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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

헬리콥터로 흥한 자의 종말, 전두환 1980년, 2020년 동원 정치, '엄청난 환골탈태 Great Transformation' . MBC ,경향신문 전 사장 이진희와 전두환의 담배 대화.

by 원시 2020. 11. 30.

1980년, 2020년 동원 정치 - 민주주의 토론은 축소되고 '동원'과 '푸닥거리'만 남았다. '엄청난 환골탈태 Great Transformation' . MBC ,경향신문 전 사장 이진희와 전두환의 담배 대화.  


헬리콥터로 흥한 자, 헬리콥터로 망하기도 한다. 머리로 흥한 자 그 머리로 망하기도 한다. 몸으로 흥한 자 그 몸으로 망하기도 한다. 대부분 저점에서 망한 게 아니라 최고점에서 망한다. 


1980년 8월 11일 전두환과 MBC 경향신문 사장 이진희와 대화는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눴는가? 


정식 인터뷰 전에 전두환이 이진희에게 담배 한대 피우자고 제안한다. 그 이후 대화 주제는 전두환 고향 경남 합천을 MBC 취재팀이 방문해 '전두환 장군 일대기, 어린시절부터 장군까지' 이런 주제로 특집 방송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진희 아부는 이미 518 광주항쟁 진압 이후,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전두환 장군 일대기'를 기사화했고, MBC 이진희는 한발 늦은 셈이었다. 

좀 늦었다 싶은 자들의 아부는 '더 깊고 더 급하고 더 아련한 셈'이다. 


전두환이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난 후,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찬탈하기 직전인 8월 11일에 MBC와 한 인터뷰이다. 당시 KBS, MBC는 물론, 조선,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을 비롯 대부분 언론사는 전두환의 돈다발과 협박 수중에 들어갔다.  


흥미롭게도 전두환이 1980년 광주 518 항쟁을 진압하고 나서 내세운 기치가 '민주복지'였다. 이것은 주로 서울대 출신 행정관료와 경제학과 교수들이 자문해 준 것을 전두환이 그대로 베낀 것이다. 


당시 만 49세였던 전두환을 이순신 장군수준으로 격상시키는 MBC 이진희 사장의 아부 발언은 "사회개혁"이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짓밟은 것을 '사회개혁'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국보위)를 만드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다. 전두환 장군님께서. 그런데 이것은 마치 전장군의 개인적인 뜻이 아니라 기독교의 신, 철학자 헤겔의 범신론의 신처럼 새 시대를 영도하기 불가피한 하늘의 뜻'이였다고 이진희는 전두환을 '영웅화'했다.



전두환은 흐뭇해 하면서, 공식 인터뷰 전에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이진희에게 권유하고, 이 둘은 최민식과 하정우가 출연했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주인공처럼 동네 양아치들처럼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이진희 MBC사장이 "전두환 장군님 어린시절 부터 일대기를 (전두환의 고향 경남 합천에서) 취재하고 있습니다"라고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



전두환 장군은 이에 호응해, "촌놈이라 사진이 있어야지 ~"라고 농을 건넨다.



이진희는 글로벌 단독 뉴스, 마치 존 에프 케네디라도 저격당한 현장에 MBC 기자를 특파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MBC 기자 팀)을 일제히 보내 빨리 전두환 장군 일대기 특집을 준비하도록 !" 명령을 내린다. 



박정희에게 알랑방구를 뀌던 솜씨로, 실제 전두환은 군인시절 박정희를 방문해 양아들을 자처하며 스포츠 경기를 같이 보면서 박정희에게 중계쇼도 하고, 군대 내부 반-박정희 쿠데타 움직임이 없음을 알리고, 충성을 맹세하고 박정희로부터 금일봉을 받아와 영남출신 육사출신 장교들의 모임인 '하나회'에게 술값을 뿌리며 군인정치인 연습을 길게는 18년 해왔다. 


전두환 살인마라는 별칭, 무식한 대머리라는 시민들의 비아냥이 있었지만, 스네이크 박 이라고 불렸던 박정희만큼 전두환 역시 '강자에게 아부하고, 적들과 정적들은 이간질해 소탕해버리는' 군사 전략 전술 기술을 발휘해 박정희 수하에서 18년간 생존해왔다. 



전두환이 한 마디 거든다. "경남 합천 고향은 시골이라 찻길이 별로 없다. 헬리콥터를 빌려줄테니 그거 타고 가서 일대기를  빨리 제작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을 이진희 사장에게 내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헬기가 1980년 9월 5일 전두환의 고향, 경남 합천 한 운동장에 착륙했다. 애궂은 죄없는 학생들이 공부도 못한 채 동원되었다. 이 학생들은 헬기에서 내리는 전두환과 이순자에게 박수를 쳤다. 


MBC,경향신문 이진희 사장이 당시 49세 전두환에게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새 시대를 불가피하게 신의 지령처럼 영도해 나가셔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짊어졌다고 했고, 그 결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도열해 박수를 쳤던 것이다. 



2020년 한국 정치.


