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층의 정치적 의식 분석 자료로 사용.
민주주의 담론, 참여민주주의, 중간층의 '세금'관
중간층의 투표 성향,
중간층의 정당 활동,
중간층의 뉴스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
중간층의 '노동'과 '직업'관점 등을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
내가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객관적 수치상 중산층보다 더 높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개발연구원 (KDI) 2021년 발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황수경, 이창근)
(소결) 소개
제6절 소 결 본 장에서는 소득수준으로 파악하는 객관적 중산층과 스스로 인식하는 주관적 중산층이 불일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 양상과 원인에 대해 살펴 보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객관적 조건에 의한 계층 구분과 자신이 평가하는 주관적 계층 인식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은 소득 으로 살펴본 계층 지위를 물었을 때와 일반적인 사회계층을 물었을 때도 매우 다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득 기준의 계층 인식보다는 일반적 의미의 사회계층 인식에서 불일치 정도가 크게 나타나, 사회계층 을 판단할 때 소득 이외의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 한다.
주관적 계층 인식에서 불일치의 정도와 방향은 국가마다, 시기마다, 그 리고 개인의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공통되는 점은 자신을 상층 으로 보는 개인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상층의 상당수가 자 신을 중산층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관적’ 중산층에는 ‘객관적’ 상층의 다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중산층과 하층을 나누는 경계 지점에서는 국가별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 난다.
일부 국가에서는 하층의 상당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는 중 앙 편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예: 독일, 스웨덴),
또 다른 국가들에서는 중산층의 일부가 자신을 하층으로 간주하는 계층 하향화 경향이 더 뚜렷 하게 나타난다(예: 중국, 브라질).
전자의 경우는 주관적 중산층과 객관적 중산층 간 대표성에서 편의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후자 의 경우는 주관적 중산층이 객관적 상층과 중산층 상층부를 포함하여 대 표성에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개인들의 주관적 계층 인식에서는 준거집단 효과에 의한 중앙 편향이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 상황에 대한 전망, 정보 부족, 미디어의 영향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불일치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KDI 계층인식조사를 통해 한국에서의 주관적 계층구조를 재구성해 보 면
상상 0.7%, 상하 2.3%, 중상 20.8%, 중하 49.6%, 하상 17.3%, 하하 9.3%로 나타나, 상층은 매우 적고 중간층이 많지만 아래쪽으로 치우친 전형적인 호리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객관적 상층의 일부는 주관 적 중산층으로, 객관적 중산층 일부는 주관적 하층으로 편입된 구조인 셈이다.
한국에서 개인의 주관적 계층의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살펴본 결과, 가구의 경제적 여건과 독립적으로 응답자 자신의 경제 상황(취업 여부, 개인의 소득 및 자산 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 고 있으며,
성, 연령, 교육수준과 같은 인적 특성도 체계적인 차이를 만들 어 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여성과 청년층에서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계층 인식을 보여주며, 고학력자들은 자신을 상층이나 하층이 아닌 중산 층으로 보는 경향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그 외에도 사회적 인맥, 자가 보유 여부, 정치 성향 등도 계층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긍정적 인맥의 효과는 대체로 양(+), 부정적 인맥의 효 과는 대체로 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가 보유 여부는 중층과 하층 간 에는 유의미한 변별 기준이 되지만 중층-상층 간에는 그렇지 못한 것으 로 나타났다.
한편, 진보적인 정치 성향은 자신의 계층 지위를 체계적으로 더 낮게 보도록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현 생활수준에 대한 만족도, 10년 뒤의 생활수준에 대한 전망, 부모⋅이웃⋅지인과의 상대 비 교와 같은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도 주관적 계층 인식에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객관적 계층 지위와 다른 주관적 계층의식을 구성하 도록 작용하여 총체적으로 한국에서 호리병 구조의 계층 인식이 나타나 게 되며, 그 결과 주관적 중산층이 객관적 중산층보다 상층에 더 가까운 인적 구성을 갖도록 한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보고서는 한국에서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층 간에 상당한 불일치가 존재하며, 이로 인해 중산층 담론에서 다양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그룹들의 상이한 불만이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중산층에 관한 연구는 중산층 담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주관적 중산층’의 다층성, 그리고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층 간 불일치가 나타나는 원인과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문제의식이다.
본 연구를 위해 독자적으로 [한국인의 계층 인식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동 조사는 두 차례에 걸친 웹서베이 방식의 패널조사로 이루어졌다.
