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군대로 복귀한다고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행보는 1963년 대통령 선거 출마에 맞춰져 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정희는 1962년 정초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울산공업 쎈터 시공식을 했다.


연설 제목이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이었다.


울산공업쎈터는 민족의 빈부의 판가름이 날 것이라며, 서독 라인강의 기적인 '루르의 기적'을 초월해 신라의 영성을 재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516 군사쿠데타를 한 목적은 정권야욕이 아니라 빈곤을 추방하고, 번영과 복지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재건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울산공업도시 건설은 516세력의 상징적 웅도이며, 국민은 이를 위해 각성,분발,협동하라고 주장했다. 


울산공업도시에는 석유화학, 제삼비료, 종합체철, 화력발전소 등이 건설된다. 자본금은 당시 512억부터 출발했고, 외자도 빌려왔다. 단기간 고용은 10만명이고, 장기적으로 50만명을 고용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살 아파트 9기, 신규 단독주택 1만 8천호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울산공업쎈터 시공은 1964년에 시작되어 1967년에 완공하기로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비료공장 사장이 이병철이라는 점이다.



1962년 2월 4일자 동아일보




1962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이병철 (비료공장)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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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형일자리 신설은 울산경제 망하는 길"
    이기암 기자 승인 2018.11.14 20:18 -

    현대차지부, 송철호 울산시장에 "광주형 일자리" 반대입장 전달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14일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광주형일자리 신설은 울산경제 망하는 길”이라며 울산경제와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한 울산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미래차로 달려가고 있으며, 현대자동차 해외공장생산이 70%를 넘어서면서 국내공장 생산과 수출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2014년 한전부지 고가매입 사태이후 현대차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차량판매 부진으로 영업이익률은 하락해 경영위기가 엄습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차 경영악화는 미국, 중국 등 해외공장의 판매부진과 실적하락, 전기차 등 미래 차와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투자 부진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 원인이며, 지금은 경영악화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대책을 세우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연구개발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며 현대차에 송철호 울산시장이 강력한 조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 신설로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고용은 악화되고 울산경제가 몰락할 것이며 국내 경차시장은 14만대인데 광주지역 10만대 공장 신설은 울산, 창원, 평택, 서산 등 다른 지역 자동차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국내차 생산대수 하락으로 부도위기에 몰려 있는 2,3차 부품 사들은 공장폐쇄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지부는 “지난 11월 1일 제135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광주형 일자리 저지투쟁’을 결의했으며 만약 현대차가 정치권의 광주전남지역 패권차지를 위한 포플리즘을 위해 3세경영 세습과 맞바꾸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제2의 한전부지 사태로 규정해 자동차산업 동반 몰락 방지, 울산경제 몰락을 막기 위해 즉각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대차지부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금속노조 울산지부를 비롯한 울산노동계는 광주시와 울산시의 갈등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 울산경제와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송철호시장님이 앞장서 광주형일자리 10만대 공장 건설추진을 막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현대차지부는 ‘광주형 일자리 투자반대’ 항의서한을 송철호 시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송 시장의 부재로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기암 기자

삼권 분립 포기, 대법원과 법관이 박근혜와 김기춘의 시녀로 전락, 한국외교부의 굴욕, 강제 징용 피해자 인권 말살이다.


박근혜와 김기춘이 양승태와 차한성에게 지시해서,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판결을 지연시키고 추가소송을 막아라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차한성은 김기춘의 지시대로 행동했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게 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는데, 박근혜와 양승태는 이를 차단하고, 한국과 일본이 '재단'을 만들어서, 배상액을 축소해 수백만원 정도를 지급하려는 작전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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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푼돈 배상' 시나리오까지…"박근혜 지시"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8.11.07 21:28 -

<앵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 규모를 줄이는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됐습니다. 판결을 지연시켜 추가 소송을 막고 대신 재단을 설립해 수백만 원 정도로 보상해 주자는 건데 검찰은 이런 방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해 추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찬종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지난 2013년 12월, 법원행정처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규모를 축소하는 시나리오 문건을 작성했습니다.


아직 소송을 내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는 2015년 5월까지 판결 확정을 미뤄 추가로 소송이 접수되는 걸 막고 배상은 일본 기업이 아니라 한일 양국이 공동 설립할 재단이 하도록 하는 방안이 적혀 있습니다.


소송을 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1인당 3백만 원 정도 보상하는 안도 포함됐습니다.


검찰은 이 문건 작성 배경에 청와대가 있었던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법원행정처 문건 작성 1달 전에 작성된 외교부 내부 문건에 대법원을 설득해 선고를 늦추도록 하는 방안을 대통령이 승인했다면서 양국이 공동 설립할 재단이 배상하는 방안도 보고됐다고 적혀 있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방안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통해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전달됐고 이 방안을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공모해 징용 피해자들의 권리 행사를 사실상 봉쇄한 것으로 보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입니다.


(영상편집 : 하성원)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07274&oaid=N1005007274&plink=RECOMM&cooper=SBSNEWSEND&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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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 2인자" "임자", 당신들이 말한 "풍운아" 김종필이 "빌어먹을 자식"으로부터 받은 무궁화장 훈장, 한국정치의 현주소다.


박정희와 같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자행한 김종필의 판단은 시대착오였다. 1960년 이승만 독재자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한국 시민들의 항쟁 정신을 무시하는 시대착오적인 반동정치였다. 2017년 냉전의 섬을 해체하자던 문재인의 발언을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욕한 김종필의 발언 역시 시대착오였다. 김종필의 정치 시작과 끝은 시종일관 시대착오적이었다. 


