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2022년 꿀벌 실종 사건의 전말
2022년 꿀벌 실종 원인 '응애(진드기)' 살충제, 개화시기 불안정성.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벌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벌은 야생 벌 종류도 더 많다. 인간이 꿀을 생산하기 위해 기르는 양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 가치.
그리고 벌과 나비가 '수분'을 하기 때문에, 곡물 과일 생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각적인 관점에서 벌과 나비의 생태를 살피는 게 필요해 보인다.
글 김한솔 기자 ·영상 최유진 PD입력 : 2022.03.31 06:00
어느날 갑자기 꿀벌이 사라졌다. 2022년 1월, 남부지방 양봉농가에서 월동 중이던 꿀벌들이 집단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사건은 많은 언론에 ‘꿀벌 실종 미스테리’로 보도됐다. 피해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꿀벌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꿀벌 실종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농촌진흥청·농림축산검역본부·지자체·한국양봉협회의 합동 실태조사 현장에 동행했다. 특히 심한 피해를 입은 남부지방 양봉농가들을 방문해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꿀벌 실종은 하나의 악재가 다른 악재와 연결되며 빚어낸 복합 재난이었다. 악재의 근본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가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꿀벌 외 다른 것들은 무사할까’ 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두 달 반의 꿀벌 실종 추적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서서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비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꿀벌 한 마리가 벌통에 붙어있다. 최유진 PD
전남 순천시 월등면의 한 마을. 좁고 한적한 도로를 한참 달리다 왼쪽으로 차를 꺾었다. 평평하게 다져진 땅의 삼면이 산에 둘러싸여 고요했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산이 감싸고 있어서인지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그치자 해도 잘 들었다. 볕이 잘 들고, 바람은 없고, 물이 가까이 있는 곳. 벌을 키우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17년차 양봉가, 박덕귀씨의 봉장이다. 그는 태풍이 와도 산이 막아주곤 했다는 이 좋은 곳에서, 지난 겨울 갖고 있던 거의 모든 벌을 잃었다.
“저 머리 빠진 것 좀 보세요. 원래 이렇지 않았어요.” 박씨가 인터뷰 중 자신의 벗겨진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지난 1월15일이었다. 박씨는 월동하던 꿀벌들을 깨우기 위해 벌통을 열었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 겉면을 담요로 단단히 감싸놓았던 벌통이었다. 뚜껑을 여는데 뭔가 허전했다. 벌은 없고 벌통에 넣어둔 소비만 보였다. 소비는 벌들이 벌집을 짓는 직사각형의 납작한 나무 틀이다. 평소같으면 이 판에 벌집이 잘 보이지 않을만큼 많은 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날은 벌들이 애써 만들었을 벌집만 남아 있었다. 월동 식량으로 넣어둔 화분떡(화분에 단백질과 비타민 등을 넣어 떡처럼 빚은 벌들의 먹이)도, 벌이 생산해 둔 꿀도 그대로였다. 벌집 안에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벌 유충들도 죽어있었다.
“열어봤는데 벌이 한 마리도 없으니 얼마나 황당해요? 아이고 큰일났네, 하면서 또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박씨가 말했다. “처음에 한 통만 봤을 때는 ‘이거 왜 이러지? 왜 벌이 없지?’ ‘밥은 많은데 벌이 없네?’ 했어요. 그 다음 통부터는 황당한거예요.” 그날 갖고 있던 420개의 벌통을 전부 열어봤고, 거의 모든 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라졌다’고 한 이유는 죽은 벌의 사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찾은 박씨의 봉장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빈 벌통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빈 벌통을 열자 역한 냄새가 훅 풍겼다. “냄새나죠? 쉰내. 이렇게 알을 놔두고 나갔어요. 이 안에 번데기가 들어있을텐데 이젠 다 죽었겠죠.” 벌집 구석에 붙어있던 꿀이 흘러내렸다.