먼저 1차 조사(2023년 5월 실시)에서는 객관적인 소득 및 자산 수준, 주관적 계층 귀속감, 생활수준 만족도와 상향이동 가능성, 소득분배 및 불평등에 대한 인식, 사회경제정책에 대한 견해 등을 물어봄으로써, 소득분포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평가에서 체계적인 하향 편향이 존재하는지, 편향의 양상은 어떠하고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편향성이 정책 태도에서 어떤 왜곡을 발생시킬 수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2차 조사(동년 9월 실시)는 1차 조사에서 제공된 정보를 토대로 객관적 계층 위치를 판별하고 이를 본인에게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인식 및 정책 태도에서 정보 효과가 나타나는지 관찰할 수 있도록 실험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구체적으로,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만 소득분배상의 자신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따라서 피드백을 받은 그룹(처치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비처치 그룹) 간에 중산층 인식 및 재분배 정책에 대한 지지 등 다양한 사회정책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실증분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 보고서의 실증분석은 기본적으로 동 조사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제2장과 제3장은 1차 조사(N=3,434), 제4장과 제5장은 2차 조사(N=2,000)에 기반하여 작성되었다.
보고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1장에서는 중산층 개념 및 중산층 위기 담론을 중심으로 중산층 연구의 필요성과 연구 방향을 제기하며,
제2장에서는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에 관한 선행연구들을 소개하고 활용 가능한 자료들을 이용해 국제비교하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주관적 계층의식의 결정요인을 탐색한다.
제3장에서는 한국에서 중산층의 다층성을 감안하여 ‘사회경제 계층’이라는 범주로 재구성하여 계층별 불평등 인식,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정책 태도에서의 특징들을 비교한다.
제4장에서는 실험적으로 설계된 2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객관적 계층 정보를 통해 인식 편향이 수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변화를 분석적으로 검토한다
. 제5장에서는 한국 중산층의 다층적 구조에 기반하여 각 집단이 어떻게 서로 다른 인식구조와 정책 선호를 가지는지를 검토하고, 이것이 특권 중산층 또는 엘리트 세습 논의의 맥락에서 정책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는지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는 본 보고서의 분석 결과를 요약하고 시사점을 논의한다.
제1장 서론: 중산층 개념과 위기론에 대하여(황수경)
제1절 중산층의 개념
제2절 한국의 중산층은 위기인가?
제3절 ‘중산층 위기론’에 대한 가설적 탐색
제4절 남은 연구 주제
제2장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와 주관적 중산층(황수경)
제1절 문제 제기
제2절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에 관한 논의
제3절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의 국제비교
제4절 한국인의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
제5절 한국인의 주관적 계층의식의 결정요인
제6절 소 결
제3장 한국 중산층의 다층화(황수경)
제1절 ‘사회경제 계층’의 재구성
제2절 사회경제 계층별 주요 특성
제3절 계층 인식과 불평등 인식
제4절 사회경제적 인식 및 정책 태도
제5절 소 결
제4장 계층 인식 및 재분배 선호에 대한 정보 효과 실험의 실증분석(황수경)
제1절 머리말
제2절 선행연구
제3절 본 연구의 실험 설계
제4절 분석 결과
제5절 소 결
제5장 중산층의 가치 및 정책 선호: 특권 중산층/능력주의 담론에 대한 실증적 검토(이창근)
제1절 머리말
제2절 특권 중산층 담론에 대한 경제학적 검토
제3절 한국의 중산층 분화: 심리적 비상층과 취약 중산층은 어떤 사람들인가?
제4절 한국 중산층의 정책 선호
제5절 소 결
제6장 결론 및 시사점(황수경/이창근)
제1절 분석 결과의 요약
제2절 정책 시사점
참고문헌
부 록
ABSTRACT
이창근 제 5장. 중산층의 가치 및 정책 선호. 특권 중산층, 능력주의 담론에 대한 실증적 검토.
<소결>
제5절 소 결
본 장에서는 최근 사회학계를 중심으로 제시된 특권 중산층 및 능력주
의 담론에 대한 검증을 시도했다.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본질이 “1 대
99” 담론과 같은 극소수의 특권층 대 나머지가 아니며, 따라서 극소수의
부를 다수에게 재분배하는 정책으로는 불평등 문제의 해소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 문제는 상위 10% 안팎의 신흥 상류층이다. 이
들이 부당한 정치사회적 권력을 활용하여 현재의 지위를 얻은 것도 아니
다. 다만, 경제성장, 기술 및 무역의 변화와 같은 환경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집단일 뿐이다.
