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토론 속에서 ‘민주주의 정신’과 ‘계몽의 빛’을 발견한 위르겐 하버마스.
96년 하버마스가 한국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잠시 그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97년 IMF 이후 난 하버마스 방법론과는 결별했다. 그의 명복을 빌며, 잊혀진 그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말' 안되지? '말 (대화와 토론)'로 안되니까, 우리는 일상에서도 욕하고 싸우고, 국가간에도 전쟁을 치른다. 그래도 하버마스는 우리에게 '말'하자고 하니, 답답한 계몽주의자인가, 아니면 순진한 낙관론자인가?
1. 소년 위르겐 하버마스는 ‘히틀러 소년단원’이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 굼머스바흐에서 태어나, 2026년 3월 14일 슈탄베르크에서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세기 후반 독일의 사회비판 이론의 대표 주자라고 볼 수 있다.
청소년 시절, 위르겐 하버마스는 굼머스바흐에서 히틀러 소년단, ‘도이체 융폴크’ 단원을 하다가, 반장 역할도 맡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는 의무병 역할을 했고, 1944년 지그프리트 전선에서 연합국 공군의 공습과 맞서 싸우는 일에도 참가했다. 미군이 그의 고향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위르겐도 징집되어 독일 정규군이 되었을 것이다. 운좋게 징집 전에 독일이 패망했다.
2. 68 혁명 폭풍 속에서 제자들과의 정치적 결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와의 단절과 화해
위르겐 하버마스는 1954년 본 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논문 제목은 ‘절대성과 역사, 셸링의 생각의 분열’이었는데, 그의 지도교수들, 두 명은 로트하커와 베커인데, 둘 다 나치 부역자들이었다.
졸업 후 2년간 저널리스트로 일하다가, 1956년, 위르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조교로 취직했다. 그는 학생운동가들의 ‘멘토’ 역할을 맡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 호르크하이머는 위르겐이 칼 마르크스의 용어와 방법을 쓴다고, 그를 멀리 했다. 1958년에는 아도르노마저 하버마스의 교수자격 논문 (하빌리타치온) 지도를 할 수 없다고 해, 그는 마부르그 대학에 있는 아벤트로트(Abendroth)에게 가서 교수자격 논문, ‘공론장의 구조적 변화 (1962년)’을 마칠 수 있었다. 몇 년 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하버마스와 화해했고, 그의 교수직에 강력한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는 게 다 어딜가나 인지상정같다.
자기 선생들과의 갈등과 결별, 화해의 이야기도 있지만, 위르겐의 정치적 동지들이었던 후배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1960년대 독일 대표적인 학생운동가들, 독일 사회주의 학생연맹 (SDS) 소속, 루디 두취케와 한스 위르겐 크랄 등과 하버마스 사이에 갈등이 그것이다.
* 루디 두취케와 한스 위르겐 크랄이 참여했던, SDS(Sozialistischer Deutscher Studentenbund) 독일 사회주의 학생 연맹의 탄생 배경. 1961년, 모태였던 사민당(SPD)이 서독의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하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을 사민당이 제명하면서 완전한 독립 조직이 됨)
사건의 발단은, 1967년 6월 2일에 벌어졌다. 당시 이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 부부의 서독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 도중, 한 대학생, 베노 오네조르크(Benno Ohnesorg)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
6월 ‘독일 사회주의 학생 연맹 (SDS)’은 오네조르크의 사망 이후, 정치 행동 지침 토론회를 개최했고, 3~4천명이 참여해 열린 토론을 펼쳤다. 루디 두취케는 '행동을 통한 선전', 지배자들의 폭력에 맞서서 '대항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러한 루디의 노선을 '좌파 파시즘- 링스-파쉬스무스. Linksfaschismus '이라고 비판했고, 이들의 정치적 간극의 출발점이 되었다.
루디와 학생운동가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옹호할 줄 알았던 하버마스가 오히려 비판을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당혹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1970년 후반에 ‘좌파 파시즘’에 대한 발언을 철회하고, 경찰의 학생운동 탄압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발언했지만, 1967년부터 1969년까지는 독일사회주의연맹 소속 학생들과 하버마스 (아도르노)와는 정치적 결별했다.
3. 한스 위르겐 크랄과 그의 스승 아도르노의 법정 공방. 하버마스와 아도르노는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1968년 독일 학생운동의 성장과 급진화.
독일(서독) 당국은 당시 (긴급 조치 법 : Notstandsgesetze)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헌법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게 만든 법이었다. 루디 두취케, 한스 위르겐 크랄 등 독일 '사회주의 학생연맹' 학생들은 당국 경찰과 대학의 탄압 대상이 되었다.
