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8 23:32
꿈책님/ 노무현을 지지했던 그 순수한 분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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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질문하신 3가지 주제들과 조금 연관되어 있어서 우선 노무현 이야기부터 할께요.
2007년 이명박이 당선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치적 실패의 결과입니다. 이명박이 전과 14범이라는 것도 알면서 "적당히 부정부패하고 닳아진 직장상사 이명박차장이, 깨끗하고 오롯한 을지문딕 부장님보다 대하기 편하다"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경제도 모르는 무능한 386보다는, 현대건설 사장님도 하고 그랬으니까, "혹시 경제는 살릴까?"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주 저의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고, 진보정당 입장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평가하는 것이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아래에서 제가 주장한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을, 국민들 속에 조장한 실패한 정권입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한국 사람들, 화병 걸려 있고, "복수심"에 불탑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 심지어 혁명운동을 외친 사람들, 패배의식으로 시무룩합니다. 이명박 정권 집권 1년도 채 안되어 지지율 20%를 유지하지만, 한나라당이 35%지지받고 있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35%는 커녕, 30%도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율이 서로 동반상승, 동반하락한다고 하지만, 미래에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을 만들었으면, 사이비 개혁당인 민주당과는 이제 엄연한 차별성을 지닌, 질적으로 다른 진보정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반상승 동반하락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래 글 두번째 이야기를 미리 하자면, "노무현 만세 사건"에 대한 비판의 배경에는, 1997년부터 2002년 사이에 벌어진 정치토론의 결과물이고 제 자신의 결론입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들(청와대에 같이 들어간 정치가들과 브레인들)의 정치적 판단을 비판한 것이지, 노무현 열풍을 만들어낸 광주사람들의 엽서편지의 "애정", 혹은 순수한 동기로 참여한 "노사모" 사람들의 "미래투자"를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들이 정치적인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다시 진보정당에 대한 투자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그런 순수한 분들이 대략 400만명 된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적어도 70-80년대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거나, 90년대, 2000년대에 새로 유권자가 된 분들 중에 합리적인 "정치관"을 가진 분들이라고 봅니다.
4백만 전체가 통째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느냐 마느냐 문제는, 순전히 이제 우리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2008년 진보신당처럼, 혹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보여준 민노당처럼 정당을 동네수퍼보다 더 못한 구멍가게처럼 운영하면, 4백만은 커녕 40만명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만세를 불러야 속이 시원하냐고 제목을 단 것은, 채만식 소설 [논 이야기] 마지막 대화와 독백이 생각나서 그렇게 붙인 것입니다.
핵심단어는 패배주의,복수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한국의 역사 속에서 "패배주의, 복수"라는 심리적 단어를 가지고 바라보자는 의도입니다.
(* 조금 긴데요 ~)
[논쟁 2002] 노무현 만세를 불러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원시, 2008-06-14 07:26:20 (코멘트: 0개, 조회수: 174번)
주제 : 김대중, 노무현식 자유-민주주의는,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을 종식시킬 수 있었는가?
진보정당은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노무현 문제'를 보자는 것입니다. 왜 다시 노무현인가? 과연 새로운 진보정치, 정당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5년 경험에 대해서, 또 민주노동당 5년 체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분들과 대화의 매개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2008년 새로운 진보정당 '다방'과 '카페'에 새로운 분들이, 친구들이 딸기 아이스크림, 현미 녹차, 커피 한잔씩 하러 오고 있습니다.
노무현 현상의 역사는 그렇게 짧은 게 아니고, 단순하게 노빠 대 신사회주의자 (좌파)로 구분한다고 해서, 새로운 진보정당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왜 그런가? 지금 광우병 쇠고기 현안을 봅시다. 이 문제는 '좌파'만의 독점적 정치주제가 아닙니다. 아니 막 나가서 '사회복지'도 좌파에게만 유리한 사회이슈도 아닙니다. 사회복지 제도를 나름대로 갖춰놓은 나라들 중에는, 보수당, 자유당이 집권당이 경우도 많습니다. 현재 '광우병 쇠고기' 촛불데모에서, 그 주도권을 뺏겨버리고 있는 한나라당, 자유당인 '통합'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무능한 것이고, 거의 자살골 먹고 있는 것입니다.
