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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국제정치

‘반공’은 옛말…청년 74%는 ‘체제 변화’ 원한다

by 원시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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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작과 끝, 그곳에서 다시 만난 사회주의

[이슈①] 새 헌법 준비하는 칠레, 좌파 밀레니얼 대통령을 뽑다

박다솔 기자 2021.12.27 08:37
 

차례

① 신자유주의 시작과 끝, 그곳에서 다시 만난 사회주의
② '반공'은 옛말…청년 74%는 '체제 변화' 원한다
③ '사회주의' 내걸고 대선에 뛰어든 세 명의 후보들
④ 체제 전환(System change): 정권이 아닌 체제를 바꿔야

국민에게 복지가 필요한 순간에도 국가는 개입하지 않았다. 교육과 의료, 연금은 민영화돼 지불 가능한 국민만 이용할 수 있었다. 연금회사는 노동자가 낸 기여금보다 훨씬 낮은 연금을 지불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들은 칠레의 빈곤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 수준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한 칠레. 그곳의 국민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헌법과 제헌의회의 구성, 급진 좌파의 새로운 밀레니얼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적 전환기에 들어선 칠레를 수식하고 있다.

40년 만의 체제 전환, 칠레

 
▲  선거 전 마지막 유세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보리치 [출처: 보리치 공식 트위터(@gabrielboric)]

지난 12월 20일 한국은 칠레의 대선 결과로 들썩였다. ‘최연소 밀레니얼 세대 좌파 대통령’이라는 화려한 수식이 붙은 가브리엘 보리치(36)의 당선은 그야말로 화제의 뉴스였다. 그는 ‘확대전선(Frente Amplio)’과 공산당(PCCH)이 결성한 좌파선거연합 ‘존엄을 인준하라(Apruebo Dignidad)’ 소속 대선 후보로 출마해 공화당 소속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5)를 결선에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리치의 득표율은 55.9%로, 44.13%의 득표율을 기록한 카스트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11월 21일 대선 1차 투표 때만 해도 카스트의 득표율은 27.91%로 보리치(25.83%)보다 다소 앞서 있었다. 하지만 칠레 국민은 “칠레가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였다면, 이제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1)라고 말한 젊은 좌파 정치인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로써 칠레는 헌법 개정과 함께, 40년 만에 체제 전환을 이뤄낼 기회를 얻게 됐다.

보리치는 2010년 이후 칠레 사회운동사의 궤적을 그대로 밟은 밀레니얼 정치인이다. 그의 활동은 지난 10년간 이어진 칠레 사회운동의 성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2011년 발생한 학생운동의 주도자 중 한 명으로 2011~2012년 학생연합(Federacion de Estudiantes) 회장을 지냈고, 2013년엔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2017년 높은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그는 확대전선(Frente Amplio) 구성에 힘썼다. 확대전선은 공산당에 속하지 않은 학생운동가들의 정당과 여러 좌파 단위의 연합체였다. 이후 2019년 10월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학생운동이 벌어졌고, 이는 칠레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 한 달 만에 제도권 정당들은 새로운 헌법 제정을 위한 합의에 나섰다. 보리치 역시 대규모 시위 상황에 적극적으로 나서 신헌법 제정 국민투표를 치르는 데 기여했다.

수경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는 “헌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는 과정에서 치러진 대선이다. 당선자인 보리치의 지지기반도 제헌의회 구성 과정에서 형성된 좌파 연합과 밀접한데 이 점은 충분히 조명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라며 “확대전선은 양당 구조를 넘어서는 대안을 찾기 위해 정당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결성한 것으로, 이러한 좌파 연합은 지금 한국 대선 맥락에서도 적극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조언했다.

현재 칠레에서 진행되는 신헌법 제정은 1980년 피노체트 군부독재가 이식한 신자유주의 모델을 폐기하고 새로운 체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2019년 12월 진행된 국민투표에선 신헌법 찬성 여부와, 신헌법의 작성 주체는 누가 돼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또 공교육, 주거, 수도, 환경보호, 대학 학자금 대출, 공공의료 서비스, 연금, 소득 불평등 등을 선택지로 제시하고 가장 시급한 요구를 선택하게 했다. 칠레 국민은 공교육과 공공의료, 연금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보리치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개혁 또한 보편적 의료, 연금 개혁, 무상 공교육, 생태주의적 정부에 집중돼 있다.

