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안철수 대통령 후보 출마 기자회견 평가 (1) 안철수 정책기조 비판: 경제정책
- 가사 1절도 부르기 전에 불합격이다.
안철수씨는 .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위 문장에서 감지되는 안철수씨의 경제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안철수 선호도는 조제프 슘페터의 자본주의 혁신 innovation 이노베이션 강조이다. 소위 슘페터가 말한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 개념이다. 이 혁신(innovation)을 숭배하면서 자기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 미국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이고, 이를 그대로 복사한 사람들이 안철수씨이고 또 2007년 유한 킴벌리 문국현 사장이었다.
(2) 안철수씨는 앞으로 자기 개인 성공 경험에 기초해서 경제관을 발표할 것이다. 예상되는 안철수씨의 경제정책 핵심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금 경제민주화나 복지 달성은 우선 한국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이윤창출 방식의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안철수씨의 오류는 우선 한국 자본주의와 그 성장동력의 사실관계로부터 비롯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 부문은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전자, 중화학 공업 등 전통적인 2차 산업부문이다. 안철수씨는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망각하고 있다.
(3)안철수씨의 연설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 그 진단과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대졸 실업 청년부터 노래방에서 알바하는 가정주부,52세에 은퇴한 힘이 남는 아버지들에 이르까지)는 한국 경제 1인당 국민총생산(GDP)는 성장하고 있고 그 평균값은 올라갔지만,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나 1인당 중간값 (Median: 가장 많은 숫자의 국민들의 소득값: 중위소득) 은 하락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조중동과 보수적인 경제신문들 조차도 언급하고 있는 1% 대 99% 양극화 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안철수씨의 대안이 있긴 하다. 안철수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은 "한쪽 편에서 끊임없이 성장이 이뤄져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 재원이 복지나 경제민주화 쪽으로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정답...성장 없는 경제민주화는 바퀴가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라고 생각한다"
(4) 그러나 이러한 안철수 발언 "성장 먼저, 그 과실을 분배 = 정답" 이런 등식의 문제점은, 소위 신-고전파나 신-자유주의자들, 통화론자들이 내세운 "낙수 효과 trickle down"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거나, 오히려 1%:99% 사회로 가버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수출이 둔화되고 불황형 무역흑자가 계속된다면, 현실적으로는 그리스, 스페인에서 노동자들에게 저항을 받고 있는 ‘긴축정책’이 안철수와 문재인 등 민주당 정권이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자나 좌파가 아닌, '복지'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케인지안이나 최근 신자유주의의 대안들로서 대두되는 '(포스트) 케인지안' 등, 그리고 심지어 미국 민주당 내 진보세력 (오바마 행정부의 친-월스트리트, 친-금융자본 정책을 비판하는)도 소득 불평등 시정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가처분 소득 증가' '소득 불평등 구조 개선' 등은 케인즈 Keynes가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총 수요 감소'에 있지 ‘과소비’에 있지 않다고 본 것, 그리고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상품 (가치) 실현의 위기에 있다고 본 것과 연관이 있다.
미국도 1930년대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루스벨트 정권 하에서 매리너 에클스 (Marriner Eccles)가 미 연방은행장 (FRB) 을 맡으면서 실시한 정책들은,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기조로 공공투자비를 늘이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 이를 통해 고용을 창출해서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키는 방향이었다.
(미국 유타 주 태생 메리너 에클스, 몰몬교와 자본가 출신 배경이었지만,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창: 미국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민주당 루즈벨트 거시정책에 적극 개입: 미 연방은행장 역임)
이러한 소득 불균형 불평등 개선을 통한 유효수요의 창출이 공황의 타개책이었던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구체적인 예를들자면 다음과 같다. 삼성 이건희 1명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그림을 90억원 주고, 소비하는 것보다, 10만명이 동네 치킨집 통닭 1마리 9,000원 주고 구매하는 게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놓고도, 지금 한국경제처럼 10대 재벌 위주의 <수출 주도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체제 (*선진화 모델로 포장함)로 갈 것이냐, 아니면 최근 한국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케인지안의 복고, 혹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케인지안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들을 제시할 것이냐 (*좌파의 입장에서, 복지의 주체는 행정관료나 엘리뜨 교수들의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제시보다는 실제 정치주체들로서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순한 경제적 관점의 복지를 뛰어넘는 정치-경제 공동체 건설) 등 여러가지 패러다임들이 존재한다.
