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3권을 파괴하는 손배소송, 악법이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51일간 파업한 하청노동자에 500억원 손배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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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23 17:24이혜리 기자
지난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거제/이준헌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51일간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를 상대로 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노조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손배 소송이 헌법상 노동3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소송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하청노조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안을 보고했다. 손배 소송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안건은 아니지만, 중요 사안인 만큼 보고 형식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손배 소송의 청구 금액은 대략 500억원으로 정해졌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조 파업에 따라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선박 (납기가) 지연되면 선주들에게 돈을 물어줘야 되는 등 노조 점거에 따라 회사가 손해를 입은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노조에 대한 기업의 손배 소송은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노조 탄압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손배 가압류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손잡고는 이날 성명을 내고 “500억원은 노동자에 대한 손배 가압류 역사상 개인 노동자들에게 청구하는 가장 큰 금액”이라며 “하청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의 회복을 요구한 일이 최고금액을 청구받을 정도의 엄청난 문제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이 이번 손배소를 강행한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적 수치로 남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의 손배소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도 입장을 내고 “대우조선해양의 500억원 손배 소송 제기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 기본권·생존권 말살책”이라며 “투쟁 과정에서 어떠한 책임있는 역할도 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이 이제와 손배소를 들이미는 행위는 할 말을 잃게 한다”고 했다.
노조는 조선업이 불황이던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30% 인상)을 주장하며 지난 6월2일 파업에 돌입했다.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20·30년 연차의 숙련된 노동자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유최안 노조 부지회장이 옥포조선소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내 철제 구조물에 웅크리고 들어간 뒤 철판 용접으로 출구를 막아 ‘감옥 투쟁’을 벌였다. 노조와 하청업체들은 지난달 22일 임금 4.5% 인상 등에 합의했지만 손배 책임 면제 여부는 합의하지 못했다.
②손배소는 어떻게 노동권을 무력화하는가
지난달 22일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는 참프레 공장 30m 높이 저장고에서 화물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 중인 노동자들은 사측의 손해배상 요구 철회를 주장하며 저장고에 올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지난달 22일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에 있는 참프레 공장 30m 높이 저장고에서 화물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 중인 노동자들은 사측의 손해배상 요구 철회를 주장하며 저장고에 올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회사도, 노동자도, 아무도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을 실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업을 했다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손배소송은 파업에 따른 기업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조를 압박하고 탄압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손배 소송이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파업 하면 소송 당한다’는 신호를 준다. 형벌보다 돈이 더 무서운 세상, 노동자들은 손배 소송이 두려워 노조를 탈퇴하고 노조 활동 참여를 꺼린다. 노조는 손배 소송 때문에 교섭력이 떨어지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제약을 받는다. 노동자 개인과 가족의 삶도 어그러진다.
■회사의 손배 언급에 노조가 깨졌다
참프레에서 일하는 화물기사 노조의 사례는 사측이 손배 소송을 걸겠다고 예고하는 것만으로 노조가 커다란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0년 만들어진 화물연대 참프레지회는 조합원 45명으로 지난달 1일부터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참프레가 하청 물류회사와, 물류회사가 화물기사들과 운송업무에 대한 위탁 계약을 맺는 구조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파업 시작 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계속 파업을 하면 회사가 손배 소송을 청구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조합원들이 사측으로부터 관련 문자를 받았다. 조합원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생겼다. 유기택 노조 지회장(62)이 ‘걱정하지 마라, 손배는 없다, 끝까지 같이 가자’고 말하며 조합원들을 독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손배 소송이 제기돼 소장이 송달된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젊고 가정이 있는 조합원들 중심으로 노조를 탈퇴했다. 이들이 손배 소송의 ‘약한 고리’가 된 것이다.
지난달 21일 교섭 자리에서 물류회사 사측은 ‘100억원 손배’를 언급하더니 ‘조합원 10명이 책임지고 퇴사하라’는 안도 제시했다. 손배 금액은 170억원으로, 다시 240억원으로 늘어났다. 권순영 노조 조직차장(44)은 “사측은 금액을 240억원까지 산정한 데 대한 이유나 설명도 없었다”고 했다.
유 지회장 등이 5층 높이 사일로(저장탑)에 올라 손배 소송 철회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조합원 수는 계속 줄었다. 결국 지난달 26일 파업을 끝냈을 때 참프레지회는 사실상 사라졌고, 유 지회장과 조합원 9명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유 지회장은 “우리가 불법이라고 하지만 노동자가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자본이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며 “회사가 손배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오는 것은 노조 활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거액의 손배 소송 앞에서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돈은 생계를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손배 소송이 끝날 때까지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이 노예처럼 살게 된다”며 “사실상 노동권을 박탈당하는 기간”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 8월18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 ‘노조 탄압 분쇄, 손배 가압류 철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난 8월18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 ‘노조 탄압 분쇄, 손배 가압류 철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손배 다 갚아도 여전히 남는 상처
KEC 노조는 2010년 노조 탄압에 반발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용역들이 여성 기숙사에 들어와 여성 노동자들을 끌어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갈등이 커졌고, 노조는 공장 점거 농성을 벌였다. 2011년 3월 회사는 노조와 조합원 88명을 대상으로 301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더 큰 금액을 책임져야 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소송 5년6개월 만인 2016년 9월 노조는 30억원을 배상한다는 법원의 조정안을 떠안았다.
