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철학

보수파로 탈선한 김문수, 마르크스 읽던 노회찬에게 토플러의 권력이동 책을 권하다

by 원시 2015. 9. 8.

2010.01.08 08:25

[노회찬 인터뷰1] 지하철 2호선 H 용접한 노회찬, 서울시장 출마하다

원시

 서울시 지하철 2호선 H빔 용접 공사한 적이 있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서울시장 출마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 노회찬이 뽑이 잘된 어록   

 

<당원이 라디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을 만나다  < 1>  다시 듣기인터뷰 후기

  

인터뷰 날짜 2009. 12. 28.  

 

진보신당 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님을 모시고 2010년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준비 이야기, 진보신당 창당 후 당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계획들, 요즘 주제가 되고 있는 진보대연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시: 노회찬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노회찬: , 노회찬입니다. 반갑습니다.

 

원시: 오늘 바쁘셨죠? 오늘 하신 일은 뭡니까?

노회찬: 오늘 대표단 회의가 오전에 있었고요, SK브로드밴드 노조관계자들과의 면담과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원시: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하셨는데, 삼성 X-File 선고 공판 이전에 출마 선언을 먼저 하셨지 않았습니까? 위험요소가 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말하면 배짱지원처럼 보이고요.

노회찬: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재판을 의식해서 재판 전에 출마선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 (출마선언을 하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변호사들과 상의를 했는데 ‘출마와 재판은 무관하다’라고 저에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좋은 판결이 나왔습니다만, 설령 원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2심 항소심이 있기 때문에 피선거권은 유지되는 것이고, 따라서 출마의 뜻은 변함없이 견지할 생각이었습니다.

 

원시: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하루 중에 많이 생각하는 키워드가 있습니까?

 

노회찬: 제 키워드는 당선입니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와, 그냥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사람 만나는 느낌도 다르고 정책을 펼치거나 싸움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릅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대표님의) 그러한 결의나 각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하실 때 연설문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노회찬 대표께서 예전에 용접공으로 일도 하시고, 노동운동도 하셨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용접공 할 때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노회찬: , 제가 83년도에 처음 받은 월급이 일당 5,000원이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H빔을 용접할 때는 제가 한 6,500원 정도 받았습니다. 최고로 센 편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혼자 생활하는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보다는 세게 받은 편이었죠.

 

원시: 용접공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노회찬: 당시 상황으로서는 평생을 지하에서 노동운동을 해야 했는데, 생활의 문제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취직해야 한다라는 문제, 그리고 활동할 때 기술이 있어야 사업장 내에서 지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접을 선택했습니다.

 


                                 

   (서울시 지하철 공사 H빔 용접을 담당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원시: ,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데요, 제가 당 게시판에 흑백사진을 찾아 올렸는데 (대표님의) 고등학교 때 사진입니까?  (같이 사진을 찍은) 친구 이름은 생각나세요?

 

노회찬: , 이 친구는 지금 목사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원시: 지금 이 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내성적이고 정치는 안하시게 생겼는데요.

 

노회찬: 그렇죠, 그 나이에는 정치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요. (웃음)


원시: 굉장히 범생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노회찬: (웃음) 저는 원래 범생이인데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지요.


원시: 노동운동이나 반독재운동 그런 거 안하셨으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노회찬: 글쎄요,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하고싶은 것은 많았죠.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오지에 가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그런 계통의 일을 했을 수도 있겠죠.

 

 

원시: 이 사진을 보고 100분 토론의 손석희씨가 말한 것(손석희 씨가 동안이라는 주장 - 옮긴이 주)에 대해 반론을 좀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빵 분위기가 아닌데요?

 

노회찬: , 젊을 때는 누구나 다 그렇죠. 손석희씨도 결국에는 호빵이 될 겁니다. 하하.

 

원시: 336번에 대해 기억하고 계십니까?

 

노회찬: , 잊을 수 없지요.

 

원시: 홈페이지 세상사는 이야기에 동영상을 올려 두었습니다. 노 대표님 어머님께서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336번이 수감시절의 번호 같은데요. 그 때가 언제, 어떤 일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신겁니까?

 

노회찬: 1989 12월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라고, 그 사건으로 구속이 되었고요. 92 4월에 출소를 했는데 서울교도소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거쳐서 청주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 때 수번이 336번이었죠.

