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글쓰는 게 일인 입장에서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책읽기만 있는 건 아니다. 인터넷, TV, 라디오가 없던 셰익스피어 시대가 아니니까. 이제 책에 상응하는 도구들이 다양해졌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탓만 할 일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근무 시간에 육체와 머리가 지쳐 책 볼 힘이 없는 한국 조건이다. 두번째는 문화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서 습관이 들지 않아서 책과 담쌓는 사람들이다. 

저자도 첫 페이지를 쓰기 힘들고, 노동에 지친 독자는 첫 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해법은 일터에서 노동시간을 줄여줘야 한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책 읽어라고, 지금으로서는 권장하기가 힘들다. 술 깨는데 필요한 시간, 잠 보충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더 긴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터나 학교에서 500 m 이내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걸어서 도서관에 가서 차, 음료, 물도 마시면서, 한 두 페이지라도 읽고 집에 갈 수 있으면 된다.

책은 스스로 찾아서 읽는 것이 제일 좋지만, 어렸을 때는 선생님과 주변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성인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휴대폰 사용과 인터넷 게임(19.6%) , 독서 대신 다른 여가활동으로 독서 시간 부족(15.7%) , 책 읽는 습관 부재 (12%)


1년에 새 책 4800권 팔려, 가까스로 (포도시) 국민 1명당 1권 사는 셈.


 




참고자료 1. 장은수 페이스북


단행본 시장 전체 규모는 1조 1734억 원이다. 

8000만 권이 팔리는 게 맞다면, 

권당 매출은 정가로 1만 4665원이다.


따라서 재고율 등을 고려해 

출판사가 손익을 넘기려면 

단행본 평균가격은 적어도 3만 원이어야 한다.



--




Eun-su Jang

5 hrs · 


10년 전인 2008년에 2700개 출판사가 연간 4.3만 종의 신간을 냈다. 지금은 7700개 출판사가 8만 종을 시장에 내놓는다. 그 사이 내 추정에 의하면 독자는 적게 잡아도 30%가 줄어들었다.


Q. 10년 사이에 독자 감소를 반영한 신간 경쟁률은 얼마나 늘었을까요?


 A. 2.65배다(왜 2.65배냐고 나한테 물으면 곤란하다. 8만종/4.3만종/0.7 이 계산법이 이해가 안 되면 출신 초등학교를 원망해야 한다).


같은 계산법으로 지난 10년 사이에 독자 감소를 반영한 출판사간 경쟁률은 4.07배로 늘어났다. 하나의 출판사가 생존 경쟁에서 버텨낼 확률이 10년 전(그때라고 높지도 않았지만)에 비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감이 잘 안 오는 분들을 위해 한 번 더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학습지, 참고서, 만화, 유아동전집물 등을 제외하고 연간 순수 단행본 판매는 약 8000만 권 규모다. 구간이 40%, 신간이 60%를 차지해, 우리나라 인구수에 채 미치지 못하는 약 4800만 권의 신간이 팔린다. 1년간 국민 1인당 평균 1권의 신간을 ‘그야말로 간신히’ 구매하는 것이다.



한해 발간되는 8만 종의 책은 저마다 국민 1인이 한 해 동안 사는 ‘단 한 권’의 선택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치열한 경쟁을 거친다. 3할대 승률, 10종을 내서 세 번 성공시키는 게 왜 어렵냐고? 매번의 신간 출간이 결국 8만 대 1의 선택을 뚫고, 자기 존재를 알리고, 독자의 선택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나는 4할대 승률이 그닥 어렵지 않은 기획자였다. 지금은 3할대도 장담하기 어렵다.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은 한 이 환경 변화를 거슬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10년 늙었고 그만큼 독자의 트렌드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니 젊고 명민한 기획자들이여, 현재의 승률을 자랑하지 마라. 누구나 잠깐은 빛을 발한다.


 길게 보면 ‘대수의 법칙’에 따라 그 승률은 자연 하향된다. 그러다 어느 날 늙은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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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정희용 대표님의 기획회의 기고 글.

어쨌든 핵심은 '대수의 법칙'^^;;;

그런데 이것은 편집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다.

좋은 회사를 만들지 못하면, 좋은 편집자도 없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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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마디 덧붙이자면....

단행본 시장 전체 규모는 1조 1734억 원이다. 

8000만 권이 팔리는 게 맞다면, 

권당 매출은 정가로 1만 4665원이다.


따라서 재고율 등을 고려해 

출판사가 손익을 넘기려면 

단행본 평균가격은 적어도 3만 원이어야 한다.


