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혼잎, 남보라 기자. 이유진 기자. 김현빈, 정준기 기자.
"하마스는 순수한 악, 다만 보복은 법대로"...이스라엘 거들며 단속한 바이든
권경성 기자 입력 2023.10.11 16:30 0 0
2차 연설서 미국인 사망자·인질 거론하며 격분
민간인 피해 우려 의식한 듯 “민주국은 달라야”
확전 차단에 군사 지원 초점… 대책 수립 병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두 번째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순수한 악”이라는 노골적 표현까지 동원해 잔혹성을 부각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다만 선은 그었다. 민간인 피해에 눈을 감는 무차별 보복은 안 된다고 했다.
“그냥 죽인 게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하마스의 행태를 “순전한 악행”으로 규정했다. “이스라엘에서 1,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됐고, 그중 최소 14명이 미국인이었다”고 개탄하면서다. 그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진 부모, 살해된 아기, 평화를 찬양하려 음악 축제에 왔다가 도륙된 청년, 성폭행당한 여성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하마스의 잔인성을 부각했다. 하마스가 인질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하는 데 대해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이 떠오른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일(7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런 의도적 격분엔 두 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하마스 소탕 군사 행동에 대한 명분 제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나라처럼 이스라엘도 이런 악의적 공격에 대응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반(反)인도주의 논란의 무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고 병원, 학교 등 시설을 무차별 폭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가 붙잡은 인질 중에는 미국인도 있다”며 “(이스라엘 지원은) 세계 안보, 미국 안보에 관한 것”이라고 여론에 호소했다.
이스라엘을 거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 여론 지형이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아서다. 보복 차원에서 가자지구에 들어가는 물과 식료품, 전력, 연료를 끊기로 한 이스라엘의 결정에 대해 유럽연합(EU)과 유엔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이스라엘의 보복이) 분노가 지나친 군사적 대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 직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표적 살해하는 테러분자와 달리, 민주 국가는 법을 지킬 때 더 강하다”고 단속한 배경이다.
시리아·레바논서 포탄·로켓… 전선 넓어지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10일 한 남성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초점도 확전 차단에 맞춰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격 무기 대신 대공 방어 체계 ‘아이언돔’을 보충할 요격 무기를 제공 품목으로 소개한 것은 그런 의도일 공산이 크다. 세계 최대 핵 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호 등 항모타격단을 이스라엘 인근으로 전진 배치한 것도 “(이란 등) 전쟁 확대를 모색할 수 있는 국가나 비국가 행위자들에 억제력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라는 게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설명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라든 조직이든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자에게 한마디만 하겠다”며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전선은 확대될 조짐이다.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 등 친(親)이란 ‘시아파 벨트’ 무장 세력들은 미국이 가자지구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면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등으로 공격하겠다고 10일 일제히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이스라엘 영토로 로켓이 날아오거나 포격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시나리오별 비상 대응책 수립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시나리오에는 하마스의 오랜 배후인 이란의 개입에 따른 확전도 포함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향후 전개될 수 있는 잠재적 시나리오에 대해 동맹·파트너 국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2일 이스라엘에 급파된다. 하마스에 납치된 미국인들의 무사 귀환 방안을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과 논의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LIVE ISSUE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75년간 계속된 피의 보복... '극우' 네타냐후가 불씨 키웠나
조아름 기자 입력 2023.10.08 19:00 수정 2023.10.08 22:12 2면 8 5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충돌 본격화
이스라엘, 가자지구 봉쇄 "천장 없는 감옥"
올해 9월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 227명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무장 정파 하마스가 탈취한 이스라엘 군용 차량에 올라타 환호하고 있다. 가자지구=AP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확대된 양측의 무력 충돌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속돼 온 오랜 갈등이 누적돼 온 결과다. 민족과 종교 갈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양측 간 분쟁은 과거 몇 차례의 평화 협상에도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이스라엘 우파의 상징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한 후 긴장이 더욱 고조되며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정세에 암운을 드리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이하 이·팔 분쟁)은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옛 팔레스타인 영토에 건국한 이후 본격화했다. 수천 년 동안 반(反)유대주의에 시달리다 '약속의 땅'에 돌아왔다고 믿는 이스라엘 유대인과 졸지에 '이교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간 갈등이 분쟁의 핵심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라는 민족 문제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갈등이 이·팔 분쟁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하마스 장악... '중동의 화약고'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인 200만 명 이상이 거주 중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등에서 수십 년 동안 분쟁을 이어왔다. 