박덕귀씨가 자신의 봉장에서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이 벌통들 중엔 빈 것들도 많다. 최유진 PD
비슷한 시기,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사는 40년차 양봉가 오인수씨도 월동 벌을 깨우다 할 말을 잃었다. 월동 전 180군이었던 벌 중 남아있는 것은 단 30군. 하나의 벌통에 들어있는 벌을 1개 군이라고 한다.
1군의 개체 수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여름에 꿀을 따러 나가기 전에는 5만~6만 마리까지 불어났다가, 월동 전에는 1만5000마리쯤으로 세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겨울을 난다. 월동 중에는 많은 양봉가들이 벌통을 잘 열어보지 않는다. 추운 날씨에 괜히 벌통을 여는 것이 벌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씨도 두 달만에 벌통을 열었다가 벌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그냥 막막하대요. 이럴 수가 있나.” 오씨는 남은 벌이라도 살리기 위해 애썼지만, 벌은 점점 약해져 두달 뒤에는 절반인 15군만 남았다. 3월 중순은 4월부터 개화하는 봄꽃을 앞두고 양봉가들이 가장 분주한 시기다. “원래 지금 밀감 꿀 따려고 준비하고, 분봉(1개의 봉군을 세력을 키워 2개로 분리하는 것)시키고 할 때죠.” 하지만 15군의 벌로는 채밀을 할 수 없다. 오씨는 양봉을 시작한 이후 가장 한가하고 불안한 3월을 보내고 있다.
벌들이 떠나버린 벌통에 그대로 남아있는 소비와 화분떡. 최유진 PD
경남 창녕군의 30년차 양봉가 노호용씨(가명)은 두 사람보다 조금 빨리 그 일을 겪었다. 500군의 벌을 키우는 그는 월동 중에도 다른 이들보다 자주 벌통을 열어보는 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벌통 안을 살폈어요. 11월 말에 보고 12월10일쯤 다시 봤는데 텅텅 비어 있는거예요.
불과 15~20일 사이에 벌이 다 없어진 겁니다. 한 20통은 살았는데, 남아있는 벌의 수가…. 쉽게 말하면 한 통에 20주먹 정도 되는 벌이 있어야 되는데, 한 주먹도 안 들어있었어요. 그러면 겨울을 날 수가 없어요.” 벌의 월동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지 않는 기간 동안 활동량을 최대한 줄인 채로 봄을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다.
이 시기를 위해 양봉가들은 벌통에 보온도 해주고, 화분떡도 넣어준다. 벌은 그 안에서 서로 뭉쳐 동그란 ‘구’를 만들어 체온을 유지한다. 적은 수의 벌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이것이 내 재산이고, 이것이 내가 밥 먹고 살게하는 회사나 마찬가지인데 회사 종업원들이 다 없어진 거니까 ‘이제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전국 양봉농가에서 사라진 월동군은 모두 39만517군(3월2일 기준). 1군에 2만 마리쯤 있었다고 가정하면, 78억 마리 이상의 벌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조사 후에 벌이 더 줄어든 농가, 협회에 미처 신고하지 못한 농가를 합치면 실제로는 더 많은 벌들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양봉협회는 농촌진흥청에 실태조사를 의뢰했다.
지난 2월22일 국립농업과학원 최용수 박사 (오른쪽 끝)와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들이 경북 구미 지역의 월동 꿀벌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벌들에게 무슨 일이
지난 2월11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강성국씨의 봉장에는 흰 석회가루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소독하려고 뿌렸어요. 바이러스 못 오게 하려고.” 30년차 양봉가인 강씨도 월동 기간 중 많은 벌을 잃었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 양봉생태과의 최용수 박사팀이 실태조사를 위해 강씨의 봉장을 찾았다.
최 박사는 지난 15년간 벌 생태를 연구해 온 꿀벌 전문가다. 강씨가 벌통에서 소비 한 장을 꺼냈다. 소비에 빽빽히 붙어 움직이는 벌들은 언뜻 보기엔 건강해 보였다. 가만히 벌집을 살피던 최 박사가 핀셋으로 벌집 구멍 하나에서 벌의 유충을 꺼냈다.