(현실은 교보문고 납품도서 기준 

신간 단행본 평균 정가는 2만 646원, 구간은 더 낮다.)

게다가 발견성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베스트셀러 10권 이내 도서의 매출 집중도는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개별 출판사는 성공률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어도, 

출판산업 전체의 현금흐름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ㅜㅜ

아Q도 아니고, 


“출판은 점잖은 사람들의 비즈니스” 같은 나른함에 젖어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지 못하면, 결과는 빤하다!!!






참고 기사 2.




성인 10명중 4명은 책 한권 안 봐


입력 2018.02.05 17:02 


연간 책 구입비는 5만5000원... 독서량 8.3권 역대 최저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의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 한 명이 책 구입에 쓰는 돈은 1년에 5만5,000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일 공개한 ‘2017 국민독서실태 조사’의 결과다.


지난해 11, 12월 실시한 조사의 대상은 성인 6,000여명과 학생(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생) 3,000여명. 1년간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가 아닌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응답자 비율(독서율)은 1994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았다. 성인 독서율은 59.9%, 학생은 91.7%였다. 2015년 조사보다 성인 독서율 5.4%포인트, 학생 독서율은 3.2%포인트 떨어졌다.


성인 한 명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평균 8.3권으로, 2015년보다 0.8권 줄었다. 한달에 0.7권을 읽는다는 얘기다. 학생 독서량도 2015년 29.8권에서 28.6권으로 감소했다. 


단,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응답자의 독서량은 연간 13.8권으로, 2년 전(14권)과 비슷했다. 책을 읽는 사람만 읽는다는 뜻이다. 


전자책 독서율은 성인 14.1%, 학생 29.8%였다. 2년 전보다 각각 3.9%포인트, 2.7%포인트 올랐다. 연간 평균 도서 구매량은 성인이 4.1권, 학생이 4.7권으로 집계됐다.


스스로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성인은 2011년 74.5%에서 2013년 67.0%, 2015년 64.9%로 줄더니 이번 조사에선 59.6%로 떨어졌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로는 ‘일,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성인 32.2%, 학생 29.1%)를 제일 많이 꼽았다. 


성인은 ‘휴대폰을 쓰고 인터넷게임을 하느라고’(19.6%) ‘다른 여가 활동으로 시간이 없어서’(15.7%) ‘책 읽는 게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12.0%) 등이라고 답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문화마당] 무엇이 출판을 죽이는가/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입력 : 2018-10-10 17:44 ㅣ -


‘다산다사’(多産多死).


스무 해 전 일이다. 6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는데도 일본의 1년 신간 도서 종수가 7만종을 넘어섰다. ‘누가 책을 죽이는가’에서 일본의 출판평론가 사노 신이치는 이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수요는 줄어드는데 생산이 꾸준히 증가하면 언젠가는 ‘공황’이 오고 ‘파멸’을 대가로 치른다.


‘출판 대붕괴!’


그런데 현재 한국 출판 역시 ‘다산다사’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7년도 출판산업동향’을 보면 한국의 서적출판업 규모는 2013년 1조 2490억원, 2014년 1조 2238억원, 2015년 1조 840억원, 2016년 1조 1732억원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사정이 약간 나은 교과서와 학습서적을 포함하더라도 2006~16년까지 10년간 평균 1.0% 성장에 그쳤다.


 게다가 2016년엔 3조 9977억원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도서시장 전체 규모가 4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가파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2013년 6만 1548종이었던 발행 종수는 2015년 7만 91종으로 7만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다시 8만 130종으로 사상 처음 8만종을 돌파했다. 시장 전체 규모는 줄어드는데, 신간 발행 종수는 2년마다 1만종씩 증가하는 기현상이다.


사노 신이치는 “현재 출판 상황은 노래방 같다. 노래하는 사람만 가득하고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분하지만 ‘다산다사’의 길을 한국 출판은 더 빠르고 더 심각하게 걷고 있다. 일본에 비해 독서율도 낮고 1인당 독서량도 떨어지는데 100만명당 발행부수는 더 많으므로 한층 더 문제적이다.


출판사의 세포분열도 가속화한다. 


매년 1종 이상 도서를 발행한 실적이 있는 출판사 숫자는 2013년 5740곳에서 2014년 6414곳으로, 2017년에는 7775곳으로 증가했다.


특히 1년에 5종 이내 발행하는 소출판사가 69.4%나 되는 게 문제다. 


영세해서 기획력 있는 편집자를 확보하기 힘든 탓인지 종수는 많아도 차별성 없는 유사한 책이 흔하고, 볼만한 책은 번역서 비중이 아주 높다.


