘잘됐다’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방은진 "마지막 세대 은막의 스타"
동 세대 배우이자 감독 방은진은 “어제(6일)도 병원에 갔다왔다”면서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울먹였다. 방은진은 “어제도 밤새 그녀에 얽힌 기억을 떠올렸다”면서 “연배가 딱 한 살 차이어서 작품 인연은 없었지만 사적으로 가까이 만났다. 4살 때부터 배우였기 때문에 세트장 먼지를 평생 어렸을 때부터 마셔서 천식이 있었다더라. 독보적인 은막 스타의 마지막 세대”라고 회고했다. “베니스영화제가 뭔지도 몰랐을 때 여우주연상을 탔고 평생 월드스타였다”면서 “어떨 때는 뇌쇄적이고 어떨 땐 너무 아이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 시대 청춘의 초상”이라고 했다.

강수연, 이영하 주연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한 장면. 이 영화로 두 배우는 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차지했다. [중앙포토]
강수연, 이영하 주연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한 장면. 이 영화로 두 배우는 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차지했다. [중앙포토]

방 감독은 일찍 배우 생활을 시작한 강수연의 대장부다운 면도 돌이켰다. “제가 (감독으로서) 작품이 계속 엎어져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자 ‘돈은 한순간에 벌리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베드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코믹한, 도발적이고 상징적이면서도 남녀의 위치가 전복된 듯한 장면이 가능했던 건 강수연의 존재감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저처럼 통곡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임권택 감독님이 걱정된다. 그녀를 아끼는 영화계 여러 어르신들에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한국, 한국영화 이미지 바닥이던 때 세계정상 올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전 이사장의 감독 데뷔작인 단편 ‘주리’(2013), 연출작 ‘블랙잭’(1997)등으로 강수연과 함께한 정지영 감독은 “일과 관계없이 가끔 술잔을 나누곤 했던 유일한 여자 연기자 아니었나 싶다. 여장부였고,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얻어낸 최초로 연기자로, 연기 외의 분야에서까지 그만큼의 몫을 해냈다.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며 “영화계, 아니 대한민국이 큰 별 하나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강수연은 한국과 한국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이었을 때, 가난하고 문화 검열이 있는 나라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세계정상에 올랐다”며 “의심의 여지 없는 최고의 배우였다”고 했다.
 강수연의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은 배우 박정자씨는 “워낙 총명하고 영화든 영화제든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면서 “한 30년 전 ‘웨스턴 애비뉴’(1993)란 영화를 딱 한편 같이했는데 (강수연을) 연극무대로 좀 끌어내고 싶어 같이 하자고 한 적도 있다. 영화 스케줄이 너무 바빠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돌아봤다.


SNS에서도 추모 글이 잇따랐다. 배우 김규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화 ‘화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이춘연 사장님과 강수연 선배님께서 마지막까지 함께해주면서 힘을 보태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저도 나중에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고 존경과 애도를 표했다. 가수 윤종신은 “편히 잠드셔요. 오랜 시간 감사했습니다”라는 추도사를 강수연의 얼굴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남겼다. 작곡가 김형석도 트위터에 “가슴이 아프다.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길 빌었는데”라고 했고  배우 겸 감독 양익준은 “누나 같았고 따뜻했고 사랑스러웠던 분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장례는 영화인장 장례위원장은 김동호 이사장

한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강수연은 7일 오후 2시 10분쯤 별세했다. 장례는 5일장,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회 위원장은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고문으로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신영균‧안성기‧이우석‧임권택‧정지영‧정진우‧황기성씨가 함께한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 조문은 8~10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다. 발인은 11일.

 

강수연 1966~2022

 

 

 

 

 

 

 

 

 

 

 

 

 


"예쁜 할머니 여배우가 꿈이에요" 소녀웃음 짓던 강수연 [강수연 1966~2022]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18:20

업데이트 2022.05.07 18:26


고석현 기자 
김하나 기자 
구독

 "저의 최종 목표라고 하면… 연기 잘하는, 관객에게 사랑받는 '예쁜 할머니 여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7일 오후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강수연은 마흔일곱이던 지난 2013년 한 방송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히며 소녀웃음을 지어보였다. 4살 때 아역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한 고인은, 지천명(知天命) 즈음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은 '할머니 여배우'라고 밝혀왔다.