특히 가자지구는 양측 사이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아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곳이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이 이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운 후 양측의 충돌이 계속됐지만, 2005년 평화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자국민과 군대를 철수시켰다. 2007년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후 상황은 급변했다. 하마스가 무력 저항하자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 등을 이유로 장벽을 세워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외부와 고립된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승인 없이는 외부로 나갈 수도 없다. 경제활동도 제약받는다. 이곳이 '천장 없는 감옥'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2021년 5월 라마단 기간에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을 찾은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 경찰이 무력 충돌해 팔레스타인인 250명이 사망했다. 하마스는 이번 작전을 '알아크사 홍수'로 명명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임을 시사했다. 이스라엘도 '철의 검' 작전을 통해 대대적 보복 공격에 나섰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일지. 그래픽=신동준 기자
중동, 다시 '피의 전쟁'...이스라엘 사망자 600명, 팔레스타인의 2배
김현종 기자 입력 2023.10.08 18:10 수정 2023.10.08 22:55 1면 0 2
팔레스타인 하마스, 이스라엘 기습 공격
양측 900명 사망… 수십명 인질로 잡아
이란·헤즈볼라 개입… 대리전 확전 우려
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의 건물 앞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좌절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날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에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가한 데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선언하고 이틀째 가자지구를 포격하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중동이 또다시 전쟁의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 폭격하고 이스라엘군이 보복하며 하루 만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에서 600명, 팔레스타인에서 300명이 숨지는 등 사망자가 최소 9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상대 궤멸”을 주장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됐다. 특히 팔레스타인보다 희생자가 많이 나온 이스라엘은 먼저 물러설 리가 없다. 전쟁이 서방과 중동의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은 하마스의 공격 배후를 자처했고,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8일 이스라엘 북부 공격에 가세했다. 헤즈볼라까지 전면전에 나서면 이스라엘은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 지원을 선언했다.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시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아랍권 국가들은 일단 양측 모두를 비판했지만, 전쟁이 본격화하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중동의 안정 자체가 "피 묻은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비관적 진단이 나온다.
새벽 포격 후 무장대 침투… 구급대원까지 공격
AP통신과 아랍 매체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7일 오전 6시 30분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국토 전역에 수천 발의 로켓 포격을 발사했다. 하마스는 5,000발을, 이스라엘은 2,000발을 쐈다고 각각 주장했다. 포탄은 수도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인근까지 도달했다. 이날이 유대인 명절 수확 축제(수코트) 기간이어서 휴일을 보내던 이스라엘군과 시민들이 공격에 무력하게 노출됐다.
오전 9시 45분쯤부터는 하마스 무장 부대가 낙하산과 모터보트 등을 타고 가자지구와 인접한 이스라엘 22개 지역에 침투했다. 이들은 경찰서와 주택,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장교를 포함한 군인과 시민 수십 명을 인질로 납치했고, 이스라엘 구급차 2대를 탈취했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망자는 최소 600명, 부상자도 2,000명이 넘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을 시작한 아랍연합국 기습공격 이후 최대 규모의 침공을 당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하마스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는 “오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는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스라엘 "전쟁 선언"… 지상군 투입 검토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서며 전쟁을 선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치명적 공격 때문에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며 개전을 선언했다. 전투기 등을 동원한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 주민 최소 300명이 죽고 2,000명 가까이 다쳤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략 수정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후 막대한 전쟁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을 ‘말려 죽이는’ 정책을 취했다.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수시로 포격을 가해 주민들을 죽이고 경제를 틀어막았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최근 15년간 이스라엘 포격으로 팔레스타인인 6,407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308명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권 국가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 수단, 모로코와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올해는 미국의 중재로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국교 정상화를 논의 중이었다. 네타냐후 연립정부에 참여한 극우 인사들은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를 모독하며 팔레스타인을 자극했다.
