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말이다. 산뜻하지 않다. 총선 슬로건을 담기 위한 말이 무엇일까?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다." 떠오르는 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좌파나 진보가 말해야 하는 슬로건은, 전혀 새롭지도 않다. 산뜻한 대중용 홍보 문구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슬로건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총선용 홍보 카피는 아니고, 정책적인 차원이다. 

"공정한 (공평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 

일해서 돈벌고 집사고 아이들 가르칠 수 있는 시대는 97년으로 끝났다. 87년 이전은 분명 "민주주의 의미는 독재타도 (자유) 민주주의 정부 탄생"이었다. 87년 이후 지금까지 아니 향후 30년, 40년은 민법에 나와 있는 사유재산과 관련된 제도, 법, 사회관행, 사람들 의식들을 바꾸고 고치는 것이 진보와 좌파의 정치적 임무가 될 것이다. 

공정한 분배, 혹은 공평한 분배는 아주 기본적인 사회주의적 가치이다. 130년 전 이야기나 지금이나 사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맑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두가지 분배원리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능력에 따라 분배한다는 것이다. 즉 일한 시간이나 그 결과에 비례해서 가져간다는 원리(사회정의 구현)이다.  두번째는 자기와 가족의 필요에 따라서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적 삶의 원리이다. 이는 전자의 형식적 양적 사고 방식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분배원리이다.  이 두번째 원리는 능력이나 집안 배경 학연등과 상관없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자기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공산주의이다. 이는 어쩌면 영원한 유토피아인지도 모르겠지만, 의미가 있는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목표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은 소위 사회복지국가를 서유럽처럼 경험하지 못한 채, 97년 IMF 긴축독재와 그  위기를 겪었다는 데 있다. 97년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악날하고 살벌한 형태의 미국식 자본주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쿨한 합리적인 경영방식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고, MBA 학위가 대졸자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미국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한국으로 말하면 70년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유학파들 보면,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그 이해가 아주 피상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 그러면 다 뉴요커 아니면 샌프란시스코로 이해된다. 한국 미 유학파 (주로 서울대, 연고대 등이 60~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의 병폐 중에 하나가, 미국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미는 하되, 미국을 모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오륀지 껍질"로 맛사지나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향후 사회학적 연구주제이므로 더 연구해서 발표하기로 하자)


다시 분배 문제로 돌아오자. 일상생활에서 공정한 공평한 분배 방식, 분배 게임 규칙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왜 박정희 시대를 회고적으로 재해석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는가? 그것은 바로 성장에 대한 자기 긍정적인 체험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 18년간 마이너스 성장도 없었고, 연평균 7~8% 고속성장을 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88년 이후, 7% 성장이 어렵게 되어 있다. 임계점에 도달되어 있는 것이다.

전두환 시절 소위 3저(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호황으로 잠복된 위기는 해소되고, 그 위기는 97년에 터진다. 소위 사회복지 황금기 시절에도 선진자본주의 국가 평균 성장율이 2~3% (현재 미국은 2%면 대성공이다)에 그친다. GDP 크기 산출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무식하다는 게 아직도 경제성장율 6~7%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데 있다. 한국경제 규모나 질을 봐서는, 3~4% 성장하더라도 사실 성공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대만 잔뜩 키웠지만, 그 기대는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진보를 말하는 사람도 힘들다]

자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객관적 상황은 유리한가? 일상 생활의 측면에서 사람들의 의식 측면에서 보자.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나 사회복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상황이 놓여져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 장벽이다.  일해서 돈벌고 자아 성취하겠다는 70-80년대 88올림픽 정신(^^)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특히 97년 IMF 위기 이후, 보통 사람들 마음 속까지도 "니가 하면 투기, 내가 하면 투자",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삶의 원리가 대놓고 당당하게 노골적으로 사람들 마음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인간 공동체 복원 (회고, 복고, 혹은 노스탈지아 향수)을 외쳐야 하는가? 사실 복고, 복원은 시대조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들면 펀드 (9천개나 되는 펀드회사)가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60-90년까지 돈 모으는 양식 (저축 정기 적금, 집 장만, 주식투자 등)과는 또다른 형식이다.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벌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진하다. 오히려 70년대 개발독재하 새마을 운동하자는 것,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 삶의 원리를 강요하는 것이나, 천리마 운동, 스타하노프 따라하기 운동과 다를 게 없다.
 

노동, 일하는 것과 노동소득이 분리되고 있다. 노동이 돈을 낳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 딸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스스로 자기를 복제해내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인류역사상 화폐가 생긴 이래, 고리대금업자가 주욱 있어왔으니까. 


칼 마르크스도 이자 낳는 자본 (M-M')이 자본주의의 한 본질을 드러낸다고 말했으니까. 최근 금융화 등장이나, 미국 경제의 위기도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돈, 시장에서 자본은 과거 산업자본시대와 다르게, 자본이 노동이나 산업과 아예 분리되거나 연결점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일상 생활관점에서 보면, 그럼 새로운 진보적인 삶의 가치는, 노동과 돈을 다시 붙이자는 것인가? 도대체 한국에서 그럼 무엇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가? KBS TV에 지난 15년간 사라졌던 "새마을 운동 노래"가 다시 등장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삽질 100번에 허리 1회 펴기" 운동 신호탄이다.
 