안철수씨가 말한 문장은 비문일 뿐더러, 내용도 '혁신'만 강조하고 '선 경제성장 후 분배'라는 실패한 패러다임을 다시 주장하고,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무지와 오만함을 보여줬다. 안철수 현상에 대한 정치적 이해를 하는 것과, 안철수와 그 캠프가 말하는 실제 대안들을 구별하는 정치적 현명함이 필요하겠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 정치 발전이다.
(안철수 대통령 후보 연설문과 기자회견 답변을 보고 드는 단상: 9월 20일)
안철수씨의 내적 모순 가능성: 안철수씨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IT 업계에서 살아남아서 성공한 사례가 2%, 3%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 하에서, 미국 IT (dotcom)버블이 꺼져가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도 왜 98%, 97% 창업 기업들은 다 망했거나 적자를 냈고, 안철수씨 회사 등 2%만 살아남거나 흑자를 냈는가? 그 이유가 슘페터가 말한 "혁신" "창조적 파괴"를 하지 못해서 그렇게 파산하거나 적자기업이 되었는가? 그 문제에 안철수씨는 답해야 할 것이다.
2012.10.01 23:14:38
안철수, 문국현 등이 숭배하는 자본주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Drucker)가 원용한, 조제프 슘페터의 '혁신' '창조적 파괴 과정'이란 무엇인가?
독일과 체코 국경 모라비아 (집시의 고향으로 유명한 지방으로, 생활세계 Lebenswelt 개념의 고안자 에드문트 훗설 Husserl의 고향이기도 하다) 태생, 당대 좌우파를 막론하고 새로운 지식의 생산지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공부했던 슘페터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943>, "창조적 파괴 과정" 이라는 장을 보면, 창조적 파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국내 국외를 막론한 새로운 시장들이 형성되고, 장인들이 일하는 공장이나 숍으로부터 시작해서 US 철강과 같은 (대규모) 비지니스로까지 조직 자체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을 보면, 어떻게 산업적인 형태 변이가 일어났는가를 알 수가 있다. 생물학적 용어를 빌려쓰자면, 이러한 산업적 형태 변이는 '외부로부터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내부로부터' 경제구조를 끊임없이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시말해서 옛 것을 파괴시키고 새로운 것을 줄기차게 창조시켰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면모이다. " (Joseph A. Schumpeter,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London, Unwin University books, p.83 ) (CEO출신 문국현과 안철수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피터 드러커의 '창조적 파괴' 개념)
그런데 문제는 경영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느 누구나 '창조적 혁신'을 긍정적인 단어로 쓸 수 있겠고, 기술발달과 창의적 교육과 이 '창조적 파괴'를 연결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역사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창조적 파괴'란, 제 2차 세계대전과 같이 전쟁을 통해서, 자본주의 과잉생산의 물리적 시설인 공장 뿐만 아니라 노동력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파괴하고 살상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창조적 파괴'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마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 혹은 고려청자를 빚어낸 고려시대 이름없는 도공의 '노동'을 의미하는 것처럼 미화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자본주의 하에서 창조적 파괴와 미학적 의미에서 '창조적 파괴'와는 동일하지 않다. 데이타에 잡히지 않았지만, 안철수씨 보다 훨씬 더 '창조적'인 사람들도, 자본주의적 상품화나 그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97년~ 2005년 사이 IT 업계에서 망한 97%, 98% 안에 속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위와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씨는 앞으로 한국 경제가 살 길은 '창조적 파괴' '융합'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믿고 있고, 그 이론적 근거를 피터 드러커와 같은 경영학 미래학자들, 그가 찬양하는 숨페터의 권위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한국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시장이나 여론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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