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Nakjung Kim


March 23, 2017 · 


'어리석게도 늘 떠나야 別離者를 느낀다.


기억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을.


아무것도 남지 않을 


이 접점의 세계만 있는 것 같은 착시.


첨도 끝도 없는 중간에서 걷다, 어느 접점에 만나기도 한다.


한참을 이어졌다 또 끊기기도 하고,


그게 전부였음을 너는 공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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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말아요. 심상정 대표님. 오늘 내일 아니 몇 년 수십년간 우리들의 살아생전 노회찬의 죽음은 깊은 상처일테니, 오늘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슬퍼할 힘을 남겨둬요.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그 날까지.




[
노회찬 영결식]심상정 “영원한 동지” 오열에 추모객들도 흐느껴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입력 : 2018.07.27 10:39:01



[노회찬 영결식]심상정 “영원한 동지” 오열에 추모객들도 흐느껴


■ 오전 10시 25분- 심상정 의원 “나의 영원한 동지” 조사에 참석자들 눈물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수많은 고뇌와 상처를 기꺼이 감내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에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고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칠흑같은 고독 속에 수많은 번민의 밤을 보냈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으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수많은 패배로 점철됐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우리는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 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이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 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 깊이 아로새길 것입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의 책임감을 온 몸으로 받아 낼 것입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있는 정당으로 발돋움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내 지키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우리 당원들이 국민들과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그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271039011&code=910100#csidx9e4bd51f965bf8a864bb420550299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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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한국 진보정당의 장인 (마에스트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에 보도된 진보정당과 노회찬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거의 처음으로 대중 언론에 등장하게 된 것은 1989년 12월 26일 (한겨레 신문)이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되기 전까지 조중동 등 보수 일간지는 노회찬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인민노련 탄압 이후, 인노련 재건 사건으로 노회찬 (33세)은 권우철, 차명진 등과 더불어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1990년 3월 30일, 한겨레 신문에서 노회찬과 인노련에 대해서 '혁신세력'인가 이적단체인가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다뤘다.


노회찬과 인노련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노조 탄압은 그대로 지속되었다고 진단했다. 대안으로 반민족적 독점재벌의 해체와 기간산업의 국유화, 이를 통한 민중민주주의 사회를 달성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인노련에 대해 변론했던 김찬국 연세대 교수는 인노련은 불평등한 정치 경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활동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정당성을 지닌 조직이라고 말했다. 







1996년 1월 24일 동아일보.


노회찬 이름이 등장했다. 96년 총선에서 경기고 출신이 60명 정도 출마한다는 보도였다. 진보정치연합을 이끌고 있던 노회찬을 민주당에서 공천할 것으로 예측한 기사가 나왔다. (실제로 노회찬은 민주당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1997년 2월 18일. 노회찬은 매일노동뉴스를 운영하다가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1997년 4월 17일 한겨레 신문 기사 중에서,


노회찬은 당시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던 북한 어린이 식량 보내기 운동에 동참했다.








1998년 2월 25일 국민승리 21이 진보정당 창당을 결의한다는 뉴스다. 당시 노회찬은 국민승리 21 기획위원장이었다. 노회찬은 1997년 12월 권영길 후보를 국민승리 21 대선후보로 내세웠다. 기사를 보면 노회찬은 12월 대선을 승리적으로 평가했다. " 그동안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적 지지층은 주로 개별화된 지식 계층이었다. 그러나 이번 12월 대선은 경남 울산, 창원 등에서 노동자들이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1998년 2월 25일자 한겨레 신문에서, 진보진영과 진보정당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1999년 1월 27일 현재 청와대 대변인인 김의겸 한겨레 신문기자가 노회찬을 인터뷰했다.


당시 국민승리 21 정책기획위원장 노회찬은 김대중과 다른 '독립적인 성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당시 김대중과 국민회의는 합리적 보수로 나아가야 하고, 진보정당은 재벌개혁, IMF 긴축통치 반대, 구조조정과 해고 자유를 반대하는 노선으로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1999년 4월 23일 한겨레 신문, 진보정당 창당 소식을 전하다.
















1999년 4월 23일자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국민승리 21, 한길리서치 공동 여론조사가 흥미롭다.


정당명부제가 도입된다면, 진보정당 지지율이 24.4%로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회의 (31.8%)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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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가 삼일 연속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했다. 노회찬 의원과 동년배라서 그랬을까? 손석희 앵커와 노회찬 의원과의 마지막 인터뷰의 씁쓸함 때문이었을까? 손석희 앵커 앞에서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간 노회찬 의원도 손앵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왜 노회찬 의원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는지도, 또 그가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jtbc 손석희 앵커의 속정과 진보정당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 고마운 일이다. 


손석희 앵커는 다음과 같이 노회찬의 유서를 낭독해 주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노회찬) 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670271&pDate=20180724



[앵커브리핑]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


[JTBC]  입력 2018-07-24 21:48 수정 2018-07-24 23:20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미련해 보였습니다.


작은 충격에도 그만 깨져버리고 마는 계란.


반면 단단한 망치질에도 끄떡없는 바위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적수였지요.


그러나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기어이 거대한 바위에 균열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끝까지 싸울게" (삼성 백혈병 분쟁, 11년 만에 마침표)

- 황상기, 고 황유미 씨 아버지


"다 안된다고 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왔네요" (KTX 해고 승무원 전원 복직)

 - 오미선 KTX 해고 승무원


길고 긴 시간을 지나서 기적 같은 오늘을 만들었던 사람들.


겨울의 광장을 넘어 오늘을 만들어낸 시민들 역시 한없이 약한 존재들이 모여서 궁극에는 거대한 권력에 균열을 낸 마치 기적과도 같은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는 진보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자신의 책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진보는 현상 유지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평범한 사람들,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동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통찰이었습니다.