정체된 시장에서 비슷한 책을 많이 출판하면 당연히 팔리지 않는 책도 많아진다. 


치열한 경쟁 탓에 책의 평균 판매량이 떨어지고, 그에 따른 생산비를 보전하려 책 가격이 높아진다. 책 가격 상승은 다시 독자 감소로 이어진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당장의 출판계 사정이 딱하다 보니 현재의 출판 진흥예산 대부분이 원고 개발비와 책 제작비를 지원하는 ‘우수출판콘텐츠’나 출판된 책을 심사해 대량 구매해 주는 ‘세종도서’ 등 직접 지원 사업에 집중된다.


이런 분배 사업들은 개별 출판사로서는 ‘로또’로 불릴 만큼 절실하지만, 출판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과 큰 관련이 없어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출판산업 진흥 전략을 다시 짜고, ‘비전’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과잉생산 탓에 출판계 전체가 몸살을 앓는데, ‘생산의 진흥’에 예산을 집중하고 이를 놓고 출판계 전체가 분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도서관 자료구입비를 파격적으로 확충해 좋은 콘텐츠에 대한 국민의 독서권을 보장하고, 


독서공동체 활성화 등 독자개발사업을 통해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공적 기반을 확충하는 등


 ‘독자의 진흥’에 진력하는 한편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혁신적 출판 모델을 실험하고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을 도울 수 있는 비전이 마련됐으면 한다.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1011030006&wlog_tag3=naver#csidx268ea06e7de8a1ca8cfd82b124dec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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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코뮤니즘이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다. 독일 코뮤니즘의 급진전 

Rascher Fortschritt des Kommunismus in Deutschland ( I ) Friedrich Engels, 13. Dezember 1844

......


 Wir hoffen jedoch, daß uns in kurzer Zeit die arbeitenden Klassen unterstützen werden, die immer und überall die Stärke und den Hauptbestandteil der sozialistischen Parteien bilden müssen und die durch Elend, Unterdrückung und Arbeitsmangel wie auch durch die Aufstände in den Industriegebieten Schlesiens und Böhmens[76] aus ihrer Lethargie gerissen worden sind. 


Lassen Sie mich bei dieser Gelegenheit ein Bild von Hübner, einem der besten deutschen Maler, erwähnen, das wirksamer für den Sozialismus agitiert hat als hundert Flugschriften. 


Es zeigt einige schlesische Weber, die einem Fabrikanten gewebtes Leinen bringen, und stellt sehr eindrucksvoll dem kaltherzigen Reichtum auf der einen Seite die verzweifelte Armut auf der anderen gegenüber. 


Der gutgenährte Fabrikant wird mit einem Gesicht, rot und gefühllos wie Erz dargestellt, wie er ein Stück Leinen, das einer Frau gehört, zurückweist;


 die Frau, die keine Möglichkeit sieht, den Stoff zu verkaufen, sinkt in sich zusammen und wird ohnmächtig, umgeben von ihren zwei kleinen Kindern und kaum aufrecht gehalten von einem alten Mann; 


ein Angestellter prüft ein Stück, dessen Eigentümer in schmerzlicher Besorgnis auf das Ergebnis warten; 


ein junger Mann zeigt seiner verzagten Mutter den kärglichen Lohn, den er für seine Arbeit bekommen hat; 


ein alter Mann, ein Mädchen und ein Knabe sitzen auf einer Steinbank und warten, daß sie an die Reihe kommen; 


und zwei Männer, jeder mit einem Packen zurückgewiesenen Stoffes auf dem Rücken, verlassen gerade den Raum, einer von ihnen ballt voll Wut die Faust, während der andere die Hand auf des Nachbarn Arm legt und zum Himmel zeigt, als ob er sagt:


 Sei ruhig, es gibt einen Richter, der ihn strafen wird. 


Diese ganze Szene spielt sich in einem kalt und ungemütlich aussehenden Vorsaal mit Steinfußboden ab; nur der Fabrikant steht auf einem Stück Teppich, während sich auf der anderen Seite des Gemäldes, hinter einer Barriere ein Ausblick in ein luxuriös eingerichtetes Kontor mit herrlichen Gardinen und Spiegeln öffnet, wo einige Angestellte schreiben, unberührt von dem, was hinter ihnen vorgeht, und wo der Sohn des Fabrikanten, ein junger Geck, sich auf die Barriere lehnt, eine Reitgerte in der Hand, eine Zigarre raucht und die unglücklichen Weber kühl betrachtet. 


Dieses Gemälde ist in mehreren Städten Deutschlands ausgestellt worden und hat verständlicherweise so manches Gemüt für soziale Ideen empfänglich gemacht. 


