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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연동형_비례대표제도

독일식 비례대표: 2014 프레시안 조성복: 새누리당에 불리하지 않다

by 원시 2018.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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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선거제도, 새누리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선거제도 ① '독일식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독일식 선거제도, 새누리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기존의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방식이 헌법에 불합치 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선거구 간 최소 및 최대 인구비율을 현행 1:3(10만 3469명 : 31만 406명)에서 1:2(13만 8984명 : 27만 7966명)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 문제가 주요 현안이 되었고, 이 기회에 아예 선거제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현재 거대 양당에만 유리한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개선하여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소 정당들과 새정치민주연합, 시민단체와 전문가 집단 등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를 도입하면 사표심리 등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현상이 사라지고 소규모 정당들의 국회진입이 가능해지는 반면에, 기존의 거대 양당은 불리해질 것이란 예상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필자가 2012년 19대 총선의 결과를 독일식 제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뜻밖에도 이 제도가 새누리당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오히려 총 의석수는 4석이 늘어났고, 비례대표가 전국구에서 권역별로 바뀌면서 특히 서울과 경기도 에서는 23석이나 증가하였다.

 

새누리당의 의석이 늘어나는 것을 이해하려면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용어는 독일대학에서 시험문제로 자주 출제될 정도로 독일 선거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 당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던 필자는 이 개념의 생소함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각 정당의 총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의 합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정당득표율에 따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독일 선거제도를 일컫는 용어들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의인화된 비례대표제' 또는 '혼합형 비례대표제' 등 다양하다. 이는 독일어 'Personalisierte Verhältniswahl'를 글자 그대로 직역하거나 또는 그 의미를 생각하여 의역한 것이다. '의인화된 비례대표제'처럼 직역하면 무슨 말인지 낯설고,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처럼 의역한 용어는 선거제도 전체가 아닌 그 일부의 의미만을 전달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그냥 '독일식 비례대표제'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지난 11월 중앙선관위가 주최한 정당정책토론회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소선거구제를 옹호하는 주장을 하면서 독일에서도 소선거구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절반의 진실이거나 또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의 소선거구제는 선거과정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위에 언급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독일제도의 핵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것이다. 현재 연방하원(Bundestag)의 의석수는 지역구 299명과 비례대표 299명을 더한 총 598명(기준의석)이지만, 지금까지의 선거결과를 보면 그 기준의석과 일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초과의석이 발생하여 총원이 수십 명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원 수 또는 의회의 과반수가 몇 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의원수가 매 회기마다 변하기 때문이다.

 

독일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1인 2표를 행사한다. 제1투표와 제2투표로 구성된 한 장의 투표용지에서 1표는 지역구 후보에, 다른 1표는 선호하는 정당에 기표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현행 국회의원 선거방식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전문가들이 굳이 독일식을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식과 독일식의 차이

 

첫째, 우리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따로 구분하여 별도로 집계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들을 서로 연계하여 계산한다. 먼저 선거에 참여한 모든 정당들에 대한 전국득표율(제2투표)을 계산하여 개별정당의 '총 의석수'를 결정한다. 이것을 다시 각 정당별로 권역별(보다 정확한 표현은 16개 주별; 우리의 경우에는 광역단위별) 득표율에 따라 '주(州) 의석수'로 배정한다. 이러한 주 의석수에서 같은 주에서의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만큼 주의 비례대표 당선자 수가 결정된다.

 

어떤 정당의 주 의석수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을수록 비례대표 당선자는 줄어들게 되고, 반대로 지역구가 감소하면 비례대표는 증가하게 된다. 지역구 의석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표라도 더 득표한 1인을 당선자로 결정한다. 또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모든 유권자들의 1표는 바로 의석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A정당이 선거결과 총 의석수를 200개 받았는데, 그 가운데 20개의 지역구가 있는 Y라는 주(州)에서 정당득표에 의해 의석수가 15석으로 결정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A당이 Y주의 지역구에서 9명이 당선되었다면, 나머지는 비례대표 6명이 순번대로 당선되는 것이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당선자가 따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A정당이 Y주에서 위와 같은 조건인데(15석 확보), 이번에는 지역구에서 18석이 당선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A정당은 Y주에서 15석만 가져가야 되는데, 18석으로 이미 3석이 초과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례대표 당선자는 당연히 1명도 없게 된다. 하지만 지역구에서의 당선은 그대로 인정하여 의석수는 18석이 되며, 이 때 초과된 3석을 바로 초과의석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A정당의 전체 의석수는 최초 결정된 의석수(200석)보다 3석이 늘어난 203석이 된다.

 

결론적으로 초과의석은 한 정당이 어떤 광역지역에서 정당득표율에 의해 결정된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석을 얻었을 때 발생한다. 새누리당의 의석이 늘어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둘째, 우리는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지역구가 246석, 비례대표가 54석으로, 비례대표의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비례대표의 비중이 50%이다. 독일처럼 비례대표의 비율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소수정당들의 의회진입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즉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독일에서는 현재 4~5개의 정당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황이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의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독일도 철저하게 기민당과 사민당, 즉 거대 양당의 독과점체제이다. 최근 세 차례의 연방총선 결과들을 살펴보면, 지역구 당선자가 매 회기 자민당은 0석, 녹색당은 1석, 좌파당은 3~4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포함할 경우 이들의 의석수는 전체의 약 20~38%에 달한다.(관련 기사 : 경기도 연정실험, 남경필 지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셋째, 우리가 비례대표의 후보들을 중앙에서 결정하여(전국구) 선출하는데 반해, 독일은 이를 권역별(주별)로 후보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선출한다. 독일식을 따를 경우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대표성이 확보되고, 정치인들이 중앙으로만 몰려드는 현상을 완화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역정치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고, 이는 지방분권이 강화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높은 봉쇄조항

 

다만 비례대표를 확대하여 정당득표율로 의석수를 결정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의 하나는 국회에 소수정당들이 난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실제로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순수 비례대표제 실시) 당시 그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여 결국 나치시대로 넘어가면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독일식 비례대표제에는 정당득표율이 5% 미만이거나 또는 지역구 당선자가 3명 미만일 경우에는 정당득표에 따른 비례대표의 의석배분을 제한하는 봉쇄조항이 존재한다.  

 

비록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정당득표율이 의석수를 결정하고,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선출하며 그 비중이 전체의석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투표방식에서 유권자가 1인 2표를 행사한다는 점은 우리와 같다. 그래서 우리가 당장 이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시행에 있어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선거제도의 개혁논의와 관련하여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이다.

 

또한 여야가 독일식 제도의 도입에 합의할 경우, 필연적으로 초과의석이 발생하여 전체 의석수는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국민정서 상 정치권이 의원수를 늘리자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면서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도 자신들의 의석이 늘어날 것이 확실한데 굳이 이를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다음 편에서 그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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