현실과 열망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필경 그 시도들은 패배로 점철되고는 했기에 마음은 부서지고 무너져서 그들은 언제나 비통하다는 것…


"반올림…그리고, KTX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 노회찬 원내대표 서면 발언 (7월 23일)


그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전하려 했던 메시지 또한 계란을 쥐고 바위와 싸웠던 무모한 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온 그의 소망 또한 허황되거나 혹은 미련해 보였을 것이며…


결국 그는 스스로 견딜 수 없었던 불명예로 인해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뒤에 남게 된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사회학자 파커 J. 파머는 부서져 흩어지는 마음이 아닌 부서져 열리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노회찬) 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그렇게 미련하고…또한 비통한 사람들은 다시 계란을 손에 쥐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서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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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의 말의 품격보다도 더 소중한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한 단계로 올려놓았던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나도 힘들어, 우리도 어려워' 그런 한 순간에, 우리는 노회찬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믿기도 힘듭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길을 떠나버린 진보정당 마에스트로 노회찬, 그가 밉기도 합니다. 


광주 518 도청문을 굳게 닫았던 사람들처럼, 당신의 양심의 문을 굳게 닫아 모든 적들을 예단해버렸던 그 외로운 선택 앞에, 부담을 나눠 짊어지지 못한 자책감은 길고도 진하게 남을 것입니다. 


'꿈이 뭐냐고 물었죠?'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하는 것'이 노회찬 의원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첼로보다도 피리를 잘 불었다는 소년 노회찬, 단아한 어머니를 그대로 본뜬 것 같은 수줍음 많던, 철학을 좋아했던 노회찬은 '세상의 부름'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치 인민 혹은 시민 광대처럼 촌철살인 어록을 남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록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노회찬 의원은 자평했습니다. 


노회찬은 스스로 삶을 응축했습니다. 그 후대세대 주역들을 위해, '만인의 평등'을 앞당길 사람들을 위해 그 길을 개척할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의 길을 터준 것입니다. 너무나 아프게 말입니다.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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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어머니 원태순 여사 인터뷰 (2004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당시 사무총장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한국 진보정당의 마에스트로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회찬 의원이 세상과 스스로 이별했다. 


2009년 12월 말 노회찬 대표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어머니 원태순 여사를 알게 되었다. 내 직감과 고백이다. 노회찬의 배후에는 어머니의 심성이 있었다. 


노회찬 어머니께서는 아들의수의번호 336번을 기억했다. 노회찬 의원이 1989년에 인민노련 조직사건(*정확하게는 인노련 재건사건)으로 구속되어 1992년 4월에 출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머니 원태순 여사는 노회찬의 교도소에 흩날리던 낙엽들을 모아 책 속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도소 앞 꽃집 화분에 아들 수의번호 336번을 새기고 분재를 키웠다고 했다. 분재가 살아야 아들도 감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노회찬 의원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기 직전 찾아간 곳도 어머니가 계신 곳이었다. 


나는 당시 노회찬 당대표의 어머니 목소리가 저렇게 정갈하고 또록또록하신 것에 감탄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어머니는 없지만, 다른 친구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 원태순 여사같은 어머니는 많지만은 않았다.

이 큰 어른을 세상에 두고 가야했을 그를 생각하니 더 아리고 그 고뇌를 나눠들지 못했다. 어느 누군들 회한이 들지 않겠는가? 



2010.01.03 23:16


노회찬, 당선되려고 출마! + 코드번호 336 실체 + 김문수의 걱정


원시 조회 수 719 댓글 2 ?


<당원이 라디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을 만나다  <제 1부>  다시 듣기 +  인터뷰 후기


 


인터뷰 날짜 2009. 12. 28.  


 

당선


 


노회찬 대표에게 물었다. 서울시장 출마 이후, 머리 속을 맴도는 말은 무엇인가? 그는 "당선"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참가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골을 넣겠다는 것이다.


 


이제 선거 여론 조사, 출마자들, 정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 득표율을 미리 계산해보는 것은, 87년 이래, 한국정치에서 비지니스가 될 정도로 흔해졌다.


 


당선이라고 말했다. 투박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솔직해서 좋다. 그런데 왜 "당선"이라고 스스로에게, 당원들에게 말하게 되었는가? 서울시장 선거 완주와 당선, 2007년 진보정당 대선 성적표의 초라함 3%, 그 이후, 한국 진보정당의 성적표들 중에 중요한 하나, 서울시장 선거... 진보정당의 2010 와신상담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336



 

 노회찬 대표 자료를 찾다가 336번을 새로 알게 되었다.  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많이들 변했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 독재타도, 노동자 정치세력화, 그 운동의 댓가도 이제 사회적으로 많이 보상받은 것 아니냐? 노무현으로 상징되던  젊은 피 운동권들은 청와대에서  팍삭 늙어버렸다.  진보정당도 10석이라는 국회의원을 국민들로부터 받았으나,  4년 만에 3%  득표율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새로운 출발의 자기 동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336  에 얽힌  사연을 듣다:




 



김문수씨,수감자 노회찬을 걱정하다


:


노회찬 대표의 노동운동 선배와 동료였던, 김문수씨, 수감자 노회찬에게 책을 권하다.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 <제 3의 물결>


이제 정보화사회에서 지식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16세기 프란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명제와 별반 다름없어 보인다. 내용이야 다르지만, 정치적 기획이라는 점에서는 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권력이동에서 말한 <폭력, 지식, 부>라는 인류미래를 움직이는 3가지 요소를 누가, 무엇을 위해서, 왜, 이 시점에서 해야하는 것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조지부시 1세, 2세 대통령의 측근이자 공화당 하원의장을 했던 뉴이트 깅리치의 친구이다. 토플러와 "테러 세력을 까부수는 전쟁은 미국의 사명"이라고 외치는 깅리치는 단지 휴가를 같이 떠나는 사적인 친구일 뿐만 아니라, 정치관 사회관을 교감하는 사이다.


