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물결 파문의 향방은?


생각나는대로 소박한 바램을 몇 자 적어봅니다. 첫 번째는 2008년 촛불과 많이들 비교를 하시는데, 비교보다는 우선 당사자들이 느끼는 “안녕한가?”에 대한 솔직한 느낌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데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쓰고 공감하기 운동에 참여한 분들이라도 ‘적은 성공’을 서로 확인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대선 선거법 위반 사례 여부 확인, 검찰,국정원,중앙선관위 등 국가제도 민주화요구 (채동욱 윤석열 검사 찍어내기 관행 없애고 검찰의 수사 독립권 부여 등), 그리고 당장에 일반 시민들의 경제적 비용과 연관이 있는 공공서비스 (철도 등 대중교통,전기,물,의료,교육 등) 사유화 및 해외 매각 반대, 청년실업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입시경쟁제도 개혁, 노인기초연금 등과 관련된 기초적인 사회보험제도 확립 등.


일각에서는 2008년 촛불운동 이후 사그러든 ‘시민불복종’운동과 패배주의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 우려는 당연히 거울삼아야겠습니다. 그러나 2008년 촛불과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쓰고 공감하기” 운동은 그 배경이 서로 다릅니다. 2008년은 서울과 대도시 중심이었고 주제도 ‘정부 정책 (쇠고기 광우병)’이 시발이었습니다.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의 배경에는 2012년 대선 국정원 불법개입과 선거법 위반, 그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검찰조사 회피, 채동욱 윤석열 검사 파면조치로 일관하고, 권은희 수사과장의 증언도 묵살해버리고,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들 (최근 민주당 장하나의원)과 언론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대선 불복'이냐를 외치는데, 지금 핵심적인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전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순서를 뒤바꿔서는 안됩니다. 특검을 실시하고, 검찰, 법원, 중앙선관위에서는 2012년 대선 선거법 위반 사례 여부를 밝히고, 선거법 위반사례 0임을 떳떳이 입증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이번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쓰고 붙이고 읽고 공감하고 나도 따라해보고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들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확산했으면 합니다. 이번 “안녕들하십니까?” “아니오 안녕하지 못해요” 이러한 활화산같은 폭발음이 터져 나오게 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우리들 몸에 병이 생기고 있다. 이러다가는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기 의식 때문입니다.



나 혼자 고립되어 취직 학원다니고, 영어 연수 1년 다녀오고, 직장에서 승진시험보고, 공무원 9급, 7급, 5급 보러 다니고, 이 모든 것이 나 혼자 해야 하고, 우연적으로 태어난 한 가정 한 가족의 재산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반성 아닐까요? 아니 왜 정부는 국민 세금 걷어다가 공공 서비스를 많이 제공할 수 있게끔 공무원 숫자를 늘이지 않지? 왜 이렇게 9급, 7급, 5급 시험제도의 벽은 높고 마치 조선 시대 양반 상놈 제도화되어 가지? 회사 이윤을 내기 위해서 영어가 필요하면, 그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 단지 구직자가 넘쳐 난다는 이유로, 회사 들어가기 전에 구직자가 영어를 외국에서 자비를 들여 1년씩 어학연수를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이고, 아무런 문제제기도 할 수 없는 사회 현실인가?


“안녕들하십니까?”는 우리들에게 과연 ‘나 바깥 세계’는 무엇이고, 아니 ‘너’는 도대체 어떻게 사니?를 묻고, 너와 내가 만나서 이루는 ‘화학적 사회’가 뭔가?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묻는 건 아닐까요?


도대체 문제 해결이 당장 되지 않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 왜 우리는 이렇게 고립되어 있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늘 불안한지? 그 속내라도 드러내놓고, ‘아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도 그랬구나’를 공감하고, 사회와 공동체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10일 고려대 주현우씨가 학교 벽에 붙인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 사회의 발견 : 신자유주의의 기치였던 영국 보수당 수상 마가렛 쌔처가 말했던 "더 이상 사회는 없다." 개인이 알아서 다 해야 한다. 집안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그건 우연의 산물이고, 개인이 싸워서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관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적자생존의 방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정당화해주는 정치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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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주현우씨가 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전문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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