8일 이스라엘 포격에 무너져 내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건물 앞에서 주민들이 생존자를 찾기 위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은 초강경 노선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의 책임자 나탄 삭스는 NYT에 “이스라엘의 비용 계산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마스는 이번 전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며 양보 없는 싸움을 선언했다. 칼리드 카도비 하마스 대변인은 알자지라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알아크사 등에 대해 저지른 만행을 국제사회가 중단시켜달라. 이것이 이번 전투를 시작한 이유”라고 밝혔다. 작전 이름도 ‘알아크사 홍수’로 정했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과 연대" 이란 북부 포격
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방공 드론이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을 격추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동 정세는 순식간에 소용돌이쳤다. ‘편’이 확고한 국가들은 전쟁에 개입했다. 헤즈볼라는 8일 “팔레스타인 저항군에 연대한다”며 레바논·시리아 접경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점령지 ‘셰바팜스’에 로켓과 박격포를 발포했다. 가지 하마드 하마스 대변인은 7일 BBC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기습 작전을 이란이 지원했다”고 공개했다.
이스라엘의 우방 미국 역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혐오스러운 공격을 명백히 규탄한다”며 이스라엘 지원 의사를 밝혔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이스라엘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사우디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우디는 하마스 공격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합법적 권리를 빼앗은 결과”라면서도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규탄하지 않은 채 “양측의 상황 악화에 즉시 중단과 자제를 촉구한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조너선 파니코프 중동 국장은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아랍의 분노는 커질 것이며 사우디가 현재의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가자지구 폭격에 박수치던 이스라엘 이 지역, '통곡의 도시' 됐다
전혼잎 기자 입력 2023.10.08 16:10 수정 2023.10.08 16:21 2면 21 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계속되는 싸움에
시신 밀려들고 “실종자 찾는다” 외침만
8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건물 잔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스데로트가 하루아침에 '피의 도시'가 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다.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의 복수의 악순환으로 양측 민간인 수천 명이 죽거나 다쳤다.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시파병원 영안실에는 시신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시신을 보관할 곳이 모자라 병원 바닥에 안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에 가자지구의 슈퍼마켓과 빵집, 약국은 사재기 인파로 넘쳐났다.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국경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향했다. 세 자녀와 함께 피란길에 오른 자밀라 알 자닌은 “아이들이 공포에 질렸다. 모든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굉음이 났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가자지구 주민들은 일상이 된 피란에 희망을 잃었다. 자녀가 5명인 움 무함마드 아부 자라드(35)는 “폭격을 피해 남쪽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왔지만, 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지쳤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NYT에 말했다.
7일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사망한 이스라엘인의 시신이 모포에 덮인 채 거리에 놓여 있다. 스데로트=AP 연합뉴스
공습이 끊이지 않는 가자지구와 달리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진 이스라엘도 전날 하마스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가자지구와 불과 1㎞ 떨어진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는 하마스 대원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숨진 이스라엘 민간인의 시신이 널려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스데로트는 공습을 당하는 가자지구를 구경하러 나온 이스라엘인들이 미사일이 떨어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한 것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극장, ‘스데로트 시네마’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인질로 붙잡은 탓에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이들의 애끓는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아내와 두 딸이 실종됐다는 요니 야셔는 이스라엘 공영 라디오 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하마스에) 납치됐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하마스가 공개한 영상에서 실제 그의 가족이 붙잡혀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하마스 옹호한 아랍연맹 "이스라엘의 폭력 정책이 전쟁의 원인"
김현종 기자 입력 2023.10.08 11:49 수정 2023.10.08 13:48 3 0
아불 게이트 사무총장 "이스라엘 폭력 계속돼"
이란·튀르키예도 "팔레스타인 자위권 존중해야"
7일 이스라엘 공습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일대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대규모 교전을 벌인 가운데, 아랍연맹(AL)이 사태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묻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아흐메드 아불 게이트 AL 사무총장은 그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이 “시한폭탄”이었다고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충돌에 대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아볼 게이트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폭력적이고 극단주의적인 정책은 가까운 미래에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한 기회를 빼앗는 시한폭탄이다"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이날 하마스의 공격이 “그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끊임없이 저지른 범죄 행위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이날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며 “(양국은)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인권과 자위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별도의 발표문에서 “이번 하마스 군사 작전은 이스라엘의 전쟁광 정부 인사들과 그들이 벌여온 도발적인 군사작전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항이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그들 고유의 불가침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으킨 전투”라고 규정했다.