Zur gleichen Zeit hatten wir die Genugtuung, daß der hervorragendste Geschichtsmaler unseres Landes, Karl Lessing, sich zum Sozialismus bekehrte. 


Tatsächlich nimmt der Sozialismus schon jetzt in Deutschland eine zehnmal stärkere Position ein als in England.


 Gerade heute morgen habe ich einen Artikel in der liberalen „Kölnischen Zeitung" gelesen, dessen Verfasser aus verschiedenen Gründen von den Sozialisten angegriffen worden war; 


er verteidigt sich in dem Artikel, und worauf läuft seine Verteidigung hinaus? 

Er bekennt sich selbst zum Sozialismus, mit dem einzigen Unterschied, daß er mit politischen Reformen beginnen möchte, während wir alles auf einmal haben wollen.


 Und diese „Kölnische Zeitung" ist in bezug auf Einfluß und Verbreitung die zweitgrößte Zeitung Deutschlands



(English Translation)


We, however, hope to be in a short time supported by the working classes, who always, and everywhere, must form the strength and body of the Socialist party, and who have been aroused from their lethargy by misery, oppression, and want of employment, as,well as by the manufacturing riots in Silesia and Bohemia.


79 Let me on this occasion mention a painting by one of the best German painters, Hübner, which has made a more effectual Socialist agitation than a hundred pamphlets might have done.


 It represents some Silesian weavers bringing linen cloth to the manufacturer, and contrasts very strikingly cold-hearted wealth on one side, and despairing poverty on the other. 


The well-fed manufacturer is represented with a face as red and unfeeling as brass, rejecting a piece of cloth which belongs to a woman; 


the woman, seeing no chance of selling the cloth, is sinking down and fainting, surrounded by her two little children, and hardly kept up by ar old man; 


a clerk is looking over a piece, the owners of which a e with painful anxiety waiting for the result; 


a young man shows to his desponding mother the scanty wages he has received for his labour; an old man, a girl, and a boy, are sitting on a stone bench, and waiting for their turn; and two men, each with a piece of rejected cloth on his back, are just leaving the room, one of whom is clenching his fist in rage, whilst the other, putting his hand on his neighbour's arm, points up towards heaven, as if saying: 


be quiet, there is a judge to punish him.


 This whole scene is going on in a cold and unhomely-looking lobby, with a stone floor: only the manufacturer stands upon a piece of carpeting; whilst on the other side of the painting, behind a bar, a view is opened into a luxuriously furnished counting-house, with splendid curtains and looking-glasses, where some clerks are writing, undisturbed by what is passing behind them, and where the manufacturer's son, a young, dandy-like gentleman, is leaning over the bar, with a horsewhip in his hand, smoking a cigar, and coolly looking at the distressed weavers. 


The painting has been exhibited in several towns of Germany, and, of course, prepared a good many minds for Social ideas. 


At the same time, we have had the triumph of seeing the first historical painter of this country, Charles Lessing, become a convert to Socialism. 


In fact, Socialism occupies at this moment already a ten times prouder position in Germany than it does in England. 


This very morning, I read an article in a liberal paper, the Cologne Journal,3 the author of which had for some reasons been attacked by the Socialists, and in which article he gives his defence; 


and to what amounts it? He professes himself a Socialist, with the only difference that he wants political reforms to begin with, whilst we want to get all at once



.....




Carl Wilhelm Hübner, Die Schlesischen Weber, 1844 (칼 빌헬름 휩너, 슐레시안 직조공,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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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책을 보다 노트하다:


위 설명이 밝혀주는 바는 19세기 말까지 마르크스의 ‘참 모습(인성,행동,신념,생각)’과 정치적 담론에서 다른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마르크스 생김새는 수염많은 근엄한 가부장이자 법률가였고, 미래를 꿰뚫어보면서도 엄격한 일관성을 소유한 사상가였다.  이것은 20세기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상당히 왜곡되게 관찰했던 마르크스 모습이다. 이러한 왜곡된 마르크스 모양새가 1939년 이사이야 벌린(Isaiah Berlin)이 저술한 마르크스 전기에 아래처럼 아주 잘 묘사되었다. 

사물이나 사건 전체를 설명하는 마르크스 자기 시각에 대한 신념이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이어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버리고 모든 어려움을 해소버렸다.  마르크스의 지적 체계는 폐쇄 체계였고, 그 체계 안에 들어간 모든 것은 이미 제작된 주조틀에 찍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의 지적 체계는 관찰과 경험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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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의 목표는 그가 죽고 난 이후 그 성격과 업적들에 대한 상세 설명들이 구축되기 이전, 19세기 배경 속으로 마르크스를 다시 돌려놓는 것이다. 