굳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철학적으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진보적인 삶의 가치는, 노동시간 증대가 아니라, 자기실현하는 노동시간이 아닌, 강제된 노동시간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잔업하는 것도 강제노동이다)을 단축하는 것이다. 물론 주식투자 시대에서, 정보전쟁을 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운 보통시대 노동자들도 자발적으로 노동 (신문보기 자료찾기 정보전쟁등)이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게임과 노동이 구별이 없어졌으니까.
 

그렇다면, 일을 열심히 하자.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이런 이명박 자기체험, "너도 성공하려면 4시간만 자고, 아침형 인간이 되라," 70년대식 초가집 뜯어내기 운동 논리와 달라야 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명박 삽질 경제는 자기 모순이다. 1973년 이후 자본주의는 소위 포스트-포디즘 (포디즘: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의 종말과 그 다음 다품종 소생산 단계로 이행)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명박 삽질경제 운하파기 운동은 1914년 형성된 포디즘, 그리고 45년부터 73년까지 전성기를 누린 그 포디즘 삶의 방식을 다시 강요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지식경제, 정보경제, 인터넷 디지털 자본주의를 외치지만, 실제 삶의 철학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다.
 

다시 우리 현실을 보면, 70년대식 새마을 운동 논리도 통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는 말도 다 거짓말 아니냐? 실제로 강부자, 강금실 행정내각에서도 드러났듯이, 영어 오륀지, 미국유학파,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S 라인, 등 지난 60년간 쌓여온 온갖 쓰레기들 (친미 지식인 기독교 보수동맹, 학연, 지역주의, 부동산 투기 등)이 다 모여있는 게 이명박 행정부이다. 

그러면 우리 진보진영을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첫번째, 노동과 소득이 분리됨으로써 피해를 당하는, 구조적인 손실을 보는 계급 계층들을 적확하게 뽑아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산업시대를 사는 노동자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도시 중소 영세 상인들의 이해관계, 손익계산서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러한 노동을 통한 소득 증대 방식을 한편으로는 강구해야 하고, 두번째로는 자산 증식에 대한, 재산을 늘려 나가는데 게임규칙들을 공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책적으로 이명박 정부 "작은 정부, 비지니스 친구 정부"를 비판하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실 쓸 수 있는 정책들은 그렇게 새롭지 않다. 

1) 건강 의료 서비스에서,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된 병원들을, 인간을 위한 의료로 바꿔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건강 보험과 관련해서 최고의 피해자들은 돈없고 가난하고 뒷줄 없는 사람들, 어린이, 노약자들이다. 

2) 교육, 계급 재생산, 가난 대물림의 합법적인 통로가 되어 있다. 이는 반드시 새로운 진보정당의 제 1 선결 과제로 책정되어야 한다. 중장기 계급투쟁은 바로 교육에서 시작된다. 자궁에서 무덤까지 계급투쟁이다. 이 계급투쟁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에 대해서 세밀하게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패배할 수 있다. 서울대 폐지론이 정치적 힘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유들에 대해서 냉정하게 고민해보자.

3) 소득 재분배 수단으로서 세금 정책 세분화해야 한다.


노동을 통한 소득증식, 그리고 이 이후 소득 재분배는 세금을 통해서 '평등화' 지수를 높일 수 있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감 해소를 위한 정책들 역시 필요하다.

우선 일상 영역에서 시급하게 나서는 문제들만 이야기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라는 슬로건과 연관되어 있다. 

[ 새로운 진보 정당 ]은 구- 정치 주제들 (경제 성장, 공정한 분배, 소득 재분배, 자산 재분재, 국방 안전 등)과 신-정치 주제들 (성 평등, 인종차별 폐지, 소수자 인권 인정, 다원주의적 문화 삶의 가치 인정 등 정체성 정치, 생태운동 등과 같은 신사회운동 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우고, 대안의 세력으로 우리가 사람들 앞에 서기 위해서는, "공정한 분배가 이제 민주주의 가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공정한 분배가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민주주의 가치이다"는 분명히,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구 정치, 구 좌파의 핵심 내용이고, 보다 세밀하게 말하면, 사회복지국가 협약에 해당한다. 그래서? 개량주의라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론이 현실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지금 한국 좌파가 부딪혀 있고, 당면한 정치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분배,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사실 보통 사람들, 라면값, 자짱면값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치적 과제가 절실하고 생존의 문제이다. 생태, 평화, 성평등, 소수자 인권을 이야기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더 고민을 해야겠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 현실과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불안과 압박감은, 계급 계층 분화에 따라, 더 심각하다. 



"공정한 분배가 민주주의이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노동 소득으로도 집사고 아이들 가르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어렵다. 한국 자본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날하게 굴러갔으면 이런 소박한 꿈도 이룰 수 없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게 일하고, 노동 시간도 가장 길고, 스트레스도 가장 많이 받는 한국 사람들이 이 소박한 꿈도 못 이룬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오륀지 껍데기 같은 인간들아 답 좀 해라!

새로운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여러가지 가치들 (평등, 생태, 평화, 연대, 자유 등)이 기계적으로 나열되지 않기 위해서, 가치들의 연관, 혹은 갈등지점들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분리시키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학적 결합으로 이뤄지지 않고, 새로운 창조는 불가능하다.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그러나 고민이 계속된다. 정치적 과제로서는 "공정한 분배가 참 민주주의이다" 우리가 이제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 가치이다. 이것이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가치들을 포괄할 수 있을까? 구호 속에서 말이다. 이게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으뜸 구호로는 여러 가치들을 포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좋은 생각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