87년 이전과 이후가 뭐가 다른가? 그것은 반-독재 운동세력의 정치적 분화 (사회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반동의 흐름, 크게 보면 3가지입니다)가 이뤄졌다는 것과, 정치 투쟁 영역이 '게임 규칙'을 누가 정하느냐, 이 싸움이, 게임 자체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87년 이후, 특히 DJ 가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는, 진보정당인들은 보수주의, 자유주의에 대해서, 그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들만큼, 또 그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노무현 현상에 대한 유의미한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지금의 '통합 민주당'의 이론적 전제, 그게 한국식이건 뭐건 간에, 그 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럼, 흑백 필름처럼, 지난 5년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하나씩 하나씩 펼쳐보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제가 빠뜨린 부분들은 여러분들이 채워주시기 바라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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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2년 3월 불어닥친 '노풍'을 놓고, 과거 운동이랍시고 같이 했던 사람들끼리 논쟁 하다가 쓴 글입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 특히 운동권을 포함한 국민들의 '의식'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는가에 촛점을 맞췄습니다. 이번 현대 중공업 소위 하청업체 '인터기업' 노동자 박일수씨의 분신은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쥐새끼도 못되는 존재'로 자기를 묘사하고 분신함으로써, 이는 노동자 박수일 개인이 이 사회 전체를 향해 정치적 '테러'를 가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복수의식을 조장하는" 대한민국이 하청 노동자 박일수에게 가한 테러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예고된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노동자들 사이에 깊어가는 골, 그리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노조나 노동운동, 더 나아가서 민주노동당의 힘이 아직까지도 부족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복수의식, 나보다 못한 놈을 찾아 나서 '복수'와 '가학'을 서슴지 않는 이 복수의식을 조장하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찾아내야만, 우리 사회의 질병의 근원을 뿌리채 뽑을 수 있습니다.
◎ 2002/3/19(화) 07:18 (MSIE5.01) 130.63.75.220 1024x768
노무현 만세를 불러야 속이 쉬원하십니까? 2
부제: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助長)하는 세력들.
서두: 강준만과 문성근도 고뇌의 결단이 있었듯이, 저같은 사람들도 고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고뇌를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고뇌에서 '복수의식'과 '자학'이라는 단어들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보태줄 것을 희망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 언어는 귀찮아 하니까, 감성과 필링(feeling)의 시대에 부합하고자 '복수의식'과 '자학'이라는 감성적 언어를 사용해 봅니다.
무등(無等) 선생에게,사람들이 그래요. "정치는 원래 더럽다고, 집단적 폭력이 난무하기도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아시아 문화에, 불교나 노-장의 정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 배 저어 오노라"를 읊고, 강호 산촌에서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부르며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애처럽게도, 서울은 너무나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살지요. 수직으로도 수평으로도. 빈 배도 없고, 어디서 해가 떠서 지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앵글로 색슨, 그리고 수많은 다른 종족들이 좋아하는 말, 개인의 공간(personal space)는, 비싼 땅값이 말해주듯이, 가난한 자들에게 마치 천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서울의 현실입니다. 아마 아메리카 혹은 캐나다 직장인들더러 한국 비즈니스맨들처럼 그렇게 일하고 반강제로 술마시면서 살아라고 그러면, 80%이상은 탈출을 꿈꿀 것입니다. 지금 한국 대졸자들이 꿈꾸는 이민처럼.
자기 이해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사회.
2000년 한국 대기업 노동자들 일부 (한국 노총이건 민주 노총에 가입되었고, 정규직인 노동자들)는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과 회사 유니폼을 '동일하게' 입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금속연맹 산하 노조들에서도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중소기업 노동자들보다 350%정도 많다고 합니다. 노동운동에 아직도 참여하고 있는 동료들이 다 지적하는 것은, '임금인상 투쟁' '기업별 노동조합' 운동방식이 그 한계에 이르렀고, 더 이상 사회 개혁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전체 노동자의 20% 도 되지 않은 노동조합 조직율인데도, 벌써 관료주의 병폐, 비-민주적인 노동조합 운영방식으로, 노조원들이 조합에 참여하는 것을 꺼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조합원들의 창발적 생각에 기초한 운영방식 보다는, 몇몇 간부들의 정치적 결단이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지하철 노조의 배일도 위원장의 '신-노동조합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사-협조주의' 나 경제주의적 노동조합 운영 방식은 과거 20세기 서유럽의 역사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비춰보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참 어떤 측면에서는 식상하죠. 우리도 서유럽, 북아메리카,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맑스가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사회가 임신한 혁명의 씨앗이라고 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서구 유럽 노동자들은, 파시즘, 심지어 나치즘에 동조하거나,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맑스의 말과는 정반대로 조국 방위전쟁에 참가하고, 더 나아가서 인종주의-우익 민족주의에 굴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하고, 공산주의 당 역시 자기 개별 국가의 이익추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와중에, 계급투쟁의 성과, 사회주의 운동의 결실로, 사회 합리적 시스템과 규율,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아마 피터지는 계급 투쟁이 없이는, 그런 제도적 장치는 없었을 것입니다.지금 노동자계급(화이트건 블루건간에)이나 농민, 도시빈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혁명적'이나, 아니다 역사를 봐라 '개량화'되었다. 이런 논쟁은 그렇게 실천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의 노동자, 아직 정치적 시민 아니다. 노동의 사회적 인정 못받고 있다.