아도르노의 수제자였던 한스 위르겐 크랄은 아도르노에게 협조를 구했지만, 스승은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과 거리를 뒀다. 이에 대해 한스 위르겐 크랄은 아도르노가 안락한 대학에 안주하고 있다고 그의 위선성을 비판하며, 동료 80명과 함께 아도르노의 대학 연구실을 점거했다.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는 제자들과 후배들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이들을 다 체포해 버렸다. 결국 한스 위르겐 크랄은 재판에서 '주거침입죄 및 업무방해' 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0년 2월 13일 한스 위르겐 크랄이 교통사고로 28세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한스 위르겐 크랄은 한때 아도르노의 수제자였다.
아도르노는 한스의 죽음 이전, 1969년 8월 6일 심장마비로 66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아도르노가 죽기 전, 69년 4월에 여학생 제자 3명이 아도르노의 강의실에서, 상의를 드러내놓고 가슴 시위를 하며 아도르노를 비판했다. 일명 유방 시위 (부슨아텐타트 Busenattentat, Busenaktion) 였다.
학생들은 아도르노가 ‘비판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 ‘제도(학교 기관)’일 뿐이고, 그의 비판정신은 죽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아도르노가 ‘이론은 해방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억압자일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아도르노가 학생운동가들을 경찰에 고발해 다 체포한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이 사건 이후, 몇 개월 후에 결국 아도르노도 심장마비로 스위스에서 죽고 말았다.
4. 하버마스의 주요 저서
하버마스의 저서 50권.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됨.
그의 주요 책으로는, 공론장의 구조적 변화 (1962), 이데올로기로서 기술과 학문(1968), 인식과 관심 (1968), 후기 자본주의에서 ‘정당성 문제’ (1973), 의사소통행위론 (1981), 사실성과 타당성 (1992) 등이 있다.
2001년에는 독일 출판인 평화상을 수상. 뒤셀도르프에서 독일 시인 하이네 상을 수상함.
5. AI 기술 시대에, 인간의 갈등 해결 주체와 방법은 무엇인가? 하버마스의 ‘민주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2025년에 구글이 갈등 중재 및 해결 도구 이름을 '하버마스-기계 Habermas-Maschine' 라고 지었으나, 하버마스는 이것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갈등 문제 해결을 AI 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인간 갈등 역시, 당사자들 간 '타당성 있는 주장'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동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기계에 위임할 수 없다고 봤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언어 안에, '이성'과 '합리성'의 형식적 구조가 깃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성의 종말'이나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하버마스는 '계몽주의'의 전통 속에서 이성의 역할이 '언어적 전회 linguistic turn'을 통해서 부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 인간의 대화와 말 속에서, 진리, 옳고 그름, 진실성을 묻고 따질 수 있는 '형식적 절차적 합리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버마스는 20세기 계몽주의의 빛을 '말 Rede' 속에서 찾은 것이다. 타게스샤우 기사에서 '언어는 모든 것의 기초이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계몽주의의 전통에서 해석해야 한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서로 다른 이견들을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서, 어떤 주장들이 더 타당한가를 경쟁하면서, 상호 동의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는 토론과 논쟁의 문화'이다.
6. 전쟁과 테러리즘.
1970년대 독일 적군파를 경험했던 하버마스가 '테러'에 대해서는 '정치의 미학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이후에, 하버마스의 테러리즘의 진단과 대안을 들어보면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미사일과 싸우는 테러리스트의 말(대화)없는 폭력을 넘어서, 하나의 공통적인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그런데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사람들은 결국 비극적인 불운으로 끝날 재앙적이고 말없는 충돌에 이르고 마는데, 이것이 테러리즘의 모습이다. (911 테러 발생에 대해서, 테러리즘과 그것의 극복에 대한 하버마스 생각)
하버마스는 테러리즘을 ‘대화없는 재앙적인 세계의 충돌‘로 파악한다. 하버마스가 가장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른 의견들을 허용하고 서로 토론하는 것이다. 그에게 이것이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정수이다.
트럼프와 네탄야후가 이란과의 핵 협상을 거부하고, 이란을 침공하고, 이란은 보복 저항 전투를 벌이고 있는 2026년 현실을 고려한다면, 하버마스가 제시한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은 그냥 '좋은 말 잔치'가 아니라, 현실적 대안이기도 하다.
