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국 코스피 지수. 1년 전보다 딱 2배가 된 코스피 지수를 보다가, 케인즈를 잠시 생각. 한국인 모두가 '케인즈'가 될 수는 없거나, 운 좋게도 돈을 공짜로 대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텐데...
이재명은 왜 모든 국민들에게 한전, KT 주식을 나눠지지 않은 채, 주식투자를 권유했을까?
케인즈가 위험성이 높은 국제 주식투자를 했다가 자기 재산의 4분의 3를 잃어버렸다 (1920년 경)
이런 대실패 이후에, 케인즈가 운이 좋게도, 그를 만난 적도 없던 은행가가 그에게 돈을 빌려줘서 기사회생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 케인즈 저서에 감동받은 은행가였다고 한다.
케인즈가 그 돈을 다시 투자해서, 당시 200만 달러까지 불려나갔다고 함. 초기 '위험' 투자전략을 바꿔서,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배당금에 촛점을 맞췄다.
이런 투자 기법을, 대학 기금 운용에도 적용했다.
1924년에서 46년 사이, 캠브리지 킹스 컬리지 재무담당자였던 케인즈는, 3만 파운드 대학기금을 투자해, 38만 파운드로 불려놨다. 이 시기 영국 주식시장 평균 수익율을 4~5%였는데, 킹스 컬리지 기금 투자 수익율은 연 13% 였으니, 케인즈의 투자 기법은 남달랐다.
케인즈는 투자신탁과 생명보험사 경영에도 관여했으나, 철도업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그의 대학시절의 꿈이었지만)
케인즈는 명민해서, 오전에 주식 투자할 종목 찾고, 사고 팔고, 오후에는 경제학 연구했다. 리카도처럼 금융에서 돈 벌어 공부했다.
1883년 칼 맑스가 죽었고, 존 케인즈가 태어났다. 칼 맑스는 자본주의 사적 소유를 비판했고, 케인즈는 그것을 옹호했다. 이 두 사람 차이를 아무렇게나 뒤섞지 말아야 한다. 그 정치적 긴장을, 대립을 파고 들어야 한다.
2000년 민주노동당 이후, 2026년 수많은 진보정당 이름으로, 어떤 측면에서는 맑스와 케인즈의 긴장과 경쟁, 때론 협조와 공조를 토론했어야 했다. 나도 그런 시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실사구시하지 못했고, 전국의 kbs, mbc 지방방송 내용조차 정책 대안의 기초자료로 사용하지 못했다. 게을렀다.
내가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은 다들 잘 살려고 한다. 그 '잘 산다'는 개념이 다를 뿐이다. 욕구와 희망을 윤리적으로 채찍질하는 것은 정치도 아니고, 좌파의 정치적 사명도 아니다. 이 사람들에게 급한 것은 맑스도 케인즈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 아플 뿐이다. 그들은 그 청년들이나 아저씨 아줌마들은 은행가 후원자를 둔 사람들도, 워런 버핏도, 소로즈도 아니기 때문에.
참고. Robert Heilbroner, The worldly philosophers (1969), J.M Keynes, pp.225-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