노조는 30억원을 2019년 7월 모두 갚았다. 그러기까지 조합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월급에서 매달 최저생계비인 150만원를 뺀 나머지는 압류됐다. 30억원 조정안이 나왔을 때 억울하면서도 ‘받고 싸우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김진아 KEC지회 수석부지부장(42)은 막상 처음 압류된 급여명세서를 받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10살, 13살 자녀를 키워야 하는데 이 돈으로 가능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살고 있던 전셋집을 빼 사택으로 들어가고 전세보증금은 생계비로 사용했다. 조합원들은 월급 압류로 생계비가 빠듯해 대출을 받았다. 김 수석부지부장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회사를 떠날 생각도 했다. 참고 버텼지만 빚만 계속 쌓였다”고 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여유롭게 엄마, 아빠 용돈 한 번 못 주고 도움만 받는 게 마음이 아프다. 손배를 갚았지만 지금까지도 이렇게 생활을 한다”고 했다. 경제적 문제는 가정 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미옥 법규부장(52)은 “손배는 끝났지만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월급 압류 때 불어난 빚을 아직도 갚고 있고,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생긴 상처들도 잠재된 상태로 남아 있다”고 했다.
손배 소송 과정에서 조합원 수는 급격히 줄었다.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퇴사하면 손배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150명이 사표를 냈다. 2011년 6월 파업을 철회한 후에도 회사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반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면담을 하면서는 ‘손배 가압류 맞고 현장도 못 갈텐데, 희망퇴직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후 40명 넘는 노동자들이 퇴사했다. 손배 소송을 당한 이들도 있었다. 김성훈 사무장(46)은 “회사는 노조의 힘을 빼기 위한 과정에서 손배를 주된 수단으로 사용했고 실제로 효과적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법원은 노조 탄압 문건 작성 등 행위를 한 KEC 전현직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파업을 하고 손배 소송까지 겪은 노조는 회사에서 달갑지 않은 존재라 새로 가입하는 조합원이 많지 않다. 김 사무장은 “다행히 손배가 지나갔지만, 또 다른 투쟁을 늘 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손배라는 부담이 여전히 작동한다”며 “만약 회사가 또 우리를 건들면 누군가는 감당하고 나서야 하는데 노조 활동가들도 다 사람인지라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2013년 1월8일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노조 탄압 중단과 손배 소송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이던 최강서씨는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라는 말을 유서에 남기고 숨졌다. 김영민 기자
2013년 1월8일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노조 탄압 중단과 손배 소송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이던 최강서씨는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라는 말을 유서에 남기고 숨졌다. 김영민 기자
■정년퇴임을 해도 손배만은 남는다
회사의 손배 소송은 그 회사를 그만두어도 노동자를 따라다닌다. 전 한진중공업 지회장으로 2019년 12년 정년퇴임을 한 차해도씨(62)가 그 예다. 차씨는 퇴임할 때 ‘형님, 퇴직금은 받았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손배 소송을 당한 그가 퇴직금까지 압류로 빼앗기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말이다.
한진중공업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의 크레인에 올랐다. 전국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로 몰려와 노조의 투쟁에 힘을 실었다.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듬해 12월 최강서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혔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2014년 1심 법원은 5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노조는 항소하지 않았다. 차씨는 실은 못한 것이라고 했다. “10억이든 100억이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깎아달라’는 이야기라도 해볼텐데, 그런 이야기할 상황도 안 되는 거죠.” 한진중공업은 판결이 확정됐지만 현재까지 집행은 하지 않았다. ‘회사에 위협이 된다면 손배 가압류를 집행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노사관계가 악화하면 손배소송이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노조 간부들은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을 갖기도 어려웠다.
차씨는 손배 소송이 걸린 노조는 ‘식물노조’라고 했다. 노조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차씨는 “노조 간부들에게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이다보니 노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힘들었고, 그러면서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며 “손배 소송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조합원들이 떠나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대우조선해양이나 하이트진로 사태를 보면서 ‘세상이 참 안 바뀌었다’고 느꼈다고 했다.
2011년 아산공장에서 벌어진 파업 때문에 10년간 손배 소송이 이어진 유성기업의 경우 2심에서 10억10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는데, 지난해에야 노사 합의로 회사가 소를 취하했다. 노조는 주야2교대를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해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는 40억원의 손배 소송을 냈는데, 유시영 회장은 나중에 부당노동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 파업에 직장폐쇄로 응수하고 어용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 와해 공작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 판결문에 등장하는 창조컨설팅 문건을 보면 사측이 손배 소송을 노조 압박 수단으로 검토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징계책임을 묻는 징계절차의 진행과 동시에 수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면 소송의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일반 조합원들의 압박감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문구가 대표적인 예다.
파업 당시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이었던 이정훈씨(58)는 손배 소송을 당한 노동자 뿐 아니라 소송을 당하지 않은 노동자도 우울감에 빠져 일부러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우편물이 자꾸 송달되니까 가정 불화가 생기고 방황하면서 조합원들이 사망하기도 했다”며 “매일 아침, 저녁 조합원들과 미팅을 하면서 소송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예정이라는 점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에게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을 내는 것은 그 돈을 정말 받겠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며 “손배 소송을 걸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