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19.2021. 원시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 같은 날 생을 마감한 딸과 사위.
1.칼 마르크스(막스)의 딸 예니 로라 막스는 23세가 되던 해 3살 많은 프랑스 청년 폴 라파르그와 결혼했다. “게으를 수 있는 자유”의 저자가 폴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 칼 마르크스처럼 평생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고, 1911년 11월 25일, 같은 날, 66세,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폴 라파르그는 같은 날 두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 나의 낙과 즐거움을 하나씩 차례차례 빼앗아 가는 무자비한 노령화 이전에 난 내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무자비한 노령화는 나의 육체적 정신적 힘을 빼앗아 가버렸고, 내 에너지를 마비시키고 내 의지도 꺾어 놓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난 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부담이 되고 만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나에게 스스로 약속해왔다. 70세 넘어서까지는 살지 않겠다고. 그리고 난 내 삶을 정리할 연도를 염두해뒀다. 난 우리 ( 폴 라파르그와 로라 막스)의 결심을 실행시킬 방법으로, 청산가리를 준비했다.
난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지난 45년간 헌신해온 대의가 승리할 것을 아는 최고의 행복감을 안고 생을 마감한다.
코뮤니즘 만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만세 !”
2.
로라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가 1866년 8월 13일자, 로라의 애인 폴 라파르그에게 편지를 쓰다.
“예즈(Liege)에 있는 국제 학교에 다니는 것을 보니, 프랑스에서 네 커리어가 시원치 않아 보인다. (라파르그는 당시 프랑스 대학으로부터 정학 비슷한 것을 당했음) 네가 영국에서 생활하려면 아직 네 영어 실력도 아직 부족하다. … 내가 너를 종합적으로 관찰한 결과, 열정적이고 활달하고 성격도 좋아 보이지만, 너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것 같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 딸과 같이 살게 되면, 남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네 가족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네 부모가 만약 잘 산다고 해도 너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 내 딸의 장래에 대해서는 내가 이상주의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라.
내 편지를 네가 잘못 해석할까봐, 명심하라는 뜻으로 말해둔다. 오늘 당장 네가 내 딸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도 그렇게 안될 것이다. 내 딸도 반대할 것이고, 나도 뜯어 말리겠다. 네가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뭔가 성취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 편지는 너와 나 사이에 이야기이니까 남에게 이야기는 하지 말기 바란다. 답장을 기다리겠다. – 칼 마르크스 “
마르크스의 이 편지 앞 부분은 또 이런 구절이 있다.
“ 네가 알다시피, 내가 가진 것 전부를 혁명투쟁에 다 바쳤다. 후회는 없다. 아니 그 반대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 길을 또 갈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만 있지만, 내 딸은 지 엄마가 겪은 고생들을 하지 않도록 만들겠다.”
산다는 게 쉽지 않다. 마르크스도 얼마나 자기 딸이 걱정되었으면, 사위가 될 낭만파 프랑스 청년 폴 라파르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프랑스어로 썼겠는가?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칼 마르크스는 절친 프리드리히 엥엘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 딸 로라와 라파르그 관계가 더 발전되기 전에, 그가 내 딸과 결혼할 경제적 처지가 되는지를 확인하려고 편지를 썼노라고 엥엘스에게 알린다.
20세기 페미니즘과 칼 마르크스 가치관은 다르다. 그렇지만 세상만사, 동양이나 서양이나, 딸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는, 비록 이것이 가부장적인 마르크스의 태도라고 해도, 산다는 게 비슷한 측면도 있다. 폴 라파르그는 이후 성장하여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쓰고, 그의 장인 어른 칼 마르크스는 자기 딸 로라를 배불리 먹여살리지 못할 수도 있는 이 "게으른 청년" 폴 라파르그를 심히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