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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사진

기생 장연홍(張蓮紅), 친일파 이지용이 미모에 반해 당시 엄청난 거금인 1만원으로 소실 자리를 제안

by 원시 2023. 1. 12.

기생 장연홍(張蓮紅) - 20세기 초반 ( 1920년대)에 찍힌 색상화 된 장연홍의 사진. 장연홍은 조선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기생 중 한명이였다. 그녀는 1911년 평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장연홍의 아버지는 그녀가 겨우 다섯 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님의 죽음 때문에 장연홍과 그녀의 가족은 풍족하게 살지 못했다.

 

 

장연홍은 14살의 나이에 평양권번(券番)에 들어갔다.

 

기생으로서 그녀는 글쓰기, 회화, 춤추기 하고 악기 다루는 재주를 발달시켰다.

 

그녀는 21살의 나이에 박영도라는 기생하고 상해로 유학하러 갔다. 상해에서 유학한 후 장연홍의 행방은 아직 불명이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하던 기생 중 가장 미인이라 불린 장연홍.



친일파 이지용이 미모에 반해 당시 엄청난 거금인 1만원으로 소실 자리를 제안하자 장연홍이 "나라를 욕보인 자에게 가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답한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A recolored photo of Jang Yeon-hong taken sometime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circa 1920s). Jang lived to become one of the most well known Kisaengs in Korean history. Born in the year 1911 in Pyeongyang, she was known to have been the only daughter within her entire family. Unfortunately, Jang’s father passed away when she was only five years old. Because of this, her family status and wealth declined.

 

출처: History of Korea

 

 

 

자료 2. 김창길 기자.

 

김창길의 사진공책
샴푸의 요정, 해어화 장연홍
2017.10.27 15:26 입력
김창길 기자
기생 장연홍 사진을 내건 미활 비누 광고

기생 장연홍 사진을 내건 미활 비누 광고
그녀만 보면 외롭지 않아

슬픈 마음도 멀리 사라져

그녀는 나의 샴푸의 요정

이제는 너를 사랑할거야

- 빛과 소금, 샴푸의 요정


아름다움은 거품인가 보다. 사랑과 미(美)의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했다. 손에 잡힐 듯 사라지고 마는 거품과 같은 여신 탄생 신화는 내 기억 속에 샴푸의 요정과 연결된다. ‘네모난 화면 헤치며 살며시 다가와 은빛 환상 심어준 그녀는 나만의 작은 요정’이었다. 유년 시절(1980년대 중반)의 나는 샴푸, 화장품을 들고 나온 아릿다운 여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TV광고를 볼때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왜 그렇게도 나를 빤히 쳐다보며 유혹하던지. 그녀는 나만 바라보는 작은 요정이었고, 부끄러움 많던 유년의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TV광고 속에 나타났던 샴푸의 요정은 카메라가 처음 우리나라에 건너왔을 무렵에 이미 등장했다. ‘사진관 시대’라 불렸던 1920-30년대 우리나라 사진문화 초창기에 평양 명기(名妓) 장연홍은 일본 비누 광고 사진에 얼굴을 내밀었다. 장연홍은 부채를 들고 다소곳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다.

“한 번 두 번에 살 거친 것, 벌어진 것, 주름살은 꿈같이 없어지고 백분이 누구의 살에도 잘 맞도록 화장이 눈이 부시게 해줍니다. 이렇게 여천으로 만들어낸 화장미는 당신을 훨씬 젊게 만듭니다.“

당시의 비누는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할 때만 쓸 수 있는 화장품 같은 미용 상품이었다. 그래서 비누는 그냥 비누가 아니라 ‘미활 비누’로 불렸다. 비누 광고에 출현했던 샴푸의 요정은 조선에서 이름을 날렸던 기생들이었다.


장연홍의 명함 사진. 일제시대 기생들은 본인을 홍보하기 위해 자기 이름이 적힌 사진들을 요릿집, 상점 등에 명함으로 배포했다.