이날 오전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에 미사일 약 5,000발을 발사하는 등 기습 공격을 가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보복 포격을 하며 양측에서 최소 530명이 목숨을 잃고 3,300여 명이 다쳤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하마스, '테러리스트'인가 '자유의 투사'인가...서구의 이중적 시선
전혼잎 기자 입력 2023.10.11 04:30 3면 1 0
서구권서 ‘정치세력’ 인정 시선 존재
민간인 대상 테러로 비난 여론 커져
이 “하마스 ‘테러 조직’ 정체 드러나”
알자지라 “서방의 비판, 이중 잣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충돌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폭격에 의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하마스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단체로 보던 일종의 환상이 깨졌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바라보는 서방 일각의 긍정적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지난 7일 기습 공격을 통해 군인뿐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 등 최소 900명의 이스라엘인을 숨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암암리에 하마스를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줬던 견해도 설 자리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민간인 무차별 살해는 최소한의 ‘선’을 넘은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한편에서는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하마스의 이번 테러에 분노하는 세계가 그간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죽음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는 이유다. 하마스 편을 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민간인 무차별 공격에 “하마스는 테러 집단” 비난
NYT는 이날 “(이번 전쟁 전까지)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이지만, 가자지구에서 유용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면서 역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조용한 거래’를 해 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2005년 가자지구 철수 이후로는 하마스가 이 지역의 안정 상태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AP통신도 최근 수년간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보다 가자지구 통치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선 젊은 세대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하마스를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s)’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이스라엘의 탄압’에 맞서는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 책임자 나탄 삭스는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기던 이들에게 하마스는 민족주의적 저항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 발생 사흘째인 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스라엘을 위한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그러나 민간인을 향한 테러와 살인, 납치 행위를 한 하마스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리게 됐다고 NYT는 짚었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들은 가자지구 안정이 하마스의 분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항상 하마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제 전 세계가 안다”며 하마스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까지 비유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지도자들도 잇따라 하마스를 비판하며 이스라엘 편에 서고 있다.
알자지라 “서구, 그간 팔레스타인 살해엔 침묵”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9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결국 ‘위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올해 9월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227명에 달하는 동안, 서방이 침묵을 지켰다고 꼬집었다. 같은 시기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29명이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도우면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의 진보 평론가 에런 바스타니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민간인 대상 공격은 (사실상)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건 분명한 이중 잣대”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근본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내 35개 단체로 구성된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은 “지난 20년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야외 감옥’을 강요당했다.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뉴욕에 사는 대학원생 마리암 알라니즈는 AFP통신에 “하마스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하마스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의 것”이라며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동일시를 경계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LIVE ISSUE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이 모든 책임"...미 하버드대 학생들 하마스 편든 이유는
남보라 기자 입력 2023.10.10 16:13 수정 2023.10.10 16:24 12 0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보도
공화당 의원 "가증스러운 일"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이 7일 페이스북에 올린 성명서. 페이스북 캡처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 미 정치권 인사들은 학교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Harvard Palestine Solidarity Groups)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35개 학생단체가 이 성명에 서명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모든 폭력 사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이스라엘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의 사태는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가자지구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야외 감옥’에서 살도록 강요당했다"며 “이스라엘의 폭력은 75년 동안 팔레스타인 존재의 모든 측면을 구조화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들은 또 하버드대 구성원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절멸 행위 중단"을 촉구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학 캠퍼스 입구. 케임브리지=AP 연합뉴스
정치권과 하버드대 동문들 사이에서는 이 성명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폴리티코는 "하버드대 출신의 저명한 동문들이 성명을 비난하지 않은 학교를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공화당 성향의 동문들은 학교가 이스라엘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대 총장과 미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는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지금까지 하버드 지도부의 침묵과 이스라엘만을 비난하는 학생단체의 성명이 널리 보도되면서 하버드는 유대 국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행위에 대해 기껏해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공화당의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도 "하버드 학생단체가 700명이 넘는 이스라엘인을 죽인 하마스의 야만적인 테러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고, 하버드대 출신인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도 "하버드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고 자신의 엑스에 에둘러 하버드대의 침묵을 비판했다.