What this account reveals is that, by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re were important differences between Marx himself –  who he was, how he behaved, what he believed, what he thought about –  and the ways in which he had come to be represented in political discourse. 


Prologue: The Making of an Icon,  1883– 1920


The figure that had emerged was a forbidding bearded patriarch and lawgiver, a thinker of merciless consistency with a commanding vision of the future. This was Marx as the twentieth century was –  quite wrongly –  to see him. It was a picture brilliantly enunciated by Isaiah Berlin writing in 1939: Marx’s faith in his own synoptic vision was ‘of that boundless, absolute kind which puts an end to all questions and dissolves all difficulties’; ‘his intellectual system was a closed one, everything that entered was made to conform to a  pre- established pattern, but it was grounded in observation and experience’.


 The aim of this book is to put Marx back in his  nineteenth- century surroundings, before all these posthumous elaborations of his character and achievements were constru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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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마르크스의 주장과 명제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란 한 방법이고, 이론적 사고 체계이며,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추종자들에게는 권위를 지닌 원전 총서들이다. 

그런데 이런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향 때문에 늘 난관에 봉착했다. 그 경향이란 이런 태도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어야 했어’라고 자기들이 먼저 결정해 놓고서, 그 다음에 이미 선택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마르크스 텍스트의 권위를 들이댔던 경향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적 발전 과정을 깊이 학습함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절충주의의 문제점들이 더 증폭되는 것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알튀세는 마르크스의 장점이 그 저서들에 있기 보다는,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어’라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에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알튀세의 이러한 발견은 위에서 언급한 ‘통제’가 결여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알튀세의 마르크스 해석에는 심층적인 마르크스 사상의 진화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어 있다.


Chapter 15.  the structure of capital 자본의 구조 

Moreover the revival of Marxism requires a genuine willingness to see what Marx was trying to do, though this does not imply agreement with all his propositions. Marxism, which is at once a method, a body of theoretical thinking, and collection of texts regarded by its followers as authoritative, has always suffered from the tendency of Marxists to begin by deciding what they think Marx ought to have said, and then to look for textual authority for the chose views.


Such eclecticism has normally been controlled by a serious study of the evolution of Marx’s own thought.  M.Althusser’s discovery that the merit of Marx lies not so much in his own writings, but in allowing Althusser to say what he ought to have said, removes this control.

 

It is to be feared that he will not be the only theorist to replace the real Marx by one of his own construction. Whether the Aluthsserian Marx or other analogous constructs will turn out to be as interesting as the original is , however, quite another question.

1966 (51)

(Eric Hobsbawm, Revolutionaries, (London:Abacus), 1973,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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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Meisner, The Deng  Xiaoping Era: An Inquiry into the fate of Chinese Socialism 1978-1994, (New York: Hill and Wang), 1996,  p.192  등 샤오핑 시대: 1978-1994 중국 사회주의 운명에 대한 연구

The social results of Market Reform :

"Without the industrial revolution that took place during Mao’s time, the economic reformers who rose to prominence with Deng Xiaoping would have found little to reform.p.192

 

(1)   마오쩌둥 집권 시기 이룩한 산업 혁명이 없었더라면, 등샤오핑의 경제개혁가들이 성취할 수 있는 개혁내용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산업화 정책이 이후 등샤오핑의 중국 경제 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서방 학자들과 미디어가 마오의 계획경제를 비판하고 등샤오핑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과 대조시키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다.

(2)   메모

1949년 중국 정부 수립 당시, 중국 제조업 규모는 벨기에 보다 적었고, 생산량도 벨기에의 5분의 1 정도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은 세계 6대 산업국가로 등극했다. 마오쩌둥 집권 시기 (1949-1976) 중국의 산업규모는 30배 증가했다.

1 5개년 계획 (1953-1957)은 매년  18% 성장했다.

문화혁명 기간 (1966-1976)에도 연간 10%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3)   P.191 각주 (7)

독일 경제성장율 33% (1인당 17%) (1880-1914)

일본 경제성장율 43% (1인당 28%) (1874-1929)

소련 경제성장율 54% (1인당 44%) (1928-1958)

중국 경제성장율 64% (1인당 34%) (1952-1972)

자료 출처: Data drawn from Simon Kuznets, Economic Growth of Nations: Total Output and Production Structu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4) 농업 정책 실천이 어렵다. 이론과 실제 차이. 

