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수능 문제가 보도되어 잠시 수능 국어 17번 문제를 살펴보다.
(1) 철학적 에세이 글을 번역해서 실었는데, 주어 목적어 서술어, 단어들의 개념 정의들이 불분명하거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번역체이다.
(2) 국어 시험이면, 문학과 언어학, 문장의 의미들이 가장 우리말답게 나타나야 한다. 시험 지문 자체가 '문학적, 어학적' 능력이 떨어진다.
(3) 문제 출제 의도가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력, 문장 이해력을 평가하고자 함이다. 이 지문 자체가 어떤 문학이나 어학 실력으로 해독되는 게 아니라, 불가피하게 철학적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 출제자들이 지문 문장들만 이해해도 문제를 풀 수 있게끔 출제를 했다고 하는데, 이 문제들은 철학과 교수들도 박사들도 제한된 5~10분 안에 풀기도 힘들다. 결국 지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 스트로슨(Strawson), 베아트리스 롱게네스 ( Béatrice Longuenesse)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거나, 그 지문에 나오는 단어들을 어디서인가 들어보거나 배워야 이 문제들을 풀 수 있다.
(4) 이충형 교수의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또 반드시 보고 싶은 것은, 이 출제자가 어떤 철학 에세이나 원문을 보고, 이렇게 '번역'해서 우리 말로 옮겼는가이다.
칸트야 이름이 좀 알려졌지만, 스트로슨이나 롱게네스의 이름을 들어본 전 세계 고등학생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1.철학에서 특정한 개인으로서 인간을 ‘인격’, 그중 ‘나’를 ‘자아’라고 한다. (그런데)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반이다. (왜 생각의 기초이지?) 우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동일한 ‘인격’이기에, 과거에 내가 한 약속을 현재의 내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다. (자아 동일성 Identity)
Persönlichkeit (Personality 인격)
Ich (Selb) (I, self, 나 )
Individual (individual 개별자, 개인)
Identität (identity 동일성, 자아 정체성, 변하지 않는 동일성, 나 자신임을 증명함)
어제, 오늘, 내일의 나가 동일해야 한다 (나1, 나2..., 나 N)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칸트 이전에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방식은 주로 다음과 같았다. ‘생각하는 나’는 영혼을 뜻했고, 그 영혼이란 시간의 변화가 있음에도 ‘단일한 주관’으로서 변하지 않고 지속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하는 나는 ‘영혼 spirit’과 동일한 뜻이었고, 이 생각하는 나=영혼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고 그 단일한 주관으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주관’은 인식의 주체를 가리키며, ‘인식’은 ‘앎’을 말한다.
그러나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즉 ‘자기의식 Selbstbewußtsein (self-consciousness)‘은 인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한 조건 자체는 ‚‘무엇인가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Reality) 그래서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칸트는 생각하는 나와 영혼 (Geist 정신)을 구별했다)
2. 스트로슨은 칸트를 비판한다.
(1) 인격의 문제에서 신체를 간과한 칸트를 비판. 스트로슨은 인격을 의식과 신체의 복합체로 간주한다.
(2) 시공간적 세계에서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
(3) 자기의식도 경험에 의존한다. 자기의식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칸트의 견해는 잘못이다.
3. 롱게네스는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이는 경험적 인식이 성립할 수조차 없으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경험적 인식이란, 반드시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있어야 가능하다. = 시간이 변하고 흐르더라도 동일한 자아가 있어야만, 대상에 대한 경험적 앎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아 self’에 대한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롱게네스는 자아와 인격이 시공간적 세계를 경험하는 인간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롱게네스는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며,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가은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는 칸트의 견해를 인정한다.
(칸트는 empirical self (경험적, 감각적, 감정적 자아, 심리적 상태, 욕구), transcendental I(순수,형식적,비경험적 자아), personality =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 그것을 입법화하는 능력, Geist(정신,영혼 = 창조적인 상상력,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능력, 판단력)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은 시공간적 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신체가 있고 살아있어야 하므로, 인격의 동일성의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통시적으로 인식하는 신체라고 롱게네스는 주장한다.
(롱게네스가 칸트에 동의하는 것과, 동의하지 않는 것, 인격의 동일성 기준이 신체다. 혹은 칸트가 강조하지 않은 것을 롱게네스가 ‘신체’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함. 수능 출제 위원은
A. 칸트 이전 주류 해석 – ‘생각하는 나’ = 영혼 (Geist)이고 시간의 변화 속에서도 나의 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한다.
B. 칸트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즉 시간의 변화 속에서 ‘나 1, 나 2, 나 n’ 즉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C. 스트로슨은 칸트의 형식주의적 인식론과 철학관을 비판한다. 인격 문제에서 칸트는 ‘신체’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비판. 자기의식도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의식이 인식의 가능 조건이라는 칸트의 견해도 비판.
D. 롱게네스 (베아트리스)는 스트로슨의 칸트 비판을 수용하면서, 다시 칸트의 주장을 강화시키려는 입장. ‘통시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없다면, 경험적 인식은 성립할 수 없다’ (칸트 주장 동조)
그러나 자율성을 지닌 인간이 시공간적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경험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다. 그것이 인간의 자율성이다. 이러한 자율성과 선택의 전제조건은 신체와 살아있음이다. 인격의 동일성의 기준은 신체인데, 그냥 수동적 ‘신체’가 아니라, ‘인격’의 동일성 (자아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신체이고, 나 1, 나 2, 나 3, 나 N 이라는 과정,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자가 자신임을 설명하고 인식하는 ‘신체’를 뜻한다.
17번 국어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1~5번 선택지에서, 두 가지를 다 따져야 한다.
갑의 입장, 을의 입장을 올바로 요약했는가?
그 다음에, 롱게네스, 스트로슨, 칸트 이전,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X 옳다,옳지 않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갑의 입장 = 스트로슨 의견에 가깝다.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것은 ‘본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 아니다.
을 입장 = 기능 Function만 같으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과 ‘본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다.
칸트 이전 주류 견해 (유력 견해) – 생각하는 나는 ‘영혼’이고, 이 영혼은 시간이 변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된다.
갑의 입장은 칸트 이전 주류 견해와 다름.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된다는 입장이 칸트 이전 주류 견해)이고, 갑의 입장은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요소에 포함시켜야 한다’ 따라서 칸트 이전 주류 견해와 ‘갑의 입장’은 서로 상반된다.
(3) 번이 적절함.
[소결] 국어는 객관식 시험이 사실 부적절한 과목이다.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르뽀 형식이건 자기가 직접 글로 써보는 게 중요하다.
객관식 시험으로 만들려면, 아래와 같은 철학적 내용과 '토론, 논박' 을 담은 글들은, 특히 외국어로 써진 글들을 번역할 때는, 더 철저하게 더 정확하게 더 우리말답게 번역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