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철학자 이성백과의 대화: 디지털 문명 시대의 도래
인터뷰어 최진석 (본지 편집인)
인터뷰이 이성백 (철학자)
사진 김시온(서울시립대 철학과 석사과정)
뉴래디컬리뷰는 우리 시대를 움직이는 다양한 사유와 실천
의 흐름들을 좇아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2023년을 여는 첫 번째
대담의 상대는 철학자 이성백 교수이다.
1980년대 한국은 군사주의적 권위주의가 지배적인 시대였지
만, 청년 지식층 사이에서는 진보적 개혁주의와 맑스의 혁명사상
이 중요하게 회자되고 연구되고 있었다. 1990년대의 민주화를
이끌어내고 그 이후의 사회와 사상적 지반을 만들어낸 동력이
그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위 사회
과학의 시대와 그 이후를 만들어왔던 지식 그룹, 즉 이론과 실천,
담론과 현장의 양자에 깊이 관여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던 지식인들의 한 사람인 이성백 교수를 만나보았다.
|래디컬 미러|
204 _ 래디컬 미러
최진석 안녕하세요. 뉴래디컬리뷰의 편집인 최진석입니다.
오늘은 철학자이자 본지의 편집 고문이신 이성백 선생님과 대화
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맑스주의 철학의
연구자이자 맑스코뮤날레의 집행위원장도 역임하시면서 진보적
학술 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지요. 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여러 이유로 사양해오시다가 마침내 시간을 내주셔서
기쁜 마음입니다.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 합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재직하시던 서울시립대 철학과에서 정년을
맞으셨습니다. 이후 근황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이성백 뭐,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어요. 명예교수로서 강의
하나 하고 있고요, 은퇴 전에 강의 두 개 하다가 하나가 줄어든
것이에요. 그리고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책을 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80세가 될 때까지 서너 권 정도 쓸 계획입니다.
최진석 은퇴 이후가 더 바쁘신 듯하군요. (웃음) 네 권의 저술을
염두에 두신다니 당장 궁금해집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차차
듣기로 하고, 어떤 책들인지 짤막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성백 21세기 디지털 문명사회론과 사회철학사상의 재이론화,
20세기 사회 현실과 철학의 재구성, 마지막으로 중세도시론입니
다. 이에 대해서는 대담을 진행하며 설명해 드릴까 합니다.
최진석 선생님께서는 독일에서 맑스주의 철학을 연구하셨는데,
햇수로는 벌써 30년 전이겠네요. 베를린 장벽 해체나 독일 통일,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 등은 이제는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유물 같은 느낌을 주는 단어들입니다. 유학 시절 가지셨던
생각과 그것을 이론적 언어로 풀어내신 경험, 또 이후 한국에서
마주쳤던 현실의 모습 등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이야기의
서두를 푸는 기분으로 가볍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성백 처음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원 석사과
정 다닐 때였습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 당시 대학원
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 퍼져 있었는
데, 전두환의 광주대학살이 알려지면서 너무나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지요. 77학번 동기들이 한번 모이자고 연락이 와서 시내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거기서 한 친구가 전두환을 쏴 죽이고 싶다고
울분을 토했는데, 다른 친구들도 “나도! 나도!” 하면서 같은 격한
감정들을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대학원 다닐 때 자본론과 경제학ㆍ철학 초고를 위시한 맑스
의 저작들을 세미나를 통해 공부하다가, 1987년에 독일 베를린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베를린에 도착해서 처음 놀란 것은
한국 유학생이 이과 빼고 문과 쪽만 3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었습
니다. 엄청난 숫자이지요.
그중에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좌파
사상을 연구하였습니다. 사정이 그렇고 보니 베를린에서 한국
운동권의 분위기가 연출될 정도였습니다. NL과 PD 사상 논쟁이
아주 뜨겁게 벌어지곤 했지요.
최진석 그렇게 많은 유학생들이 베를린에 모여 있었다니 놀랍네
요. 더구나 150명 이상이 좌파 사상을 공부했다니, 정말 상상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때 같이 공부하신 분들 중에 지금 알 만한
분들이 있을까요?