그의 노동정책은 △여성 노동자 보조금 및 아동·노인 돌봄 프로그램 강화 △보편적 기본소득(Renta Basica Universal) 도입 논의 △노동조합 강화 △노동시간 단축(현행 주 45시간→주 40시간) △정리해고 사유 제한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이다. 정리해고 사유 제한, 노동시간 단축, 성과급제의 노동 친화적 개선 등은 막대한 이윤을 내는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들이다. 세제 개혁은 △탈세 규제 △면세 폐지 △부유세 신설 △구리 로열티 신설 △소득세 구간 조정 △환경세 신설을 통해 GDP 대비 8%~8.5% 규모의 세수 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 바첼렛 정부 역시 사회 개혁을 위한 재원 확보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조세 개혁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번에 보리치가 공약한 부유세, 환경세 등은 재벌과 우파의 큰 저항이 예상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같은 공약이 공산당과의 연합으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좌파선거연합 ‘존엄을 인준하라’ 구성이 공산당과 확대전선의 결합인 만큼, 자연스레 공약도 합쳐졌다. 독재정권하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생존에 급급하던 당은 이제 유력 대선후보를 내고, 대통령을 배출하는 연합의 주축이 될 만큼 성장했다. 다니엘 하두에(Daniel Jadue)는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공산당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지난 6월 7일 설문조사 기관 CADEM이 발표한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하두에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2) 좌파선거연합 후보를 선출하기 전 여론조사에서도 하두에는 보리치를 크게 앞섰지만 7월 18일 경선에선 결국 보리치가 승기를 쥐고 대선 출마 자격을 얻었다.

하두에와 보리치의 정책은 슈퍼리치에 대한 세금 인상,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제 도입, 원주민에게 땅을 돌려주는 것 등으로 다소 유사했으나, 하두에가 제시한 로드맵이 더 급진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두에는 ①구조개혁 ②포용적이고 다양한 권리에 집중하는 나라 ③포용적이고 다양하게 발전하는 칠레를 위한 새로운 경제 ④환경개혁 ⑤새로운 사회적-민주적 국가 등으로 주제를 분류해 209쪽에 이르는 공약 초안을 발표했다. 부유세, 노동시간 단축, 가사·돌봄 노동의 사회화, 의료개혁 및 공공의료 강화, 공교육 강화와 교육에서의 경쟁 제거, 공공주택 건설 등의 진보적 정책들을 제시했고, 이는 보리치의 공약에 반영됐다. 하두에는 새로운 칠레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시도에도 나섰다. 본격적으로 대선 준비에 나서며 시민이 함께 공약을 토론하고 완성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열었다. 칠레 시민 누구나 웹사이트(www.danieljaduepresidente.cl)에 접속해 공약 초안을 읽고, 토론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하두에의 공공성 강화 정책들은 그가 시장으로 있는 레첼레타의 시정 운영에서도 돋보인다. 2012년 시장에 당선된 그는 지방 정부의 힘을 이용해 의약품, 의료기구, 책, 공공 주택 등 필수 공공재의 가격을 크게 낮췄다. 약국의 운영비를 전액 지불해 사실상 시가 운영하는 약국을 만들어 의약품을 값싸게 공급했다. 실험실 납품 가격으로 의약품을 산 다음 추가 비용 없이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약값을 95%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서점의 운영비를 지자체가 부담하며 책값의 60% 이상을 낮췄다. 그의 정책은 큰 호응을 받아 칠레의 345개 지방 자치 단체 중 170개가 이 약국 모델을 모방한 정책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주의에 대한 가장 끈질긴 비판 중 하나인 ‘행정 실패’에 대한 반례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두에는 지난 11월 8일 자로 발행된 자코뱅과의 인터뷰에서 법을 위반하지 않고 ‘시장을 깼다’라고 설명했다.(3) 하두에는 “이는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시민의 주관을 바꿨다”라며 “의약품이 3,000%의 이윤에 팔리고 있다는 더러운 비밀을 폭로하며, 대기업의 학대에 가까운 착취를 드러냈다”라고 밝혔다. 하두에는 반신자유주의 정책에 힘입어 2016년 선거에선 56%, 올해 선거에선 64%의 압도적 지지로 시장 재임에 성공했다. 공산당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며 성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총선에선 공산당 의원 2명이 50여 년 만에 상원으로 선출됐다.(4)