 


지적인 여유나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앨빈 토플러의 <폭력, 지식, 부>,그리고 지식이, 한국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대한 반성적 질문을 던질 정신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도지사 김문수씨, 경기도 소상공인 창업 박람회에 여가수 그룹 쥬얼리를 홍보대사로 초대하다. 김문수 도지사의 연설과 대조적으로 쥬얼리 박정아, 지루해보인 표정을 짓다 )


 


 


용접공 노회찬 : 80년대 "노동" 이라는 개념, 그리고 한국에서 "노동자"의 정치적 의미


 


속칭 정보화 사회, 2010년 기업하기 엄청 쉽고 좋은 나라,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노갈등 부추기는 한국에서,


 


"노동"의 의미, "노동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일하는 사람들, 시민들, 노동자들이 골고루 잘 살아야 한다. 100년 전에도 하루 8시간 일하자고 했다.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어도, 아직도 하루 8시간 일하고 있다. "지식이 권력이고 힘"이 되는 사회가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 많이 산출하는 비극을 낳고 있다.


 


83년, 하루 8시간 일하고, 5천원을 하루 임금으로 받은 노회찬  노동자. 2010년 수많은 청년 알바들은 시간당 5천원이 채 되지 않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83년 노동자 노회찬은 1시간당 임금이 대략 600원, 자장면 2-3그릇을 사먹을 수 있었다. 2010년 청년알바들은 1시간 임금으로 자장면 1그릇 + 콜라/사이다 1잔 밖에 사먹지 못한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적 의미, 다시 해석해내야만 새로운 노동운동도 가능할 것이다.


 


 


 


 


 

Comments '2'


잘살자 2010.01.03 23:28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좋은 원시님. 잘 보고 있습니다. 듣기도 하구요. 하지만 난해하기도 합니다.


새해엔 님에게 한번쯤은 '로또당첨'이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클라시커 2010.01.03 23:42


공감합니다. 이에 따라 라디오 팀에서 2010년을 기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npp 9시 뉴스'와 '중앙당 25시'는 조금 더 쉽게 가려고 합니다. 자주 들어주시고 자주 지적질 해주십쇼. 무한한 비판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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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며: 노회찬 의원이 서울시민들에게 남기고 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이 별세했다. 노회찬은 말의 품격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높였다. 노회찬이 믿었던 한국 민주주의 품격이란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시민으로 인정받고 자기 목소리를 '법'으로 만들고, 시민의 세금으로 그 법을 직접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노동자와 시민이 정치주체가 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직접 용접공이 되어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 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노회찬의 말의 품격과 위트는 광범위한 독서와 그의 노동현장 실천에서 창조된 것이다. 노회찬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구간 H빔 용접공이었고, 서울 시민들에게 이 선물을 남기고 이 세상과 작별했다.

노회찬이 받았던 일당은 당시 6천 500원이라고 했다.


다음 인터뷰는 2009년 12월 28일에 진행되었다. 그 때 노회찬 의원이 진보신당 대표였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당원들과 내가 함께 만든 <당원이라디오>에서 노회찬 대표를 초대해 인터뷰한 것이다. 

  




2010.01.08 08:25


[노회찬 인터뷰1부] 지하철 2호선 H빔 용접한 노회찬, 서울시장 출마하다


- 원시


 서울시 지하철 2호선 H빔 용접 공사한 적이 있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서울시장 출마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 노회찬이 뽑이 잘된 어록   


 

<당원이 라디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을 만나다  <제 1부>  다시 듣기 +  인터뷰 후기


  

인터뷰 날짜 2009. 12. 28.  


 

진보신당 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님을 모시고 2010년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준비 이야기, 진보신당 창당 후 당에 대한 평가, 앞으로의 계획들, 요즘 주제가 되고 있는 진보대연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자: 노회찬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노회찬: 네, 노회찬입니다. 반갑습니다.


 




   (서울시 지하철 공사 H빔 용접을 담당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질문자: 오늘 바쁘셨죠? 오늘 하신 일은 뭡니까?


노회찬: 오늘 대표단 회의가 오전에 있었고요, SK브로드밴드 노조관계자들과의 면담과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질문자: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하셨는데, 삼성 X-File 선고 공판 이전에 출마 선언을 먼저 하셨지 않았습니까? 위험요소가 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말하면 배짱지원처럼 보이고요.


노회찬: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재판을 의식해서 재판 전에 출마선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 (출마선언을 하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변호사들과 상의를 했는데 ‘출마와 재판은 무관하다’라고 저에게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다행히 좋은 판결이 나왔습니다만, 설령 원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2심 항소심이 있기 때문에 피선거권은 유지되는 것이고, 따라서 출마의 뜻은 변함없이 견지할 생각이었습니다.


 


질문자: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하루 중에 많이 생각하는 키워드가 있습니까?


 


노회찬: 제 키워드는 당선입니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와, 그냥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사람 만나는 느낌도 다르고 정책을 펼치거나 싸움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릅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대표님의) 그러한 결의나 각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하실 때 연설문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노회찬 대표께서 예전에 용접공으로 일도 하시고, 노동운동도 하셨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용접공 할 때 월급을 얼마 받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노회찬: 예, 제가 83년도에 처음 받은 월급이 일당 5,000원이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H빔을 용접할 때는 제가 한 6,500원 정도 받았습니다. 최고로 센 편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혼자 생활하는데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보다는 세게 받은 편이었죠.


 


질문자: 용접공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노회찬: 당시 상황으로서는 평생을 지하에서 노동운동을 해야 했는데, 생활의 문제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취직해야 한다라는 문제, 그리고 활동할 때 기술이 있어야 사업장 내에서 지위가 있을 수 있다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접을 선택했습니다.