평범한 외국 시민들도 '넌센스'라고 말하는 70년 남북 분단과 냉전의 섬을 해체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제 2의 박정희, 박근혜, 김종필이 코리아 정치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들이 모두다 시험공부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정치에 참여하는 길 밖에 없다.

 

2017년 5월 5일 김종필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면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을 비난했다. 그 이유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김정은을 만난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김종필은 '버르장버리 없다'고 문재인을 비난했다.


김종필이 홍준표를 대선 후보로 지지하면서 문재인을 비난하는 발언은 다음과 같다.


난 뭘 봐도 "문재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이가 얼마 전에 한참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어. 당선되면 김정은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냐 말이야. 김정은이가 자기 할아버지라도 되나? 빌어먹을 자식. (홍준표를 바라보며) 꼭 되어야겠어. 홍준표 "네 꼭 되겠습니다"


<후기> 김종필에게 무궁화장을 추서한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나 통이 큰 인자한 정치인인가? "빌어먹을 자식"에게 받은 무궁화장 훈장 




난 뭘 봐도 "문재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재인이가 얼마 전에 한참 으스대고 있을 때 한 소리가 있어. 당선되면 김정은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냐 말이야.







김정은이가 자기 할아버지라도 되나?

빌어먹을 자식.

(홍준표를 바라보며) 꼭 되어야겠어.

 









홍준표 "네 꼭 되겠습니다"




2017.05.05 YTN 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lYSoBrsoD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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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비유법의 달인 김종필이 남긴 폐해 - 거짓말과 정치적 은유, 훈장 추서 반대


- 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는 공약실천과 무관하게 "아버지가 이룩한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되돌려 드립니다"는 슬로건을 들고 나올 것이라고 보았다. 2010년 경 진보정당은 불필요하다고 하면서 민주당으로 다 모여라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런 생각은 박근혜에게도 질 수 있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아니다 다를까 실제로 박근혜는 박정희 하에서 일한 바 있는 김종인을 내세워 마치 민주노동당 정책집을 베낀 것 같은 복지정책을 들고 나왔다. 새로울 거 하나도 없다.20세기 사회복지국가를 이룩한 유럽,캐나다에서는 보수당이 모조리 전부 '사회복지 국가론'을 당론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선이후, 또 아니다 다를까 박근혜는 공약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 2012년 이후 연구주제는 당연히 '반동 혁명 counter-revolution'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실천되는가였다. 내 관심사는 박근혜와 박정희의 차이점과 동일성이었다.  이것도 너무 자명하고, 수준도 난해하지 않은 주제이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싸운 세대는 이승만-419-516-유신체제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제도적 공간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것까지는 많이들 공부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한국에 진보정당이 들어선 이후, 한국 경제사 정치사 문화사는 굉장히 중요한 학습주제이자, 투표에서 득표와 긴밀히 연결된 블루칩이다. 


- 1963년 2월 18일 뉴스 1면이다. 김종필씨는 박근혜와 육영수의 못된 점을 비판하고 인터뷰하고 별세했지만, 김종필 본인이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이양'을 주장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답변해주지 않고 떠나갔다. 


- 세계 시민들은 다 안다. 한국처럼 시민들이 정치 데모를 잘 하는 나라는 70억 인구들 중에 몇 안되는 톱 클라스라는 것을. 


그런데 정당 정치나 국회의원 선출 제도는 세계 하위권이다. 이 격차는 어디서 생겼는가? 왜 정치인들은 거짓말하는 존재로 시민들에게 각인되었는가? 그 극명한 출발점이 박정희의 거짓말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거짓말을 극렬 조장하고 협력한 육사 8기 김종필과 김형욱 등의 516 군사 쿠데타 부역자들이다. 


- 2018년이라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부터 1963년 10월 17일 대선까지 정치 권력 공백기를 국민들이 감당하고 인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도 안되는 2년의 시기 동안, 한국경제를 원조 해준 미국, 군사적 동맹 미국 케네디는 무엇을 한 것일까? 건설 부동산 자본가 출신 트럼프를 생각해보면 상전벽해다.


- 박정희 516군사 쿠데타에 동조한 당시 육사 5기 주축 장교들과 해병대 장교들은 '민정 이양'을 주장하고, 박정희-김종필-김형욱 세력과 대립했고, 비밀막사에서 격론을 펼치다가 열받아 권총을 꺼내들고 죽이네 살리네까지 갔다는 증언도 있었다.


-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준비하고 일으킬 당시부터 권력장악을 목표로 했다고 난 본다. 정치 권력 공백기 2년 동안 박정희는 끊임없이 언론전을 수행하고 (이후락을 특임해 언론 접촉면을 늘렸다) 거짓말 전술을 펼쳤다. 


- 박정희가 대놓고 거짓말 전술을 펼칠 수 있었던 정치적 배경은 (1) 어떤 역사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윤보선 민주당 구파 우두머리도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이후, 민주당 신파 장면을 물러나게 한 이후, 윤보선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한다. 민주당 내 구파와 신파의 분열이 한 축이다.


(2) 당시 한국 정치에 지금보다는 훨씬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던 미국 민주당 케네디 정권의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방조와 침묵


(3) 416 항쟁 이후, 민주당이 국민들의 개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점, 경제 자립 노선은 더디고 민생은 더 나빠졌고, 보릿고개 넘지 못하는 국민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4) 군부 내부 반대세력 제거. 장도영 이북출신, 나이도 박정희보다 어린 참모총장을 정치적으로 구워 삶았다. 장도영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결국 박정희 쿠데타 성공으로 이어졌고, 장도영도 본인 기대와 달리, 박정희에게 이용당하고 폐기처분되었다. 


