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인 책임자는 징역 2년, 남편 위해 싸운 노동자는 5년6월···이게 공정사회 입니까
이혜리 기자입력 : 2021.11.15 14:17
‘경마 기수’ 고 문중원씨 아내 기고문
저는 비정규직도, 해고자도 아닙니다. 저는 아빠를 잃은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 남편은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문중원입니다. 남편은 10년 넘게 경마기수로 일하다 한국마사회의 비리와 경마기수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2019년 11월29일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저한테는 너무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이었고 남편이 가슴 속에 품었던 억울함과 한을 대신해서 풀기 위해 서울에서 100여 일 동안 한국마사회를 상대로 투쟁을 했습니다. 6살, 8살이었던 어린 두 아이들을 부산에 남겨 놓은 채 무작정 서울로 갔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냉동차 안에 넣고 드라이아이스를 이불삼아 덮어주며 100일간 서울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남은 가족들이 전부였고 한국마사회라는 거대한 조직과 싸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올라간 서울에는 저와 같은 마음으로 손을 잡아준 분들이 많았습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님도 저희 가족과 함께 있었습니다. 문중원 열사의 일은 모든 비정규직의 일이라며, 100일 동안 저희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청와대 행진, 몸을 기어서라도 알려야했던 오체투지, 간절한 염원을 담았던 청와대 앞 108배, 전국에서 함께했던 희망차량, 곡기를 끊어서라도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던 단식투쟁. 이 고통의 길에 김수억님이 함께 했습니다.
정부와 한국마사회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냉동차 안에서 새해를 맞았고, 설 명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2월27일이었습니다. 광화문에 설치되어 있었던 분향소가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구청 직원과 용역들이 칼과 가위를 들고 분향소를 갈기갈기 뜯어냈습니다. 소복을 입은 저는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지만, 그들은 폭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때 대책위에 함께 했던 많은 분들과 김수억님이 분향소를 끌어안고 싸웠습니다. 용역들에게 끌려 쓰레기더미 위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만약 김수억님이 안 계셨다면, 다른 연대자들이 없었다면, 제 남편은 아무도 모른 채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님이 지난 재판에서 불법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6월을 구형받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그를 포함해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22년 형을 때렸습니다. 김수억님은 기아차 화성공장에 불법 파견된 노동자입니다.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친 일이 불법인가요?
불법으로 파견시킨 책임자는 어떤 처벌도 없고, 불법을 멈추라고 요구한 노동자들이 무슨 죄입니까?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인간답게 살고자 외친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님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만들고 해고시킨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한국마사회 책임자들이 재판 중에 있습니다. 남편을 포함해 한국마사회에서 부당함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8명의 기수 관리사들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남편이 죽기 전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최근 검찰은 기수들을 죽음으로 내 몬 책임자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인간답게 살고자 외친 사람이 죽음으로 내 몬 책임자보다 더 큰 죄를 지은 겁니까? 희대의 성착취범이었던 양진호가 받은 형량이 징역 5년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김수억님이 징역 5년6월을 받으라니, 이게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감옥에 가두어야 할 사람들은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한국마사회 관리자들이며,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경영자들입니다. 제발 간절히 호소합니다. 시대의 양심을 감옥에 가두지 말아주십시오.
2021년 11월 15일 문중원 열사 아내 오은주 드림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111151417001#csidx048deb47fd5685eb93415185b3a15ca
[채널예약]‘뉴스토리’ 기수들의 잇따른 죽음, 왜?
박현숙 온라인기자 mioki13@kyunghyang.com
입력 : 2020.02.07 12:32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기고 떠난 석 장의 유서 ‘뉴스토리’. SBS 제공
지난해 11월 29일. 고 문중원 기수가 석 장의 유서를 남긴 채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숙사 안에서 숨졌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가 세상을 떠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부터 네 명의 기수와 세 명의 마필관리사가 세상을 등졌다. 한 사업장에서 7명이나 되는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 기수가 남긴 유서에서 죽음의 단서를 찾아봤다.
“세상이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는지….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 거절하면 말도 안 태워준다”라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유서에는 조교사(경마 경기의 감독 역할을 하는 직책)의 부당한 지시 내용이 들어있었다. 또 마방 배정 심사 비리 의혹과 같은 일도 빼곡히 적혀있었다. 문 기수는 조교사가 기수에게 “말을 대충 타라”는 지시를 했다고 했다. 이를 거부하면 다음부터는 다친 말을 타거나 말을 탈 기회가 없었다고도 했다. 기수와 조교사는 마사회와 계약관계를 맺은 개인사업자다. 조교사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상금을 타지 못하면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어려웠다고 문 기수는 털어놨다.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절한 문 기수는 조교사 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2015년 5월 최연소로 조교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마방 배정 심사에서 잇따라 떨어지며 4년 넘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공고가 나면 마사회 간부와 친분이 있는 조교사가 배정받을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2월 8일(토) 오전 8시 방송되는 SBS ‘뉴스토리’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왜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부산경마장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사회가 말하는 이른바 ‘선진 경마’는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