 

                                 

질문자: 네,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데요, 제가 당 게시판에 흑백사진을 찾아 올렸는데 (대표님의) 고등학교 때 사진입니까?  (같이 사진을 찍은) 친구 이름은 생각나세요?


 


노회찬: 아, 이 친구는 지금 목사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질문자: 지금 이 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내성적이고 정치는 안하시게 생겼는데요.


 


노회찬: 그렇죠, 그 나이에는 정치 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요. (웃음)


질문자: 굉장히 범생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노회찬: (웃음) 저는 원래 범생이인데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지요.


질문자: 노동운동이나 반독재운동 그런 거 안하셨으면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노회찬: 글쎄요,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하고싶은 것은 많았죠.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오지에 가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그런 계통의 일을 했을 수도 있겠죠.


 

질문자: 이 사진을 보고 100분 토론의 손석희씨가 말한 것(손석희 씨가 동안이라는 주장 - 옮긴이 주)에 대해 반론을 좀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빵 분위기가 아닌데요?


 노회찬: 네, 젊을 때는 누구나 다 그렇죠. 손석희씨도 결국에는 호빵이 될 겁니다. 하하.


 


(노회찬 어머니 원태순 여사께서 본 노회찬 ) 


질문자: 336번에 대해 기억하고 계십니까?

 


노회찬: 네, 잊을 수 없지요.


 

질문자: 홈페이지 세상사는 이야기에 동영상을 올려 두었습니다. 노 대표님 어머님께서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336번이 수감시절의 번호 같은데요. 그 때가 언제, 어떤 일 때문에 수감생활을 하신겁니까?


 

노회찬: 1989년 12월에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라고, 그 사건으로 구속이 되었고요. 92년 4월에 출소를 했는데 서울교도소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거쳐서 청주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 때 수번이 336번이었죠.


 

질문자: 동영상을 보면서 노 대표님이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이 정말 진실되게 다가오는데요. 지금 어머님께서는 부산에 계십니까?


 

노회찬: 서울에 계시고요, 어저께가 어머니 생신이셨어요.


 

질문자: 선물은 뭐 드리셨습니까?

 


노회찬: 화초와 꽃을 좋아하셔서 화분을 하나 드리구요, 집에서 입는 조끼도 하나 해 드렸습니다.


 

김문수 현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제 3의 물결> 권해, 진보정당 동참 거부


 

질문자: 지금은 한나라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야기를 조금 해 보겠는데요. (김문수 지사가) 노회찬 대표님께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권유했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는 인맥, 지연, 선후배관계 이런 것들 때문에 철학이나 이념, 정치적 이상의 친구보다는 지연과 학연 등의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급을 피하기도 하는데요. 앨빈 토플러 책은 언제 권유 받았고,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진보정당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으로 간 김문수 현 경기지사, 노회찬 대표에게 앨빈 토플러 책 권한 적 있어) 


노회찬: 당시 김문수 현 지사는 진보정당을 하겠다고 우리 당에 참여한 상태였어요. 이미 그 때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교도소 면회를 와서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길래 제가 맑스 선집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니까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가 토플러 책을 몇 권 가져왔는데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책을 넣어주었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고 그 후에 제가 92년 출소를 해서 진보정당 안하겠다고 김문수 현 지사가 얘기를 할 때 진보정당 같이 하자고 강하게 권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 문제를 돌보며 살겠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질문자: 노회찬 대표가 90년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하게끔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노회찬: "인생관, 역사관, 철학의 산물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고요. 저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생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질문자: 어떤 한계를 느꼈습니까?



노회찬: 학생운동이라고 하면 지식인운동의 한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반독재민주화운동은 지식인 중심이었거든요. 광주항쟁 때 군홧발에 여지없이 밟히는 것을 보면서 일부 지식인들의 엘리트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동운동에 투신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국사회가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싸움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용접도 배웠던 것인데요.

 

 87년 이후 민주화는 부분적으로 진행이 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 많은 주변 동료들은 운동을 떠났습니다. 잘못된 사회주의 국가가 망한 것이지, 사회주의적 이념과 이상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당시에 생각을 했고요. 한국사회의 현 단계에 필요한 것은 민주화운동이 자주적으로 성장해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없이는 노동운동도 같이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정치세력화의 방편으로서 진보정당에 뛰어든거죠.


 진보정당을 한 두번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 이게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고, 수십 년 걸쳐서 발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두번 실패했다고 자기 인생 스케쥴에 맞춰서 운동을 하고 안하고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진보신당에 계신 분들이 과거 민중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에서 지도자급에 있었던 사람들이 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으로 이적을 했는가, 그 원인이 뭔가 라는 것에 대해 이런 내용의 질문을 많이 하셨기 때문인데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서요.


1부 마지막 순서로 노회찬 대표님의 연기력 테스트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아이리스 보셨습니까? 


노회찬: 그게 tv에서 방영될 시간에는 제가 tv앞에 있기가 힘들죠.


 

질문자: 대사 중에 아이리스라는 것을 군사자본 내지는 한국의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제국주의적 음모그룹 이런 걸로 묘사가 되어있던데 혹시 정치적으로 해석하셨는가 해서 여쭤보았습니다.


노회찬: 제가 드라마 내용을 몰라서..