 

원시: 동영상을 보면서 노 대표님이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이 정말 진실되게 다가오는데요. 지금 어머님께서는 부산에 계십니까?

 

노회찬: 서울에 계시고요, 어저께가 어머니 생신이셨어요.

 

원시: 선물은 뭐 드리셨습니까?

 

노회찬: 화초와 꽃을 좋아하셔서 화분을 하나 드리구요, 집에서 입는 조끼도 하나 해 드렸습니다.

 

김문수 현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 3의 물결> 권해진보정당 동참 거부

 

원시: 지금은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야기를 조금 해 보겠는데요. (김문수 지사가) 노회찬 대표님께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권유했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는 인맥, 지연, 선후배관계 이런 것들 때문에 철학이나 이념, 정치적 이상의 친구보다는 지연과 학연 등의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급을 피하기도 하는데요. 앨빈 토플러 책은 언제 권유 받았고,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진보정당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으로 간 김문수 현 경기지사, 노회찬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책 권한 적 있어


노회찬: 당시 김문수 현 지사는 진보정당을 하겠다고 우리 당에 참여한 상태였어요. 이미 그 때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교도소 면회를 와서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길래 제가 맑스 선집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니까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가 토플러 책을 몇 권 가져왔는데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책을 넣어주었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고 그 후에 제가 92년 출소를 해서 진보정당 안하겠다고 김문수 현 지사가 얘기를 할 때 진보정당 같이 하자고 강하게 권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 문제를 돌보며 살겠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시: 노회찬 대표가 90년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하게끔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노회찬: "인생관, 역사관, 철학의 산물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고요. 저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생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원시: 어떤 한계를 느꼈습니까?

 

노회찬: 학생운동이라고 하면 지식인운동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반독재민주화운동은 지식인 중심이었거든요. 광주항쟁 때 군홧발에 여지없이 밟히는 것을 보면서 일부 지식인들의 엘리트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에 투신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국사회가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싸움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용접도 배웠던 것인데요.

 

 87년 이후 민주화는 부분적으로 진행이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 많은 주변 동료들은 운동을 떠났습니다. 잘못된 사회주의 국가가 망한 것이지, 사회주의적 이념과 이상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당시에 생각을 했고요한국사회의 현 단계에 필요한 것은 민주화운동이 자주적으로 성장해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없이는 노동운동도 같이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정치세력화의 방편으로서 진보정당에 뛰어든거죠. 진보정당을 한 두번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 이게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고, 수십 년 걸쳐서 발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두번 실패했다고 자기 인생 스케쥴에 맞춰서 운동을 하고 안하고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시: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진보신당에 계신 분들이 과거 민중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에서 지도자급에 있었던 사람들이 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이적을 했는가, 그 원인이 뭔가 라는 것에 대해 이런 내용의 질문을 많이 하셨기 때문인데요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서요.

1부 마지막 순서로 노회찬 대표님의 연기력 테스트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아이리스 보셨습니까


노회찬: 그게 tv에서 방영될 시간에는 제가 tv앞에 있기가 힘들죠.


 

원시: 대사 중에 아이리스라는 것을 군사자본 내지는 한국의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적 음모그룹 이런 걸로 묘사가 되어있던데 혹시 정치적으로 해석하셨는가 해서 여쭤보았습니다.


노회찬: 제가 드라마 내용을 몰라서..


 

원시:그럼 1부 마지막 질문은 이것으로 드릴께요.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가장 좋았던 노회찬 어록, 그리고 내가 볼 때는 이거 좀 실패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회찬: 여러 말들이 있었는데요. 성공과 실패로 보진 않습니다만, 국정감사 할 때 서울고법원장을 앉혀두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이렇게 다그쳤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말에 고법원장도 수긍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기억에 남구요


아쉬웠던 대목은 성소수자 문제 가지고 한번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주제는 아니었고 다른 걸 비유하면서 얼떨결에 얘기가 나왔는데, 본뜻과 다르게 전달될 소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도 계셔서 사과를 드렸습니다

  



 

제작: 새로운 데모연구회

자료조사, 섭외, 편집: 꿈책, @여수, 박원규, 한재필, 다온혜윰  

기술지원: 클라시커

진행: 원시

음악: 하트

<당원이 라디오> 참여http://cafe.daum.net/new-de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