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8 03:24
[메모] 촛불데모와 진보신당
원시
조회 수 3122 댓글 9 조회 수 3122
몇가지 휙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 촛불데모가 새로운 진보정치 내용과 방식에 주는 의미가 뭘까?
- 새로운 좌파정치 씨앗들 추출하기 위해서: 어떠한 형식과 내용들이 한국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으로 되어야 하는가?
1. 전국민의 법률전문가화
(1) 통상 용어와 관련된 것들
(2) 도로 교통법, 집시법 악법 관련
자꾸 이 대목에서 이더구 뎡신이 하늘하늘거리~
2. 지하에 있는 노래방을 길거리로 '이동 mobile 노래방' - 와이브로 노래방 차림
80년대로 끝날 노래들 리메이크 - (물론 신곡발표가 더 좋음)
역사는 나선형으로 꼬인다는 헤에겔 Hegel 말이 조금 일리있음.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운동주체들 한계가 보임.
3. 한국 사회 권력이동 "엄마들이 일어서면 혁명완료된다는" 역사적 경향성 검증
한국사회의 여성 파워가 서서히 밑바닥에서 달궈지기 시작
그러나 과연 사적인 치마바람, 내 자식 일등주의 치마바람이, 공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연대'의 치마바람으로 될지는 아직 미지수.
4. 전국민의 올빼미족화
한국 시민들처럼 지구상에서 밤에 안 자는 국민들이 없을 것입니다. 인구 감소의 중요한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
직장에서 노동시간, 노동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촛불데모에서 노동해방과 레저시간 확보 욕구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
정치혁명에서 '병촉야유 (밤에 촛불 등을 들고 놀고 시를 짓는다는 이백의 말)' 를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 과제를 던져줌.
5. 한국에서 민주주의 뿌리의 제도적 안착이 되었다는 거 확인이 됨.
최장집류의 '제도'에 대한 좁은 이해 (부르조아 3권 입법 행정 사법, 제 4권력인 언론 등)가지고는 한국의 정치 상황과 민주주의 역사 분석 힘들어.
한국 노회한 좌파들 개념과 현실 분석하기 위해서는 심층적인 연구 및 주체적인 공부 (동서양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하고, 통시적으로는 철학 정치 사회학 경제 법 자연과학 기술 의료 등 통합적인 네트워크망을 만들고, 적어도 3~4분야는 알아야 면장을 하겠음)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다.
내가 말하는 민주주의 뿌리의 제도화란, 한국의 정치 행보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 역사에서 저항과 도전, 새로운 창조의 과정 (근대에서 갑오 항쟁, 일제하 반식민 해방투쟁, 좌우익 대립, 4.19, 80년 광주, 87년 유월 항쟁, 시민운동들, 노동조합운동과 파업 투쟁, 도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삶의 질 개선 투쟁,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통한 여권 신장 운동 등)을 통해서 형성된 한국의 고유한 '민주주의' 내용들을 말한다.
한국 사람들의 주체적 특질 (소위 학계에서 말하는 subjectivity 주체들의 특질과 성격)이 뭔가? 한국 시민사회에 '민주주의'라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건, 실질적 민주주의건,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들, 역사적으로 쟁취된 민주주의관 자체가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부르조아 (자유) 민주주의 헤게모니 하에 있는 입법, 행정, 사법, 정당체제, 언론, 학교 등 제도 공간에서, 아직 양적으로 좌파세력과 급진주의적 민주주의자들 (예전 개혁당 출신들)이 소수라 할지라도, 이들의 정치적 감각과 센서, 주장들은, 여론전에서 실천에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6. 민주주의의 세대 교체 (80년 광주 30주년을 1년 반 남겨두고)의 좋은 징조 보인다.
촛불의 딸들 아들들은 유년기와 청소년시절을 소위 자유주의 정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15년)를 경험^^한 세대들이다. 이 세대가 가지는 정치적 감각, 이해, 태도, 개입과 실천은 30년대 말타고 무장투쟁하던 세대, 빨치산, 70년대 신영복,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세대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개인의 공간 (personal space)가 바로 정치적인 공간인 사람들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공간은 실은 80년대 칼라TV 세대부터 자라나고, 88년 자동차 내수시장 확대로 중산층의 마이 카 시대에 이미 싹트고 있었지만, 한국사회에 문화적 주류로 등장한 것은, 지난 15년간 자유주의 문민 정부라는 배경 하에서이다.
7. 정치에서 심미적 공간이 중요하다.
심미적 공간이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르시즘은 원래 자본주의 광고가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60년대 소위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포스트-포디즘' 이후, 자본축적을 하는데 있어서, 자본회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광고를 적극 활용하는데서 나르시즘과 자본주의적 소비양식의 결합을 찾을 수 있다. 포스트 포디즘 자본주의 특성은 '소비의 차별화' '소비의 다각화'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 왜? 다른 차를 타고 다니니까. 결국 호주머니에 현금의 차이가 '인격'과 '개성'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심미적 공간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구매력 증강이나 과시가 아닌, '심미적 공간'에서 내 개성의 표출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돈'의 액수, 권력이나 소위 '빽' '연줄'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내 자신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가?
우선 조금 쉬운 사례들로부터 그 싹을 보면, 이번 촛불데모에서, 시민들은 휴대전화 + 개성있는 옷 + 본인이 만들어가지고 나온 구호들 정치 홍보물들 (구 민노당 홍보 찌라시들과 비교해보라) 이것은 총제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내 자신의 지적 감정적 파워를 드러내는 몸짓인 것이다. '나'를 발견하는 공간, 심미적 공간과 '정치적 데모'와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8. 정치 토론 주제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다. 좌파들이 자유주의를 자유주의자들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
(1) 고전적 자유주의의 부활
합의된 줄로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권리들이 정권에 의해서 무시되는 현상이 벌어지다.
(2) 시민 불복종 운동 (헌법정신과 현행 법률간의 대립과 갈등시 무엇을 따를 것인가?)
(3)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 정신 훼손하는 자유주의 정부 (이명박 노무현 등)의 공권력 행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특히 시민 신체의 자유의 중요성 다시 부각되다. 길거리 연행, 폭행, 경찰들 욕설 등
9. 청소년 시절을 회상해 보다.
중학생 이상 (7학년 이후)을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행에 대해서 반성적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 교육제도의 낭비적 요소를 제거 + 성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순수한 뜻과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발산해야 한다. 신체와 정신은 동시에 자라나게 되어 있다. 세포와 뇌 작동과 정신 성장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12세~17세 사이에 이뤄지는 교육은 보다 더 정교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관점, 사회 생활과 공동체 생활의 기초적인 태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촛불소녀들에 대해서 '미안하다. 우리가 지킨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이해는 가나, 개명천지된 세상에 15세 이상이면 이성적 판단 가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