특권 중산층 담론이 강조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
의 노력도 있지만 시대적, 환경의 수혜를 입었음에도 모든 것이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가치관을 신봉함에 따라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교육-취업-자산 축적의 구조에 있어 대부분의 중산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그리고 배타적 사회자본을 활용함으로써 사회적
이동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이러한 특권 중산층 또는 능력주의 담론의 가설이 인식조
사에서 확인되는지를 검토하고자 했다.
특히 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집단
들 중 심리적 비상층의 특징―객관적으로는 상층에 해당하나 스스로 중
산층이라고 인식하는―이 선행연구에서 제시하는 특권 중산층과 가장
유사하다고 보았다.
분석의 초점은 이들이 실제로 다른 계층, 특히 핵심
중산층에 비해 능력주의 및 사회이동성과 정책사안에 대해 얼마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취약 중산층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 또한 주요 목표였다.
성, 연령이나 학력 등 인구적인
특성을 통제한 후 계층적 인식이 미치는 효과에 집중했다.
다양한 분석은 복합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심리적 비상층은 능력주의
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의 역할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중산층보
다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이 물가안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기술 변화나 고령화와 같은 큰 변화에 대한 대응, 예컨대 보상체계의 변화나
이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중산층 전반에 비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논의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심리적 비상층이 “특권 중산층”이라고 불릴
만한 요소를 생각만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입시제도의
단순화를 지지하며, 사회적 측면에서 균형을 제고하는 정책에, 그리고 사
회적 합의 추구와 다원화된 정책에도 다른 집단보다 긍정적이다. 물론
태도와 행동이 서로 다를 수는 있으나, 이들은 경제 역동성 제고와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그간 제시되어 온 정책적 목표와도 가장 가까운 선호
를 가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가치 및 정책 지향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틀과 소통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본 장이 특권 중산층과 능력주의 담론의 핵심 가설들을 모두
검토한 것은 아니다.
특히 기존 담론이 제시해 온 “성공한 50~60대의 지위 공고화 노력이
자녀 세대의 10~20대 시절 교육, 그리고 20~30대에는
노동시장 진입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사회적 분열의 시작점
이다”라는 가설을 직접적으로 검증하거나 다루지는 못했다
. 최근의 문헌들은 정치와 정책에서 중점 집단으로 강조해 온 “청년”들이 단일한 집단
이 아니며, 처한 상황과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
고 있다. 아쉽게도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
았다.
본 연구의 맥락에서 보자면, 상층 또는 심리적 비상층 가정의 자녀
들과 핵심 중산층, 취약 중산층의 자녀 세대들이 어떤 가치관과 정책 선
호를 가지고 있는지를 추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 6장
결론 및 시사점
황 수 경 (한국개발연구원)
이 창 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제1절 분석 결과의 요약
1. 중산층의 다양한 개념
중산층을 개념적으로 어떻게 파악할지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
다. 경제학 전통의 연구자들은 주로 측정 가능한 소득이나 소비를 기준으
로 중산층을 정의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OECD(2019)처럼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75~200%인 가구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 밖에 소득 혹은 소비
분포상 중간계층(60%)을 중산층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중산층으로 간주
할 수 있는 소득(혹은 소비지출)의 절대 수준을 특정해 정의하기도 한다.
반면, 경제학 이외의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소득⋅자산과 같은 객관적
인 기준 이외에 직업이나 교육수준이 보여주는 사회적 지위, 의식이나
생활양식의 배타적 특성, 삶의 기회나 생활 여건 만족도 등이 반영된 계
층의식의 관점에서 중산층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중산층의
정치적⋅사회적 역할을 논의하고 있다.
중산층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물질적인 자산에서부터 계
층 정체성으로 표현되는 의식적 측면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각기 다
른 기준 혹은 여러 기준을 결합해 중산층 개념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림 1-3 참조).
다양한 중산층 개념 가운데 어느 개념이 적절한지는 분석하고자 하는
주제나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는 단지 학제 간의 문제는 아니며
분석 주제와 관련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
로 중산층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규모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지되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다양한 개념 차이를 충분히 고
려하지 못하면 중산층에 대한 상충된 인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2. 소득 상위층의 상당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한다
객관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중산층이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중산층 위기’ 담론은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강건하게 지속되는 것일까?