- 1963년 2월 18일, 박정희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내세워, 실제로는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을 발표한 셈이다. 너무 속이 보이는 빤한 '민정 불참 조건들' 나열이었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일부터 '군인은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대통령 2번만 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967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되자 마자, 삼선 개헌 악법을 만들었다. 

1971년 삼선되자 마자, 통일 내세워, 영구 집권 총통제가 그 핵심인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다 거짓말이었다. 


보릿고개 밥먹여 준다는 자칭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고, 배고픈 한국인들을 거짓말로 잘 요리한 사람들이 박정희와 총명아 김종필이었다. 

그 이후 한국정치와 정당정치는 거짓말이 밥이 되고, 밥이 거짓말이 되는, 독일 철학자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술처럼, 밥과 거짓말의 대화 (dialectics)가 한국 현실에서 삶이 되었다.


1963년 2월 18일자 박정희는 약속했다. 거짓말을 약속했다.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 (불참)'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가 거짓말을 같이 만들어낸 김종필에게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임자 조그만 참아, 경제건설 끝나면 임자 차례야' 김종필의 인고의 시간은 끝이 없을 줄 알았다. 2인자 김종필도 박정희의 거짓말을 밥먹듯이 진짜 먹고 살아왔다. 김형욱과 다른 운명을 위해서는.


-1979년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1026 사건이란, 정치적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면 어떠한 말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026 이전에 김종필은 쿠데타 동료, 육사 8기 동료 김형욱을 잃어버렸다. 김형욱을 누가 죽였는가? 516 군사쿠데타 동료 박정희 지시였다. 이게 다 거짓말같은 역사의 진실이란 말인가?


김종필 전총리가 은유법에 능한 이유가 다 무엇이겠는가? 어떠한 경우에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지 않으면,친구도 동료도 다 죽이는, 살아 남기 힘든 정치 현장에서 가족들을 거느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은유의 발전은 두 가지 원천이 있다. 하나는 끊임없는 실천적 학습에서 비롯된다.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끊임없는 거짓말 사용이다.


김종필씨가 정치적 비유와 은유를 많이 쓰고 잘 썼다고들 하는데, 그런 배경에는 박정희와 함께 만든 거짓말이 짙게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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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스키 미 국무장관의 비밀전문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sbs 뉴스 보도를 보고 난 소감) 1980년 5월 21일 광주 도청앞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 명령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5월 27일 광주 도청를 사수하던 시민군 진압 명령자는 전두환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머스키 비밀전문 공개로 인해, 1997년 한국 법정이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을 때, 그 논거는 바로 전두환이 5월 25일 광주도청 최종진압 작전 결정 회의에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부장관 등과 같이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97년 대법원 논거에 따르면, 전두환은 내란목적 살인의 공동책임자들 중에 한 명에 불과하고, 전두환이 단독 '명령 책임자'는 아닌 셈이었다. 이번 머스키 미국무장관의 비밀전문 공개로 5월 27일 광주도청 최후 진압 명령자가 전두환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2. sbs 장훈경 기자 보도 요지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 도청 최후 진압 명령자가 전두환이었다. 당시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에드먼드 머스키가 한국 중국 일본에 있는 미국 대사들에게 보낸 비밀 전문 기록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머스키 비밀 전문에는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군사작전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미국 시각 5월 25일 오전 9시. 


광주 도청에 남아 있던 광주시민군들과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면 계엄군의 도청진압이 시작되면 합참의장이 미국에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2. 518 광주 항쟁 당시, 북한군 투입설을 발표한 자가 바로 전두환이었다.


5.18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전 씨가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는데 광주에 관한 질문을 받자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답한 걸로 보고됐습니다.


뉴스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758089


(에드먼드 머스키 Edmund Muskie : 1980년 5월 8일 ~ 1981년 1월 18일까지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 하에서 미 국무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작과 왜곡


[끝까지판다] "북한군 투입설 배후는 전두환이었다" 5.18 미 국무부 전문 탐사보도 (풀영상)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8.05.15 10:10-

<앵커>

SBS 탐사 보도팀은 지난 1년 동안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또 여러분께 전해드렸습니다. 5·18 38주년이 되는 이번 주에는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에서 SBS 탐사 보도팀이 확인한 새로운 사실들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14일)은 먼저 최종 진압 작전은 누구의 지시였는지 또 광주의 북한군 투입설을 처음 퍼뜨린 사람은 과연 누군지에 대한 내용인데 비밀 전문이 지목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 명이었습니다. 전두환 씨였습니다.


장훈경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전두환 씨는 80년 5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전두환/SBS 인터뷰 (2003년 2월) : 군은 지휘 계통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지. (중앙)정보부 부장이 아무리 세도 작전 지시하면 절대 안 움직입니다. 군대라는 건 지휘 계통에 의해 딱 움직이는 거요.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요.]


지난해 낸 회고록에서도 80년 5월 27일 최종 진압 작전은 이틀 전인 25일, 작전이 결정되고 난 뒤에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SBS가 확인한 5.18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은 최종 진압 작전의 책임자로 전두환 씨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국 시각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대사관 등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군사 작전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보고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마지막 협상 시도가 실패하면 진압 작전이 시작될 예정인데, 이 경우 합참의장이 미국에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5·18 기간 중에도 한국 문서에는 거의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등장을 안 하죠.

 왜냐면 그동안 제5공화국을 지나면서 대부분 이름을 지워버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 문서에는 그대로 지금 남아 있는 거죠. 그런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다음 날인 한국 시각 26일 오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뒤 국무장관에게 긴급 전문을 보내 27일 0시쯤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고 보고합니다.