미국과 영국의 젊은 세대는 ‘사회주의’를 원한다

칠레 피노체트 군부는 1975년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5)를 전면에 내세워 미국보다 먼저 세계 최초의 신자유주의 실험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고 보편화한 신자유주의의 끝판왕 미국에서도 정치경제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의 제도권 좌파 정치인들이 문화 아이콘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은 밀레니얼 세대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목소리에 얼마만큼 호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AOC, 33)는 MZ세대와 사회주의 정치를 연결하는 대표 선수다. AOC는 2018년 6월 민주당 연방하원 예비 선거에서 10선의 현직 의원을 물리친 후 본선에서 78%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했다. 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 의원이 된 그는 미국 여성 노동계급의 아이콘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밀레니얼로 부상했다. 그의 도약과 함께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 역시 부상하며 민주적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  2018년 11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시위 중인 AOC
[출처: 썬라이즈 무브먼트 트위터(@sunrisemvmt)]

민주당과 거리를 두며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던 AOC는 이스라엘 ‘아이언돔’ 방어 체계에 예산을 증액하는 표결에 찬성을 던지거나, 민주당과의 접점을 넓히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예 좌파 정치인들을 배출하고 있는 DSA는 선거마다 성과를 남기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회원수가 5천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2016년 샌더스 대선 경선을 거치며 3만 명, 2018년 AOC 당선 후 5만 명, 2021년 12월 현재 9만 2천 명이 넘는 회원과 지부를 두고 있다. 대학 캠퍼스는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DSA 지부가 만들어졌고, 15개의 주 정부에 민주당 진보 코커스를 두고 있다.

지난 11월엔 미국에서 DSA 소속의 첫 사회주의자 시장이 탄생할 뻔했다.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거침없이 소개하고, 의회의 기득권 세력에게 ‘우리(민주적 사회주의자)가 간다’라고 외친 인디아 월튼이 뉴욕주의 버팔로시 시장선거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것이다. 월튼은 4선 현직 시장인 바이런 브라운 후보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눌렀지만, 그의 당선을 위기로 여긴 이들의 결집은 폭발적이었다. 경선에서 패배한 브라운 후보는 일반명부로 다시 출마했고 59.57%의 득표율로 월튼(39.88%)의 시장 당선을 저지했다. 월튼에 대항해 그를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파적인 협력을 만들었고, 기업과 부자들의 지원이 뒤따랐다.

이에 반해 월튼은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미국판 배달의 민족인 ‘도어대시’를 통해 음식 배달을 하고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려가며 생계까지 감당해야 했다. 10대에 워킹맘이 돼 간호사로서 사회운동을 시작한 그에게 여전히 생계는 벅찬 문제였다. 체납된 세금과 300달러(약 35만 원) 상당의 식권 사기 혐의 등의 스캔들도 따르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자코뱅의 한 필자는 “인디아 월튼이 시장 선거에서 패한 것을 생각하면 가난이라는 끝없는 억울함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연합한 기득권층의 패배를 설계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6) DSA는 아쉽게 뉴욕 안의 시장 자리를 놓쳤지만, 알렉사 아빌레스가 뉴욕시의회 의회에서 38구 의석을 차지했고, 티파니 카반은 22구 의석을 차지하며 뉴욕 사회주의 기반을 단단히 하는 기회가 생겼다.

2018년 뉴욕타임스의 조사에선 밀레니얼(18~34세) 세대의 61%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2019년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YouGov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70%와 Z세대의 64%가 사회주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고 답했다. YouGov의 2016년 설문조사에선 사회주의에 대한 전체 호감도는 30%에 불과했지만 18세에서 29세 사이 집단에서는 43%가 사회주의에 호감을 표했다. 그리고 불과 3년 만에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더욱 커졌다. 뉴욕타임스는 “MZ세대에게 사회주의가 더 매력적인 체제라는 것은 이제 기정 사실화됐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주의 시스템을 원하는 흐름은 영국 밀레니얼 세대에서도 나타난다. 영국은 신자유주의 본산지라고도 불릴 만큼 미국과 함께 이 체제를 적극 채택했다. 그런 영국에서도 신자유주의 폐기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영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경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가 16~34세 청년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67%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평등’ 및 ‘공정’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와 연결시켰다. 자본주의에 대해선 ‘착취’, ‘불공정’, ‘부자’, ‘기업’과 같은 용어와 연관시켜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또한 응답자들은 에너지, 물, 철도 산업 등의 국유화를 선호했고, 민간의 개입이 공중 보건 서비스를 해칠까 우려했다.