장연홍의 명함 사진. 일제시대 기생들은 본인을 홍보하기 위해 자기 이름이 적힌 사진들을 요릿집, 상점 등에 명함으로 배포했다.
기생들을 해어화라 부르기도 했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이 절세미인 양귀비를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아름다운 뜻을 갖고 있는, 발음도 아름다운 해어화라는 철자로 불렸던 당시의 기생은 매춘부 보다는 연예인 같은 인물상이었다. 뚜렷한 소신을 가진 이도 많았다. 장연홍은 돈다발로 유혹하며 소실로 삼으려는 친일파 이지용에게 이런 말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나라를 욕보인 더러운 자에게 가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후벼 팠던 장연홍은 돌연히 상해 유학길을 선택했다. 21세 젊은 나이였다. 상해에서의 장연홍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샴푸의 요정에 대한 내 기억은 공책 받침과 연결된다.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등 샴푸의 요정 못지않은 서양 소녀 사진들은 문구점의 압착기계로 코팅되어 내 공책 밑에 깔렸다. 차마 다른 친구들처럼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을 방에 거는 대담함이 없었던 유년의 나는 소녀 사진들을 내 공책 밑에 깔아놓고 슬쩍슬쩍 들쳐봤다. 사진 인화지에 연예인, 가수 등이 그려져 있는 대형 사진을 일컫는 ‘브로마이드’라는 단어도 일제 시대 때 수입됐다. 당시 기술력으로 달력만큼 대형으로 뽑을 수 있는 사진은 아니었겠지만, 일본인들이 보는 조선 기생들의 사진은 브로마이드였다. 조선 기생들은 이국적인 여인들을 수집하는 일본 남성들의 브로마이드였던 것이다.


장연홍 우편엽서

장연홍 우편엽서
샴푸의 요정은 우편엽서에도 등장했다. 제국주의 시절 우편엽서는 이국의 침탈과 맞물린 근대성이 만들어낸 ‘여가’나 ‘관광’이라는 문화에 호응하는 이미지 상품이었다. 서쪽 사람들이 바라보는 오리엔탈, 즉 동양의 이미지는 ‘에그조틱(exotic)’이란 단어로 포장되어 팔려 나갔다. 같은 동양이지만 일본이 바라보는 조선의 이미지도 에그조틱했다. 조선을 둘러본 일본 관광객들이 수집해서 돌아가는 전리품 중의 인기상품이 우편엽서였다. 조선 기생들은 우편엽서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욘사마팬들이 명동에서 배용준 브로마이드 사진을 수집하듯 일본 남성들은 자기 품에 안고 싶은 조선 기생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가정으로 돌아갔다.

‘네모난 화면 헤치며 살며시 다가와’ 유혹했던 TV속 샴푸의 요정은 네모난 사진에 이미 출현했던 것이다. 조선 기생은 미활 비누 광고에, 에그조틱한 우편엽서에 팔려 나갔다. 사진이라는 네모난 격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론가 ‘존 버거(John Berger)’의 시선처럼 네모난 프레임은 세상을 소유하려는 금고일 수 있겠다. 8장 세트로 구성된 조선 기생들의 사진은 ‘청초 우아 조선미인집’, ‘기생염자팔태’, ‘조선풍속기생’ 등의 이름으로 조선 토산품 가게에서 팔려나갔다. 조선은 그렇게 팔려 나갔나보다.


사진공책을 쓰는 김창길입니다. http://photonote.khan.kr/에 그동안 적어놨던 사진공책들이 있습니다. 인생 전반전이 신통치 않았다고 판단했던 사진공책의 필사자는 후반전에 다른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우선 전반전을 바라보았던 시선을 바꾸어야겠다 싶었습니다. 다르게 바라보고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고민들을 사진공책에 적어봅니다. -경향신문 사진부 차장 김창길 cut@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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