이야기가 지리하더라도 맑스가 말한 노동자계급의 기원을 잠깐 이야기합니다. 맑스가 영국의 역사적 사례를 분석하면서,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신체만 딸랑 가진 사람들, 자기 노동력을 상품처럼( 자신의 사용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해내는 특이한 상품), 도시 공장에다 팔아야 먹고 사는 사람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또한 잃은 것도 많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맑스는 더 나아가서, 이러한 노동자계급이, 자기들의 임금인상 투쟁이나,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사회적 보편적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집단, 역사 속에서, 자유의 이념을 지상에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집단이라 여겼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 사례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맑스가 말한 것을 반복하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선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노동운동이 '과잉' 제도화되었냐, 개량이나 혁명이냐 이것을 떠나서, 한국 사회는 자기 계급적 이해관계, 경제적 처지에서, 정치적 처지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공적인 통로가 너무 좁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 통로를 특권층이나 지배층(사회주도 인사들)이 가로 막고, 나아가서 때려부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아시아 지역에서 온 해외 노동자들 아닙니까 ?
굳이 맑스 입을 빌지 않아도, 전 사회적 보편적인 이해관계가 뭐냐를 당장에 규정하거나, 그 보편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할 어떤 특정 계급이나 집단을 이론적으로 구구절절이 규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의식적 행위가 여기에 보태진다면, '전사회의 보편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적 정당도 창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서든지간에, 노동하는 사람들이건, 지식인이건, 자신이 스스로 자각하는 계기 - 각성-가 있어야, 전사회적 보편적 이해관계를 쳐다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민 그 자체는, 반동이 될 수도 있고, 지역주의-연고주의의 노예가 될 수도 있고, 중립적 관전자가 될 수 있습니다. 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보여준 투표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역주의는 현재 정치권이 배태하고 조장(助長)한 것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의 현단계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 이해관계를 표현할 정치적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요 ?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식민지 경험을 통한 '패배주의'의 잔재, 한국 전쟁 이후, 이념적 정치 지향을 가질 수 없었고, 지식인들의 현 체제, 가족주의에 대한 수동적 굴종 (물론 80년대 이후 전 국민적 각성의 기회가 있었고, 그게 대중화되었기는 하지만), 박정희 정치 독재 문화가 일상 생활 곳곳에 침투, 이런 역사적으로 형성된 잔재들은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 전체가 '민주주의적인 삶의 가치'를 훈련할 수 있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발표하고, 상대방의 이해관계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고, 민중들의 의사통로를 봉쇄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주시해서 볼 것은, 전국민들 상대로 '자학(自虐)'의 계기를 조장하는 정치 세력들의 음모와 집요한 노력이 지난 50년간 계속되었고, 특히 이러한 국내의 지배 집단은, 이번 이회창의 아메리카 방문시 보여준, 사대주의적 아메리카에 대한 맹신, 충성를 외치면서, 국내에서 자신들의 결핍된 정치적 정당성을 벌충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경험, 그리고 온갖 독재 양식에 굴종한 사람들에게, 그 심장에 새겨진 것은 '복수의식', 피해자로서 당한 '패배의식'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이러한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에 누구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이런 복수의식과 패배의식이 전 국민의 머리에 아로새겨져 있다는 사실이고, '복수의식'의 대리 피해자를 찾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게 경상도-전라도-충청도 하면서, '복수의식'를 승화시킬 제도나 기회, 정치적 공간, 개인적 공간, 일상에서 화해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상의 '적'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 지배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이런 '자학'의 계기들, 복수의식의 계기들을 적절하게 아주 효과적으로 백분 활용했고, 아직까지도 그런 자학의 계기들을, 복수의식을 조장하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장 助長: 맹자에 나오는 고사성어: 중국 송나라 어느 모자란 농부가 모를 심어놓고, 모를 모판으로부터 길게 빼어, 키가 웃자라게 해놓고, 모가 금새 자랐다고 자랑하는 것을 비판하는 고사. 조장의 결론은 죽음입니다)
그런 조장 세력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엉터리 이론을 과학적으로 판매하시는 서울대 출신 및 기타 일류대 유학파 교수들, 정-재계 연구소장들도 있습니다. 이런 전 사회적으로 퍼진 복수의식과 패배주의는, 어떤 측면에서는, 사회의 합리화를 앞당기는, 민주적 실천의 중요한 측면인 계급투쟁의 연습을 '파괴적 자해행위' 혹은 시대에 뒤처진 빨갱이들의 미성숙된 소행이라고 규탄하고,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무등선생이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경제, 정치,사회, 철학적 이해관계로 서로 갈등하고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갈등의 기초에는 아마 현재 경제, 정치 시스템의 불완전성이 있겠지요. 그런데다, 사람들의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큰 문제이고. 일례로 한국의 자화상을 보면 알잖아요. 서울대라는 제도가 얼마나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반영하고 있습니까.
