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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

사옹원 司饔院 -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수라간(水刺間), 사옹방(司饔房), 전선사(典膳司)

by 원시 2023. 10. 8.

사옹원 (司饔院))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주를 모신 사당이나 제단에 올려 먼저 차례를 지내거나 지방 특산물을 왕에게 올리는 것을 관장하여 온 사옹방(司饔房)이 1467년(세조 13)에 사옹원으로 개편되어 비로소 녹관(祿官)을 두게 되었다.

사옹원의 ‘옹(饔)’은 ‘음식물을 잘 익힌다.’는 뜻으로 문소전(文昭殿)의 천신(薦新)도 관장하였다. 

 

조선 전기 『경국대전』에 나타난 소속관원을 보면 실무직으로는 정(正) 1인, 첨정(僉正) 1인, 판관(判官) 1인, 주부(主簿) 1인, 직장(直長) 2인, 봉사 3인, 참봉 2인 등이고, 자문직으로는 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 4인, 부제조 5인인데 1인은 승지가 겸임, 제거(提擧)·제검(提檢)을 합쳐 4인을 두었다.



그리고 잡직으로는 재부(宰夫) 1인, 선부(膳夫) 1인, 조부(調夫) 2인, 임부(飪夫) 2인, 팽부(烹夫) 7인을 두었다. 이러한 제도가 조선 후기까지 별 변동없이 내려왔는데 『속대전』에 이르러 판관 1인을 감하고, 주부 1인을 증치하여 2인이 되었으며, 참봉을 없앴다.



또한 정은 가례(嘉禮) 때에 차출하고 제거·제검도 객사(客使)에게 잔치를 베풀 때에 차출하게 하였다. 그 뒤 『대전회통』에 이르면 주부 1인이 증치되어 3인으로 정해지면서 이 인원은 조선 말기 사옹원이 폐지될 때까지 그대로 지켜졌다. 또한 잡직도 『경국대전』의 정원이 그대로 지켜졌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유승주

 

출처.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831

 

사옹원(司饔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자료 2. 사옹원.

 

조선시대에 진상된 물선(物膳)을 관장하여 임금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과 대궐 안의 빈객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목차

    1 개설
    2 담당직무
    3 변천
    4 참고문헌
    5 관계망

개설

사옹원이란 궁중 내에 진상된 음식 관련 물품들을 맡아 관리하여 그때그때 필요한 음식물을 담당하고 조달하는 관아란 뜻이다. 음식물을 잘 익힌다는 할팽전화(割烹煎和)의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썰고[割] 삶고[烹] 조리고[煎] 양념하여[和] 맛있는 음식을 다룬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부엌 전반의 일을 관장한다 하여 주원(廚院)이라고도 하였다.

궁궐 안에는 대왕대비·대전·중궁전·왕세자·왕세자빈에게는 각각 수라간(水刺間)·외소주방·내소주방·생물방의 4개로 구성된 전용 주방이 배정되었다. 

 

그리고 이 밖에 태조와 신의왕후의 혼전(魂殿)인 문소전(文昭殿), 대전 내시의 처소인 다인청(多人廳), 왕비전 다인청, 세자궁 다인청, 후궁에게도 전용 주방이 있어서 궁궐 주방의 숫자는 상당하였다. 사옹원은 이들 모든 주방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담당직무

대전 수라간 등 궁궐 내 모든 수라간의 관리, 감독을 담당했기 때문에 각 수라간의 역할은 곧 사옹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 수라간은 왕이 먹을 식품을 보관하여 공급하는 곳이다. 

 

왕의 탄생일과 명절, 경사가 있을 때 매달 초하루와 보름, 연례행사 때마다 각 기관에서 왕에게 바치는 음식 관련 물품은 대전 수라간의 창고에 보관하였다. 

 

수라간에 보관된 물선은 날마다, 달마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 생일과 명절, 경사가 있을 때 외소주방(外燒廚房)·내소주방(內燒廚房)·생물방(生物房)의 기능에 맞게 각 주방으로 공급되어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대왕대비 수라간·중궁전 수라간·왕세자 수라간·왕세자빈 수라간이 각각 별도로 있었으므로 이들 수라간은 왕실 진상 물품을 저장하는 공간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기도 하였다.



