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순실 동맹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심리학자 김태형은 "극우 보수와 최순실이 박근혜를 사육해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태형의 주장은 박근혜의 적극적인 역할을 놓치고 있다. "꼭두각시 박근혜" 진단은 정치적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온 박근혜의 몸통을 발가락 손가락으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박근혜식 정치권력은 온 국민들 앞에 두 가지로 나타났다. 제 1기 (육영수 대신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1975년부터 1979년까지)와 1998년 4월 보궐선거부터 시작되어 2012년 대통령이 된 제 2기까지이다.
<핵심 주장>
첫번째는 박근혜의 정치적 권력 형성을 1975년 이후 역사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두번째 최태민-최순실과 박근혜의 정치행위 특성은 '정치적 동맹'세력으로 봐야지 그렇지 않고, 단지 '보수 우익의 펫이나 최순실 가족의 꼭두각시'로 해석해 버리면 현재 정치적 책임을 단지 '불쌍한 순수 처녀 virgin 박근혜'와 ' 악마 악녀 아줌마 최순실'로 축소시키고 만다. 세번째는 박근혜 권력의 특징은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권력 구조 변동사에서 설명되어야 하고, 집권 전과 집권 후를 서로 구분해서, 최순실의 정치적 개입 전략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 검토해야만 박근혜-최순실 정치적 동맹체 성격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박근혜는 최태민의 꼭두각시도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사육 펫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권력체인 박근혜와 최태민-최순실 일가는 정치적 동맹체이다.
박근혜를 최순실의 '사육 애완동물 펫'으로 보는 견해는 정치적 야망과 욕구를 지닌 박근혜를 무시해 버림으로써, 현재 박근혜의 정치적 책임을 면제해줄 수 있고, "악녀 최순실이 순진한 처녀 virgin 박근혜를 꼬득여 미친 년을 만들어버렸다"는 허구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박근혜는 1974년 육영수 총격 사망 이후, 정치 권력 전면에 등장했고, 박정희의 '원 분조 分朝' 권력 하에 '소 분조' 권력체를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같이 만들어 냈다. 박근혜가 애초에 최태민을 발탁했고, 최가 박근혜 측근이 된 원인은 박근혜의 정치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태민은 육영수 사망 이후,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서, 육영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박근혜가 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박근혜의 '눈'에 들었고, 이 둘의 '정치적 동맹'의 출발점이 되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와 같은 정도의 강렬함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러한 최태민과 박근혜는 1975년 구국선교단의 십자군을 창설하고, 정치, 경제, 군사,외교,국방, 종교, 학계까지 권력의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박정희 '원 분조 (청와대)' 권력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미래 권력을 창출하려는 '소 분조 (정부)' 를 꾸리고 있었다.
박근혜 역시 육영수 총격 사망시, 만 23세에 불과했지만, 박의 정치적 권력에 대한 야망을 지니고 있었고, 최태민과 구국선교단을 만들면서부터 박근혜의 정치적 대망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박근혜-최태민, 최순실 가족의 정치적 동맹은 상호 이득을 추구했고, 최태민과 최순실 가족은 10.26 사건으로 박정희 권력이 붕괴된 이후에도, 1975년부터 1979년 재벌기업과 시민들로부터 착취한 돈과 건물, 땅으로 최씨 일가의 재산을 불릴 수 있었다.
두번째, 박근혜가 최순실 일가와 보수우익의 '애완견 펫'이 아닌 이유는, 아무리 최순실이 전권을 휘두르고, 토지 빌딩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장관 인사까지 좌지우지 하고, 정부 예산 분배까지 결정했다하더라도, 박근혜의 '결제'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형식적 권력 소재가 대통령인 박근혜에게 소속되었다는 말, 동어반복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장관 임명, 정부 예산 집행,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설립에는 최순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와 최순실과 그 일당의 '공동 결정' 사안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박근혜의 언어 실력, tv 토론 능력, 작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예를 들면서, 전여옥의 증언 "박근혜의 언어 수준은 어린 아이와 같다" 등, 박근혜의 지적 능력의 낮음을 예로 들어, 보수우익과 최순실의 정치적 애완견이 박근혜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심리적 설명도 박근혜가 1998년 이후, 한나라당의 정치적 위기 극복(천막당사 등)을 극복하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듣고, 2012년 이명박과의 대통령 경선 패배 이후 승복 결정을 한 사실 등을 간과해버렸다.
오히려 박근혜를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설명해야만, 박근혜 집권기 (2012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정치적 권력체로서 박근혜 체제의 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박근혜의 정치적 강점들이 막상 박근혜 정부 그 체제 하에서 박근혜의 정치적 약점들로 바뀌게 되었는가?
악녀 악마 최순실의 정치적 전략들이 2012년 12월 대선 이전에는 잘 먹혀들고 성공적이었고,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악마 악녀 최순실의 정치적 계략들이 온갖 다 실패로 규정되었는가?
설령 박근혜의 정치적 지능이 중학생 초등학교 학생 수준이라도 해도, 정치적 권력은 박근혜 손에 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새누리당을 위시한 제도적 권력과 작동 메카니즘이 있었기 때문이고, 특정 지역의 정치적 몰표라는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민주적 통치 '정당성' 위기를 설명할 때, 단지 최순실에 박근혜가 심리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으로는 충분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한겨레 신문과 더불어 심층 취재를 하고 있는 jtbc 뉴스와 손석희 사장 체제, 대한민국은 순실공화국이다, 이런 표제어는 저널리스트로서 이번 사건을 사실을 파헤치면서 내건 뉴스 구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가 최순실의 '애완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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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최순실 뉴스를 처음 듣고, 최태민과 박근혜의 정치적 동맹 출발점을 조사하다가, 과거 뉴스를 읽게 되었다.
1975년 5월 11일 <임진각>에서 박근혜의 대중 연설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마 이 연설이 박근혜의 최초 큰 집회, 대중 연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와 동년배 20대 학생들은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고 있었고, 최태민과 박근혜는 이들을 친북 사회혼란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맞불 집회를 <임진각>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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