“응애가 엄청 많네요.” 자세히 보니 아직 벌의 태를 갖추지 못한 하얀 애벌레의 몸에 티끌만한 갈색 점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벌 진드기인 꿀벌응애다. 꿀벌응애는 벌집에 살며 벌 유충의 체액을 빨아먹는다. 강씨는 월동 중 사라진 벌통들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최 박사가 빈 통에 있던 벌집을 파내자, 썩어서 죽은 유충들이 더 나왔다. 강씨는 지난해 유독 병해충이 많이 생겨 열심히 방재를 했는데도, 결국 완전히 병해충을 잡진 못했다고 했다.
이날 최 박사가 둘러본 봉장들의 상황은 모두 비슷했다. 월동 전까지 분명히 벌이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나중에 벌을 깨우려고 보니 벌이 자취를 감췄다. 거의 모든 봉장에서 응애 피해가 있었다. 원래 해충 피해가 별로 없던 봉장에서도 해충이 발생해 농약 사용을 늘렸다. 10년차 양봉가 김영순씨는 월동 전 200군이었던 벌이 두 달 만에 40군으로 줄었다고 했다. “월동 전에는 벌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벌이 아예 없으니까 황당한거예요. 약 사용은 원래 잘 안했었는데…작년에는 좀 했어요.” 같은달 22일 찾은 경북 구미의 상황도 비슷했다.
응애 피해를 입은 봉군의 정확한 피해 조사를 위해 수집된 벌들. 김창길 기자
민관 합동조사 결과는 지난 13일 3쪽짜리 보도자료로 발표됐다. 농진청은 전국 9개 도 34개 시·군의 99호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1월7일부터 2월24일까지 조사한 결과, “월동 꿀벌 피해 원인은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벌 폐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응애가 지목됐다. 농진청은 “거의 대부분 피해 봉군에서 응애가 관찰됐고, 일부 농가의 경우 꿀벌응애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여러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하게 사용해 월동 전 꿀벌 발육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농림축산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의 조윤상 연구관을 만나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조 연구관은 “전염병학적 측면에서 외부 기생충인 응애가 1차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90% 이상 농가에서 응애 감염이 된 것을 확인됐다”고 했다. 응애 중에서도 꿀벌응애(바로아응애)와 가시응애가 피해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양봉가들에게 응애피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응애는 벌이 있는 한 완전히 박멸하긴 어렵고, 때마다 적절히 관리하면서 양봉을 해야한다. 인터뷰한 양봉 농가들은 모두 오랜 기간 그렇게 양봉을 해 왔지만, 이번처럼 벌이 사라진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늘 있던 응애 피해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졌을까. 꿀벌 실종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선 응애가 발생하기 전 상황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경남 창녕군에서 양봉을 하는 노호용씨(가명)가 소비 한 장을 들어서 보여주고 있다. 노씨는 월동 피해를 입고 벌 수십군을 새로 구매했다. 최유진 PD
노호용씨가 월동 피해를 입은 벌통에 들어있던 소비를 보여주고 있다. 최유진 PD
■기후변화가 만든 ‘악재의 연결고리’
꿀벌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은 꿀이다. 많은 양봉가들이 건강한 꿀벌을 육성하기 위해 영양제나 면역강화제를 챙겨 먹이지만, 어떤 것도 꿀보다 좋진 않다. 최 박사는 “꿀벌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소와 면역에 필요한 물질이 꿀에 들어있다. 꿀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고 했다. 꿀벌이 꿀을 얻기 위해선 꽃이 제때 피고 제때 져야 한다. 최근 몇년 간 우리나라에선 그게 안됐다.