 


질문자:그럼 1부 마지막 질문은 이것으로 드릴께요. 대표님이 생각하실 때 가장 좋았던 노회찬 어록, 그리고 내가 볼 때는 이거 좀 실패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노회찬: 여러 말들이 있었는데요. 성공과 실패로 보진 않습니다만, 국정감사 할 때 서울고법원장을 앉혀두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 이렇게 다그쳤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말에 고법원장도 수긍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기억에 남구요. 아쉬웠던 대목은 성소수자 문제 가지고 한번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주제는 아니었고 다른 걸 비유하면서 얼떨결에 얘기가 나왔는데, 본뜻과 다르게 전달될 소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도 계셔서 사과를 드렸습니다


   

하트(김세준)의 노래 공연: 들국화 "세계로 가는 기차"


제작: 새로운 데모연구회


자료조사, 섭외, 편집: 꿈책, @여수, 박원규, 한재필, 다온혜윰  


기술지원: 클라시커


진행: 원시


음악: 하트 (김세준) 


<당원이 라디오> 참여: http://cafe.daum.net/new-demo  




2010.01.08 08:44


[노회찬 인터뷰 2-a] 노동소득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서울, 바꾸겠다


원시 조회 수 699


<당원이 라디오> 노회찬 대표를 만나다 제 2부 a - 서울시 정책과 진보대연합, 노회찬은 이렇게 생각한다


 

 서울 과밀화 해법은, 지방으로 사람이 몰리게 하는 대책이 필요해



사회자-노회찬대표님은 즐겨부르시는 노래가 어떤것입니까?


 

노회찬: 사노라면 도 있구요... 노래를 잘 외우지를 못해서요 악보책을 놓고 부르는 편이예요.


 

사회자-첼로연주가 더 편하시죠? 노래부르는 것 보다


 

노회찬:원래 제가 피리를 잘 불었어요.



사회자-2부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서울시장 선거 후보 출마 관련된 이야기 진보신당 창당이후 평가, 진보대연합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서울시장선거와 관련해서 당게시판에서 2호선콩나물님이 서울시장선거 정책과 슬로건은 어떤 논의 과정을 통해 나왔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협의과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십니까?



노회찬: 당연히 협의과정을 통해 나왔고 바깥에서 자문도 받았고, 주요 당직자들과 회의 과정을 통해 결정했구요. 선거라는 것이 진행 과정이 있습니다. 지금은 출마선언이고요. 출마선언 때는 출마선언에 뉴스보도가 집중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보따리를 풀면 안됩니다. 이후 6개월이상 선거가 가기 때문에, 쟁점이 될 때 풀어야할 보따리가 따로 있습니다. 준비가 덜 된 측면도 있지만, 준비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 이상은 이야기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회자-선거슬로건을 당원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채널들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노회찬: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사회자- 두번째 질문으로, 정책적인 것 말고요, 자아실현하기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직장, 학교 때문에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습니까. 서울에서 노동소득으로 행복추구가 가능한지,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의 격차가 커져서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한 것인지. 노회찬 대표님은 경험속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제가 서울에서 37년 살았는데, 제가 또는 저의 가족이 집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서울에서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강남에서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자기 급여로 집을 얻으려면 30년 동안 자기 노동소득 전액을 모두 집어넣어야 집이라는 부동산 하나를 갖게 됩니다. 노동소득으로 삶의 질을 유지 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고 봅니다.    


 

                          2 political tragedy gentrification Seoul.jpg


     (용산 참사는 가진 자 위주의 도시 주택정책, 살벌한 자본편들어 주는 도시행정, 서울시 뉴타운의  어두운 단면일 뿐이다: 용산참사 망루 화재 사진)

 


서울시장 출마 이유, 37년간 서울살이, 노동소득으로 행복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것, 바꿔야


 

사회자-그게 경험속에서 보실 때 언제쯤이 분기점이었다고 봅니까?


 

노회찬:처음부터 어려웠는데, 지금은 더 힘들어진거죠. 임금상승률하고 부동산가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죠. 2003년에서 2008년까지 5년 만에 강남 부동산은 2배 올랐는데, 임금은 100% 오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동산만의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임금만으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사회 양극화, 빈곤층 증가 등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자-노대표님의 서울살이 경험속에서도 관찰되고, 각종통계도 그걸 보여준다는 건데요.이 질문의 배경은 김대중, 김영삼 정부, 나아가 노무현정부도 그렇고 민간 정부잖습니까. 실제로 이 주제가 논의의 핵심이 아닐까요? 자유주의 정부, 민간인 대통령 정부에서 노동소득으로 행복추구가 불가능하다 또는 어렵다는 것이 증명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회찬:우리사회가 군사독재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 87년 6월 항쟁부터인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는데, 정치민주화는 어느정도 진전이 있었는데, 경제민주화는 오히려 20년 동안 뒷걸음쳤고. 그 결과가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생각합니다.

 


사회자-당대표님의 직접 생활체험과 어우러져 당원들과 이야기해보고 그게 정책 쓰시는데 도움될 것 같아 질문드렸습니다. 다음 질문도 당원이 해주셨는데요, 과밀문제 해소책이 무엇인가, 세종시 발표 후 부산 광주 등 지역광역단체 신문, 언론에서 일제히 특집방송을 한 것이 자기 시, 도에 유치할 기업들이 다 세종시로 간다는 주제로 반발이 심했는데요.과밀해소 정책과 진보신당의 지방분권화에 대한 입장 두가지로 나눠서 말씀해 주시죠.

 


노회찬:과밀대책은 세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서울, 수도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진입장벽이 있고요. 수도권에 관한 규제강화 같은거로 이미 수도권에 있는 것을 지방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고, 세종시가 두번째에 해당하는 방법이죠. 세번째는 지방에 사람이 몰리게 하는 겁니다.

 


저는 세번째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지방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도 힘들고, 학교다니기도 힘들고,사업체가 없으니 취직하기도 힘듭니다. 문화 의료 교육 일자리가 해결되면 구태여 비싼 서울로 올라올 필요가 없는거죠. 그렇다면 지방을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대책이 가장중요한데 어떤 정부도 그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균형발전을 많이 추구했던 때가 노무현 정부인데, 그때 기업도시가 99% 골프장만드는 도시, 그래서 일자리도 안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만 상승시켜 놓았던 거죠.