어린 나이에 커리어 정점을 찍은 톱스타였지만 영화계에서는 무명 배우나 스태프 등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맏언니'로 통했다.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의 명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라는 뜻으로 쓰인 속어)가 없냐"는 대사는 강수연이 영화인들을 챙기며 평소 하던 말을 류승완 감독이 가져다 쓴 것이다.


고인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대소사에도 앞장서며 영화계가 풍파에 흔들릴 때 중심추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제가 위기에 직면한 이후인 2015~2017년에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재건을 이끌어냈다.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강씨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임시총회가 열린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15년 7월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강씨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임시총회가 열린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 이틀째를 맞아 부산 중구 남포동 PIFF광장 특설무대에서 안성기,박중훈, 강제규 감독 등과 국내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한 스크린 쿼터 사수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에 참석한 강수연(오른쪽 두 번째). 연합뉴스

4살 길거리캐스팅…TBC 전속으로 배우인생 시작 
강수연은 4세에 집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 돼 TBC(JTBC 전신) 전속배우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와 같은 단어만 말할 수 있었던 때였는데 작은 얼굴에 올망졸망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TBC '똘똘이의 모험'(71)이 첫 출연작이다.

당시만 해도 아역배우가 많지 않아서 고인은 스크린·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83)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성장했다. 고교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었고, '고래 사냥 2'(85),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스물 한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87) 출연은 그를 '월드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당시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화제가 됐는데,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씨받이'의 출산 장면만 4박 5일 동안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임 감독과는 2년 뒤 '아제아제 바라아제'(89)로 또 호흡을 맞춰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비구니 역을 맡은 그는 영화 속 삭발 장면에서 실제 머리를 깎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여배우의 삭발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 강수연은 "비구니 역이어서 머리를 깎는 것은 당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고인의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80~90년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던 고인은 2000년대 들어서는 뜸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넷플릭스가 제작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가제)에 출연하면서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고인은 이 작품에서 뇌 복제를 책임지는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맡았다. 모든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이 영화는 고인의 유작이 됐다.

강수연이 1987년 9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귀국 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강수연이 1987년 9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귀국 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강수연 1966~2022
2022.05.07 23:53




연상호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 편히 쉬세요"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이라며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넷플릭스 측도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였던 빛나는 배우 강수연님께서 금일 영면하셨다"며 "항상 현장에서 멋진 연기, 좋은 에너지 보여주신 고(故) 강수연 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좋은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배우 강수연 님의 모든 순간을 잊지 않겠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수연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우석·임권택·정지영·정진우 감독, 황기성 제작자,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 배우 등이 고문을 맡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에 차려졌다. 조문은 8일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11일이다.

 

 

강수연 1966~2022
"우리 장례식 치러줄 사람이 먼저 갔네" 임권택은 말 잃었다 [강수연 1966~2022]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22:39


"우리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이 먼저 갔네요."

7일 별세한 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될 서울 강남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를 찾은 영화계 원로인사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이같은 대화를 나누며 먼저떠난 고인을 추모했다.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로 이끈 '원조 월드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등 국내 영화계에서 고인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듯, 조문이 시작되기 전인 이날 이른 오후부터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발길이 잇따랐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고인의 별세 소식을 들은 직후 장례식장을 찾아 자리를 지켰다. 곧이어 임권택 감독 부부, 연상호 감독, 원로배우 한지일, 정상진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 이사장은 고인과 부산국제영화제를 같이 이끌었고, 임 감독은 강수연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대표작인 영화 '씨받이'(1987)를 연출했다. 연 감독은 고인의 유작인 '정이'를 연출했다.


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 40분쯤 부인인 배우 채령씨의 부축을 받으며 빈소로 향했고, 50분가량 머무르다 오후 8시 27분쯤 영화계 인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굳은 표정으로 장례식장을 나섰다. 채씨는 "(남편 임 감독이) 지금 너무 충격을 받아 말씀을 못 하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장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영화계 인사 10여명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고인을 추억하고 애도했다.

영화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도 속속 도착했다. 이준익 감독, 배우 엄앵란·안성기,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 이동하 영화사 레드피터 대표, 김중도 앙드레김 아뜰리에 대표이사 등이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밝혔다.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려 장례를 치른다. 임권택·배창호·정지영·정진우 감독, 황기성 제작자,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 배우 등이 고문을 맡았다. 조문은 8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11일이다.


추천 영상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