마오쩌둥은 소련 스탈린의 농업 정책을 비판했지만, 정작 중국의 농업도 제조업 발달과 비교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58년 마오는 스탈린 산업정책은 농업을 희생시키고 도시 산업화를 달성했다고 비판했다.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잡느라, 연못 물을 다 빼 버렸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현실은 어떠했는가?

"1949-1978 기간 동안에, 중화학은 90배, 경공업은 20배 성장했으나, 농업은 단지 2.4배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다 중화학 분야 발전은 농업이나 경공업의 기술적 변화의 필요에 기여하는 방향보다는 중화학 산업 그 자체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산업 부문간 불균형 발달의 원인은 중국 정부의 투자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 

"Yet the advice was not heeded in the actual world of Maoist China. Over the years 1949-78, the gross output of heavy industry increased 90-fold whereas light industry increased 20-fold and agriculture only 2.4-fold. 

Moreover, the heavy industrial sector developed in a manner that tended to serve the needs of heavy industry itself rather than the needs for the technical transformation of agriculture or the development of light industry. 

These imbalances were partly the result of state investment policies.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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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지: 문재인 정부 출범 시작 ~ 6개월 허니문 기간: 아시아 정치사,  몽고 역사


If you kill me, Jebe says, I'll only rot away in a plot of earth the size of your hand; but if you show mercy, I'll cut through oceans and mountains for you.


'He shall be named Jebe ['arrow-point'] and I will use him as my arrow.'


테무진 당신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당신 손 크기만한 한 줌 흙으로 썩어 들어갈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바다와 산을 가로질러 내달릴 것이오. 


테무진이 말했다. '그 이름을 제베 (화살 촉)로 개명하고 난 그를 내 화살로 쓸 것이다'


John Man, Genghis Khan: Life, Death and Resurrection, (London:Bantam Books), 2004, p.114





p.120

Jebe, Jelme, Subedei and Khubilai were raised on human flesh, they have

Foreheads of cast copper,

Chisels for snouts and

Awls for tongues

With hearts of iron and

Ships for swords they go,

Eating the dew and

Riding the wind.








Jebe (or Jebei, Mongolian: Зэв, Zev; birth name: Jirqo'adai (Modern Mongolian: Zurgadai), Mongolian: Зургаадай, Simplified Chinese: 哲别) (death: May 23, 1223)[1] was one of the most prominent Noyans (generals) of Genghis Khan. 


He belonged to the Besud clan, part of the Taichud tribe, which was under Targudai Khiriltug's leadership at the time of Genghis Khan.[2] 


Even though Jebe was originally an enemy soldier, Genghis Khan recruited him and turned him into one of his greatest generals. Jeb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helping to expand the territory of Genghis Khan's empire.


[3] Despite playing a large role as a general for Genghis Khan, there are relatively few sources or biographies about his life.


[4] Jebe has been described as "the greatest cavalry general in history" for his unorthodox and daring maneuver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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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독일 쾰른 노동운동 

주요 표제어, 슬로건, 자유, 형제애, 노동

Freiheit, Brüderlichkeit, Arb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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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책이다. 이태준의 <서간문 강화>다. 고교시절 광주고 앞 계림동 헌책방에서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500원지, 800원지를 주고 사서 봤는데, 그 전에 미처 몰랐던 글쓰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생각을 우리 말로 표현하는 법에 대해서. 사실 인간 조건 상 생각하는 것이랑 말, 혹은 문장과 어떻게 일치를 시키겠는가마는.

헌책방 계림동 시절 이후, 토론토 대학 도서관에서 만난 이태준의 <서간문 강화>다. 


이제는 인터넷 발달로 시간과 공간이 축소되어, 삼일 일주일 이주 한달을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다. 


동시 접속시대이다. 떨어져도 옆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기술의 발전은 늘 좋음이 51%쯤, 나쁜 측면이 49%쯤이라고 해두자. 


무작위적으로 익명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면부지의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까지 샅샅이 알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외국인이건 한국사람이건 그 사람의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로그 등)에 가보면, 그야말로 옛날로 치면 다 각본없는 소설들이니까. 


물론 그래봐야 유명인사, 셀리브리티의 공적 사적인 공연장에 불과한 곳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갖는 특질이다. 전자 편지 Email 이 등장할 때만 해도 종이 편지, 우표 등을 부치지 않아서 신기해했다. 외국에 있는 가족과도 쉽게 연락이 가능했으니까. 001, 002 국제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이태준이 1943년 <서간문 강화>를 쓸 때만 해도, 아마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이 인구 태반이었을테니까. 이태준 시절만 해도 편지를 읽거나 쓰지 못해 글을 아는 사람이 편지를 읽어주곤 했다.