이성백 내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김세균 교수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 짐을 싸던 참이었습니다.
한신대의 남구현, 이화여대
의 최성만, 김경수, 송태수 …… 그 외에도 러시아 문학 연구하는
경북대의 김규종, 충북대 백용식 교수 등이 있었지요.
아무튼 저도 베를린에 유학하면서 맑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사상사적 지식이 전무
한 상태에서 소련이 사회주의 종주국이니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맑스주의의 정통성을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련 철학을 연구하기로 했으니, 러시아어를 공부해야 했지요. 그래서 베를
린 대학에서 러시아어 수업을 1년간 수강했습니다.
어느 정도 러시아어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독해 실력을 쌓기 위해 제일 먼저
읽은 책이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다 1987년부터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시작되었어요. 소련에서도
이전의 맑스-레닌주의 철학에 대한 페레스트로이카가 이루어지
던 참이어서, 박사논문의 주제를 소련 철학에 나타난 페레스트로
이카로 잡았습니다.
그러던 중 소련에서 철학 교과서가 새로 출판되었다고 해서, 이 책을 노문학을 전공하던 유학생들하고
같이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면 대박이 터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책 내용도 기대
이하여서 해프닝으로 끝난 적도 있지요.
최진석 어떤 책이었을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출판까지는 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이성백 아니요, 책 번역 끝내고 출판도 했는데, 잘 안 팔렸어요.
그래서 출판사가 문을 닫고 말았네요
최진석 저런, 아쉬우셨겠습니다.
이성백 좀 그랬죠. 사회주의를 공부하겠다고 베를린에 유학
갔을 때 딱 사회주의가 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겁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바로 현장에서 목격했고, 1991년에 모스크
바에 갔을 때는 쿠데타가 벌어져 탱크가 의회 건물에 포격하는
것도 봤어요. 앞으로도 사회주의가 과연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요. 독일 통일의 방향을 선택하는 동독 선거에서 흡수
통일로 결정이 난 뒤, 당시 동독 서기장이었던 한스 모드로가
TV에 출연하여 귄터 그라스와 대담하던 장면이 당시 나의 정신적
인 고민과 중첩됩니다.
한스 모드로는 지금이야말로 동독이 제대
로 된 사회주의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는데, 정말 근소한
차이로 동독 국민들이 서독으로의 흡수 통일을 선택한 것을 애석
하게 여겼습니다.
20세기 후반에 사회주의를 개혁할 수 있는
기회들이 꽤 있었는데, 실천에 옮겨지지 못한 것이 나로서도
유감입니다.
가령 체코의 ‘프라하의 봄’과 유고의 자주관리 사회주
의는 기대할 만한 개혁사상이었는데, 빛을 보지 못했지요.
잘못된
현존 사회주의를 넘어, 그리고 자본주의의 사회적 폐해를 넘어서
는 새로운 인간적 사회를 추구한다는 생각을 가진 채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최진석 1980년대 말부터 벌어진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을
대개 사회주의의 실패와 영원한 몰락으로 여기곤 하는데, 다른
길에 대한 사유가 남겨져 있었다니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선생님의 지향과도 연결되어 계속 활성화되
었을 텐데요 ……. 1990년대 이래 교편을 잡고 현장과 강단을
오고가며 ‘한국적 지형’에서 펼치셨던 연구의 길을 종합해 본다면
대략 어떻게 묘사하실 수 있을까요?
이성백 나의 진보적 연구자로서의 이력은 진보평론과 거의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96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직 한국에 적응도 채 안 된 상황에서 김세균 교수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진보평론을 창간하시겠다며 총무를 맡아보라는 것
이었죠. 그래서 창간호부터 진보평론 일을 맡아 진행해왔습니
다. 처음에는 편집위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김세균 교수님이
진보적 학술연구자뿐만 아니라 현장 운동가들까지 포함하여 수많
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편집위원들의 수도 줄고 세대도 많이 바뀌어 왔죠.
