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비유법의 달인 김종필이 남긴 폐해 - 거짓말과 정치적 은유, 훈장 추서 반대
- 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는 공약실천과 무관하게 "아버지가 이룩한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되돌려 드립니다"는 슬로건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보았다. 2010년 경 진보정당은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민주당으로 다 모여라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은 박근혜에게도 질 수 있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아니다 다를까 실제로 박근혜는 박정희 하에서 일한 바 있는 김종인을 내세워 마치 민주노동당 정책집을 베낀 것 같은 복지정책을 들고 나왔다. 새로울 거 하나도 없다.20세기 사회복지국가를 이룩한 유럽,캐나다에서는 보수당이 모조리 전부 '사회복지 국가론'을 당론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선이후, 또 아니다 다를까 박근혜는 공약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 2012년 이후 연구주제는 당연히 '반동 혁명 counter-revolution'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실천되는가였다. 내 관심사는 박근혜와 박정희의 차이점과 동일성이었다. 이것도 너무 자명하고, 수준도 난해하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싸운 세대는 이승만-419-516-유신체제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제도적 공간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것까지는 많이들 공부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한국에 진보정당이 들어선 이후, 한국 경제사 정치사 문화사는 굉장히 중요한 학습주제이자, 투표에서 득표와 긴밀히 연결된 블루칩이다.
- 1963년 2월 18일 뉴스 1면이다. 김종필씨는 박근혜와 육영수의 못된 점을 비판하고 인터뷰하고 별세했지만, 김종필 본인이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이양'을 주장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답변해주지 않고 떠나갔다.
- 세계 시민들은 다 안다. 한국처럼 시민들이 정치 데모를 잘 하는 나라는 70억 인구들 중에 몇 안되는 톱 클라스라는 것을.
그런데 정당 정치나 국회의원 선출 제도는 세계 하위권이다. 이 격차는 어디서 생겼는가? 왜 정치인들은 거짓말하는 존재로 시민들에게 각인되었는가? 그 극명한 출발점이 박정희의 거짓말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거짓말을 극렬 조장하고 협력한 육사 8기 김종필과 김형욱 등의 516 군사 쿠데타 부역자들이다.
- 2018년이라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부터 1963년 10월 17일 대선까지 정치 권력 공백기를 국민들이 감당하고 인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도 안되는 2년의 시기 동안, 한국경제를 원조 해준 미국, 군사적 동맹 미국 케네디는 무엇을 한 것일까? 건설 부동산 자본가 출신 트럼프를 생각해보면 상전벽해다.
- 박정희 516군사 쿠데타에 동조한 당시 육사 5기 주축 장교들과 해병대 장교들은 '민정 이양'을 주장하고, 박정희-김종필-김형욱 세력과 대립했고, 비밀막사에서 격론을 펼치다가 열받아 권총을 꺼내들고 죽이네 살리네까지 갔다는 증언도 있었다.
-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준비하고 일으킬 당시부터 권력장악을 목표로 했다고 난 본다. 정치 권력 공백기 2년 동안 박정희는 끊임없이 언론전을 수행하고 (이후락을 특임해 언론 접촉면을 늘렸다) 거짓말 전술을 펼쳤다.
- 박정희가 대놓고 거짓말 전술을 펼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은 (1) 어떤 역사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윤보선 민주당 구파 우두머리도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이후, 민주당 신파 장면을 물러나게 한 이후, 윤보선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한다. 민주당 내 구파와 신파의 분열이 한 축이다.
(2) 당시 한국 정치에 지금보다는 훨씬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던 미국 민주당 케네디 정권의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방조와 침묵
(3) 416 항쟁 이후, 민주당이 국민들의 개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점, 경제 자립 노선은 더디고 민생은 더 나빠졌고, 보릿고개 넘지 못하는 국민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4) 군부 내부 반대세력 제거. 장도영 이북출신, 나이도 박정희보다 어린 참모총장을 정치적으로 구워 삶았다. 장도영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결국 박정희 쿠데타 성공으로 이어졌고, 장도영도 본인 기대와 달리, 박정희에게 이용당하고 폐기처분되었다.
- 1963년 2월 18일, 박정희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내세워, 실제로는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을 발표한 셈이다. 너무 속이 보이는 빤한 '민정 불참 조건들' 나열이었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일부터 '군인은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대통령 2번만 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967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되자 마자, 삼선 개헌 악법을 만들었다.
1971년 삼선되자 마자, 통일 내세워, 영구 집권 총통제가 그 핵심인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다 거짓말이었다.
보릿고개 밥먹여 준다는 자칭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고, 배고픈 한국인들을 거짓말로 잘 요리한 사람들이 박정희와 총명아 김종필이었다.
그 이후 한국정치와 정당정치는 거짓말이 밥이 되고, 밥이 거짓말이 되는, 독일 철학자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술처럼, 밥과 거짓말의 대화 (dialectics)가 한국 현실에서 삶이 되었다.
1963년 2월 18일자 박정희는 약속했다. 거짓말을 약속했다.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 (불참)'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가 거짓말을 같이 만들어낸 김종필에게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임자 조그만 참아, 경제건설 끝나면 임자 차례야' 김종필의 인고의 시간은 끝이 없을 줄 알았다. 2인자 김종필도 박정희의 거짓말을 밥먹듯이 진짜 먹고 살아왔다. 김형욱과 다른 운명을 위해서는.
-1979년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1026 사건이란, 정치적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면 어떠한 말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026 이전에 김종필은 쿠데타 동료, 육사 8기 동료 김형욱을 잃어버렸다. 김형욱을 누가 죽였는가? 516 군사쿠데타 동료 박정희 지시였다. 이게 다 거짓말같은 역사의 진실이란 말인가?
김종필 전총리가 은유법에 능한 이유가 다 무엇이겠는가? 어떠한 경우에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지 않으면,친구도 동료도 다 죽이는, 살아 남기 힘든 정치 현장에서 가족들을 거느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은유의 발전은 두 가지 원천이 있다. 하나는 끊임없는 실천적 학습에서 비롯된다.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끊임없는 거짓말 사용이다.
김종필씨가 정치적 비유와 은유를 많이 쓰고 잘 썼다고들 하는데, 그런 배경에는 박정희와 함께 만든 거짓말이 짙게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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