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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죽음'관과 이에 대한 평가

by 원시 2024. 11. 15.

 

마크 트웨인의 '죽음'관은 재미있고 위트가 있다. 6번을 읽어보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어서, 공감되는 말이다. 그런데 6번을 읽어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위로가 되거나, 잊을 뿐이다. 

 

내 생각은, 사람은 동물들 중에서 제일 오래 제일 많이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다. 전쟁이 발생해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죽음'은 늘 생명이나 삶의 곁에 있는 친구이다. 

 

친구이긴 한데, 굉장히 독특한 친구이다. 음과 양, 그늘과 밝음, 부정과 긍정을 다 같이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죽음'을 직시,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자, 가장 고귀한 일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간직하는 게, 사르르 떨고 무서워하는 게 더 인간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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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죽음에 대한 생각

 

1.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삶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생겨난다.

 

2.충만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3.죽음이란 우리가 삶의 특권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형벌이다.

 

4.우리가 죽을 때, 장의사도 슬퍼할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살아보자.

 

5.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해라, 그러면 확실히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6.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 수십억 동안 내가 이미 죽어있었고, 티끌만한 괴로움도 느끼지 않았다.

 

 

1. The fear of death follows from the fear of life

2. A man who lives fully is prepared to die at any time

3. Death is the penalty we all pay for the privilege of life

4.Let us endeavor so to live that when we come to die even the undertaker will be sorry

5.Do the thing you fear most and the death of fear is certain

6.I do not fear death. I had been dead for billions and billions of years before I was born, and had not suffered the slightest inconvenience from it

 

 

 

 

마크 트웨인은 누구인가? 위키피디아 영어판 번역해 봤다.

 

1) 신문 프린트하는데 쓰이는 것, 인쇄공 식자공이었다.

2)  미시시피 배 조종사, 네바다 주 광부, 저널리즘 일도 했다

3)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써서 돈을 잘 벌었지만, '인쇄업'에 투자했다가 파산했다.

4) 반-제국주의 리그 부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1876)”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 


본명 사무엘 클레멘스. (1835-1910) 윌리엄 포크너는 그를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부름. 고향은 미주리 주, ‘하니발’이라는 곳이다. 저 두 소설의 배경이 ‘하니발’이다. 어린 시절 직업은 신문이나 책을 만드는 ‘인쇄공’ ‘식자공’이었다.  나중에는 미시시피 강 배 조종사로 일하다가 돈 벌러 네바다 주, ‘오리온’ 광산에 가서 광부로 일했으나, 돈은 많이 벌지 못했다. 


언론사 근무 (버지니아 시티 테리토리얼 엔터프라이즈)
30세가 되던 해, 1865년 작가로서 성공작 “칼라베라스 카운티의 유명한 도약하는 개구리 “
단편 소설로 일약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픽션과 논픽션 두가지 다 썼다. 
그가 유명해지자, 선망하는 연설가가 되었다. 위트, 풍자, 연설과 산문 모두, 비평가와 동료로부터 칭찬을 받고, 대통령, 예술가, 산업가, 유럽왕족들의 친구가 되었다.


하와이 섬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했지만, 나중에 그의 입장을 변경했다. 1901년부터 1910년 그가 죽을 때까지, 마크 트웨인은 ‘미국 반-제국주의 리그’의 부대표를 맡으면서, 필리핀-미국 전쟁, 미국의 식민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1905년 마크 트웨인은 풍자 팜플렛, 아프리크 콩고독립국가에서 제국주의자 벨기에의 잔혹성을다룬 “왕 리오폴드의 독백”을 출판했다. 


트웨인은 저술과 강의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페이지 컴포지터라는 ‘식자공’ 회사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많이 봤다. 이런 투자 실패로 파산까지 당했지만, ‘스탠다드 오일’ 회사 경영자, 헨리 로저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트웨인은 핼리 혜성이 지구에 다가왔을 때, 미주리 주 '플로리다'에서 태어났고, 75년 후 혤리 혜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왔던 날을 보고 그 다음 날, 코네티컷 주, '레딩'에서 죽었다. 

 

 

 

 

 

 

마크 트웨인이 15세 시절, 인쇄공으로 일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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