논란이 들끓자 하버드대는 9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하버드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이를 쉽게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분열과 적대보다는 인간성과 공유된 가치에 기반한 조치들이 취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폴리티코는 "(성명을 낸) 학생단체 중 일부는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하는 곳"이라며 "팔레스타인 지지 활동가와 학생단체는 전국적으로 흔하며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위와 항의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1년 전부터 하마스 훈련시켜" 이란 배후설 여전... 확전의 키도 이란 손에
입력 2023.10.11 04:30 4 1
하마스·헤즈볼라 등 중동 무장세력 돈줄 쥔 이란
복잡했던 이스라엘 기습 작전에 자금·기술 댔나
"가자지구 소멸 시 이란 참전" 예고...확전 우려도
8일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방공 시스템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쏜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아슈켈론=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는 시선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란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확고히 지지하지만 이번 대응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특히 하마스가 최소 1년간 이번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이란으로부터 훈련과 무기를 지원받았다는 구체적 증언까지 나왔다. 공격의 배후이든, 향후 직접 개입이든, 결국 이란의 행보가 이번 전쟁의 확대 여부를 좌우할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하마스, 레바논 '훈련 캠프' 다녀왔다"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서방·중동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인용해 “하마스가 이스라엘로 날려 보내고 있는 로켓과 드론 4,000대 이상을 제조할 수 있도록 이란이 기술적 도움을 줬다”고 보도했다. 일부 하마스 조직원은 레바논 ‘훈련 캠프’에도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이란 후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기술고문들로부터 첨단 군사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WP는 전했다. 헤즈볼라에 대해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8월부터 이란,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한 세력”이라고 지목했다.
물론 이란과 하마스는 ‘이란 개입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미국조차 확언을 피하고 있다. 조나단 파이너 미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이날 미 ABC방송에서 “미국은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광범위하게 연루됐다고 믿고 있다”면서도 “직접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단은 신중 모드를 취한 셈이다.
중동 테러단체 키우는 이란...확전에 큰 영향력
9일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마을 카프르 킬라에서 한 남성이 팔레스타인과 헤즈볼라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북부로 침투한 무장대원 다수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카프르 킬라=AP 연합뉴스
이번 기습의 정밀도나 규모를 감안했을 때, 하마스가 외부 도움 없이 단독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긴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중동 대테러 작전을 이끈 경험이 있는 마크 폴리메로풀로스는 “육지·바다·하늘과 국경을 넘나든 복잡한 공격, 이를 위해 필요했을 훈련·인원·통신·무기의 규모는 이란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특히 패러글라이더 공격은 가자지구 밖에서 훈련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 서방 정보당국자도 “작전 준비는 최소한 지난해 중반부터 시작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마스를 수년간 지원해 왔다는 점에서, 작전 배후로 이란이 유력하다고 미국 CNN방송은 설명했다. 2020년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이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지원한 돈은 연간 1억 달러(약 1,350억 원)에 달한다. 마이클 아이젠슈타트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도 “이번에 사용된 전술은 이스라엘의 사기를 꺾고 회복력을 약화하기 위해 수개월에서 수년마다 공격한다는 이란의 작전 개념과도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확전 여부도 이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중동 무장단체의 자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 고위급 간부 알리 바라케는 이날 AP통신에 “이란군 장교들이 공격 계획을 지원했다거나, 베이루트에서 열린 사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이란과 거리를 두면서도, “가자지구가 소멸 위기에 처한다면 이란과 헤즈볼라도 참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게다가 지난 8일 헤즈볼라가 레바논 내 이스라엘 점령지인 골란고원에 로켓과 박격포를 쏘며 교전을 벌였고, 이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국경에 전차부대를 보낸 것도 ‘제2의 전선’ 발생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尹 '중동 외교' 영향은?... 이란 개입, 전쟁 장기화가 관건
김현빈 기자 입력 2023.10.11 04:30 4면 0 0