중산층 위기 담론과 관련한 하나의 단서는 주관적 계층의식의 전체 분
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통상의 방식대로 우리 사회의 상위층을 약 20%
정도로 가정할 때, 그중 단 3%만이 자신을 상위층으로 인식하고 대부분
은 자신을 중층, 즉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들 오분류된 집단이 유일하게 경제적 지위에서
‘객관적으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계층별로 최근 10여
년간의 소득점유율 변화를 살펴보면, 소득 상위 10% 이상 그룹에서만 처
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소득점유율이 하락하였고, 그 밖의 그룹에서는 소
득점유율이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소득 상위층, 그
중에서도 특히 소득 상위 10% 이상 계층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위치
지으면서 객관적으로 경제적 지위 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그룹이 존재한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 오분류 집단은 우리 사회에서 단지 주관적
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측면에서도 상실감이나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다. 동시에 이들은 강력한 사회적 발언권이나 문
화 권력을 지닌 그룹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을 정책대상으로서의 ‘중산층’으로 보는 것이 과연 합당할
까? 만약 중산층 정책에 관한 논의가 이들에 의해 주도된다면 전체 사회
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정책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추가적인 의문이 제기
되는 지점이며, 본 보고서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3. 중산층 위기는 취약한 중산층의 문제로 이해해야
혹자는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득 및
자산에서 ‘계층 양극화’ 증거가 일부 존재하지만, 양극화 지표(P90/P10)
를 중위값(P50) 기준으로 상층 및 하층 간의 격차로 분해해 보면, 그 대
부분은 상층-중층 간에서가 아니라 중층-하층 간 격차 확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표 1-4 참조).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은 객관적으로 중
간소득자이지만 스스로 하층으로 인식하는 그룹에 더 적합한 논거일 수
있다.
중산층의 위기를 소득 및 계층 이동성의 맥락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이때 두 가지 쟁점이 제기되는데, 첫 번째 쟁점은 하층 혹은 취약한 중산
층이 안정적인 중산층으로 안착할 수 있는 계층적 기대감이고, 두 번째
쟁점은 중산층이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적 기대감과 관련된다.
만약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중층-하층 간 격차 확대에 기인하는 바가 크
다면 전자에 더 방점이 찍혀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후자의 문제는 중
산층 위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의 문
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중산층 문제는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매우 다
른 문제의식들이 결합하여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중산층 위
기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종합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특
히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층 간 불일치로 인해 중산층 담론에서
다양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그룹들의 상이한 불만이 혼재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의 중산층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
해서는 ‘주관적 중산층’의 다층성, 그리고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
층 간 불일치가 나타나는 원인과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들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4. 객관적-주관적 계층 불일치와 주관적 중산층
대부분의 국가에서 객관적 조건에 의한 계층 구분과 자신이 평가하는
주관적 계층 인식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은 소득
으로 살펴본 계층 지위를 물었을 때와 일반적인 사회계층을 물었을 때도
매우 다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득 기준의 계층 인식보다는
일반적 의미의 사회계층 인식에서 불일치 정도가 크게 나타나, 사회계층
을 판단할 때 소득 이외의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
한다.
주관적 계층 인식에서 불일치의 정도와 방향은 국가마다, 시기마다, 그
리고 개인의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소득계층 인식
에서 중앙 편향이 매우 두드러진 국가 중 하나로 파악되며, 반면에 주관
적 사회계층 분포에서는 대부분(74.5%)이 자신을 중하위층에 귀속시키고
있어 중앙 편향과 하향 편향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KDI 계층인식조사를 통해 한국에서의 주관적 계층구조를 재구성해 보
면 상상 0.7%, 상하 2.3%, 중상 20.8%, 중하 49.6%, 하상 17.3%, 하하
9.3%로 나타나, 상층은 매우 적고 중간층이 많지만 아래쪽으로 치우친
전형적인 호리병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객관적 상층의 일부는 주관적 중
산층으로, 객관적 중산층 일부는 주관적 하층으로 편입된 구조인 셈이다.
결국 주관적 중산층은 객관적 상층과 중산층 상층부를 포함하게 되어 대
표성에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인들의 주관적 계층 인식에서는 준거집단 효과에 의한 중앙 편향이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과거의 경험이나 미래 상황에 대한 전망,
정보 부족, 미디어의 영향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불일치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주관적 계층의식을 결정하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하층-중층-상층의 3단계 계층에서 개인이 중층을 기준으로 하층 혹은 상
층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판별하는 다항로짓 모형을 추
정하였으며, 주요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구의 소득/자산은 물론 개인의 소득/자산도 유의한 영향을 미
친다.