최 박사는 실태조사를 하며 최근 3년 치 기상도를 모두 살펴봤다. “기상도를 보니 지난 2년 간 2·3·4월 기온이 높았어요. 그러다 5·6월달이 되니 오히려 기온이 뚝 떨어졌죠. 2·3·4월 기온이 높다는 건 꿀벌 먹이가 되는 밀원수들의 꽃이 조기 개화 한다는 겁니다. 더운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최대 밀원인 아카시아 꽃이 피는 시기인 5·6월에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부는 저온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꿀벌이 먹이를 제대로 못 먹은 거예요.” 아카시아 꽃은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년 전인 2019년 12월~2020년 2월 전국 평균 기온은 3.1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높은 기온은 3월까지 이어졌다. 3월 전국 평균 기온이 7.9도로 역대 2위였다. 2020년 3월27일, 기상청에서는 서울 벚꽃이 1922년 벚꽃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빨리 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그 기록은 1년 뒤 경신됐다. 2021년 3월에도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전국 평균 기온이 8.7도로 역대 가장 더운 3월이었다. 벚꽃은 1년 전보다 사흘 빨리 개화했다.
2020년 촬영된 흰 아카시아 꽃에 붙어있는 꿀벌. 최유진PD
양봉가들은 이른 봄꽃이 반갑지 않다. “벌 하는 사람들은 5월 5~6일쯤 피는 꽃을 제일 좋아합니다.” 노호용씨가 말했다. 5월이 기온이 안정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거엔 그랬다. 양봉가들은 5월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키운 벌 수백군을 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꿀을 따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2년 간 날씨는 양봉가들을 당황시켰다. 3월 말까지 오르기만 하던 기온이 4월이 되자 갑자기 오락가락했다. 2020년 4월 중순에는 갑자기 눈이 내렸다. 5월에는 아예 태풍 수준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평균기온은 16.6도로 1995년 이후 가장 낮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렸다. 우박과 낙뢰도 잦았고, 강원도에는 눈도 내렸다. 벌의 주 먹이인 아카시아 꽃은 냉해를 입었다. 노씨는 “작년에 평소의 20% 밖에 꿀을 못 땄다”고 했다. 전남 영암의 30년차 양봉가 이천행씨도 같은 증언을 했다.
“아카시아는 5월10일 정도에 펴야 하는데, 작년엔 4월20~25일쯤 만개했어요. 꽃은 빨리 폈는데 밤 기온은 별로 안 높으니 꿀이 분비가 안됐죠. 벌 입장에선 꿀이 집에도 없고 꽃에도 없는 거예요. 아침에 보면 벌이 꽃 속에 들어있어요. 집에 안 들어오고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배고프니까 그런거 같아요. 거기서 자다가 그 애들이 거의 죽고….”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박사가 전북 완주의 농업과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 PD
이상기상은 응애 등 기생충에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조 연구관은 “가시응애는 기후변화랑도 연관돼 있다. 여름이 길어져 번식 시기가 길어지면서 증식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가시응애는 갈퀴같이 생긴 다리로 유충을 뜯어 먹고 꿀벌응애보다 번식도 더 많이 한다. 2대째 양봉업을 하는 장우호씨는 “작년에 응애, 가시응애가 아주 심했다.
양봉업자들은 다 느꼈다”고 했다. 벌은 꿀을 먹지 못해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병해충과 싸워야 한다. 당연히 싸움은 잘 되지 않고, 병해충은 점점 늘어난다. 평소처럼 약을 써선 방재가 되지 않으니 농가들은 더 많은 약을 써 병해충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최 박사는 “응애 약제는 전부 살충제다. 꿀벌 중 가장 어린 개체는 그 살충제에 죽는다. 결국 월동기에 가장 많이 확보됐어야 하는 ‘어린 일벌’이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월동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벌은 왜 통 안에서 죽지 않고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일까.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던 이상기상 현상이 다시 등장한다. 육지보다 따뜻한 제주에서 양봉을 하는 오인수씨는 월동기에는 조금 추운 곳으로 벌을 이동시킨다. 겨울은 추워야 하기 때문이다. 춥지 않으면 여왕벌은 계속 산란을 하고, 벌은 쉬어야 하는 시기에도 계속 일을 하게 돼 결국 봉군 전체가 약화된다. 