“이란이 관여 안 했다고 밝힌 건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싶다는 속내”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외교가 꼬였다. 자원 부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교두보 삼아 가장 껄끄럽던 이란과도 관계 개선에 나설 참이었지만 일단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란이 무장단체 하마스의 배후로 밝혀지거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셈법은 훨씬 복잡해진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10일 중동 정세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교민 안전을 중심으로 시시각각 상황을 점검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대통령실은 일단 이번 전쟁이 당장 정부의 중동 전략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본보 통화에서 “이란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싶다는 속내”라며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것도 아랍권의 연대를 중시하는 중동 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고 하마스도 그 점을 노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경제의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중동의 사우디, UAE 등과 협력을 강화해왔다. 일종의 안전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 우방국의 주변지역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에도 중동 전쟁의 여파로 국내 경제가 타격을 입어 휘청인 전례가 적지 않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유가라든지, 환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매 순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황에 따라 정부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장기전으로 치달아 피해가 급속히 불어나거나 이란의 개입 사실이 드러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팔레스타인의 피해가 커지게 될 경우, 아랍권이 단결하거나 연합을 굳건히 하는지가 첫 번째 포인트"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란이 배후라는 게 드러날 경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스라엘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도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이란과의 관계다. 이란은 2017년 교역규모가 120억 달러(약 16조 원)를 웃돌 정도로 한때 우리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한미동맹을 중시하면서 미국과 이란 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곤 했다. 윤 대통령이 올 1월 UAE 파병 국군아크부대를 방문해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언급해 이란의 거센 항의를 받은 씁쓸한 기억도 있다.
최근 미국이 대이란 금융제재를 해제하면서 상황이 바뀌는가 싶었다. 한국의 은행에 묶여 있던 이란 원유 수출대금 60억 달러(약 8조 원)가 풀려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반면 이번 전쟁에 이란이 관여했다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미국과 보조를 맞춰 성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팔레스타인 지지선언을 한 사우디를 비롯해 한국과 경제·안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는 변함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300억 달러(약 40조 원)로 추산되는 사우디와의 투자 협력 약속에 대한 후속 논의도 연말에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유엔 "가자지구 전면봉쇄는 국제법 위반…민간인 생명 위협"
김현종 기자 입력 2023.10.10 21:39 수정 2023.10.10 21:45 5 0
이스라엘, 전기·물·식량·연료 차단
"민간인 생존 필수적인 물품 막아"
이스라엘 공습으로 잿더미가 돼 버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거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망연자실한 채 걸어가고 있다. 가자=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대해 유엔이 국제법상 불법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어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 공급을 막아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위 공격은 국제인도법에 따라 금지되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후 보복 조치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다. 가자지구 전기와 식량, 물, 연료 공급을 전부 차단했으며, 이집트도 자국과 가자지구를 잇는 국경 검문소를 10일 폐쇄했다. 이미 가자지구 주민 230만 명 중 80%가 인도적 지원에 의존했던 상황에서 나흘째 이스라엘의 공습까지 이어지며 의약품과 물, 식량 부족 문제가 속출했다. 유엔은 난민 수가 18만7,500명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투르크 최고대표는 “국제법의 취지는 분쟁 당사자가 공격을 할 때도 민간인과 민간 재산·시설·물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포위 공격은 특히 부상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서도 심각했던 가자지구의 인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하마스 작전 주도한 신적인 존재"...육성 공개된 모하메드 데이프, 누구?
신은별 기자 입력 2023.10.09 20:10 4면 13 1
"모든 수단 동원해 이스라엘 공격" 육성 명령
"매일 거처 바꿔" 베일 가려진 하마스 '핵심'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Al Aqsa Flood) 작전을 주도한 인물은 하마스 군사 조직인 알카삼 여단(IQB)을 이끄는 모하메드 데이프로 추정된다. 하마스가 작전 개시 이후 공개한 육성 파일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범죄 등을 우리는 종식시키려 한다"고 공습 이유를 밝혔다.