아래 이태준 말이 눈길을 끌었다.  


"편지도 글이다. 글을 만드는 노력이 우선 싫은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모리 명문가라도 말로 하겠느냐 글로 하겠느냐 하면 으레 말로 하기를 취할 것이다."


1943년만 해도 '아무리"를 "아모리"라고 했다. 단어가 더 귀엽다.


10페이지. "한묵 翰墨 :문한 文翰과 필묵 筆墨 을 합쳐 놓은 말 )" 이라는 것이 있다. 그냥 편지와는 다르다. 선비와 선비 사이에 시문서화를 증답하며 예술과 학문으로 사귀는 편지를 가리킴이다."


그러니까 편지를 통해 서로 자신이 쓴 글을 주고 받으면서 토론, 논쟁을 하는 것을 '한묵'이라고 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나 헤겔, 마르크스식으로 표현하면 '다이어렉틱 Dialectic 둘이서 대화한다는 원래 뜻인데, 번역을 변증법이라고 어디서 해서 굉장히 어렵게 느껴진다)' 대화인데, 글로 하는 대화이다.


16 페이지 "편지는 문학이 아니라 실묭문이다" 이런 신념으로 쓸 것이다. 라고 말하고 이태준은 말한다. 너무 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남을 좋게 대하고 할 말을 분명히 전하라'는 것이다.


13 페이지. 이태준은 기술 발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전화만 보급된다면 편지란 소용없는 시대가 올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 생활 모든 각도에서 한문투의 양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편지에서도 그런 양식은 청산해 버리는 것은 문화사적으로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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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orauf(=auf was) reduziert sich für sie jene scheinbare Freiheit, die ihr ihnen verliehen habt? Sie leben bloß von der Vermietung ihrer Arme. Sie müssen also jemand finden, der sie mietet, oder Hungers sterben. Heißt das frei sein?" (p.472.)


(MEW 26, Theorien über den Mehrwert, Vierter Band des Kapitals ,325) 


 당신들이 노동자들에게 부여했던 겉치레 (표피적) 자유는 그들에게는 결국 무엇으로 귀결(환원) 되는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팔들'을 남에게 대여해야만 삶을 영위해 나간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고용할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다. 이것을 ‘자유’라고 부르겠는가? 


„What is this apparent liberty(seeming freedom) which you have bestowed on them reduced to for them? They live only by hiring out their arms. They must therefore find someone to hire them, or die of hunger. Is that to be free? (Is that to be called free?)” 


2. Die schmutzige Ökonomie, die ihn mit unruhigen Augen verfolgt, überhäuft ihn mit Vorwürfen bei der geringsten Rast, die er sich gestatten könnte, und wenn er sich einen Augenblick ausruht, behauptet sie, daß er sie bestehle. (MEW 26.324) 


노동자를 쉼없이 감시하는 비도덕적인 경제는 그가 휴식 시간에 좀 쉬려고 해도 그를 심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가 잠시 한 순간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그 비도덕적인 경제는 '노동자가 그 비도덕적인 경제를 강탈해 간다'고 주장할 것이다.  



The sordid economy that keeps a restless watch on him overwhelms him with reproaches at the slightest respite he seems to allow himself, and claims to have been robbed if he takes a moment’s rest. 


 Ist er fertig, dann entläßt man ihn, wie man ihn genommen, mit der kältesten Gleichgültigkeit und ohne sich darum zu kümmern, ob die zwanzig oder dreißig Sous, die er für einen harten Arbeitstag erhalten hat, für seinen Unterhalt ausreichen, wenn er am folgenden Tag keine Arbeit findet." (p.466, 467.) 


“the sordid economy that keeps a restless watch on him” (day labourer) “overwhelms him with reproaches at the slightest respite he seems to allow himself, and claims to have been robbed if he takes a moment’s rest” (Simon Nicolas Henri Linguet, Théorie des loix civiles, ou principes fondamentaux de la société , tome II, Londres, 1767,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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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ording to Robert Damton, Linguet is typical of the young men of "Grub Street" - men so desperate to attain the glory of the philosophes and so enraged at their inability to do so that ultimately they helped foment the Revolution


랑게(Linguet : 1736-1794)에 대한 한 해석: 로버트 댐튼의 경우,

랑게는 전형적인 가난한 저널리스트 작가들인 "그럽 스트리트"였다. 이 "그럽 스트리트" 작가들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philosophes) 명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영광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개했고, 이러한 좌절감이 프랑스 혁명을 발발시키는데 일조했다. 