이러한 동원 정치는 그 형태만 바꿔, 기술만 모양새가 바뀌어 다시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박수 동원'은 온라인에서, 스마폰에서, 페이스북에서, 팀장님 카톡방, 텔레그램 방에서 일사천리로 마치 전두환이 '1212 군사 쿠데타'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하듯이 분초를 다퉈가며 수행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는 경찰, 군인, 국정원, 민간인 등을 직접적으로 고용해 '댓글 공작 부대'를 만들어, 온라인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이명박 박근혜식은 노골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이러한 '온라인 민주주의' 파괴 행동은 사설 민간화되고, 드루킹의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빌어와 전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작전이 수행되고 있다. 


MBC 이진희 사장이 '팀장님의 이름'으로 '환골탈태'했다. 이게 바로 '그레잇 트랜스포메이션 Great Transformation (엄청난 환골탈태)의 의미이다. 


(동영상 사진 설명) 


동영상 출처: https://vimeo.com/413094148




전두환 장군을 칭송하는 이진희 MBC, 경향신문 사장. 1980년 8월 11일 전두환과 이진희와 대화. 정식 인터뷰 전에 전두환이 이진희에게 담배 한대 피우자고 제안한다. 그 이후 대화 주제는 전두환 고향 경남 합천을 MBC 취재팀이 방문해 '전두환 장군 일대기, 어린시절부터 장군까지' 이런 주제로 특집 방송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두환이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8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난 후,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찬탈하기 직전인 8월 11일에 MBC와 한 인터뷰이다. 당시 KBS, MBC는 물론, 조선,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을 비롯 대부분 언론사는 전두환의 수중에 들어갔다.  



전두환이 1980년 광주 518 항쟁을 진압하고 나서 내세운 기치가 '민주복지'였다. 



당시 만 49세였던 전두환을 이순신 장군수준으로 격상시키는 MBC 이진희 사장의 아부 발언은 "사회개혁"이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짓밟은 것을 '사회개혁'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국보위)를 만드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다. 전두환 장군님께서. 그런데 이것은 마치 전장군의 개인적인 뜻이 아니라 기독교의 신, 철학자 헤겔의 범신론의 신처럼 새 시대를 영도하기 불가피한 하늘의 뜻'이였다고 이진희는 전두환을 '영웅화'했다.








전두환은 흐뭇해 하면서, 공식 인터뷰 전에 담배나 한 대 피우자고 이진희에게 권유하고, 이 둘은 최민식과 하정우가 출연했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주인공처럼 동네 양아치들처럼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이진희 MBC사장이 "전두환 장군님 어린시절 부터 일대기를 (전두환의 고향 경남 합천에서) 취재하고 있습니다"라고 아부를 떨기 시작한다.




전두환 장군은 이에 호응해, "촌놈이라 사진이 있어야지 ~"라고 농을 건넨다.




이진희는 글로벌 단독 뉴스, 마치 존 에프 케네디라도 저격당한 현장에 MBC 기자를 특파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MBC 기자 팀)을 일제히 보내 빨리 전두환 장군 일대기 특집을 준비하도록 !" 명령을 내린다. 




박정희에게 알랑방구를 뀌던 솜씨로, 실제 전두환은 군인시절 박정희를 방문해 양아들을 자처하며 스포츠 경기를 같이 보면서 박정희에게 중계쇼도 하고, 군대 내부 반-박정희 쿠데타 움직임이 없음을 알리고, 충성을 맹세하고 박정희로부터 금일봉을 받아와 영남출신 육사출신 장교들의 모임인 '하나회'에게 술값을 뿌리며 군인정치인 연습을 길게는 18년 해왔다. 


전두환 살인마라는 별칭, 무식한 대머리라는 시민들의 비아냥이 있었지만, 스네이크 박 이라고 불렸던 박정희만큼 전두환 역시 '강자에게 아부하고, 적들과 정적들은 이간질해 소탕해버리는' 군사 전략 전술 기술을 발휘해 박정희 수하에서 18년간 생존해왔다. 




전두환이 한 마디 거든다. "경남 합천 고향은 시골이라 찻길이 별로 없다. 헬리콥터를 빌려줄테니 그거 타고 가서 일대기를  빨리 제작하라"는 명령아닌 명령을 이진희 사장에게 내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헬기가 1980년 9월 5일 전두환의 고향, 경남 합천 한 운동장에 착륙했다. 애궂은 죄없는 학생들이 공부도 못한 채 동원되었다. 이 학생들은 헬기에서 내리는 전두환과 이순자에게 박수를 쳤다. 


MBC,경향신문 이진희 사장이 당시 49세 전두환에게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새 시대를 불가피하게 신의 지령처럼 영도해 나가셔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짊어졌다고 했고, 그 결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도열해 박수를 쳤던 것이다. 


이러한 동원 정치는 그 형태만 바꿔, 기술만 모양새가 바뀌어 다시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박수 동원'은 온라인에서, 스마폰에서, 페이스북에서, 팀장님 카톡방, 텔레그램 방에서 일사천리로 마치 전두환이 '1212 군사 쿠데타'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하듯이 분초를 다퉈가며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