양봉가들이 월동 전 보온에 신경을 쓰는 것은 온도가 너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아예 춥지 않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은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10월 중순에 26도까지 기온이 올랐다. 중순 이후에는 갑작스런 한파가 닥쳤다. 들쭉날쭉한 기온은 11월 초·중순까지 계속됐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과 추운 날이 반복됐다. 벌은 밖이 따뜻하면 본능적으로 벌통 밖으로 나와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온에 매우 민감해서, 따뜻한 줄 알고 나왔는데 기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전남 영암군에서 양봉을 하는 장흥상씨가 비어버린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장씨는 이번 월동기에 키우던 벌 700군을 모두 잃었다. 최유진 PD
“벌은 너무나도 약해요. 조금 추우면 그냥 떨어져버려. 한 10초 있다가 그냥 떨어져. 추워서 못 날아요.” 전남 영암군에서 벌을 키우는 장흥상씨가 말했다. 그도 월동기에 키우던 벌 700군을 모두 잃었다. 최 박사는 “최근 2년 간 남부지방의 11~12월 기온은 9월보다 높았다. 월동기인데 기온이 너무 높으니 일벌들이 나갔다가 죽고 못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꾸준히 벌이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가는 월동기에 보온을 해놓고 벌을 안 봅니다. 가끔 봉장에 가면 나와서 활동하는 벌이 보이는데, ‘날이 좋아서 벌이 활동해버리는구나’ 까지만 생각하는거죠. 그 벌들이 못 돌아올거라는 생각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다 한 달 뒤에 열어보면, 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결국 이상기상→면역 약화→병해충→이상기상이라는 ‘악재의 연결고리’가 꿀벌 실종 사건을 초래한 것이다.
최 박사는 “이렇게 얽혀있는 고리 중 하나만 끊어져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인간이 단기적으로 끊을 수 있는 고리는 ‘응애 방재’다. 최 박사는 “꿀 생산이 제대로 안되는 건 사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긴 어렵죠. 물리적으로 가장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은 응애의 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해충이 내성이 생긴 약재 대신 응애방재가 되는 약제가 새로 보급돼야 하고, 기상조건을 관리하는 장비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윤상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이 실험실에서 폐사한 벌이 담긴 시료를 바라보고 있다. 최유진 PD
■위기에 처한 꿀벌과 양봉가들
꿀벌 실종 사건은 한 번의 재난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5년차 양봉가 정현조씨는 경남 합천에서 벌을 키운다. 합천에는 지난달 28일 산불이 발생해 경북 고령까지 확산됐다. 며칠 뒤에는 경북 울진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정씨와 인터뷰한 날은 산불이 발생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정씨가 사는 합천은 울진과는 3시간쯤 떨어져 있지만, 대형 산불에 따른 피해는 모두 양봉가들에게 돌아간다.
“지금 불 난 데가 전부 아카시아 꽃이 많은 데예요. 해마다 양봉하러 가는 농가들이 많아요. 그런데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쪽으로 안 가고, 다른 지역으로 오겠죠. 그럼 보통 30%가 꿀 따던 지역에 70~80%씩 꿀 따러 오는거예요. 꽃보다 벌이 많은거지. 그럼 재앙이죠.” 겨울 강수량이 역대 가장 적었던 올해 초 산불은 294건(3월23일 오후 6시 기준)이 발생해 총 2만2290ha를 태웠다. 정씨가 매년 5월 꿀을 따러 가는 안동 지역에도 산불이 발생했다. “10년 이상은 양봉이 어렵다고 봐야죠.”
3월초 발생한 경북 울진 산불 피해 현장에 검게 그을린 나무들. 땅엔 나뭇잎이 탄 재가 가득하다. 한수빈 기자
기후위기는 산불과 같은 재해 뿐 아니라 극한기상 현상의 빈도도 증가시킨다. 한 달 넘게 장마가 이어진 2020년 여름철,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인 41도가 기록된 2018년의 폭염과 같은 ‘평균을 벗어나는 기상’은 꿀벌에게 악재다. 벌이 살기에 가장 좋은 벌통 온도는 34~35도, 습도는 60% 정도다. 폭염으로 이보다 온도가 높아지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습도가 더 올라가면 벌은 환기를 위해 날갯짓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많은 노동으로 체력은 점점 떨어진다. 벌의 수명은 노동을 많이 할수록 짧아진다. “사람도 기후에 적응을 하잖아요. 그런데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변동이 심하면,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거죠.” 최 박사가 말했다.