둘째, 여성과 청년층은 계층 인식에서 다소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다.
셋째,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하층이나 상층보다 중층으로 인식할 확률
이 높다.
넷째, 자가 보유 여부는 중층-하층 간에는 유의미한 변별 기준이지만
중층-상층 간에는 그렇지 않다.
다섯째, 진보적 정치 성향은 자신의 계층 지위를 체계적으로 낮게 보
게 한다.
여섯째, 장래 전망은 중산층과 하층을 나누는 경계에서만 주효하게 작
동한다.
5. 중산층의 다층화: 심리적 비상층과 취약 중산층의 존재
한국에서 중산층의 다층성을 감안하여 ‘사회경제 계층’이라는 다섯 개
의 계층―상층, 심리적 비상층, 핵심 중산층, 취약 중산층, 그리고 하층
―으로 재구성하여 계층별 불평등 인식,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정책 태도
에서의 특징들을 비교하였다. 이 중 ‘심리적 비상층’, ‘핵심 중산층’, ‘취
약 중산층’이 중산층 연구의 주된 분석대상이 된다.
고소득층이면서 스스로는 상층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심리적 비상층은
고학력자 및 고소득자 비중이 상층보다도 높고, 관리직/전문직 비중과 자
가 보유 비율도 가장 높으며,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자산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으로, 핵심 중산층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주관
적 중산층의 상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엘리트’ 중산층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취약 중산층은 교육수준, 직업군, 개인 소득 및 자산 등에서
핵심 중산층과 하층의 중간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외부의 경
제적 충격에 의해 언제든지 하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는 경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 비상층은 생활수준에 대한 만족도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핵
심 중산층보다는 상층에 가깝거나 심지어 상층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취약 중산층은 중산층보다는 하층과 더 유사한 특성을 보
여준다.
심리적 비상층, 핵심 중산층, 취약 중산층은 불평등 인식 및 재분배 정
책에 대한 태도, 사회경제적 인식 및 정책에 대한 견해에서도 뚜렷한 차
이를 보인다. 예컨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지출 수준에 대해 핵
심 중산층에서는 대체로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심리적 비상층과 취
약 중산층에서는 줄여도 된다는 의견이 높다. 반면, 심리적 비상층은 보
편적 복지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다. 어느 그룹을 중산층으로 파악하
느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층성을 감안할 때 주관적 중산층의 상층부, 특히 사회적 영
향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엘리트 중산층의 견해가 중산층의 사회적 니즈
로 과대포장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증하고 있는 취약 중산층의 위험요인(주거 불안, 고용 불
안 등)을 경감시키는 데 중산층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
이다.
6. 주관적 소득 지위 인식과 편향의 특성
실험적으로 설계된 KDI 계층인식조사 2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객관적
계층 정보를 통해 인식 편향이 수정되었을 때 나타나는 변화를 분석적으
로 검토하였다.
소득 인식 편향(10분위로 측정된 주관적 지위와 객관적 지위 간 차이)
은 객관적 소득분위와 강한 부(-)의 관계를 보이는데, 이는 소득계층이
낮을수록 양의 편향, 높을수록 음의 편향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여 주
관적 계층 인식에서 중앙 쏠림 현상을 설명한다.