멕시코 언론 SDP노티시아스가 9일 보도한 하마스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IQB) 지도자인 모하메드 데이프 사진. 데이프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인 '알 아크사 홍수'(Al Aqsa Flood) 작전을 주도한 인물로 추정된다. SDP노티시아스 캡처
난민캠프 태어나 20대 하마스 합류... 테러활동 주도
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이스라엘 와이넷뉴스 등에 따르면, 데이프는 육성 파일에서 "이스라엘은 이슬람 운동을 공격했고, 알 아크사를 모독했다. 하마스 대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알 아크사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모스크다. 그는 "오늘은 더 밝고 영광스러운,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데이프는 1965년 가자지구 내 칸유니스 난민캠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본명은 '모하메드 디압 이브라힘 알마스리'이며,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1950년대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프가 하마스에 합류한 시기는 1980년대 말로 추정된다. 그는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을 납치, 살해하는 테러 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특히 군사적 식견이 상당해 로켓, 폭탄 등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프로젝트에도 다수 관여했다. 그는 200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IQB 지도자인 셰이크 살라 셰하데가 사망하자 새로 조직을 이끌게 됐다.
9일 가자지구 경계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탱크에서 장비를 만지고 있다. 이스라엘=AP 연합뉴스
매일 거처 바꾸며 수십년 감시 피해... "신성시될 것"
이스라엘은 데이프를 수차례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데이프는 이스라엘 정보당국 눈을 피해 매일 밤 거처를 바꿔가며 숨어 지내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아랍어로 '손님'이라는 뜻을 가진 '데이프'로 불리게 됐다.
지난 20여 년간 최소 7차례 공습을 전개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데이프는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팔을 다치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휠체어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하마스 내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공개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사 조직 수장으로 활동하는 건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자지구의 알아자르대 교수인 음카이마르 아부사다는 "데이프는 신성한 인물로 여겨져 왔는데, 이번 작전으로 그는 더욱 신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이스라엘·가자 사망자 이틀 만에 1000명 넘어… 하마스 "인질 100명 이상"
권영은 기자 입력 2023.10.09 10:07 1 0
하마스 "이스라엘 확전 안 멈추면 휴전 논의 불가"
지난 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한 남성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된 건물 주변을 달리고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이틀 만에 1,000명 넘게 숨진 가운데 하마스는 100명 넘는 인질을 붙잡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주장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 고위 인사인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이날 아랍어 매체 알가드에 이같이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30명 이상의 이스라엘인을 억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면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포함해 최소 수십 명을 인질로 잡아 가자지구로 끌고 간 것으로 추정됐을 뿐 정확한 숫자는 확인된 바 없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자세한 수치 없이 '상당수'가 납치됐다고만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군인 외에 민간인들도 다수 납치됐다며 이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이슬라믹 지하드의 지도자인 지아드 알-나칼라는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언급하며 이들이 모두 풀려날 때까지 이스라엘인 인질들을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까지 이스라엘에서는 7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이스라엘 현지 언론이 전했다. 특히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 행사장 주변에서 무려 260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습이 이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사망자 수가 400명을 넘어섰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저녁까지 집계된 사망자가 413명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확대하려고 하는 동안에는 휴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젬 카셈 하마스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에 "누가 주도권을 쥐게 될지는 전황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분쟁 조정 방안을 이야기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이같이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축제현장 시신만 260구·도망치면 조준 사격...사냥하듯 민간인 살상한 하마스
입력 2023.10.09 16:39 수정 2023.10.09 16:40 3면 30 3
하마스, 축제·주택가에서 '민간인 사냥'
음악 축제 행사장에서만 시신 260구
조용한 소도시 찾아 총격...가정집 침입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에 참석한 사람 수식 명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X(옛 트위터) 캡처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극단적인 잔혹성을 드러냈다. 유대 명절 초막절(수코트)이자 주말인 7일(현지시간) 이른 아침을 노린 하마스는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상했다. 청년들이 모여 있던 야외 음악 축제 현장에선 시신 260구가 발견됐다. 낙하산, 오토바이, 모터보트 등 각종 탈것을 타고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은 소총과 박격포 등으로 무장한채 주택가와 공원, 광장 등을 가리지 않고 누비며 공격을 가했다.