외소주방은 대왕대비·대전·중궁전·왕세자·왕세자빈이 먹던 일상식인 죽수라(粥水刺)·조수라(朝水刺)·석수라(夕水刺)를 준비하는 곳이다.



내소주방은 대왕대비·대전·중궁전·왕세자·왕세자빈을 위한 술과 술안주를 만들던 곳이다.



생물방은 대왕대비·대전·중궁전·왕세자·왕세자빈에게 소용되는 여러 종류의 떡인 각색병(各色餠)과 다식·강정·빙사과·연사과·약과 등의 각색유밀과(各色油蜜果)를 만드는 곳으로 생과방(生果房)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문소전 소속 수라간은 삭망제를 포함하는 각종 제사와, 계절마다 진상되는 물선을 문소전에 모신 신위께 천신(蔍新)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경국대전』을 보면 사옹원 안에는 정1품의 도제조(都提調) 1원(員), 종1품 이하 종2품의 제조 4원, 정3품 당상관인 부제조 5원, 종3품의 제거(提擧) 2원, 정4품의 제검(提檢) 1원을 두어 사무를 조화롭게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모두 녹봉을 받지 않았다. 도제조는 출근하지 않지만 제조 이하 제검은 상시 출근하여 사옹원의 운영 상태를 관리 감독하였다.



이 밖에 정3품 당하관인 정(正) 1원, 종4품의 첨정(僉正) 1원, 종5품의 판관(判官) 1원, 종6품의 주부(主簿) 1원, 종7품의 직장(直長) 2원, 종8품의 봉사(奉事) 3원, 종9품의 참봉(參奉) 3원을 두어 사무직을 담당케 하였다.



이상 소개한 문반 관원 외에, 주방에서 실제로 조리에 종사했던 자들은 총책임 주방장 종6품 재부(宰夫) 1원, 

식사 담당관의 우두머리 종7품 선부(膳夫) 1원,

 조리사 종8품 조부(調夫) 2원, 

불을 다루는 사람인 정9품 임부(飪夫) 2원,

 삶기 담당 식관 종9품 팽부(烹夫) 7원과, 

노비들로 구성된 각색장(各色掌)인 반감(飯監) 16구(口), 

육류 조리 담당 별사옹(別司饔) 28구, 

물 끓이는 업무를 담당한 탕수색(湯水色) 26구, 

상 차리기 담당 상배색(床排色) 22구, 

고기 굽기 담당 적색(炙色) 18구, 

밥 짓기 담당 반공(飯工) 30구, 

두부 제조 담당 포장(泡匠) 10구, 

술 빚기 담당 주색(酒色) 12구, 

차 담당 다색(茶色) 10구, 

떡 담당 병공(餠工) 10구, 

찜 담당 증색(蒸色) 22구, 

등촉 담당 등촉색(燈燭色) 10구, 

은그릇 관리 담당 성상(城上) 56구, 

능침 등의 청소 담당 수복(守僕) 4구, 

마당 청소·물 긷기 등 담당 수공(水工) 30구, 

별감(別監) 86구 등이 있었다. 

 

이 외에 각색장 또는 차비(差備)라고도 하여 돌아가며 좌우 양번으로 번을 서는 인원이 있었는데, 하루 근무하는 숫자가 모두 195구였다. 따라서 차비의 총수는 390구였으며 이들은 숙수(熟手)라고 불렀던 재부·선부·조부·임부·팽부들의 일을 도왔다.

 


변천

1392년(태조 1)에 사옹방(司饔房)을 두어 유지했던 것을 1467년(세조 13) 4월에 사옹원으로 개편하여 비로소 녹관(祿官)을 두게 되었다(『세조실록(世祖實錄)』 13년 4월 4일). 1895년(고종 32) 전선사(典膳司)로 고칠 때까지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주례(周禮)』
    『경국대전(經國大典)』
    『만기요람(萬機要覽)』
    김상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가람기획, 2006.
    한우근 외 4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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