한편 이 설문을 분석한 크리스티앙 니미에츠(Kristian Niemietz) 박사는 “사회주의는 제레미 코빈의 사임으로 끝나거나 단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태도의 장기적 변화고,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7)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2010년 등록금 인하 요구 시위 이후 지난 10년 동안 거의 활동하지 않던 ‘전국 학생 연합(National Union of Students)’은 오는 3월 22일 런던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의 시장화를 비판하며 무상 교육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런 흐름은 영국 노동당이 무상 교육을 주장한 이후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노동당에만 의지할 수 없기에 독자적인 흐름이 터진 것이라 분석된다. 한편 2020년 4월 당대표로 선출된 키어 스티머는 당내 좌파들을 공격하거나 축출하고 있다. 2015년 압도적 지지로 당선돼 공공부문 재정지출 확대와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강화 등의 정책으로 코빈 신드롬을 몰고 온 제레미 코빈 노동당 전 대표까지 ‘반유대주의’ 프레임을 씌워 당권을 박탈했다. 하지만 보리스 총리의 실정이 계속되면서 노동당 지지율은 지속해서 상승효과를 누리고 있다.

1) 좌파 진영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했던 보리치의 연설 중 일부다.

2) 이 조사에서 하두에는 14%, 호아킨 라빈(Joaquin Lavin, UDI당: 중도우파) 14%, 야스나 프로보스테(Yasna Provoste, DC당: 중도좌파) 13%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공’은 옛말…청년 74%는 ‘체제 변화’ 원한다


[이슈②] 21세기 사회주의, 금기의 영역을 넘을까
윤지연, 은혜진 기자 2021.12.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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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① 신자유주의 시작과 끝, 그곳에서 다시 만난 사회주의
② '반공'은 옛말…청년 74%는 '체제 변화' 원한다
③ '사회주의' 내걸고 대선에 뛰어든 세 명의 후보들
④ 체제 전환(System change): 정권이 아닌 체제를 바꿔야



지난 12월 19일, 칠레에서는 사회주의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앞선 8월에는 미국에서 61년 만에 첫 사회주의 시장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의 M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워낙 어릴 적부터 투철한 반공 교육을 받다 보니, ‘사회주의’라고 하면 김일성 삼부자의 얼굴이 가장 먼저 아른거린다. 그다음에는 가난, 억압, 독재 같은 것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른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사회주의’라는 얘기를 꺼내는 순간 ‘불순분자’로 낙인찍힐 것만 같다. 자본주의가 내 삶을 힘들게 해도, 선뜻 ‘사회주의’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는 금기의 영역일까. 한국 청년에게 ‘체제 전환’은 별 관심 없는 이야기일까. 나름 열심히 찾아봤지만 사회주의에 관한 최근의 인식조사 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직접 청년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워커스》는 여론조사 기관 ‘두잇서베이’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20·30대 청년들에게 한국 사회 체제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는 301명이며, 3분의 2는 여성이었다. 조사 방법은 웹상의 노출, 이메일, SNS 등이며, 표본오차는 ±5.65%P(95% 신뢰 수준)다.

청년 10명 중 7명 “체제 변화 필요해”

응답자의 직업은 직장인이 62.8%(189명)로 가장 많았다. 무직자도 17.3%로 적지 않았다. 그다음이 학생(11%), 자영업(5.6%), 기타(3.3%) 순이었다. 월평균 개인 소득은 2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이 26.9%(81명)로 가장 많았다. 100만 원 미만인 응답자도 26.6%(80명)로 비슷했다. 그다음이 300만 원~400만 원 미만(18.6%), 100만 원~200만 원 미만(12.6%), 500만 원 이상(8.3%), 400만 원~500만 원 미만(7%) 순이었다.

우선 한국사회의 ‘체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응답자의 74.4%가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가장 많은 59.1%(178명)가 ‘어느 정도 동의한다’라고 밝혔고, 15.3%(46명)는 ‘매우 동의한다’라고 답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5%였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17.3%(52명),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8.3%(25명)였다.



혹시… 사회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가장 많은 46.5%(140명)가 ‘중립적’이라고 답했다. 물론 ‘긍정적(13%)’인 인식보다는 ‘부정적(40.5%)’인 인식이 더 컸다. 24.9%는 ‘다소 부정적’, 15.6%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다소 긍정적’은 10.3%, ‘매우 긍정적’은 2.7%였다.