 

세종시 방법은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그래서 과거에 반대한 적이 있었고요) 그러나 이미 합의가 된 것이고, 이것이 관공서만 갈 경우 도시가 밤에는 빈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세종시 원안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 생각했고, 그런점에서 저는 부산광주대구에서 반발이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렇게 반발할 만큼 지방경제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july 26 2009 seoul 깨끗한 서울.jpg


(서울은 과밀화, 배기가스 배출로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다. 비온 후 청명한 서울 하늘 사진.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서울시민들의 일상생활. 생태 환경의 문제는 단지 슬로건이 아니라, 서울 시민의 절실한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고, 불평등하고 불균등한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과 지역간의 격차 갈수록 커져, 진보정당의 정치적 과제가 되고 있다


 

제가 부산출신인데요, 부산에 집안일이나 각종활동 때문에 자주 가는데, 서울과 부산의 격차를 보면 두 도시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요. 부산이 날이 갈 수록 시골처럼 보입니다. 제2도시도 이지경인데 다른 도시는 어떻겠느냐. 그런 점에서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에 과밀대책만이 아니라, 인구가 많다고 수도권에 온 사람이 다 잘사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서울 속에도 곳곳의 지방이 있습니다. 강북에 지방이 더 많구요. 지방수준의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이 많죠. 서울만 잘 살고 다른 지방이 못사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 양적으로 커졌을 뿐이고, 서울 속에 상당한 격차가 그대로 존재합니다.


사회자-세종시문제가 거의 매일 뉴스에 나오는데, 이 문제에 대해 각종 지역 당협에서는 중요한 주제인 것 같은데 논의가 활성화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지방선거 준비하시면서 논의를 활성하시킬 생각은 있으신지요?


 

노회찬:이것이 지역쟁점으로 변질되어서, 세종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진보진영, 시민사회가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원안대로 가자는 입장이지만요. 그래서 이 주제는 우리 쟁점은 아니다는 입장에서 한 발 비켜있습니다만. 그런데 이렇게 소극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구요. 대구시당 방문시 언론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대구시당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 입장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충남도 마찬가지고 지역에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자-선거연합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안산보궐선거에 참가하셨잖아요. 당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께서 안산후보 단일화가 되면 전국 모든 민주노동당 후보가 사퇴할 수 있다고 언론에 발표하셨잖아요. 이런 노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그것은 정치적 상황과 공방 속에서 안산단일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사입니다. 그것을 노선으로 승격시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비록 정치적 수사라 하더라도, 우리당의 주요인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것을 정확하게 평가해야겠지만, 다른 당에서 한 이야기를 제가 정색하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사회자-정치적 수사를 하더라도, 정책이 잘 반영되는 수사를 하면 좋지 않을까요?


 

노회찬: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만약 우리 경우라면, 우리 후보가 여럿 나갔을 때, 한 후보는 가능성이 있고  다른 후보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다른 후보가 양보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것이 당에 이익이 되는가, 조직의 원칙과 정체성에 위배되지 않는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전술적 고려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일반론적으로 이런 노선은 어떻다 평가 하기 힘들다는 거죠.


 

사회자-당내에서 선거연합을 두고 민주적 토론절차를 거쳐서 규칙에 대한, 매 상황에 대해 세세하게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큰 틀에서는 조금더 합의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노회찬:그렇죠. 이미 그런 원칙을 세워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구요. 우리는 독자출마를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서 연대할 수 있다. 아직 공식논의를 앞두고 있지만 저는 연대와 관련해서 진보대연합 수준의 연대를 제안한 상태구요. 그럼 민주당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가 남는데, 예외적으로 특수한 경우에 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수한 경우란 해당 지역 당원협의회 차원의 동의는 있어야 할 것이고, 도당, 전국당 차원에서 합의는 있어야죠. 대표가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개혁정부를 외쳤던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정치적 좌파를 표방했던 진보진영 역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정치 주제들과 방식, 그리고 진보-후속세대를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과거의 오류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산술적인 통합이 아닌 질적인 성숙을 가져오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아 보인다.사진은 진보신당을 방문한 민노당 대표 강기갑)  


 

사회자-한겨레21 기사를 보니, 국민참여당과도 연대는 가능하다를 큰 제목으로 했던데요, 국민참여당과의 연대가능조건을 진보신당의 입장에서 먼저 말해야겠고요. 국민참여당이 진보신당에 요구할 점이 뭔가를 따져야할 것 같은데요. 왜냐면 2002년 대통령선거때 노무현에게 민주노동당후보가 양보하라는 것 처럼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노회찬:이번선거에서 특정지역에서 특정후보가 당선되기 위해 이러저러한 연대를 하는 것은 하나하나 조건을 따져봐야 됩니다. 지금 차원에서는 노선과 정책으로서의 전면적인 연대를 어떻게 할것이냐에 대해, 민주당과 전면적 선거연대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개별적 선거연대는 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른 연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이고, 전면적인 연대는 제가 보기에 민주당과는 당정체성으로 봐서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연대를 하자는 것인데요, 선거에 있어서 국민참여당도 파트너로서 가능하냐는 질문이 한겨레21인터뷰에서 왔던 것이고, 국민참여당의 성격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 다인데, 한겨레21이 가능한 것처럼 해석하고 보도했는데, 우리가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자기 성격을 먼저 보여야 하는 것이지 우리가 이럴 경우, 저럴 경우 각각의 답을 미리 이야기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자-대표님이 보시기에 국민참여당 구성하시는 분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정책적 실패에 반성하고 혁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노회찬:예를 들면 그것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있다 없다 선을 그어버리면 제가 정치하기 힘들죠. 그건 평론하시는 사람들의 역할이고요. 저는 선수입장이니 직접 언급은 안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냐가 중요하지 과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몇몇 의원이 진보신당하겠다고 하면, 당신들이 옛날에 민주당했으니까 진보신당 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회자-말로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 프로그램이나 행적 속에서 평가할 근거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노회찬:그게 바로 진정성이죠. 정치인의 수사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당원이 라디오> 참여: http://cafe.daum.net/new-demo 




[노회찬 인터뷰 2-b] 홍세화 "이명박 정부가 독재다"라는 정치 수사로는 쓸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친자본-권위주의적, 보수적 자유주의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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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이 라디오>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을 만나다 제 2부 (b) 편 - 다시듣기 + 인터뷰 요지


 

홍세화 선생의 "이명박 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은 정치적 수사로서는 찬성,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친-자본 보수자유주의 정권이 적합한 이명박 정부 성격규정이다.


