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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축구 (Total Football) 주역 요한 크루이프 별세,

by 원시 2016. 3. 25.

브라질 펠레, 아르헨티나 마라도나와 함께 20세기 3대 축구 스타였던 요한 크루이프가 폐암과 싸우다 3월 25일 별세했다. 축구를 종합예술로 승화시킨 그라운드의 축구 선생님, 요한 크루이프의 명복을 빕니다!

축구는 1974년 요한 크루이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뉠만큼 요한 크루이프가 남긴 축구사의 업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단순하게 말하면 1974년 이전 축구는 보통 동네 축구처럼 재능이 좋은 몇 선수는 공격수로 활약하고, 좀 떨어지는 선수는 수비를 했다. 심지어 국가대표급도 그랬다. 각 포지션별 역할은 고정되어 있었고 뛰는 양도 달랐다.

 하지만 요한 크루이프와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이 1974년 월드컵에서 '토탈 사커' 개념을 들고 나왔고,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가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을 자유자재로 상황에 맞게 조절해 나가며, 학인진 전법을 펼쳤다. 

요한 크루이프 이후 축구 감독과 코치들은 축구장을 움직이는 3D 바둑판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포지션별로 기능을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공격루트 역시 다양화하기 시작했고, 미드필더들의 공격 가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90분이 지루하지 않게 되었고 팬들의 축구 몰입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네덜란드를 비롯해서 유럽 전역에, 유소년 축구 교실, 또 이를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코치 학교 운영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요한 크루이프의 '전문화된 코치 시스템' 강조 덕택에, 한국 역시 2002년에 네덜난드 출신 히딩크 감독을 국대 감독으로 초빙할 수 있었다. 구스 히딩크 감독은 요한 크루이프보다 한 살 더 많지만 동료이자 친구이다. 

 

 

(1974년 서독 대 네덜란드 월드컵 결승전 )

 

 
아래는 영국 bbc 기사 발췌 번역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아약스 팀과 바르셀로나 팀에서 포워드 공격수였고, 올해의 유럽 축구선수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다. 

네덜란드 아약스 팀이 1971년부터 연속 세차례 유럽 컵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가 최초로 유로컵 우승을 차지할 때는 코치로 활약했다. 네덜란드 국가 대표로 출전한 1974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전에서 당시 서독에게 2대 1로 아쉽게 졌다. 

3월 25일 요한 크루이프는 별세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크루이프의 죽음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크나큰 손실이다"는 논평을 냈다.

오늘 금요일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친선 경기에서는 요한 크루이프의 죽음에 애도를 표명할 예정이다. 그가 달았던 현역시절 달았던 등 번호 14번을 기념하는 의미로 14분간 관중들과 선수들이 묵념을 올릴 예정이다. 

현재 독일 바이에른 감독 (과거 바르셀로나 감독)인 펩 구아디올라는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야말로 바르셀로나 축구 교과서를 작성했고, 그 이후 후배들이 그 교과서를 바탕으로 축구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잉글랜드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전 바르셀로나 축구선수 였던 게리 리네커(Gary Lineker)는 요한 크루이프의 죽음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축구 경기를 펼쳤던  축구 선수를 우리는 잃어버렸다"고 평했다.


크루이프는 그가 속한 5개의 프로 축구 팀에서 521게임에 출전해서 293 골을 넣었다. 

크루이프는 '크루이프 회전 turn'을 시범보였고, 48차례 국가 대표 경기에 출전해 33골을 성공시켰다.

요한 크루이프의 업적은 '토탈 사커'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수비 위주 축구와 공격수와 수비수의 이분법을 과감히 버리고, 11명 모든 선수들을 공격과 수비 대형으로 총 소진시켰다. 이러한 공격적인 '토탈 사커' 덕분에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 국가 대표 팀은 1974년에 월드컵 결승전에 올랐고, 프란츠 베켄하우어가 이끄는 서독팀과 막상막하 경기를 펼쳤다. (2:1로 서독 우승) 

1991년 요한 크루이프는 심장 수술을 받고 담배를 끊기도 했다. 

2015년 크루이프는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2대 0으로 지고 있을 뿐 역전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6년 3월 25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세상과 작별했다. 

 
 

 

(19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 주장 요한 크루이프, 오른쪽, 서독 주장 프란츠 베켄하우어

 

 

 

 

(바르셀로나 시절, 요한 크루이프) 

 

 

 

(요한 크루이프 이전과 이후 ; 바르셀로나 전적) 

 

 

 

(덕분에 축구를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영면하소서) 

 

요한 크루이프 '회전' Cruyff Turn 

 

https://www.youtube.com/watch?v=PkTOFpFfj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