사회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많은 응답자(복수응답 2개까지 가능)가 ‘과도한 국가 통제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67.2%)는 점을 꼽았다. ‘정부 기능이 비대화돼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을 낳는다’(51.6%)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빈곤이 심화한다’라는 응답도 34.4%였다. 그 밖에 ‘실현 불가능하다’(25.4%), ‘기타’(1.6%), ‘잘 모르겠다’(0.8%)가 뒤를 이었다. ‘기타’를 선택한 주관식 응답 중에는 ‘너나 북으로 가라’는 잔잔한 욕설도 섞여 있었다.



청년 62%, “기업 사회화 필요하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슈별 정책 및 대안에 대해 묻기로 했다. 우선 ‘재벌·기간산업과 플랫폼 독점 기업을 사회화해 국유기업, 공기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방안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소 급진적인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62.2%의 청년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가장 많은 51.2%(154명)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라고 답했고, 11%(33명)는 ‘매우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반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25.2%(76명),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12.6%(38명)로 나타났다.



교통, 운송, 통신, 전기 등 공공서비스를 공영화하는 방안에는 무려 75.7%가 찬성했다. 가장 많은 61.6%(184명)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라고 답했고, 14.6%(44명)는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17.9%(54명),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6.3%(19명)에 그쳤다.



기후위기 방안, ‘기업 규제’와 ‘기업 보조금 지원’ 반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도 물었다. 가장 많은 43.2%(복수응답 3개까지 가능)가 ‘기업의 탄소배출 감축 강제’라는 기업 규제 정책을 꼽았다. 특이한 점은 비슷한 수치인 42.9%가 ‘탄소 포집 저장 기술, 전기자동차 등 이해 산업에 보조금 지원’이라는 기업 지원 정책을 꼽았다는 점이다. ‘플라스틱 덜 쓰기, 분리수거, 메일 삭제’ 같은 개인적 노력을 꼽은 비율도 36.2%였다.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나 개인적 노력을 강조하는 캠페인은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이밖에 ‘공장식 축산업의 친환경적 재편’(31.9%), ‘에너지 다소비기업 전기요금혜택 폐지’(30.6%),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및 가동 발전소의 조기 폐쇄’(27.6%) 등의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노동자·농민·여성·청년 등이 주도하는 기후정의위원회 설치’가 11.0%로 가장 적었다.

청년 10명 중 8명, “가사·돌봄 책임, 공공으로 전환해야”

코로나19 이후 필수 서비스로 인식되는 가사·돌봄에 대해서도 물었다. 가사·돌봄의 공급 책임을 공공으로 전환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무려 83%(250명)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66.4%(200명)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답했고, 16.6%(50명)가 ‘매우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6.9%였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 공적 돌봄 체계 구축과 성별 분업 철폐, 가사·돌봄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 가사·돌봄 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운동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가사·돌봄사회화공동행동(준)의 이지수 활동가는 이번 설문 결과에 대해 “20·30대 여성의 대부분은 노동자이면서, 출산 등의 고민을 가지고 있을 시기”라며 “나의 노동을 미래로 유예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낳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올해 가사노동자법이 통과된 후 비용 상승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서비스 이용자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노동자 간의 이해관계를 상충시켰기 때문”이라며 “공적 공급 체계가 개입하면 노동조건이 향상돼 가사·돌봄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이 그대로 이용자에게 전가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곳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 체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예상 밖에도 23.6%(71명)가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앞서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13%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 다소 높은 수치다. 물론 ‘자본주의’를 선택한 비율이 67.8%(204명)로 3배가량 높았다. ‘기타’ 주관식 응답을 한 비율은 8.6%(26명)였다. 이들 중 가장 많은 12명이 ‘적절히 양쪽 장점만 섞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새로운 체제’를 원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5명은 ‘민주주의’라는 다소 혼란한 답변을 했고, 또 다른 5명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홍석만 참세상 연구소 실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에 동의하는 응답이 높게 나온 것은 20·30대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이 분명하지 못한 것은 역사적인 문제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사회주의 인식을 묻는 질문에 절반가량이 ‘중립’을 선택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이를 가시화하는데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조선 땅에서 사회주의가 척박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독점 기업을 비롯한 공공서비스, 가사·돌봄 서비스의 사회화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요구다. 사회주의적인 체제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사회주의에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뒤따르는 것은 한국 사회가 겪어온 역사적 한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가 처음부터 ‘사회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는 다수의 인민이 요구하는 사회 체제였다.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이 격화되던 1946년, 군정청 여론국은 조선 인민이 어떤 정부를 원하는지를 설문조사했다.1) 그 결과 ‘사회주의’를 선택한 이들은 6037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70%에 달했다. 반면 ‘자본주의’는 14%(189명)에 그쳤다. 이후 미군정 통치를 시작으로 수십 년간 군부독재를 거친 한국 사회에는 극단적인 반공주의 이념이 뿌리내렸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흔적이 아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1988년 사단법인 평화연구원이 전국 3천 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70.8%의 국민이 사회주의 정당 육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2) 1992년 서울대생 1천 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82.9%가 ‘사회주의’를 한국 사회 모순을 해결할 ‘이념적 대안’ 혹은 ‘고려해야 할 이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3)