중앙 편향의 원인과 관련해서는 아르헨티나를 대상으로 한 기존 설명
을 뒤집는 결과가 확인되었다. Cruces et al.(2013)은 개인이 계층 지위를
인식할 때 자신의 주변 이웃들을 중심으로 모집단을 예상하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은 부자의 구성을 상대적으로 과대평가하여 하향 편향이
발생하고,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구성을 상대적으로
과대평가하여 상향 편향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대로라면
특정 소득계층의 사람들과 주로 친분이 있을 때 모집단에 대한 추론에서
해당 집단의 분포를 과대평가하여 편향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하지
만 우리의 분석에서는 주로 하향 편향을 가진 사람들에서 준거집단 효과
가 나타나는데, 상층과 주로 교류하는 사람일수록 편향의 크기(절댓값)가
줄어들고 하층과 주로 교류하는 사람들은 편향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
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소득 상위층에서 상층과
주로 교류하는 사람이면 자신을 상층에 가깝게, 하층과 주로 교류하는
사람이면 자신을 하층에 가깝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친구나 지인으로 대표되는 준거집단은 모집단을
추론하는 표본(sample)으로 고려된다기보다는 자신이 동일시하고자 하는
내집단(in-group)으로 간주되고 그 집단 구성원들과 비슷하게 자신을 위
치 지으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설명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는 인지심리
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중심 편향(center bias) 혹은 극단 회피(extremeness
aversion) 성향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7. 소득 지위의 오인식과 중산층 판단 / 재분배 선호
중산층 인식과 관련해 흥미로운 관찰은 소득 상위 20% 이내 혹은 자
산 상위 20% 이내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자신을 중
산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치 그룹에 한정해 보면, 자
신이 명백히 소득 상위 10% 혹은 자산 상위 10%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도 각각 71.1%, 78.4%가 자신을 여전히 중산층으로 판단하였다.
중산층 여부의 판단은 객관적 소득수준을 정확히 아는 것과는 크게 상
관이 없으며, 상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자산 정보에 대해서만
일부 조정을 하는데, 이러한 조정은 대부분 중산층 인식 가능성을 줄이
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소득과 자산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중산층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소득 및 자산 지위에 대한 정보 제공은 오히
려 중산층 판단기준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중산층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소득 및 자산 지위의 제곱항을 고려했으나, 모두 유의성이 없어 중산층
판단은 소득과 자산에 대해 단조 증가에 가깝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중산층’ 개념은
중간적 생활수준을 누리는 계층이 아니라 극소수의 상층부를 제외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삶을 영유하는 상위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득 지위에 따라 단조 증가하는 중산층 판단과는 달리, 재분배 선호
에서는 경제적 지위와 재분배 선호 간에 U자형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낮은 분위에서는 주관적 소득 및 자산분위가 증가할수록 재분배 선
호가 감소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재분배 선호가 다시 증가하는 패
턴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 실험 결과, 소득 인식 편향의 수정은 재분배 선호에 미미한 수준
에서 영향을 미쳤지만 자산 인식 편향의 수정은 재분배 선호에 유의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었다. 구체적으로, 인식 편향이 줄면 상향 편
향이 있는 하위계층에서는 재분배 선호가 더 증가하고 하향 편향이 있는
상위계층에서는 재분배 선호가 감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상향 편향을 가진 사람보다 하향 편향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으므로, 경제적 지위에 관한 오인식은 우리 사회 전반
의 재분배 선호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만약 객관적 정보를 통해 개개인의 경제적 지위에 관한 인식 편향이 줄
어든다면 평균적 의미에서 재분배 선호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8. 특권 중산층⋅능력주의 담론에 대한 실증적 검토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최근 사회학계를 중심으로 제시된 특권 중산
층 및 능력주의 담론에 대한 검증을 시도했다.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의
본질이 “1 대 99” 담론과 같은 극소수의 특권층 대 나머지가 아니며, 따
라서 극소수의 부를 다수에게 재분배하는 정책으로는 불평등 문제의 해
소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상위 10% 안팎의 신흥 상류
층이 문제의 근원이다.
소득 및 주관적 인식에 비추어 볼 때 심리적 비상층이 특권 중산층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들이 다른 계층, 특히 핵심
중산층에 비해 얼마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분석을
집중하였다. 또한 특권 중산층의 모토로 여겨지는 ‘능력주의’의 최대 피
해자라 할 수 있는 취약 중산층이 보여주는 견해의 특징과 차이 역시 확
인하였다.
다양한 분석은 복합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심리적 비상층은 능력주의
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의 역할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중산층보
다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성장이 물가안정보다 더 중
요하다고 생각하며, 기술 변화나 고령화와 같은 큰 변화에 대한 대응, 예
컨대 보상체계의 변화나 이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중산층 전반에 비해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심리적 비상층이 ‘특권 중산층’이라고 불릴 만한 요소를 기존
논의들에서 주장하는 만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입시제도의 단순화를 지지하며, 사회적 측면에서 균형을 제
고하는 정책에, 그리고 사회적 합의 추구와 다원화된 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물론 원론적인 견해와 구체적인 정책 태도나 행동이
불일치할 수는 있겠으나, 이들은 여전히 경제 역동성 제고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그간 제시되어 온 정책적 목표와 가장 가까운 집단이라는 점
은 분명하다.