이 보고 이후 미국 시각 5월 26일 오전 7시 머스키 국무장관이 전파한 '한국 상황 보고서'입니다.


전두환 장군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광주 진입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 투입을 한다고 알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전두환 씨가 주장하는 부분들은 자신이 했던 역사적 책임, 사법적 심판을 피하기 위한 거짓이라는 게 확인됐다(고 봅니다).]


신군부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오던 미국의 정보망은 전두환 씨의 결심으로 최종 진압 작전이 결정되고 수행된 과정을 구체적이고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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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판다②] "'5·18 북한군 투입설' 전두환이 첫 언급"


<앵커>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주에 북한군이 투입돼 폭동을 선동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거짓 주장은 지금도 일부 극우 인사들이 계속 퍼뜨리고 있는데, 저희가 미국 국무부의 비밀 문건을 분석해봤더니 북한군 투입설을 공식석상에서 처음 거론한 인물도 전두환 씨 였습니다.


박세용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 있다" "북한 특수전 요원이 개입한 걸로 추측할 수 있다" 전두환 회고록 1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법원이 지난해 허위 사실로 인정해 회고록에서 삭제하라고 결정한 부분입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전 씨 회고록에 모두 18번 등장합니다. 대부분 지만원 씨 같은 극우 인사 주장을 인용한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SBS가 확인한 미 국무부 비밀 문건에는 이 주장을 전 씨가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5.18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전 씨가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는데 광주에 관한 질문을 받자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고 답한 걸로 보고됐습니다.


전 씨는 또 "5.18의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를 기소해서 이걸 입증하겠다"고 강조한 걸로 적혀 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마치 북한군들이 실제로 들어온 것처럼 그때 당시에도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죠. 그때 전두환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 자체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인데.]


북한군 투입설은 80년대 중반 신군부가 5.18의 진상을 왜곡하기 위해서 안기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유포한 걸로 드러났는데 그 시작은 전두환 씨였던 겁니다.


그러나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미 국무부 비밀 문건에도 "5.18은 공산주의가 배후에 있지도 않았고 북한군 투입 사실도 없다. 이건 확실한 사실"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전두환 씨 발언에 관한 국무부 문건 내용에 대해 전 씨 측은 "대통령이 되기 전 일이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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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판다③] '전두환이 최종진압 작전 지시', 왜 중요한가?


<앵커>


5·18의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해서 보도해 드리고 있는 장훈경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Q. 5·18 당시 美 국무부 비밀문서는 어떤 자료? 


[SBS 장훈경 기자 : 1980년 5·18 전후로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주고받은 비밀 전문인데, 비밀 해제가 돼 열람할 수 있게 된 자료입니다. 최근 광주지검이 5·18 당시 헬기 사격의 객관적 증거로 "실제 발포가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문건을 제시했는데, 같은 국무부 자료에 포함됐던 겁니다. 국내의 5·18 관련 기록들은 그동안 사라지거나 왜곡된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런 조작이 불가능한 미국 국무부 문서는 진상 규명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Q. 전두환 최종 진압 작전 지시, 왜 중요한가?


[SBS 장훈경 기자 :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 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최종 진압 작전을 결정에 대한 내란목적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죠. 이때 근거가 전 씨가 작전 이틀 전 계엄사령관,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에 참여한 신군부 인사들이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된 겁니다. 

분명히 결정 주도자가 있을 텐데 그건 못 밝혔고 사법적 책임도 정당히 지우지 못한 거죠. 전 씨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에는 자신이 참여했던 회의는 최종 진압 작전이 결정이 된 이후여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까지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진압 작전을 전두환 씨가 결심하고 그에 따라 작전이 수행됐다는 미 국무부 문건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75808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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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5 at 2:16am · 


아직 1980년 518 광주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이라고 확정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침략자 이름은 확정되었는데, 518 시민 학살자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전두환이 국민의 군대를 이용해 시민을 학살했다는 혐의만 있지, 아직 전두환은 도요테미 히데요시가 아니다.


전두환이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광주 시민들을 초기에 박살해라는 '대명 Grand Order'를 내렸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아직도 발포 책임자로 확정 판결되지 않았다. 전두환 재판은 반드시 다시 열려야 한다.


PD 수첩 송일준 피디가 광주 MBC 사장이다. 두 편의 광주 다큐멘타리 제작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역사 정치 공부가 될 것이다.


#전두환_발포책임_재판_다시하자_문재인_국민청원_필요하다_끝까지_전두환_자연사하기_전에_재판은_다시_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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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사: "막스 베버 전공자인 김 교수에게 있어 근대의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분화, 학문의 분화, 개인의 분화(개인화) 등 ‘분화’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다."


몇 가지 주제들 (1) 종교와 정치는 서로 분리되기도 한다. 특히 1647년~1688년 영국 제 1차 혁명, 2차 혁명(명예혁명) 주제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의 다원성 인정, 그리고 종교와 정치 (행정)의 분리, 의회 권력의 분화 (왕권과 땅 토지 대지주들의 의회 권력분화 및 경쟁) 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서유럽 국가들은 '정치' 권력과 '종교(기독교)'의 분화 및 분리를 경험했다. 엄청난 피의 댓가로. 


(2) 그런데 현재 독일 수상은 기독교-민주주의-연합(기민련)과 기사련 (기독교-사회-연합)의 앙겔라 메르켈이다. 정치(정당)와 종교(기독교)가 붙어있다. 분리되지 않았다. 종교와 정치의 분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도 그렇다면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인가? 신문기사, 김덕영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그 답은 '그렇다'이다.