1,000명 모인 축제에서 학살극 벌인 하마스
8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동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열린 노바 뮤직 페스티벌 현장에서 하마스는 민간인들을 일사불란하게 사실상 '사냥'했다. 관객 1,000명 이상이 초막절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오전 6시 30분쯤 음악이 갑자기 꺼지고 공습 사이렌이 울려 관객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전기가 차단됐다. 이어 밴 여러 대에서 하마스 대원 100여 명이 쏟아져 나와 인파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하마스는 관객들이 타고 도망치는 차량 행렬에도 총격을 퍼부었다. 행사장 비상구 입구에서 매복하다 관객들이 뛰어나올 때마다 차례로 살해하기도 했다.
한 생존자는 “수 백 명이 숨을 곳도 없는 뻥 뚫린 사막에서 맨몸으로 무작정 달려 근처 숲으로 숨었는다. 이미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고 CNN에 말했다. 다른 생존자는 “덤불 속에 숨어 경찰에 신고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납치돼 도울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도 말했다. 7일 이후 소셜미디어에는 이 축제에 참가했다가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명단이 공유됐는데, NYT는 한 명단에서 500명 이상의 이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의 음악 축제 행사장 부근에서는 최소 260구의 시신이 확인됐다. 응급구조단체 '자카'는 "시신 수습을 계속 하고 있어 희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납치돼 실종된 인원은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창 밖에 무장한 테러리스트가...주택가도 침투
7일 이스라엘 스데로트 지역에서 한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습격에 살해당한 민간인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스데로트=AP 연합뉴스
조용한 주택가도 하마스의 타깃이 됐다. 7일 기습 공격 당시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에는 “하마스가 집집마다 침입하려 한다”는 가자지구 인근 키부츠 지역 주민들의 제보가 연이어 접수됐다. 이 지역 주민인 하레츠 신문의 한 기자는 “동네에 들어온 테러리스트들이 어느 순간 창문 밖을 어슬렁댔다”며 “집안 방공 벙커에 숨어 있는 동안 우리 집 창문에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렸고, 마을 단체채팅방에 ‘(하마스가)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남부 소도시 오파킴에 거주하는 한 주민도 “총소리가 들려 집 밖에 나가봤더니 소총과 박격포로 무장한 하마스 대원이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고 NYT에 전했다. 놀란 그가 놀이터로 도망쳐 숨는 동안 하마스 대원과 대립한 그의 오빠는 세 발의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세계 최강 첩보기관의 '헛다리'... 이스라엘 "안보 대참패"
조아름 기자 입력 2023.10.08 21:30 2면 4 0
WSJ "모사드, 서안지구에 집중"
최첨단 미 아이언 돔도 무용지물
"전체 방위 시스템 실패"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건물에 연기가 치솟고 있다. 가자지구=AP 뉴시스
세계 최강의 첩보망을 자랑해 온 정보기관도, 최첨단 방공망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스라엘판 9·11 테러'라 불릴 정도의 충격을 준 하마스의 공격 앞에 이스라엘 정보망과 안보망이 동시에 뚫리며 무력화된 것이다.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대대적인 기습 공격에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스라엘 양대 정보기관인 신 베트(국내 첩보)와 모사드(해외 첩보)는 하마스의 공격 계획을 사전에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군대와 정보기관을 자랑했지만, (하마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에 빠졌다(미 CNN방송)",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로 기록될 것(블룸버그 통신)"이란 지적이 나왔다.
특히 첩보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사드는 광범위한 첩보망과 자금력 등을 보유한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정보기관으로 통한다. 하지만 모사드는 최근 하마스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폭력 사태를 부추기는 것에 집중했고, 이스라엘의 군사 대응을 피하기 위해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미 월스트리저널(WSJ)은 보도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보망을 자부하는 모사드가 사실상 '헛다리'를 짚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방위군(IDF)도 하마스가 공격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한편, 이스라엘이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해 도입한 미국의 최첨단 미사일 요격 시스템 '아이언 돔'도 하마스의 동시다발적 로켓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등 '구멍'을 드러냈다. 이스라엘은 2021년 말 감지 장치와 지하 벽 등을 갖춘 스마트 국경 시스템까지 구축했지만 방어막은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정보 및 안보 당국의 실책이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브라이언 카툴리스 정책 담당 연구원은 "이번 하마스의 침공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었다"며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감지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WSJ에 말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의 조너선 콘리커스 전 국제담당 대변인은 CNN에 "전체 방위 시스템이 실패한 것"이라며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필요한 방어를 하지 못한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