제2절 정책 시사점
이제 본 보고서의 발견들이 주는 정책 시사점을 정리해 보자. 중산층
정책의 대상 설정, 중산층 정책에서의 고려 사항, 향후 연구 제언이라는
세 측면에서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1. 중산층 정책의 올바른 대상 설정
우리나라의 정책에 있어 중산층 확대는 모든 역대 정부가 추구한 핵심
정책기조였다. 중산층이 된다는 것이 개개인에게는 더 나은 생활수준을
영위함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는 두터운 중산층이 안정
적인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암묵적 기대가 있
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중산층의 범위가 조세 및 복지 정책
의 지원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정책적 관심의 대
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본 보고서는 중산층 내부에서 상당한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확
인했다. 기존 연구에 비해 본 연구에서 추가적으로 밝혀낸 것은 주관적
계층 인식과 객관적 기준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간극으로 인해 범중산층 내부에 매우 이질적인 여러 계층
이 혼합되어 각기 다른, 때로는 상충적인 정책 수요를 제기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사실이 정책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많은 정책이 객관적 기준
을 토대로 중산층을 규정하고 성과를 예측하지만, 정작 정책에 대한 선
호와 요구는 주관적 계층 인식을 반영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객관적
중산층과 주관적 중산층의 괴리는, 정책이 과도하게 전자에 의존할 때
정책에 대한 불만을, 후자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는 정책 왜곡을 야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단적인 예가 이미 상층에 진입했지만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비상층의 존재다. 이들은 교육-직업-자산 축적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통해 이미 계층 상승을 이루었지만 추가적인 상승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정책당국자의 관점에서 이들은 상층에 해당하여 정부의 지
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집단이다. 하지만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
는 이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할 가능
성이 높다. 이들은 강력한 사회적 발언권이나 문화 권력을 통해 중산층
정책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에 객관적으로는 중산층에 해당하지만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하는
취약 중산층의 존재도 정책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지위의 하
락을 경험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여 통상적인 중산층 대
상 정책보다 더 강한 지원을 원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층을 대상으로 하
는 정책 지원에서는 제외된다.
즉, 공통의 정체성과 정책 수요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의 거대한 중산
층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산층 전반을 대상
으로 하는 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
산층을 명백히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정책은 많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중산층 이상 계층은 여러 정책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고, 포
괄적인 정책기조의 효과를 평가할 때 중산층의 규모 및 소득 변화를 살
펴보는 경우가 많은 점을 보면 여전히 중산층이라는 존재는 정책의 설계,
집행 및 평가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의 분
화와 다층적 구조를 고려하여 좀 더 세분화된 대상 설정이 요구된다.
본 연구의 결과가 중산층 정책의 범위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현재 중
산층 수준의 소득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중산층에서 이탈할 위험이 있
는 사람들’ 또는 ‘중산층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
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층과 취약 중산층이 중산층에 진입하고 안착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산층 정책 본연의 당위적 과제라는 점 외에도,
객관적으로 소득과 자산 측면의 양극화가 상단보다는 하단에서 일어나고
있고, 취약 중산층의 경우 지위 하락으로 인한 주관적 인식의 악화를 함
께 경험하고, 그 불안과 박탈감이 경제 역동성을 제고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비상층 역시 객관적인 지위와 주관적인 계층 인식 간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또 다른 집단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안감은 상층에 아직 안
정적으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에 기인하며, 따라서 이들의 욕구는 계층
상승 기회의 공정성과 더불어 자산 축적과 노후 대비 등 자신의 지위 안
정화에 있다. 심리적 비상층의 정책 수요는 ‘중산층을 위한 정책’보다는
일반적인 기회의 공정성 정책, 주택시장정책, 노인정책 등으로 다룰 문제
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산층을 두텁게 한다는 기조를 이어 나간다면 구체적인 중산
층 정책의 우선순위를 취약 중산층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2. 중산층 정책의 고려 사항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객관적 계층 지위와 주관적 계층 지위 간의 불
일치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함에 있어 다양한 문제를 야
기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심리적 비상층의 목소리가 중산층 정책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다대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층과 심리적 비상층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 등 정치에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경로를 가지고 있어 자신들의 의제를 정책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정책 우선의 차이는 여러 국가에서 확인되고 있다(Traber
et al. 2021).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중요한 정책 이슈였던 부
동산 문제에 있어서도 중산층 내에서 다른 견해가 존재하는데, 취약 중
산층은 내집 마련을 위해 매매가격 안정이 특히 중요한 반면, 자가 보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심리적 비상층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는
주택가격 상승을 통한 자산 축적 증가가 매우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것
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주택 보유 장려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 중
어디에 힘을 싣느냐는 계층 간 정치적 영향력의 차이도 있겠으나, 시장
의 상황적 요인 역시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취약 중산층과 심리적
비상층 간에 존재하는 비대칭적 정치적 영향력은 분명 사회적 논의를 왜
곡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중산층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식별하고, 이들이 어
려움을 겪는 구조적 원인을 식별하여 정책 대응의 방향을 잡는 것이 무
엇보다 중요하다.