랑게 해석 (2) David Bell, Sarah Maza  데이비드 벨과 사라 마자 평가

: 랑게는 국가의 검열을 받지 않고서 재판 서류를 작성할 수 있는 18세기 변호사들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법정 변론문은 여론을 형성하는 한 수단이었고 이는 결국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랑게의 정치적 내용과 그 시사점은 무엇인가? 핵심 주제는, 중앙집권화된 행정 국가의 발달 과정에 대한 것이다. 랑게의 문제의식을 해명하다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해서 근대 리버럴, 공화 국가를 형성해 나갔는가, 프랑스 국가 특질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랑게의 정치적 함축이 무엇인가?

19세기에 왜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리버럴 공화적 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100년 이후에나 그것을 달성했는가?

미국 혁명은 고전적 공화주의 사상과 존 로크의 자연법 사상, 그리고 영국식 입헌주의 (British constitutionalism)을 결합시켜 리버럴-공화 국가를 건설했지만, 프랑스는 이를 달성하는데 100년이나 더 걸렸다.


3. p.104 The Civic Republic 시민 공화정


랑게는 '군주제 monarchical leanings' 와 '공화주의 republican leanings' 경향을 동시에 주장했다.

랑게는 어떻게 공화주의를 자기 이론 체계로 들어들였는가? 그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부정의 injustice'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주권 (sovereign power)의 형태가 무엇인가를 찾아나섰다.


이 질문에 대한 랑게의 대답은 (1) 아시아이 절대군주 (Oriental Monarchies)는 그 부정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봤고 (2) 시민 공화정 (civic republics)은 그렇게 할 '의지'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봤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공화주의 (그리스, 로마 제국 하에서) 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 남자 시민들이 정치와 군사 영역에서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해당 공화정의 생존 여부는 그 남자 시민들의 '탁월한 능력 arete; virtue' , 즉 시민의 덕의 실천 여부였다. 


4.  gender-bias Anschuung ; 여성에 대한 편견 


하지만 이러한 덕 virtue 도 사치와 부패의 영향으로 '악'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따라서 시민 공화주의 사상가들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남자 시민들의 덕성을 함양하고, 그 국가가 '독재 정치, 전제주의'로 퇴락하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였다. 


남자 시민들의 덕 (탁월함 virtue)은 공적인 일에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했다. 이러한 국가의 공적인 일에 적극적인 참여을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들이 필수적이다. 첫번째는 남자 시민들이 재산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이러한 재정 자립을 통해서 국가의 안녕과 복지에 전념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남자 시민들의 빈부 격차가 크지 않을 정도로 균등한 재산을 소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적 정부 기능을 파괴할 수 있는 급격한 권력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는다. 


랑게가 주목했던 주제는 국가 시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권 sovereignty'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이다.


덕 virtue 이 '악'으로 타락하는 경향을 막기가 힘들다. 역사적으로 현재도 그렇다. 


여성의 해방을 근대 계몽 특징으로 본 몽테스키외와 반대로, 랑게는 여성의 '덕'은 사치 때문에 남성들보다 훨씬 더 쉽게 악'으로 타락한다고 봤다. 랑게에 따르면 여성은 가사 일만 하는 게 좋고, 남성들은 공적인 일에 전념해야 국가가 생존가능하다.


"여성은 사치로써 한 국가를 통치한다. 그리고 전제주의는 그 사치와 여성을 통해 확립된다"


5. 랑게, 가부장적 가족 운영과 국가의 정치적 '건강'은 분리 불가능하다.


이러한 공화주의 원리들은 모두다 똑같이 " 잘 만들어진 군주제 " "건강한 군주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랑게 주장: '주권의 권위'를 루소 (Rousseau)의 '일반 의지 general will' 수준과 동일하게 묘사했다. 


6. 랑게는 군주제 주권과 공화주의 주권을 화해시켜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틀이나 주장을 만들었는가? 

그렇지 못해 보이지만, 그가 1767년에 출판한 '시민법(민법) 이론 Thèorie des loix civiles 은 이 두 가지 각각 특징적인 '덕 virtue'을 설명해보이려고 했다. 



7. 



 


사전적 의미 "Grup Street" : used in reference to a world or class of impoverished journalists and writers

The world of impoverished writers and literary hacks.

- 실제 영국 런던 거리 이름, 밀튼 스트리트 Milton Street 지명, 가난한 작가들이 모여살았음




출처: 
Title: Searching for a "New System" of Government: Linguet and the Rise of the Centralized, Administrative State 
Author(s): Amalia D. Kessler 
Source: Historical Reflections / Réflexions Historiques, Vol. 28, No. 1 (Spring 2002), pp. 93-117 
Published by: Berghah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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