가장 큰 문제는
항상 경제적인 데 있었어요. 정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이나 버텨온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평론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던 데는 한 사람의 공로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바로 윤수종 교수입니다. 윤수종 교수가 물심
양면으로 진보평론에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지금까지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 뉴래디컬리뷰로 거듭나서 새 젊은
편집진들이 열심히 잡지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대가 큽니
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새로운 글들로 뉴래디컬리뷰에 기여하
고 싶습니다.
최진석 정말 저희가 바라는 일입니다. 앞으로 네 권의 저술들이
진행될 때마다 ‘감시’와 ‘격려’, ‘독촉’의 역할을 기꺼이 맡아드리
겠습니다. (웃음) 자, 그럼 좀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선생님께서는
1990년대 이래 한국의 진보적 학술 운동에도 깊이 관여해 오셨습
니다.
변혁을 위한 현실적 운동과 그에 대한 이론적 관여라는
점에서 일종의 ‘이중 전선’에 서 계셨던 셈입니다. 이론과 실천,
현장과 담론의 이중 전선을 지켜내기란 진보를 고민하는 지금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에게도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오셨을까요?
이성백 진보평론 이외에도, 진보적 학술 운동에 깊게 관여했
던 다른 하나는 맑스코뮤날레의 결성이었지요. 진보적 학술 운동
의 세가 날로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그래도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로써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에서 결성했던 것입니다.
맑스코뮤날레
가 결성된 데에는 심광현 교수의 공이 큽니다. 과연 이 기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 다들 망설이던 상황에서 심광현 교수가 꼭
한번 해보자고 강하게 밀어붙였기에 맑스코뮤날레가 결성될 수
있었거든요.
2003년에 열린 제1회 대회는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50명 이상을 수용
하는 강의실들을 여럿 빌려놓고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텅 비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개회하는 날 아침부터 열 개가
넘는 강의실들이 꽉꽉 차서 청중들이 바닥에 앉아야 할 정도였으
니까요.
안타깝게도, 요즘 맑스코뮤날레의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합
니다. 아마도 새로운 방향 전환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최진석 1990년대, 냉전이 끝난 이후 맑스주의의 위기가 널리
운위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위기’조차 까마득하게
잊혀져 버린 느낌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의 맑스주의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이성백 맑스주의의 현실성 문제는 그 자체로 깊이 다루어야
할 이론적인 대주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몇 가지만
언급하도록 할게요.
헤겔에 따르면 철학은 시대 현실을 개념적으
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회 현실에 대한 이론의 연관성은 맑스주
의 역사유물론에도 계승되었지요. 알다시피 맑스주의는 산업혁
명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한 산업자본주의 시대 현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열악한 자본축적 상황에 처해 있던 시초 산업자본주의
는 노동자들을 절대적 빈곤의 상황으로 내몰았고, 이는 노동자들
의 강력한 사회적 저항을 일으켰습니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적대적 대립을 초래했고, 이
적대적 대립에 대한 반응이 맑스주의의 혁명적 코뮤니즘 운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점에서 사회적 적대성이란 관점을 제시하고 싶군요. 맑스주
의는 산업자본주의 조건에 조응하여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을
사회적 프레임으로 정식화한 것입니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형태 변환
Metamorphose을 해왔습니다.
19세기 후반 산업자본주의에서 21세기
전반의 제국주의를 거쳐 20세기 후반의 복지국가 자본주의, 그리
고 1973년 이후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21세기에 들어서는 디지털
자본주의로 변환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역사적
인 형태 변환은 사회적 적대성의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왔어요.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 자본주의 시대가 가장 단적 사례입니다.
그 시대의 진보적 상징성이 바로 68혁명이지요. 68혁명에서는
노동을 넘어, 여성, 환경, 반전 평화, 소수자, 도시 등 인간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모든 상태들을 전복하자는 의제의 다원화가
기치로 내걸렸습니다.
사회적 적대성이 여러 부문들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의제들을 해결하려는 이론적 연구들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여기서 각 의제들과 관련하
여 맑스주의를 넘어서는 여러 이론적 입장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맑스주의 내에서도 맑스주의를 생태주의, 페미니즘, 도시이론으
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지요.