기사련은 체.에스.우,  Christlich-Sociale-Union in Bayern (바이에른 주에만 있는 정당이다)

기민련은 체.데.우, Christlich-Demokratische-Union in Deutschlands (독일 기독교-민주주의-연합)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은 '통일체'를 뜻한다.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이다.


(3) 내가 보기에는 한국도 이미 서유럽 기준(영국, 독일, 프랑스 등)으로 보더라도 '근대적 의미의 분화 '가 많이 일어났다.

분화: (Differentiation: 정치, 경제,사회,문화 체계들이 자기 스스로 하부 체계들로 갈라지면서 자기 영토를 넓혀가면서, 전체 체계의 복합성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과정)


물론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 비교해서 한국이 '분화'가 덜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각각 증명하면 될 일이고 증거를 대면 학문이 될 것이다.  이런 비교 연구도 아직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남의 나라 좋은 사례는 배우면 좋은 거니까. 


하지만, 이제 연구과제는 한국이 지난 100년 넘게 겪고 있는 근대화 과정의 '특질 characteristics'과 그 변화 과정 (dynamics)을 해명하는 것이다. 


예를들어서 독일은 기독교 (종교) 가 명시적으로 정치영역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독교 정당이 국회의원 1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1945년 이후 기독교 정당이 주도적이고 명시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정치 참여는 독일만큼 질적으로 양적으로 높다. 독일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기독교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반독재 운동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입장까지 다양하다. 교육에서 의료까지 기독교 참여는 활발하다. 


(4) 한국은 5천만 인구를 가진 상대적으로 큰 나라이다. 굳이 따져 북한과 해외 동포까지 합치면 8천만이 되어, 독일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인구이다. 사회과학의 인식론은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인 사람들과 사회의 '실천'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인식론은 사회현실 역사적 현실, 다시 말해서 존재론과 분리가 불가능하다. 


한국의 변화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제, 경제사, 정치, 정치사, 문화, 문화사, 사회, 사회사, 풍속사, 법률의 변천사를 알아야 한다. 사회인식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 대한 '계몽적 자세'가 이런 한국에 대한 깊은 학습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5) 요즘은 직장인이지 지식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들 한다.


지식인이라는 단어도 쓰기가 꺼려지는데, 지성인이라는 말은 더더욱 '꼰대'스럽다.
지식 knowledge 를 다루는 것, 단어, 문장, 미디어를 다루는 이 지식노동이야말로, 진짜 뼈골,등골빠지는 노동이다.

('이다'를 '이어야 한다'로 바꿔야 하지만) 


인구 90%이상이 농민이던 시절 선비=지식인 개념을 가지고 있고,직업 숫자가 몇 만, 수 천가지인 이런 복잡, 분화된 사회에서 지식 노동자가 할 일이란, 미몽한 대중들을 '개벽'하듯이 다루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얇은 지식들로 그것을 새로운 '계몽주의'인양,
출처도 불분명한 책들과 말들을 거칠게 짜깁기 한 것을 '명저'나 '베스트 셀러'라고 하는 것도 '개벽'이라고 부르기에는 수오지심의 부족이다.


참고: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서유럽 자본주의 과정만의 특질, 즉 아시아와 차이점은,

국가 행정과 법, 자본주의 시장, 시민사회의 합리성 증대 (탈 종교, 탈주술화 등)가 진화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 칸트와 헤겔 등을 비교하며 재미있게 강의”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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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0 22:07:03 수정 : 2017.05.10 22:20:42 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ㆍ경향시민대학 ‘종교개혁’ 강좌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ㆍ서구의 근대는 종교개혁서 시작 …루터의 개혁 500주년 재조명

ㆍ지성사는 폭넓게 공부해야…오는 9월 독일 사상기행도 준비 중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경향시민대학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강의할  김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단일 사건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지난 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경향시민대학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강의할 김 교수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단일 사건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500년 전인 1517년 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쓴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는 ‘면죄부’를 남발하는 교회 및 성직자의 부패와 축재를 고발하고 교황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반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그 영향력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섰다. 서구 근대의 출발점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강의와 저술·번역을 계속하고 있는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59)의 올해 스케줄은 ‘루터와 종교개혁 500주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교수는 오는 15일부터 5주간 경향시민대학에서 매주 월요일에 ‘종교개혁 500주년: 지성사의 영원한 맞수들’을 주제로 강의한다. 


‘근대와 그 시원에 대한 신학과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루터와 종교개혁>이라는 단행본 출간도 준비 중이다. 9월 초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뉘른베르크, 바이마르, 비텐베르크, 드레스덴 등 독일 주요 도시와 체코 프라하 등을 방문하는 ‘독일사상기행’도 기획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종교개혁은 단일 사건으로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서구의 근대를 주조한 틀이 하나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틀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개혁”이라고 말했다. 칸트와 헤겔 등 서구 지성사를 주름잡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지만 루터가 활동했던 1500년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제대로 된 지성사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지식사회학과 지성자, 막스 베버, 게오르크 지멜 등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와 대학교수 자격 취득까지 한 정통 사회학자인 김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신학에도 조예가 깊다. 김 교수는 “지성사라고 할 때 단순히 철학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회과학, 문학, 그리고 더 나아가 신학도 서구 지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가 경향시민대학에서 진행할 강좌도 루터와 칼뱅을 대비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강좌는 칸트와 헤겔(철학), 괴테와 실러(문학), 마르크스와 베버(사회과학), 프로이트와 융(정신분석학) 등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강좌에서 소개할 인물들은 동시대에 살면서 서로 논쟁했던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인물을 비교하면서 공부하고 강의하는 것은 전부터 즐겨 쓰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막스 베버 전공자인 김 교수에게 있어 근대의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분화, 학문의 분화, 개인의 분화(개인화) 등 ‘분화’이다.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다. 지난해 말 출간한 <국가이성비판>을 통해 지적했듯 한국 사회는 형식적으로 분화는 됐는데 실질적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근대화를 경제성장으로 환원하고 그 주체를 국가와 재벌로 환원해서 ‘국가재벌동맹체제’에 의한 경제성장이 곧 근대화였다”면서 “박정희 정권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가재벌동맹체제의 해체가 근대의 완성인데 ‘경제성장’이라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얽매이는 순간 새 정부도 재벌에 손을 벌리거나 재벌개혁을 뒤로 미루면서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이 그의 우려 섞인 예상이었다.