하버마스의 사회비판의 방법과 '대화와 토론' 강조에 대해서는, 자본과 폭력, 정치권력에 대한 분석 틀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리고 나 또한 하버마스가 '자본주의 구조적 동학'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막스 베버류의 '제도적 진화' 개념을 수용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버마스의 '열린 대화와 토론'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정신이고, 공적인 이성 public reason 이라고 말한 점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 공적 이성에 기반한 토론은 우리의 정치적 독단과 도그마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진리'와 '진실'의 독점자라고 자기를 규정했던 20세기 소련,동유럽 공산당의 독재, 종교적 근본주의 입장, 철저하게 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트럼프같은 '독단'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해주는 것은, 내 주장은 '논거들'을 가지고 상대방과 동등하게 토론하는 '민주 정신'이다.
(아래 사진, 위르겐 하버마스)

한스-위르겐 크랄


68 학생운동가 , 루디 두취케



1964년, 왼쪽 호르크하이머, 가운데 아도르노, 오른쪽 위르겐 하버마스


Trauer um Philosoph
Jürgen Habermas gestorben
Stand: 14.03.2026 • 15:23 Uhr
Eine der einflussreichsten und bedeutendsten Stimmen Deutschlands ist verstummt: Der Philosoph und Soziologe Jürgen Habermas ist im Alter von 96 Jahren in Starnberg gestorben.
Von Alex Jakubowksi, hr
"Engagierter Zeitkritiker und intervenierender Denker" - eine von vielen Beschreibungen für Jürgen Habermas.
Aber eine, die auf ihn besonders zutrifft. Habermas hat in fast jede bedeutende Debatte eingegriffen.
Bis ins hohe Alter hat er Stellung bezogen - sei es zur Verfassung Europas oder etwa zum Überwachungsskandal des US Geheimdienstes NSA anlässlich der Verleihung des Kasseler Bürgerpreises im Jahre 2013.
Damals mahnte er: "In einem demokratischen Rechtsstaat muss selbst die Arbeit der Geheimdienste transparent gemacht werden können."
Philosoph und Soziologe Jürgen Habermas gestorben
Alex Jakubowski, HR, tagesschau, Das Erste, 14.03.2026 • 20:00 Uhr
Assistent von Adorno, Vordenker der StudentenbewegungHabermas galt als bedeutendster Philosoph und Soziologe Deutschlands.
Als Assistent von Theodor W. Adorno ging Habermas 1956 ans Institut für Sozialforschung in Frankfurt am Main. Dort wurde er Vordenker der Studentenbewegung, lehnte die Gewaltbereitschaft deren Anführer aber ab.
Habermas sprach von Linksfaschismus - es kam zum Bruch.
Seine Themen reichten von der Auseinandersetzung mit der nationalsozialistischen Vergangenheit in der frühen Bundesrepublik bis hin zur Technologisierung und ihren Folgen für die moderne Gesellschaft.
Über 50 Bücher wurden von ihm veröffentlicht und in unzählige Sprachen übersetzt.Im Oktober 2001 bekam er den Friedenspreis des deutschen Buchhandels verliehen.
Und natürlich sprach er dort auch über die Folgen der Terroranschläge des 11. September: "Der Krieg gegen den Terrorismus ist kein Krieg und im Terrorismus äußert sich auch, ich sage auch, der verhängnisvoll, sprachlose Zusammenstoß von Welten, die jenseits der stummen Gewalt der Terroristen wider Raketen eine gemeinsame Sprache entwickeln müssen."
Sprache als Grundlage von allem
Zahlreiche andere bedeutende Auszeichnungen folgten.
In späteren Jahren auch der Heinepreis seiner Geburtsstadt Düsseldorf.
2025 wehrte er sich gegen Vereinnahmung, als Google ein KI-Tool zur Konfliktklärung "Habermas-Maschine" nennen wollte.
Der aber lehnt das ab: Die menschliche Konfliktlösung könne man wohl kaum an eine Maschine delegieren, sagte Habermas damals.
Auf Heine hatte sich Habermas schon in seiner Habilitationsschrift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bezogen.
Sprache ist Grundlage von allem - dieser Grundgedanke von Habermas, mündete bei ihm in der Überzeugung, dass Streitkultur Teil lebendiger Demokratie sei.
https://www.tagesschau.de/inland/nachruf-habermas-100.html
Jürgen Habermas gestorben
Eine der einflussreichsten und bedeutendsten Stimmen Deutschlands ist verstummt: Der Philosoph und Soziologe Jürgen Habermas ist im Alter von 96 Jahren in Starnberg gestorben. Von Alex Jakubowski.
www.tagesscha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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