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보도.
2020년. 7월 7일.
2014년.
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글 김한솔 기자•영상 최유진 PD
입력 : 2020.07.07 06:00 수정 : 2020.08.21 14:02
이상기후 시대의 농사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노봉주씨가 냉해로 인해 크기가 골프공보다 작고 모양이 찌그러진 기형 배들을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 노봉주씨가 자신의 배밭에서 냉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유진PD yujinchoi@kyunghyang.com
빨라진 개화기에 꽃샘추위, 배꽃 고사로 착과 안 되고 기형 많아
“꽃이 피었는데 꿀벌 굶어 죽는 건 처음” 저온 탓 꿀 생산량 급감
농업 재해 세계적 현상…농작물값 폭등 땐 국내 식량 안보 타격
“사후 복구식 위기관리 한계, 사전경보 등 예방 패러다임 전환을”
한때 농사는 단순하고 정직한 일이었다. 베테랑 농부든, 초보 농부든 계절의 변화에 맞춰 매 달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땅 고르기와 비료 주기 같은 그 티 나지 않는 일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졌다.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이 한 차례도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고온건조한 봄, 한 해에 태풍이 갑자기 7번이나 몰아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농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일도,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농사는 복잡하고, 또 운에 기대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26년차 배 농부 노봉주씨(55)도 올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농사는 크게 망쳤다. 그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5월 중순, 노씨의 배 밭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밭에는 골프공보다 작은 크기의 열매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질척이는 땅에 처박혀 있었다. 푸릇푸릇한 배나무에는 나뭇잎만 무성했다. 처음엔 그렇게 보였다. 배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가 워낙 작아, 나뭇잎에 다 가려졌기 때문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도 바닥에 떨어진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떤 가지에는 검게 말라 비틀어진, 언뜻 보면 얇은 나뭇가지 같은 배꽃도 붙어 있었다. 노씨는 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배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열매를 툭 땄다.
“이런 배들은… 이렇게 (모양이) 비틀어진 것들은 돈이 안 돼요.” 그는 가지의 나뭇잎들을 들추며 말했다. “원래는 이런 꼭지 하나하나에 배(열매)가 5개, 6개씩 달려있어야 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열매가 3, 4개씩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모양이 찌그러진 것들이 많았다. 노씨가 아직 새파란 열매 하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다 자신의 엄지 손가락에 갖다댔다. “이때쯤이면 이것보다 열매 크기가 1.5배, 2배는 돼야 하는데…. 제 엄지손가락 정도는 돼야 해요.”
배꽃이 말라죽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올해 개화기에도 꽃샘추위가 몰아쳐 얼어붙은 암술 씨방이 까맣게 고사하는 저온 피해를 입었다. 최유진PD
노씨의 배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무엇이 빨리 시작됐다는 소식이 많았다. 1월23일 지리산국립공원 구룡계곡에 사는 북방산개구리가 산란을 했다. 봄에 산란을 하는 북방산개구리가 1월에 산란한 것은 관찰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독 따뜻했던 겨울 기온 때문이다. 지난겨울(2019년 12월~2020년 2월) 전국의 평균기온은 3.1도, 특히 북방산개구리가 이른 산란을 한 1월은 전국에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1월의 평균기온은 2.8도, 한파 일수는 0일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2월에 짧은 추위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간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7.9도를 기록했고, 4월2일에는 소백산국립공원의 박새가 산란을 했다. 9년 만에 가장 빠른 산란이었다. 노씨 배밭의 배꽃들도 이때 일제히 피었다. 원래 4월 중순쯤에 피어야 하는 꽃들이었다.
“4월11일쯤에 꽃이 피어야 하는데 4월3~4일, (빠르게는) 1일에 꽃이 피어버린 거예요.” 그는 배꽃의 개화가 그전부터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나주의 신고배 꽃의 만개일은 4월15일이라고 했는데, 몇년 전부터 나주는 4월10일 정도에 피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생각지도 않게 기온이 너무 높았죠. 그래서 1주일 이상 빨리 피었어요.” 그런데 꽃이 피자마자 내내 따뜻하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4월5~6일에 기온이 영하 4도, 5도로 내려가서 배 꽃눈이 고사했어요. 그 이후에도 날씨가 안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는데, 70~80%는 배가 안 달렸고, 배가 달렸다고 해도 상품으로 쓸 수 있는 배가 아니에요.” 노씨는 배의 개수를 배 한 알을 포장하는 데 드는 종이 ‘장수’로 말했다. “(이 밭에선) 3만3000장 정도 싸요. 올해는 1000장은 쌀는지 모르겠어요. 싸 봤자 시중에는 가공품으로 나가요.” 배숙 같은 것으로 ‘가공’해야만 팔 수 있는 배는 그냥 과일로 파는 배보다 값이 훨씬 싸다. “가공배는 사각상자 하나에 45~50개 들어가는데, 그 가격이 ‘1만원’이에요.”