김 교수는 11월 독일에 가서 이듬해 3월까지 대학 강의를 하고 나머지 기간엔 한국에 체류하며 집필과 번역을 하는 일정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년이면 환갑이지만 10년치도 넘는 연구계획을 이미 세워뒀다고 했다.


“좀 유치하게 저를 말하자면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의 주요 이론가 13명에 관한 책을 앞으로 10년간 차례로 펴낼 예정입니다. 올해가 뒤르켐 서거 100주년이고 내년이 지멜 서거 100주년인데 이들을 필두로 할 겁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02207035&code=100100#csidx3cde75ed2eb9551a389e4fc3bcedc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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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역사를 강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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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are born and remain free and equal in rights. Social distinctions can be founded only on the common utility.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살아가는 동안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 사회적 차이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오직 전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그래야 한다.(사회적 차이들은 오직 공동선 위에서 기초될 수 있다.) 


Social distinctions can be founded only on the common utility.

: social distinctions 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사회적 구별짓기, 사회적 차이점들로 봐야할 것이다. 

: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라는 토대 위에서 사회적 차이들은 정초될 수 있다.


Thomas Piketty "Captial in the 21st century", p.1 


Art. 1er. Les hommes naissent et demeurent libres et égaux en droits. Les distinctions sociales ne peuvent être fondées que sur l'utilité commune.



20세기 사이먼 쿠츠네츠가 생각했던대로, 성장, 경쟁, 기술적 진보라는 균형 힘들이 후속 발전 단계에 이르러서는 계급들 간에 불평등 감소와 더 큰 화합으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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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5.18]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닉 플랫 메모' 전문 공개

  • 날짜 : 2017-06-19,   조회 : 2,060



*본 회의록은 2017년 5월 5일, 광주MBC 김인정 기자*강성우 기자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참석자인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국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인터뷰 현장에서 취재진이 확보한 10 페이지 분량의 수기 메모를 토대로 
취재진이 전문가들과 함께 복구한 것으로 당사자의 확인을 거쳤습니다.


이에 광주MBC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문을 공개합니다.


번역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원문   파일다운로드 : 다운로드 바로가기


[번역] / 원문은 하단에 있습니다.


[번역본]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상황실 PRC(정책검토회의)>

 

번역 감수: 이삼성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수기 메모 복구 자문: 전광호 전북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팀  


영문본 감수: 이삼성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어경희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영문학 박사과정 

 

일시 : 1980년 5월 22일 오후 4시~5시15분

장소 : 백악관 상황실

주제 : 한국

참석자들 : 15명 (국무부 4, CIA 2, 백악관 2, 합동참모본부 3, 국방부 3,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실1)

 

국무장관 : 에드먼드 머스키 – 회의 주재

국무차관 : 워렌 크리스토퍼

국무성 아태담당 차관보 : 리처드 홀브루크

국무성 한국과장 : 로버트 리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 데이비드 애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관: 도널드 그레그

CIA 국장 : 스탠스필드 터너

CIA 중국 및 동아시아 담당 국가정보관(NIO) : 존 홀드리지

합참의장 (대장) : 데이비드 존스

육군참모차장 (대장) : 존 베시

합참의장 보좌관 (중장) :존 푸스테이

국방부 장관 : 해럴드 브라운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데이비드 맥기펠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 : 니콜라스 플랫

 

머스키 국무장관 : (광주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한국의 정치적인 요구와 군사적 필요사항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존스 장군의 생각은 어떤가요?

 

존스 합참의장: 광주 상황이 진정되고 있다는(quieting) 위컴 장군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광주를) 책임지고 있는 장군(Platt: 윤장군—5월 21일까지 전남북계엄분소장을 맡고 있던 윤흥정 소장--으로 생각됩니다만)은 분별력 있고 온건한 사람입니다. 광주 상황은 다른 도시에서의 시위 양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계엄사는 몇 개 부대를 이동시켰지만, DMZ 가용 병력엔 변화가 없습니다. 


한국 측은 (북한의) 침투에 대비한 경계태세에 돌입했고, 우리는 2대의 공중조기경보기(AWACS)를 보냈는데, 오늘밤 오키나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북한은 상당한 기습공격 능력이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게다가 군인들을 농촌지원활동에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고도 경계태세에 있지만 부대 이동은 없습니다. 북한이 공격해오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침투가능성은 있습니다. 


나는 한국 내 도시들의 상황에 대한 보고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터너국장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광주의 사망자 숫자에 관한 보고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위컴과 글라이스틴은 광주에서 60명의 사망자와 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해왔습니다. (플랫: 당시는 아무도 정확히 몰랐습니다. 이때는 상당히 이른 시점이었습니다.) 전두환은 비난의 빌미(혹은 약점: liability)가 될 수 있고, 권력투쟁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브라운 국방장관 : 문제는 전두환이 군부 내 자신의 위아래 모두 숙청을 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만약 전두환이 실권(失權)하면 권력 공백이 생길 것입니다.