그렇지만 여러 이론적 입장
들은 맑스주의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회적 의제들이
더 이상 맑스주의의 틀 내에서 이론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죠.
진보적 사회이론들의 다원화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맑스는 현대 서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하고 급진적이며,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위업을 남겼습니다. 저에게 맑스는
진보적 사회이론의 역사적 상징입니다.
물론 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서구의 이론적 대가들 거의 대부분이 맑스가
자신들의 이론화의 정신적 뿌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셸 푸코는 권력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맑스주의로부터
거의 결별 수준까지 나아갔지만, 그의 사상 자체는 맑스주의의
유산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맑스코뮤날레의 ‘맑스’는 저에게는 역사적 상징이자, 진보적 사회
이론 운동의 역사적인 연속성을 의미합니다.
‘맑스’라는 기표가
페미니즘이나 생태론 등 여러 다른 생각을 추구하고 있는 연구자
들로 하여금 맑스코뮤날레에 참여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
면 좋겠습니다.
최진석 맑스라는 기표 자체보다는 그것의 역사적 상징성을
더 깊이 새기자는 뜻이겠군요. 깊이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좌파
정론지를 내세웠던 진보평론으로부터 사회인문비평지로 모토
를 전환한 뉴래디컬리뷰에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잡지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사실 진보 운동 자체가 사회적
시야에서 가려져 있는 현재 상황에서 진보적 정론지를 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잡지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고 현상을
분석하며, 또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일이 갈수록 어렵다는 말이
지요.
대중의 의식도 변했고, 매체 환경도 적잖은 변화를 겪었습니
다. 이 시점에서 사회인문비평지를 만든다는 것, 변혁운동과 잡지
운동이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성백 우선 여러모로 시대 현실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뉴래디
컬리뷰의 창간에 참여한 후배 편집위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
을 표합니다.
특히 진보평론 시절에는 여성 편집위원들이 상대
적으로 적었기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의가 다소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현재는 그런 상황이 많이 개선된 걸로 보여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
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올드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조언이란
것을 하기가 참 조심스럽습니다. 젊은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기에
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많이 낡지는 않았을까, 싶은 두려움이
드는 것이겠죠. 뉴래디컬리뷰가 젊은 편집진들로 세대교체를
이룬 만큼, 새로운 세대에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담론들을 많이
발굴해 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조언 겸 부탁을 하자면, 잡지를 편집해서 출판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편집위원회가 진보적 연구
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입
니다.
내가 진보평론을 맡아 진행할 때도 가능한 한 많은 연구자
들을 편집위원으로 모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구자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것 자체가 진보 진영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에요.
최진석 네, 진보 운동에 속한 선배 그룹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마다 늘 다양성의 확보와 지속적인 대화 및 담론의 교류에
대한 조언을 듣곤 합니다. 늘 마음에 새겨놓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연락드렸을 때, 퇴임 이후 오히려 본격적인
연구의 기회가 열렸다고 즐거워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새로운
연구의 방향이나 문제 설정, 그에 대한 기대나 전망 같은 걸
듣고 싶습니다.
이성백 퇴임을 하게 되어 시간적으로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보적 연구가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사회철학자로서 사회의 미래적
변화는 늘 연구 방향이 한 축을 맡아왔습니다. 예컨대 ‘정보사회’
가 새로운 사회적 개념으로 대두되었던 때부터 정보사회의 문제
를 추적했었죠.
이제 정보사회란 표현은 사라지고 ‘4차 산업혁명’
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지으며 21세기에는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따져보는 미래사회론을 구상 중입니
다.
사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매일 일어나고
있기에 너무 당혹스러운 게 요즈음이에요. 우리 시대에 인류
문명은 급변을 겪고 있습니다. 인류사 5천 년은 노동-생존의
등식에 의해 구축된 ‘노동 문명’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노동 문명의 역사가 끝나고 탈노동 문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적 차원에서 노동 문명을 아날로그 문명이라고
부른다면, 탈노동 문명은 디지털 문명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디지털 문명을 향한 이 전환적 시점에서는 인간의 존재 방식부터
정치와 경제, 문화, 생활양식 등 모든 것이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같은 양상을 검토해보는 21세기 미래사회론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연구 주제입니다.