전국적으로도 올해 4월은 추웠다. 4월 전국 평균기온은 10.9도로, 평년(12.2도)보다 낮았고, 강수량은 40.3㎜로 평년(51.1~89.8㎜)보다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온이 떨어진 다음에는 강풍이 불었다. 4월 말 전국에 태풍 수준의 강풍이 불면서 안 그래도 적게 달린 배 열매들이 그대로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노씨는 내년을 위해 배밭에 간단하게 약만 쳤다. 그리고 냉해 대책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돌입했다.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의 냉해 보상률은 50%에 불과하다.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위 사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들이 꿀 작황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노씨가 밭에서 땀 흘리는 일을 멈추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무렵, 강원도 철원에 사는 양봉업자 임송빈씨(64)는 벌 110군을 이끌고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국을 돌고 있었다. 그는 이동양봉을 한다. 이동양봉은 아카시아 꽃이 피는 지역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꿀을 따는 것이다. 보통 5월8일쯤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부지방에서 1차 채밀을 시작한 후 5월 중순쯤 중부지방에서 2차, 5월 말 북부지방에서 3차 채밀을 한다. 한 지역에만 머물며 채밀을 해서는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양봉농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동하면서 양봉을 한다. 이런 작업 형태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꽃이 정해진 개화시기에 맞춰 남부지방에서부터 북부지방으로 올라오면서 필 것, 비가 내리지 않을 것. 올해는 그 조건이 모두 갖춰지지 않았고, 임씨도 노씨처럼 한 해 농사를 크게 망쳤다.
양봉업 경력 40여년의 임씨가 올해 6월 말까지 딴 아카시아 꿀은 2드럼에 불과하다. 그는 보통 5월 말쯤이면 아카시아 꿀만 20~30드럼씩 땄었다. “(올해 딴 꿀은) 그것도 좋은 꿀이 아니라, 수분이 많이 함유된 ‘물꿀’이에요.” 그는 올해 1차지로 경상북도 구미, 2차지로 세종시 조치원을 찾았고, 3차지로 자신이 양봉을 하는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왔다. 모든 지역에서 꿀이 부족했다. “(과거엔) 경상도 지역에서 날씨가 나빠도 충청도에 가면 꿀이 있고, 또 거기서 안 되면 강원도로 오면 됐고 그랬는데, 올해는 어느 지역에 가도 꿀이 나오는 곳이 없었어요.”
꿀이 말라버린 아카시아꽃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올해 4월 급격한 저온 현상으로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에 그쳤다. 최유진PD
아카시아 꽃은 국내 양봉농가의 주 밀원이다. “원래 아까시(아카시아)는 기적 같은 나무예요. 큰 나무들은 한 나무에서도 꿀이 많게는 3말(54ℓ)이 나온다고 그래요.” 한국양봉농업협동조합의 ‘2020년 벌꿀 생산 흉작 원인 분석 및 작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는 이 ‘기적 같은 나무’에 일어난 일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보고서는 올해 흉작의 원인으로 4월에 발생한 급격한 저온 현상을 꼽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아카시아 나무 꽃대 생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연달아 몰아친 태풍으로 많이 부러지고 잎이 떨어진 아카시아 나무들의 발육은 이미 저조한 상태로, 꽃송이 숫자 자체도 줄었다. 이동양봉이 시작되는 5월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결국 그나마 있던 꽃송이에서 나온 꿀도 물이 잔뜩 섞인 물꿀이 됐다. 보고서는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이라며 “최근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인해 벌꿀 생산을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임씨는 양봉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 아카시아 철이 지나면 잡화꿀과 밤꿀의 채밀시기가 돌아온다. 그는 “딴 해는 아카시아가 (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도 있고 때죽도 있었는데, 아카시아에서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가 안 되는 상태”라며 “양봉을 40년 했는데, 2004년 외국에서 벌레가 들어와 아카시아 나무가 병들었을 때 빼고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화꿀과 밤꿀을 합해서 겨우 반 드럼을 채웠다.