 

베시 육군참모차장 : 전두환이 존중할 만한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물러나도록 권유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플랫: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죠.)

 

브라운 국방장관: 한국 군부는 유능하게 (적절하게) 무력을 사용했습니다..

 

터너 CIA 국장 : 북한이 무언가 행동할 가능성, 공격을 하든 침투를 하든, 그럴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됩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 군부가 얼마나 신속하게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브라운 국방장관 : 한국 군부가 군대 사용을 지금은 절제하고 있지만, 만약 항쟁이 계속될 시 대규모 무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홀브루크 아태담당차관보 :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시 광주로 군대를 진입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베시 육군참모차장 : 그들은 유혈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군대를 보낼 것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플랫: 그들이 폭력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 군대가 광주에 재진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반란(rebellion)이 여타 지역으로 확산될까요?

 

브라운 국방장관: 알 수 없죠. 하지만 군부는 광주를 봉쇄했고, 한국인들은 승자를 따라갈 겁니다.

 

베시 육군참모차장 : (플랫: 자신의 메모를 읽기 어렵다고 함)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우리는 질서유지를 위한 노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만약 군부가 실패하면 우리는 (......) 상황에 처하게 될 겁니다. (Platt: 내 자신이 쓴 메모를 나도 읽기 힘드네요)

 

머스키 국무장관 : (전방에 배치된) 부대의 이동이 (대북) 준비태세(readiness)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브라운 국방장관 : 우리가 조언은 할 수 있지만, 한국 군부는 그들의 결정은 그들 자신의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조언할 수 있지만, 결정은 한국인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 우리는 군부에게 무력을 사용하라고 조언해야 할까요?

 

브라운 국방장관 : 우리는 절제를 발휘하라고 조언했어요.

 

홀브루크 아태담당차관보 : (국무부 대변인이 5월 22일 정오 브리핑에서 발표한 미 국무부의) 공개 성명은 법과 질서에 최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브라운 국방장관 : 우리는 그들에게 광주에서 군대를 철수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홀브루크 아태담당차관보 : 앞으로 24시간 내지 72시간의 여유가 있어요.

 

머스키 국무장관 : 오늘 공개 성명은 좋았습니다.

 

(참석자 모두 국무부 성명에 동의)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 우리의 단기적 대응 입장(short range position)은 옳았어요. 누구에게도 분명한 태도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단 위기상황이 종결되면, 한국 국민처럼 성숙한 나라에 군부독재를 실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신속히 얘기해야 합니다.

 

브라운 국방장관 : 동의합니다. 한국에 어떤 정부가 등장하는 것이 좋을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번 발표한 성명서에서 밝혔던 우리의 입장을 고수합니다. 추후에 (....) 성명 같은 것으로 대응해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별다른 추가적인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베시 육군참모차장 : 전방 방어는 한미연합사가 책임져야 합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브라운 국방장관 : 아니요. 상황이 빠르게 악화될 것 같으면 우리는 (필요한 조치들에 관한) 건의를 받게 될 겁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 합참은 어떤 비상사태들(contingencies)을 염두하고 있습니까?

 

브라운 국방장관 : 공군과 해군 병력을 서태평양 지역으로 증파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항모 전단과 하나의 항공편대를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지상군을 이동시키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1개 대대 병력과....(하와이에 주둔해 있는) 제25 보병사단의 (신속 투입이 가능한) 경보병 부대들을 이동시키는 데는 2~3일 정도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대규모 시위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에 한국 군부의 지휘구조(military structure)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플랫: 그 다음 참석자들은 (미국 인사들의) 한국 방문 문제에 대해 논의합니다. ‘해외민간투자회사’(OPIC)의 레웰런(Llewellen)씨의 방문은 이미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수출입은행 총재) 존 무어(Johnn Moore)씨의 방문은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방문이 취소되면 모두를 긴장시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참석자들이 말한 것은 “만일 무어가 방문해야 한다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취소하지 않기로 한 것이지요.)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 (플랫: 이것은 그의 일종의 입장 재천명이었습니다.)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질서 회복을 지원하려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 신장을 바랍니다.

 

브라운 국방장관 : 장기적인 목표에 도달하려면 먼저 단기적인 목표를 관철해야 합니다.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 : 광주의 문제가 대규모 군대로 많은 사망자를 내면서 해결된다면, 우리는 더 강하고 더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그들이 광주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면, 우리는 조용하게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1980년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이슈로 될 수 있는 문제들을 피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홀브루크 아태담당차관보 : 우리는 (......)을 억지하는 데 개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명 피해가 클 경우 우리는 학생들(의 시위 확산)을 불러들이게 될 겁니다.

 

크리스토퍼 국무차관 : 전두환은 큰 해를 입혔습니다. (정치)과정을 후퇴시켰어요. (하지만) 우리는 질서 회복을 원하고 있고, 그에 따르는 결과들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머스키 국무장관: 우리가 그들에게 인질이 되어 끌려다니는 꼴이 된 것은 아닐까요?

 

브라운 국방장관 : 안보상황이 위험하면 우리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만약 전두환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우리는 그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잘 했습니다.

 

애런 국가안보 부보좌관: 전두환에 대한 우리의 지렛대는 향후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더 큽니다. 그가 물러나도록 압박(해야 하지 않을까요). (플랫: 데이빗 애런은 매우 미미한 역할 밖에 한 게 없습니다. 내 생각엔 애런의 이 발언은 단지 그도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어요.)