보수 양당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있어왔다. 1995년 〈한겨레 신문〉이 20·30 청년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선호하는 정당이 없다’라고 답했다.4) 거대 양당인 민자당과 민주당의 선호도는 각각 11.9%, 15.1%에 그쳤다. 반면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기대하는 응답은 64.4%로 상당히 높았다.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진보 정당

이에 발맞춰 보수 양당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시도도 이어졌다. 1987년과 1992년에 치러진 13대, 14대 대선에서 민중진영 후보로 고 백기완 선생이 출마했다. 13대 대선 때는 군부독재 종식을 내세우며 중도 사퇴했지만, 14대 대선에서는 독자 완주해 1%의 지지(23만8648표)를 획득했다.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국민승리21을 시작으로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며 본격적인 진보정당 운동이 시작됐다.

애초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라는 강령을 내걸고 탄생한 정당이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을 공적 기금으로 환수하고, 공공부문을 사회화하는 등의 정책을 강령에 포함시켰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 3.89%(95만7148표)의 지지율을 얻었고, 2004년 총선에서는 정당 득표율 13.03%를 획득하며 의석 10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마했다가 참패를 겪은 후 내부 갈등과 분당 과정을 겪었다. 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듬해에는 분열돼있던 진보정당과 국민참여당 일부 세력이 통합진보당 지붕 아래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기존의 강력한 국가 개입 대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을 새로운 경체 체제의 주체로 내세웠다.5)

한국에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존재할까

보수 양당 체제를 타파하겠다던 진보정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오히려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2012년 3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 등은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했다. 같은 해 대선에서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오던 민주노총의 행보도 다르지 않았다. 2011년 4월, 당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당과 총선 정책 협약을 체결하고, 직접 민주당 한명숙 후보 유세에 나섰다. 5월 1일 민주노총의 노동절 대회에서는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참석해 무대 발언을 했다. 김영훈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통합진보당에서 분당한 정의당은 현재 가장 존재감이 큰 진보정당이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가 독자 완주해 6.17%(201만7458표)의 지지를 받았다.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높은 대선 득표율이다. 하지만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찬성 등을 비롯해 민주당과 연합 행보를 이어가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에 시달렸고, 교섭단체 진입을 목표로 했던 2020년 총선에서 참패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3~4% 정도로, 허경영 후보보다도 낮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심상정 후보는 안철수, 김동연에 러브콜을 보내며 제3지대 공조를 추진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및 5개 진보정당(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의당, 진보당) 등과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에선 원외 정당인 노동당과, 비합법 정당인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이 ‘사회주의’를 내걸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총 3명의 후보자가 ‘사회주의 좌파 대선 공투본’ 후보로 출마해 경선을 치렀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체제 전환’을 주장하며, “자본주의 모순을 넘어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의 정치적 전망을 열겠다”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이번에야말로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사회주의를 내걸고 체제 전환을 이뤄내는 선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각주]

1) 동아일보, ‘정치자유를 요구, 계급독재는 절대 반대, 군정청여론국 조사’, 1946.8.13
2) 동아일보, ‘국민 68.5% 상대적 빈곤감’, 1988.8.24
3) 한겨레, ‘서울대생이 보는 사회주의’, 1992.7.22
4) 한겨레, ‘20·30대 한국사회 현주소와 미래 설문조사’, 1995.1.1
5) 참세상, ‘쪼개고 다시 만들면서 오른쪽으로 뛰어간 진보정당’, 2015.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