최진석 오늘 대화의 서두에 말씀하신 네 권의 기획 중 하나겠군
요?
이성백 그렇습니다. 두 번째 연구과제는 홉스와 스피노자,
로크, 헤겔, 맑스, 니체 등 주요 사상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함으
로써 현대 사회철학사상을 재이론화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변
화된 사회적 관점에서 현대 사회철학 사상을 재조명해 보는 것이
지요. 엥겔스가 철학을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으로 정식화한
이후, 그 이분법적 정식은 철학을 이해하는 기본 틀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68혁명 이후 철학은 윤리주의와 미학주의의
대립으로 그 틀거지가 변화했습니다. 그 단면은 하버마스(윤리주
의)와 푸코(미학주의)의 논쟁에서 잘 살펴볼 수 있지요. 내가
보기에 21세기 사회철학의 새로운 전망은 ‘사회철학의 미학화’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세 번째 연구과제는 20세기의 사회이론들을 정리해보는 것입니
다. 지난 세기에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지요. 이제 21세기에
들어와서 지난 세기에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었는지를 재고찰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건들을 통해 사회가 계속 변화하면
서, 이를 개념화하려는 이론적 시도들도 넘쳐났습니다.
20세기
사회의 현실적 변화와 결합하여 사회이론의 변천사를 정리해
보자는 것입니다. 루카치와 아도르노에서 시작하여 그람시, 알튀
세르, 르페브르, 하버마스, 푸코,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의 이론들
을 사회의 현실적 변화와 연계하면서 새롭게 엮어보려 합니다.
최진석 지금 말씀하신 주제들만으로도 어지간한 박사논문이
새로 나오겠는걸요? 마지막 주제는 어떤 건가요?
이성백 천천히, 하지만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계획하고 있는 주제는 중세 도시에 대한 연구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도시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얻은 개인적인 소득이
중세 도시에 대한 지식입니다.
희한한 일이지만, 사회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중세 도시에 대한 언급이 별로 나오지 않더군요.
로크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아메리카 인디언은 언급되는데 중세
도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중세 도시에 대한 사회이론
적인 연구는 현대 사회를 더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전거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논문을 통해 시론적 수준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상세하게 다루는 책을 마지막으
로 계획 중입니다.
최진석 선생님의 정년기념 논문집인 코뮨의 미래(도서출판b,
2022)에 실린 글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중세 코뮨: 코뮤니즘의
역사적 기원」이 그것이죠. 코뮤니즘의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근거
를 중세 도시에서 발견하고,이를 ‘코뮨’과 ‘평의회’라는
관점에서 자치주의 운동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선생님
의 관심사를 잘 말해주는 것같더군요. 저 개인적으로 짚
어보고 싶은 대목들이 많아서 앞으로의 연구 결과를 기
대하고 있습니다.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비판적 사회인문학과
진보적 학술 운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후속 세대
연구자들에게 전해줄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성백 앞서 진보평론과 뉴래디컬리뷰, 맑스코뮤날레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는데, 진보적 학술 운동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개인적인 바람을 조금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계획하
고 있는 연구 주제들을 혼자서만 연구하지 말고 함께 연구하는
모임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내 연구 계획에도 해당됩니다
만, 집중적으로 함께 연구하여 이론적 성과도 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연구소 같은 모임이 필요합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결성되고, 학술단체협의회
이성백 교수 정년 기념 논문집 코뮨의 미래(도서출
판 b, 2022)
같은 연합체들도 만들어져 큰 물결을 타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소수의 단체들만 명맥을 유지할 뿐 그 기세가 많이 꺾여 버렸습니
다.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양적으로나 질적
으로나 연구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춘 모임들이 만들어지면
진보적 학술 운동의 중요한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에 K자가 붙게
될 날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진석 그런 의욕을 갖고 연구와 활동 모두에서 한 발씩 나아가
는 모습이 저도 꼭 보고 싶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신 데 감사드립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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