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jung Kim
2019.dec 4.
유투브가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하는가, 노동해방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착취를 고착화시키고, 공론장을 자본의 독점 논리에 넘겨주는 역할을 할 것인가? 후자 같은 우려는 분명 근거가 있다.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 소셜 미디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독점기업들에 대한 전 사회적 통제와 개입이 필요하다.
페친 허석렬 사회학자께서 유투브 내용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어서, 1936년 발터 벤야민의 글 " 기술적 재생산 시대에 예술 작업이란" 이후, 발터 벤야민과 테오도르 아도르노 사이 논쟁을 소개한다.
알렉스 로스 ( 음악 예술 평론가)가 예술작품의 진정성 , 기술발달이 가져온 예술의 성격 변화 등에 대해 기고한 글이다.
발터 벤야민은 알려졌다시피, 대중문화의 탄생과 복사 기술의 발달로 인해 노동해방 가능성이 과거 부르조아 고전 클래식 시대보다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1936년 당시는 영화, 사진 기술, 팝 음악 등이 새로운 대중예술로 등장하던 때다.
벤야민은 '아우라 aura'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예술 작품이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 특정 장소에 있는 그 고유한 특질을 아우라'라고 정의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렘브란트 같은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그림들이 전시된 방에 우리가 함께 서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그 예술 작품 사진은 그 작품의 아우라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복제품은 중세 시대 순수 예술관과 충돌한다. 작품에 대한 순수 의식(제사같은 의례)이 결여된 불경스런 태도다. 그런데다 다빈치의 천재성 창조성은 그 복사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러한 아우라의 소멸에 대해 탄식하지 않았다. 예술이 중세시대에는 사회적 의례( ritual), 그러니까 기독교 풍습이나 관행들에 종속되었다. 이것은 사회 계급 계층적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술발달로 인해 오히려 이러한 종속관계가 해체되었다고 발터 벤야민은 해석했다.
예술이 벨벳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벤야민이 이러한 중세 예술의 보수적 사회기능과 달리, 20세기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발달한 대중예술 (영화, 사진, 팝 음악 ) 이 사회 정치를 바꾸는 급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생각 배경에는 브레히트가 있다. 발터 벤야민이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베르토르 브레히트와 교류하면서, 그 대중예술의 해방 가능성을 본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자들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가를 봤고,
1929년 지가 베르토프 Vertov 가 만든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Man with a movie camera"와 같은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 가능성을 추출해냈다.
이와 같은 벤야민 생각과는 다르게, 아도르노는 발터 벤야민이 브레히트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부르조아 예술을 반혁명 범주에 너무 성급하게 집어 넣어 버렸다고 평가했다.
아도르노는 1936년 한 편지에서, 자기 친구인 벤야민이 영화와 다른 대중예술을 너무 '낭만화'해버리는 새로운 환상에 빠져 버렸다고 불평했다.
아도르노는 토마스 만, 파블로 파카소, 배르크 같은 자기만의 정신세계가 분명한 작가들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비롯된 미국 흑인 재즈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벤야민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에서 1940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나치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고 비관하면서. 아도르노는 1969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
기술발달과 대중예술의 성격 변화에 대한 토론을 할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다시 유투브 이야기를 하자면, 유투브가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키는 공적 토론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적 소비양식만을 더 발달시키거나, 극우파와 같은 극단세력들의 정거장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결국 우리들의 실천력 문제이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노동자 시민들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투브를 활용할 수 있는가? 이게 관건이 될 것이다.
주 52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 조건 하에서, 유투브는 또 하나의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이미 유투브 탄생과 더불어. 10년 전에 논의했어야 할 주제지만.
(동네 커피 집에서 잠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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