올해처럼 모든 지역에서, 모든 종류의 꿀이 안 나는 흉년이 오면 복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황협주 한국양봉협회장은 “꽃이 피었는데도 벌이 굶어 죽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꽃밭에서 벌이 아사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면서 “벌에게 먹이는 설탕을 긴급히 구해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봉농가의 흉년은 2018년에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때와 비교해도 더 상황이 좋지 않다. 황 회장은 “그때는 안동, 예천, 이런 내륙지방은 괜찮았어요. 그래도 꿀이 한 3만t 이상은 생산됐는데, 올해가 사상 유례없는 해”라고 했다.
사실 노씨와 임씨의 농사는 배꽃과 아카시아 꽃이 ‘원래 피던 때’에만 피었어도, 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생태과의 심교문 연구관은 “겨울철이 따뜻하다보니 월동작물과 과수의 생육시기가 빨라졌는데, 그 뒤 4월쯤 온도가 떨어졌다”며 “평상시 같았으면 개화기가 아니어서 피해를 보지 않을 상황에서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심 연구관은 “폭염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에 그 강도가 강화되고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반대로 2000년 초반에는 길고 강한 한파가 발생했다. 강수량도, 단기간에 지역적 집중호우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2015~2017년에는 장기적인 가뭄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이상기후 현상이 국내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브라질 남동부에서는 폭우로 8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일본 도쿄에서는 32년 만에 1㎝ 이상의 눈이 왔다. 국내 농가들이 냉해를 입었던 지난 4월, 중국 북동부에서는 37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렸고, 기온이 하루에 20도씩 하강했다. 심 연구관은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4%에 불과한 세계 10위권의 식량 수입국이기 때문에 식량안보가 대외적 생산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이상기후를 동반한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농작물 가격의 폭등으로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것)을 발생시키고 식량부족 현상을 심화시켜서 식량 수입가격이 폭등하게 되면, 국내 식량안보에도 많은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도 더 자주, 더 큰 폭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심 연구관은 “농업 부문의 재해관리도 사후복구 중심의 위기관리에서 사전 예방으로 피해를 줄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조기경보를 통해 개별 농장 작물의 생육 상황을 관리하고, 재해 위험 여부를 사전에 판정할 수 있는 기상예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5년간 “오직 배만” 키웠다는 노씨는 이번 농사를 끝으로 사실상 배를 포기했다. 한달 반째 정부에 냉해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그는 대규모 집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오직 배만 했거든요. 그런데 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작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 머스캣’을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늦었다해도, 가능성이 좀 있어서….
벌 개체수 감소. 2014년.
세계
2014.05.13ㅣ주간경향 1075호
[세계]줄어드는 꿀벌, 중국 농장 ‘인간벌’이 수분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농부들은 꿀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간 벌’은 막대기 끝에 담배 필터를 달아 꽃가루를 필터에 묻혀 수분을 한다.
중국 남동부의 쓰촨성은 지난 4월 동안 한창 가루받이(수분•受粉)가 진행됐다. 꽃가루를 날라 암술머리에 옮겨 놓는 일은 원래 꿀벌이 담당할 영역이지만 쓰촨성에서는 사람이 벌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가 벌을 대신할 정도로 많아서가 아니다. 벌이 이곳에선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중순 쓰촨성 난싱의 한 산골마을에서 농민들이 사과나무의 가지 위에 위태롭게 올라탄 채 가지 끝에 있는 꽃에 닿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곳 주민 천시우킹(56)은 사람이 수분을 하는 것은 일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봄마다 자신의 과수원과 이웃 농가의 사과나무에서 품앗이로 수분 작업을 한다. 나무를 탄 지는 20년이 넘었다. 수분을 하다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지만 익숙해져서 겁은 안 난다고 한다.
독일의 한 양봉장의 모습. | 위키백과
살충제 대량살포로 벌 개체수 감소
주민들 중 일할 나이가 된 모든 사람들은 손으로 수분 작업을 하는 데 동원된다. 올해에는 4월 중순에서 같은 달 28일까지가 수분기로 정해졌다. 이 기간이 지나면 꽃이 지기 때문에 반드시 기간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한다. 마을 농민 중 솜씨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30분이면 한 그루 사과나무에 핀 모든 꽃에 꽃가루를 묻힐 수 있다. 농장마다 100~2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다.