 

브라운 국방장관 : 우리가 전두환을 반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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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본 회의록은 2017년 5월 5일, 광주MBC 김인정 기자*강성우 기자가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 참석자인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국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인터뷰 현장에서 취재진이 확보한 10 페이지 분량의 수기 메모를 토대로 
취재진이 전문가들과 함께 복구한 것으로 당사자의 확인을 거쳤습니다.

이에 광주MBC는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전문을 공개합니다.

< 22 May 1980 PRC Meeting> 

 

Muskie: We need guidelines as to how to balance political needs of the country with the military requirements, and I will ask General Jones for his views. 

 

Jones: I concur with Wickham that the situation is quieting in Kwangju. The General in charge (Platt: General Yoon I think) is sensible and moderate. The Kwangju situation will determine how the demonstrations develop in other cities. They have moved some units, and the unit availability on the DMZ remains the same. 


The Republic of Korea have gone on with an infiltration alert, we havesent two AWACS aircrafts, which will arrive at Okinawa tonight. North Korea has good surprise attack capability, they have done some exercises in the past few months, but have not released troops to agricultural production. There is no movement, though a state of high alert exists. We doubt that North Korea will make an attack, but are likely to infiltrate. 


I agree with Admiral Turner that we have to be more concerned about the reports from the towns. We are worried about reports of the number of dead in Gwangju. Wickham and Gleysteen report 60 dead and 400 wounded (Platt: Nobody knew at that time. This was pretty early). Chun could become a liability. Probability of struggle. 

 

Brown: The problem is that he has cleaned out the ranks below and above. If he goes that will create a vacuum. 

 

Vessy: I can envisage a scenario in which Chun is asked to step down by someone he respects (Platt: That never happened).

 

Brown: They have been quite good about using force. 

 

Turner: 50:50 chance on whether North Korea will do something, whether they will attack or infiltrate. 

 

Muskie: How quickly can the military restore order? 

 

Brown: They are being restrained, but will use massive force if the struggle continues. 

 

Holbrooke: Chances of the military going back in, if there is no resolution, are very high. 

 

Vessy: They will arrive in such force as to minimize bloodshed. They are busting their tails. (Platt: Busting means they are trying very hard to avoid violence)

 

Muskie: What would be the reaction if the military moves back in force? Will the rebellion spread? 

 

Brown: I don’t know. but the military has closed off the city. Koreans will go with who’s winning. 

 

Vessy: (Platt: That’s unreadable).  

 

Brzezinski: We must back efforts to maintain order. If the military fails, we will be faced with a situation … (Platt: I can’t read my writing) 

 

Muskie: Are the troop movements hurting our readiness?

 

Brown: We can give advice, but they have to be clear that their decisions are their own. We can advise but the decisions have to be Korean. 

 

Muskie: Should we advise them to use force? 

 

Brown: We have advised them to use moderation. 

 

Holbrooke: The public statements have placed highest priority on law and order. 

 

Brown: We did not tell them to pull troops out of the city. 

 

Holbrooke: There is a window of 24 to 72 hours. 

 

Muskie: The public statement today is a good statement. 

 

(everybody agrees with the statement) 

 

Brzezinski: The short range position is right. We have not confused anyone. Once the crisis is over, we must talk quickly about the dangers of imposing a military dictatorship on a population as sophisticated as South Korea. 

 

Brown: Agree. We should ask ourselves what kind of government we want to see emerging. We stand on the statement that we put out. We may have to respond to (….) some kind of statement. We don’t need to do anything more than we’ve done for now. 

 

Vessy: On the CFC we have the responsibility of backing the front line.

 

Muskie: We should take additional steps. 

 

Brown: No. We will get recommendations if we suppose the situation deteriorates fast. 

 

Muskie: What contingencies are the Joint Chiefs of Staff considering? 

 

Brown: We can move Air and Naval assets into the West Pacific. We can move two Carriers and a wing, rapidly. Ground forces will take a while, about 2 or 3 days to move a battalion from Okinawa (, …) light elements of the 25th …The military structure could collapse before major demonstrations. 


(Platt: And then they talk about the visits. These are discussed already in here. A visit of someone called Llewellen, who is I guess from, I don’t know, he’s from the World Bank. 


No, he’s from OPIC (Overseas Private Investment Corporation), and he’s already cancelled. And the question of the visit of John Moore (the EX-Im Bank President), and they decided NOT to cancel that visit. Because they thought that would alarm everybody. What they said was “we should ask Gleysteen if Moore should go,” and apparently they decided not to cancel)

 

Brzezinski: (Platt: This is kind of his some restatement) In the short run we want to promote order, and in the long run we want to promote democracy. 

 

Brown: You have to get through the short run, before you can get to the long run. 

 

Brzezinski: If the problem in Kwangju is solved by massive force and much death, we will have to press harder and more publicly. if they resolve it quickly, it will be better to go quietly to make it more effective to avoid problems that will become campaign issues. 

 

Holbrooke: I hope we don’t commit ourselves to contain (…..). If the losses are heavy, then we will be inviting the students.

 

Christopher : Chun has done real harm, (---) set the process back. We want to restore order and accept the consequences. 

 

Muskie: Aren’t we going to be hostage to them? 

 

Brown: If the security situation is at risk, we have little leverage. If he was in the Blue House, we will have to accept him. We made a good try.  

 

David Aaron: Our leverage over Chun is greater now than it will ever be. Pressure him to give up his job (Platt: David Aaron played a very peripheral role. This is him just trying to show that he exists, in my view).

 

Brown: We should not initiate moves against Chun. This will be risky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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