기술과 국제경제의 변화에 힘입어 엘리트 중산층이 새
롭게 부상한 만큼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계층은 지위가 하락할 가능성
이 높지만, 이들은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 과소대표될 가능성이 높기 때
문이다.
이들에 대한 직접 지원과 변화에 대한 적응 역량 훈련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교육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음 세대의 격
차를 완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심리
적 비상층이 능력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면
서도 단순화된 입시제도를 선호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술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학령기의 전 계층을 대상으로 제공하
되, 입시 요소화되어 계층 간 교육 투자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로 이어지
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의 또 다른 과제인 역동성 제고와 구조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는 심리적 비상층이 가장 강력한 지지 계층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 완화를 지지하고, AI와 로봇의 긍정적
효과를 더 강조하며, 직무급제를 더 선호하고, 교육의 질적 개선을 선호
한다. 이들의 선호는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의 방향과 전반
적으로 일치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안정과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더 느
끼는 다른 계층과 뚜렷이 대비된다. 따라서 성장을 위한 변화를 선호하
는 계층의 목소리를 정책을 설계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반영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술과
산업의 변화로부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평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일 것이다.
한편, 심리적 비상층이 자산 축적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이것이 주로
부동산시장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의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대추구 사회로 인식
하고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에 대한 생산적 투자를 꺼릴 가능성이 있기 때
문이다.
소득이나 자산에 직접적,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는
중산층의 지속적 확대를 달성하기 어렵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대한
단기적 개입의 반복은 시장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취약계
층의 주거안정과 내집 마련을 지원하고 고른 자산 축적의 가능성을 장기
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 계층, 특히 심리적 비상층과 취약 중산층의 주관적 인
식에 대해서도 정책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통계적으로는 소득이
나 자산 기준을 사용하지만, 정책에 대한 태도는 이들의 주관적 계층 인
식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의 트럼피즘이나 영국의 브
렉시트 사례에서처럼 상대적 박탈감이 무역과 이민으로부터 ‘피해를 보
았다고 믿는’ 등 특정 이슈와 연결될 경우, 정책에 대한 강한 반대 동력
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관적 태도 그 자체가 정
책의 대상이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
람들의 불만이 무엇에 기인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적절한 정책대안을
내놓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 하겠다.
3.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한 제언
본 보고서는 KDI 계층인식조사를 위주로 중산층의 다층성과 그 정책
적 함의를 다루었으나,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특히 소득과 자
산으로만은 파악되지 않는 심리적 비상층과 취약 중산층 사이의 격차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 사회
학계에서는 텍스트 분석 방법론을 활용하여 경제적 부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다르고 문화적 거리가 존재하는지를 보인 바 있다
(Kozlowski, Taddy, and Evans 2019).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상층 및 엘리
트 중산층은 다른 계층과 비교할 때 문화자본과 비인지적 역량에서 차이
가 더욱 크게 나타남을 보인 바 있다(조귀동 2020; 구해근, 2022).
이는
지리적 분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부에 따라 거주하는 지역
이 구분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준거집단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다
르고, 이들로부터 학습되는 비인지적 역량과 획득하는 정보들이 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주거지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기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이것이 중산층의 분화와 이질성에 앞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
칠지, 특히 정책 선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는 것은 추후 연구
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본문에서는 간략히 다루었으나, AI를 비롯한 새로운 파괴적 기술
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각 계층의 대응 능력이 얼마나 다른지, 고령화 및
기후위기와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비용 분담
에 관해 계층 간의 다른 생각을 확인하는 것도 추후 더 심도 있게 논의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를 시작으로 계층의 다원화 및 주관적 계층의식과 관련된 다양
한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엄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기를 기
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