쳉지가오(38)는 수분 작업은 품앗이로 이뤄져서 친인척들이 작업을 도와주지만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일꾼을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5~6명의 일꾼을 쓰는데 일당은 점심과 저녁 식사비를 포함해 하루에 80위안(약 1만3000원)이다. 그는 “때를 놓치면 과일을 충분히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르몽드에 24일 말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과수원에 있는 일꾼들은 하루에 100위안을 요구한다.
‘인간 벌’이 사용하는 도구는 끝에 담배의 필터를 단 막대기다. 이들은 사과나무에서 채취해 말려놓은 뒤 껌통에 담아놓은 꽃가루를 필터에 묻혀 수분을 한다. 꽃가루는 다른 지역에서 사올 수도 있지만 금방 상하기 때문에 수정 능력이 떨어지는 불량품일 가능성이 크다.
농부들은 꿀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경작지를 얻기 위해 벌의 서식지인 숲을 개간한 것이 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무 위에서 수분 작업을 하던 캉자오귀(49)는 1990년대 이후 이곳의 꿀벌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1958년 중국의 대약진 당시 농민들은 ‘인민의 곡식’을 훔치는 참새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의 호소를 실천에 옮겼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면서 해충들이 득실대자 농민들은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벌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이 살충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농민들은 작물을 해치는 곤충을 없애기 위해 주의할 사항을 거의 교육받지 않은 채 살충제를 쓰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경작 가능 토지는 0.08㏊로, 프랑스의 0.28㏊, 미국의 0.51㏊에 비해 크게 작다. 땅이 부족한 농민들은 토지를 최대한 집약적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살충제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농산물의 안정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면서 농민들은 당국의 지도로 독성이 덜한 살충제를 쓰기 시작했지만 살포 횟수를 늘려 대응하고 있다.
양봉업자는 꿀벌이 과수원에서 수분을 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남편이 양봉업자인 천시우캉은 “만약 그가 과수원에 벌꿀을 줘 꿀을 따게 하면 벌들은 다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루받이를 하기 전에 살충제를 대량으로 뿌리기 때문이다. 인간 벌 대신 과수원을 순회하는 양봉업자에게 수분을 맡기려면, 독성이 있는 살충제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나마도 젊은 세대가 도시생활을 택하면서 과수원을 오가는 양봉업자가 갈수록 줄고 있다.
수작업으로 수분을 하면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끼리 교잡시킬 수 있다. 세심하게 꽃 하나 하나 수분을 하기 때문에 수확철이 되면 나무는 열매로 가득하게 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국 농업과학학술원의 양봉부 연구원인 안지안동은 “수작업에 의한 수분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벌들이 인간보다 더 잘 식물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벌의 수분 경제적 가치 217조원
중국의 빠른 임금 상승으로 수작업에 의한 수분 비용은 감당못할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쓰촨대 탕야 교수는 “사람의 손에 의한 가루받이가 도입된 1980년대 말에는 그 비용이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갈수록 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꿀벌 감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이다. 유럽의 경우 지난 1월 작물 수분에 필요한 벌꿀 군집이 1300만개나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도 꿀벌은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 농무부 조사 결과 미국 내에서 평균적으로 꿀벌통의 벌꿀 개체수가 30% 정도 줄었고, 경우에 따라서 이는 99%에 달하기도 했다. 전 세계 아몬드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미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매년 2월 순회하는 양봉업자가 꿀벌들을 대여해주지만 이동하는 동안 또는 과수원에 사용되는 살충제로 꿀벌통의 개체수가 크게 줄어 다음 수확철에는 새로 꿀벌을 들여와야 해 갈수록 비용이 커지고 있다.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의 한 원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거론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곤충의 신경에 독작용을 일으키는 신경독소로, 살충제가 뿌려진 꽃의 꽃가루를 섭취한 곤충들은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자신들의 집으로 가지고 가 다른 개체까지 오염시키게 된다. 독일 바이엘사가 1990년대 처음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개발했을 때부터 양봉업자와 환경운동가는 이 살충제가 군집붕괴현상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꿀벌의 개체수 감소에는 살충제만이 아니라 서식처 파괴로 인한 기근, 기후변화, 바로아 진드기 등 기생충, 여왕벌의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더 많다고 한다. 꿀벌 등 곤충들이 담당하는 수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1530억 유로(약 217조원)에 달한다. 세계 곡물 생산의 3분의 1 이상은 벌의 수분에 의존하기 때문에 벌의 개체수 감소는 생태계 파괴와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내로 멸종할 것”이라며 “벌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고 경고했다. 인공 수분도, 양봉업자에 의한 수분도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다가오면서 꿀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재배법을 고민하는 것은 중국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영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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