 


사회자-홍세화 선생이 한겨레 신문 칼럼에 이명박정부는 독재정권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은 독재정권과 맞서는 모든 세력과 연대연합해야 한다고 하셨죠. 진보대연합의 공통분모로서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끼리 모이자 이거는 협소한 정치전술이라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홍세화 선생의 진의를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명박정부가 독재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공격할 때는 쓸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 평가할 때는 동의할 수 없구요.


 


사회자-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회찬:이명박정부 욕해도 안 잡아 가잖아요. 독재정권이라는 것은 권력유지에서 선거과정을 독점하거나 경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독재정권의 기본구성이죠. 우린 합법적으로 권력을 선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자- 노대표님도 이명박정부가 넓은 의미에서 보수적이고, 우익적, 친-자본주의적이기는 하나, 넓은 의미에서 자유주의 정부로 보시는거군요?


 


노회찬:이명박정부를 떠 받치고 있는 세력중에는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인도 많았고, 권위주의 지향을 갖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명박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거나 실현하는 과정은 노무현 정부 때나 큰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정책의 내용이나 방향은 차이가 있을 지라도, 이것이 독재면 과거 정부도 전부 독재죠. 이명박정부는 독재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특정 상층계급을 대변하는 정도가 그 이전보다 과도한 것 때문에 주로 비판하는거죠.


 

(경실련 주최 이명박 정부 정책 비판 <사진> 이명박 정부 성격은 통치방식에서 독재적이고 형시적-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성격규정은 친자본, 보수적 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 진보진영에서


정책적 대안과 그에 근거한 친-자본주의적 친-재벌 초국적 자본 편들기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나가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한국 진보진영 정파들 이제 동창회 수준, 이제 그 틀을 넘어야



사회자-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겠습니다. 강하고 큰 진보정당을 만들어보자는 논의가 나오는데요, 그 논의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소위 정책좌파들이 전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반자본주의 운동, 대안세력 중 하나가 브라질, 차베스, 한국, 남아공 정도 네군데가 교과서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곳입니다. 해외에서 볼 때는 한국내부의 정파갈등이 많다고 보고 있는데 정파간에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 수는 없습니까?


 


노회찬:토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요. 지금 지방선거 일정이 할일이 많으니까요. 지방선거가 끝나면 일년반 이상 이년 정도 시간이 있거든요. 그 시기에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지금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여러 그룹이 있는데요, 노대표님 보시기에 정책좌파를 자임하는데,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노회찬: 현재의 문제를 푸는데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연고입니다. 학생운동시절의 변혁 이론의 차이가 그것이 모든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판단이 다른 것이 아닌데도,(북한문제는 다르지만요) 마치 운동권 동창회처럼, 한번 대학시절에 어느 쪽이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인간관계로 하나의 정파가 되어버리는 것, 그 정파가 현실의 산물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푸는데 상당한 부작용을 낳는 우려가 있습니다.


 


과거의 연고, 비정치적 연고로 정파가 마련되다 보니 정파간 다툼이 반드시 생산적이지는 않은 것이 가장큰 걸림돌이고요.

다른 요소는 이론적인 겁니다. 사민주의자들이 당을 따로 만들어야 하느냐 등의 문제들이 있는데, 이 문제는 크게 장애물은 아니고 충분히 대화토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진보진영 정파 통합을 위한 공개적인 논의 시작하겠다


 


사회자-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시는 측면이 있는 겁니까?


 


노회찬:다른나라에 비해 대립과 갈등의 역사는 약한 편입니다. 다른 나라는 전쟁도 치른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꺼만 보니까 정파다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기는 합니다만, 극복해야 할 요소는 맞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 봅니다.


 


사회자-해외에서도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이나 좌파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을 통틀어도 한 국가의 행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힘은 되어야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는 비전은 갖고 계십니까?


 


노회찬:저는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하나는 힘 없는 진보세력이 모여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구요. 두번째는 아직도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가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머리속 관념의 진보를 대중과 대중을 이어내려는 부단한 시도와 평가 극복이 계속이루어져야죠.


 


한 번의 실천, 행동으로 갑자기 크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진보가 진보로 인정받는데 수십년 걸리고 진보가 합당한 자기 지위를 차지하는데 반세기씩 걸린게 진보의 역사입니다. 아마 우리는 늦게 출발한 만큼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시행착오를 줄여서 빨리 자리잡을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금방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청사진이랄까 계획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면요, 과거 얘기 잠깐 하자면요, 민주노동당 계실 때 이런 구호를 봤어요. 2012년에 제1야당인가요, 2016년에 집권한다 그게 정치적 수사였습니까 아니면 실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나요? 조금전에 말씀하신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까? 좀 성급했지 않은가 생각되는데요?


 


노회찬: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구요, 그 당시에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그렇게 믿었고요. 지금와서 평가할 때도 제대로 했으면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주체들의 문제이죠.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이 2000년에 창당이 되었고 2004년 총선에서 13.4% 를 얻었고, 그 해 20% 지지까지 육박했는데, 창당 4년만에 20% 지지를 얻은 예는 전 세계 진보정당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갔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객관적 조건과 환경이 그만한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거거든요. 다만 주체, 정당을 만들고 끌어나가는 주체가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시켜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2년만에 3% 지지로 떨어진 것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진보신당을 태동시켰다고 봅니다.


