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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서울 도심 변천사

서울 도심 변천사. 서울 전차.1968. 대책없는 전차 철거 종업원은 갈 곳 없다.

by 원시 2022. 8. 6.

서울 시내 전차 운행을 폐지한 것은 오류다. 장기적인 전망이 없었던 시절.

 

서울 시내 도로 위를 달리던 전차. 1968년 대책없는 전차 철거 종업원은 갈 곳 없다.구호가 선명하다.

 

동대문 전차 정류장 (東大門 電車 停留場) Seoul, Korea. 1968


1차 자료임.

건물 오른편이 매표소, 매표소 오른편에 직원식당과 이발소가 있었다.


1898년 처음으로 청량리-서대문간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부산 및 평양에도 그후 개설되었으나, 1969년 자동차에 밀려 모두 폐기되었다.

 

 

 

 

(아래 사진. 전차 궤도 Tramm 트람, Trolley Car ) 트롤리 카.

 

 

 

Seoul, Korea, 1968  사진 AP통신 김천길  

남대문로의 전차

 

 

Seoul,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서울 전차 사업소 1966. 종점.

 

 

 

1968년 서울 전차 궤도

 

 

 

1967년 

 

한강 인도교 남단 노량진 본동 방향에서, 노들섬에는 전차가 다녔다.

 

 

 

 

Seoul, Korea, 1968

사진 김천길

1968년 3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노면에는 전차 선로가 설치돼 있고, 공중에는 전차선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당시 노면전차(路面電車)는 마포, 영등포, 왕십리 등 서울의 동서남북으로 노선이 연결돼 있었다.

서울 노면전차는 1898년 서대문∼청량리 구간에서 처음 개통. 고종 황제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된 명성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에 가기 위해 전차 선로를 깔았다.

노면전차는 시속 7㎞ 속도로 천천히 달렸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자동차가 급격히 늘면서 자동차와 충돌사고가 자주 발생했고, 결국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68년 11월 자취를 감췄다.

 

 

 

 

전차 (電車) Seoul, Korea, 1968. 11. 29

Photographer Unidentified

1968년 11월 29일 운행 70년 만에 폐차 처분되어 차고에몰려있는 서울의 전차

서울에서 전차가 개통된 것은 1899년 5월 17일이었는데 동양의 도시로서는 두 번째였다. 이어 1914년에는 부산, 1923년에는 평양에서도 개통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되자 고종 황제는 신하들을 이끌고 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을 자주 찾았다.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임금의 행차를 지켜보던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은 청량리까지 전차 선로를 놓자고 고종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전차가 개통되었다. 전차는 처음 등장했을 때 쇠로 된 것이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고 해서 ‘쇠당나귀’로 불렸다

 

 

 

1968년 서울 인구 400만. 깨끗하게 조용하게 활달하게. 400만 땀 속에 기적은 핀다.

 

 

 

 

 

Seoul, Korea, 1970

Photographer Unidentified

전차궤도 철거작업 (포장)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 시내에서 운행하던 노면전차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전차로도 불렸으며, 해방 이후 경성전기주식회사(현재의 한전)에서 운영했으므로 경전전차(京電電車) 또는 경전(京電)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서울시는 1969년 종로 등지의 3만6천m의 전차 궤도를 모두 철거한 다음 그해 6월 말까지 포장공사를 모두 끝낸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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