정치 정당, 의회제도, 학교, 병원제도는 마치 그 여의도 의사당, 서울대, 삼성의료병원 건물 그 자체처럼, 콘크리이트처럼 완벽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심화, 타협, 반동, 견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인간들의 갈등과 그 갈등해소의 타협물입니다. 현재 서유럽의 좌-우파 정치 정당 형식들이 다 이런 것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유럽식 민주주의제도가 최선의 것은 아닙니다. 현재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아프카니스탄 침략의 정당화, 심지어 격려, 예찬을 보면,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한 허상을 봅니다. 프랑스 역시, 무기 수출이 아메리카 다음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김근태씨보다 조금 더, 이 방면에서 진보적인, 노무현씨가 '유럽식 제도'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역사적 차이를 간과한 그러한 소박한 바램은 우리가 갈 길도 아니고, 유럽에서 5년-6년간 학교 근처에서 살다가 오신 분들의 이야기 듣고, 그런식의 답변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연금' 현황을 안다면, 그러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서유럽 민주주의의 현재 물적인 토대가 무엇입니까 ?
다시 복수의식과 자학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인가 ? 어떠한 계급투쟁이 제대로 터져 나와야, 전사회에 뭉쳐진 고름이 몸 밖으로 터져나오게 되어, 전사회가 건강을 회복하는가. 민족해방이나 민중지향적 민주주의의 완성 사실 이것들은, 현실적 우리들의 이해관계이기도 하지만, 단지 이해관계의 경제적인 실현을 넘어선, 의식적이고 문화적인 자기 정화(catharsis) 이기도 합니다. 요새는 저는 노동계급이라는 말이나, 민중이라는 말 보다는, '노동 소득세, 근로 소득세'를 내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더 즐겨 씁니다.
단지 원천적으로 그 노동소득세를 징수당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자기 노동을 인정받는 가회, 그들이 전사회의 주체적 시민이 되고, 사회의 책임자가 되는 조건은, 그들이 자기 이해관계들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고, 자기들이 스스로 그런 이해관계를 풀 수 있는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데모도 하고, 화염병도 던지고, 술집에서 노래도 부르고, 조직도 만들어 보고, 혁명한다고 미쳐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시절이 어떻게 돼서 그랬건, 우리가 잘못해서 그랬건, 사회에 나오게 되고,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랫다리 힘도 없고, 흰머리는 나고, 주체할 수 없는 욕구도 생기고, 출세도 하고 싶고, 꼭 출세라기 보다는 좀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맘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지요. 뭐 우리가 대단한 권력의지를 실현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이런 주체적 시민, 우리 사회의 주인인 그들에게 '자학감, 자괴감'을 심어주고, '복수의식'을 발동시켜, 정치적 스트레스로 만들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공격하고, 더 '못난 놈'을 찾아 다니면서, 꺼꾸려 뜨릴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세력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더 그럴싸한 말들만 더 많이 생겨나서, 머리만 더 헷갈리고, 언어도 영어부터 중국어, 제 3, 4 외국어까지 섞어져서,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지요. 이런 복수의식, 자학 의식을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 공작'을 벌이고 있는 세력들이, 다 우아한 자태로 상류사회를 건설하려고 하는데, 그 자태란 그리 아름답지 못하더라 이겁니다.
많은 80년대 운동권들이, 혹은 그 전세대 운동권들이, 사회에 나아가서, 플라톤의 철학자 킹이, 동굴을 순시하시듯이, 현실을 보시고, 의식적으로 무식적으로, '한국 민중들'을 탓하고, 국민, 노동하는 사람들 자체를 질타하면서, 어느새 계몽군주 역할을 자임하게 되었습니다.
무등 선생, 통일호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 올 때, 우리가 계몽군주 될라고 한 것은 아니었제. 수많은 오류와 잘못들,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남한의 학생운동이 그리고 노동운동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의미 있는 몸짓인 이유는, 한글도 모르는 밭매는 할매도, 강철 톱밥 먹으면서 '조국의 근대화의 초석'이었던 구로공단의 노동자들도, 떡뽂기 하나에도 감동해 했던, 우성 어패럴의 여성 노동자들이, 다 똑같은 사람들이고, 동일한 양심을 지닌 사람들임을, 이 너무나 평범 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생각하는 것(학이사 學而思)을 게을리하는 것을 탓해야지, 나이를 탓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는 젊습니다.누가 누구를 다시 계몽하는가. 누가 과거에 얽매여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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