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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의연한 고양이

by 원시 2025. 3. 30.

2013. may 21. 고양이의 죽음.


동물의 의연함. 죽기 전 하루 전날에 찍은 사진이다. 집이 너무 오래되어 쥐들이 가을 겨울이면 방안까지 들어와서 고양이 이지 izzy 군을 데려왔다. 솔직이 쥐잡이용인 것이었다. 쥐가 얼마나 살벌하냐면 2층방까지 2~3마리가 진입하고 초코파이까지 다 뜯어먹을 정도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 지어진 집이라서 쥐들의 통로들은 많다.


이지군이 온 후로는 쥐들이 사라졌다. 원래 거리고양이(street cat:길거리에 버려진 고양이)였던 이지군은 우리집에 온후로 성격도 활달해졌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죽기 전 10일 전까지만 해도 거의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풀없이 주저앉기 시작했고, 배가 불러오고 비만증세처럼 보였다. 지난 주에 이지군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찾아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예약이 밀려서였다. 

 

급한 마음에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고 의사인 한혜연님에게 이지 증상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도 얻었다. 그러나 손 쓸 겨늘도 없이, 이지군 몸에 이상증후가 생긴 지 딱 열흘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죽기 전 하루 전날 이지 군이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정말 딸깍 딸깍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직감이 왔고, 이지군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연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너무나 차분했다. 눈꼽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딱딱하게 굳었다. 그대로 뒀다. 


강아지와 어린시절 산과 개울을 넘나들고 내달리며 같이 살았지만, 고양이와는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지군을 다룰 때 가끔 강아지 대하듯이 한 적이 있었다. 여긴 너구리가 동네에 많은데, 너구리 2마리가 집으로 침입해서 이지 밥통을 다 뺏고, 이지군은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지군에게 같이 싸우자고 했으나, 몸이 2배 정도 큰 너구리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런 추억도 다 과거가 되었다. 


일요일 이지군을 한개 남은 삼배 여름옷으로 싸서, 1m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살아있는 이지군을 들어올릴 때와, 죽어서 뻣뻣해진 이지군을 들어올릴 때 그 차이. 이지군은 지하층으로 내려가서 보일러실 옆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일찍 죽어버린 상황이 당황스럽다. 10일만에 모든 게 종료되었다. 이지군은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않았고, 너무나 조용히 사람보다 더 의연하게 생을 마감했다. 


동물도 영혼이 있다고 다시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