당장 올해도 녹록지 않다. 정씨는 지난해 벌을 위해 봉장 바로 옆 빈 땅에 유채꽃을 가득 심었다. 하지만 심한 겨울 가뭄에 꽃대가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원래 지금쯤이면 한 뼘 정도 올라왔어야 되지.” 정씨가 꽃밭 옆 가지가 앙상한 나무를 가리켰다. “오늘 아침에도 합천이 영하 4도까지 내려갔어요. 예전 같으면 지금 매실꽃이 다 피어야 하거든요. 그 매실이 피지도 않고…” 예전엔 서로 다른 시기에 폈던 꽃들이 최근엔 한꺼번에 피었다 져버리는 것도 양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천행씨는 전남 영암에서 경남 창녕, 충북 증평, 강원도 철원 순서로 돌며 꿀을 땄다. “차근차근 아카시아 꽃이 많을 때 가는거죠. 옛날에는 한 군데 가면 10~15일 정도 머물렀어요. 그런데 지금은 꽃이 거의 같이 피어서, 한 군데 가서 길면 일주일, 아니면 5일 있어요. 20일이면 그냥 다시 돌아와요.”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 폐사는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최 박사는 “어떤 학술저널은 ‘월동기 붕괴(Winter Loss)’ 라는 주제로 겨울철 꿀벌 실종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받겠다고 했어요. 기후변화로 꿀벌이 폐사 하는 건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경남 합천군의 정현조씨가 자신의 봉장 바로 옆 유채꽃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 PD
정현조씨가 심어놓은 유채꽃들. 심한 겨울 가뭄으로 3월인데도 아직 꽃대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최유진 PD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벌이 귀해지자 벌 가격은 뛰었다. 박덕귀씨는 한 통에 25만~32만원을 주고 60통의 벌을 샀다.
원래는 한 통에 20만원쯤 했는데, 최근 값이 올랐다.
그래도 박씨처럼 벌을 살 수 있었던 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많은 농가들이 벌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인수씨도 아직 벌을 구하지 못했다. 오씨는 “지금 벌이 없어서 살 수가 없다. 기다리고만 있다”고 했다. 벌을 선뜻 살 형편이 안되는 이들도 많다. 키우던 벌 700군이 전량 폐사한 장흥상씨는 올해 양봉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다. “지금 누가 벌을 외상으로 줘요. 꿀이 몇년 간 안 나와서 양봉농가들이 다 어려워요. 난 아무것도 없어. 저당 잡힐 것도 없고, 돈 빌릴 상황도 안돼.”
양봉 농가의 위기는 과수·시설채소 농가들의 위기로 연결된다. 꿀벌은 대표적인 화분매개 곤충이다.
많은 과수·시설채소 농가들은 양봉 농가들로부터 벌을 납품받아 수분을 한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벌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수박 특구’인 경남 함안군에서 양봉을 하는 조용호씨는 올해 1200군 중 500군의 벌이 폐사하면서 수박농가에 납품할 벌들을 전부 새로 사야 했다.
“이번에 너무 힘들었다. 경남에 벌이 없어서 다른 지역에서 전부 사다 했다. 제 날짜에 못주고 며칠씩 미루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남 나주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이봉수씨는 이번에 두 통의 벌을 납품받았는데, 통 안에 있는 벌의 수가 예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보통 한 통에 소비가 7판 정도였는데, 지금은 3~4판 밖에 안돼요. 벌이 너무 많이 죽어버렸어요.”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세계 식량 작물 4종 중 3종은 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 생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는 5월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취동위(屈冬玉) FAO 사무총장은 지난해 세계 벌의 날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더 효율적이고,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이 필요하다.
벌은 그 시스템에 큰 역할을 한다. 벌은 우리의 식량 안보, 영양, 그리고 환경에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잘 살기 어렵다.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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