 


한국 진보정당 집권 가능하기 위한 실질적인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사회자-물론 지지율이 17% 육박했던 것은 사실인데요, 다른 나라 정당 사례를 살펴보면요, 좌파정당이 집권가능한 조건을 살펴보면요, 행정부분에서 시장선거, 10만 인구 이상 시장선거에서 전국적으로 20~ 25% 배출했을 때 실질적인 토대가 되거든요.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의미있는 분석이라 생각하구요. 모든 현실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 예를 들면 브라질의 경우 가장 큰 도시인 상파울로는 노동당이 창당 20년만에 집권했는데, 창당후 집권전까지 그 사이 제1야당이 되어본 적도 없고 제2야당도 아니었지만 가장 큰 대도시인 상파울로에서 두번이나 시장을 배출했어요.


 


그래서 행정을 통한 집권권력은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 것을 무시하고 2012년 2016년을 얘기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에 순조로운 발전을 했다면, 우리가 뒤에 후회한 일들이 애초에 극복이 잘 되어 왔다면 2012년 선거에서 제1 야당이 충분히 될 수 있었다고 보고요. 그 정도면 지방 소도시 여러군데서 시장을 배출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그 부분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회자-2부토론이 열띠어지고 있는데요, 잠깐 쉬었다가 남은 질문 드리겠습니다. 


파리에 계신 카르멘 당원님의 노래를 감상하시고, 3부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원이 라디오] 노회찬 대표를 만나다 제 3부 a - 통합 진보당에 대한 생각

 


당의 정체성과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를 높이도록 기획력과 인재 양성에 힘을 모아야

 


질문: 최근에 나오고 있는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통합과 관련해서 대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진보신당의 책임은 또한 없는가 하는 배경을 두고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창당 이후 성과가 진보적인 유권자들에게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는 비판이 있는데요?

 


노회찬: 그런 각도의 접근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잘 했으면 되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또한 이것이 논란이 되는 과정도 불만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언제까지 통합하겠다고 발언한 것에서 출발했는데, 그러면 우리 생각이 뭔지를 확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당 대변인이 확인을 했고요. 진보신당에서도 뭔가 도모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이겠지만, 일방적인 저쪽의 희망 사항에 대해 우리가 논란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이 문제 자체가 뜨거운 사안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논란을 벌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방향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해야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가지고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질문: 2008년 3월 이후 진보신당을 이끌고 오시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표방하셨습니다. 진보신당의 성과나 성취는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회찬: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고 가지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진보가 과거처럼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진보의 재구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가치의 재구성이고 하나는 세력의 재구성입니다. 세력의 재구성이 제2 창당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지금도 추진 중입니다. 진보의 가치를 재구성하자는 것은, 당 운영 방식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진보운동의 방식을 추진하는 중입니다.

 


세력의 재구성과 관련해서는 작년까지 큰 성과가 없다고 스스로 평가를 했고 더 노력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제2 창당을 어떤 내용과 일정과 방식, 또 어떤 목표로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당 내에서 깊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지, 논의 자체가 민주노동당과 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중심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퇴행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치활동을 국민들이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장벽.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 활동, 확실한 정체성을 보여 선거 때 지지를 끌어내야


 

재질문: 1년 8개월 동안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긴 힘들었다고 해도 계획보다 더딘 이유는 무엇이고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노회찬: 우리가 부딪힌 현실의 벽은 그렇습니다. 올해 초에야 지역조직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아직도 완성이 안 된 상태이고, 뭔가 활동을 할 수 있는 도구 자체가 성숙이 안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내부의 변명이고 국민들에게 양해해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가장 큰 벽은 진보신당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또 무엇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가장 모른다는 거죠. 그것이 가장 큰 벽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현재 30%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활동을 통해서 알게도 되지만 국민들이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통로는 굉장히 좁습니다. 예를 들면 신종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우리의 대응은 어느 정당들보다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는 국민은 전체 유권자들 중 1%도 안 되지 않습니까? 한편에서는 열심히 해나가야 되지만, 그런 활동의 축적만으로 상황을 돌파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거가 중요하기도 하고요.

 


선거는 다들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는 장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잖습니까? 실제로 창당 이래 치른 선거가, 총선, 올 4월과 10월의 재보궐선거가 있었고 내년 6월의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선거에서 열심히 하고 4월 선거에서는 당선자까지 냈지만, 여전히 당을 알리는 데서는 한계가 크게 극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 활동이 우리가 나갈 주요 방편이고, 그리고 선거 때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고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장벽을 넘어서는 중요한 방편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종플루 사건으로, 공중 보건에 대한 예방치료의 중요성이 전 사회적으로 각인되다. 진보신당 퍼포먼스)

 


질문: 지난 2년 동안 과거 민주노동당 때는 못했는데 진보신당에서는 해봤다는 사례들이 있습니까? 중앙당 차원, 또는 대표님 개인적 차원, 아니면 지역 시도당이나 당협의 사례들이 있습니까?


 

노회찬: 지역 사례들은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마포에서 민중의 집을 만들어 주민공동체를 실현하고 있거나, 관악 같은 경우 어린이 보행로 안전사업이나 고시원 수강료를 인상하는 담합에 대응하는 것, 구로 지역에서 신종인플루엔자 대응 사업을 하면서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민생과 연관된 지역 의제를 발굴해서 키워나가는 좋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또 마산의 창원 같은 경우 창원 터널의 통행료를 무상으로 하라고 요구하는 사업을 8개월 이상 하고 있는데 도지사까지 나서서 부분적으로 내리겠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어요. 그런 소중한 사례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이 넘쳐흐르거나 전국적으로 휩쓸고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여기에는 우리당의 당력, 실천가, 활동가의 수 등이 한계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재질문: 그런 활동들에 대해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확산시키고 네트워크를 할 수 있는 장이 현장도 있고, 온라인도 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도 인터넷 마인드가 사실 뱅가드 전위적인 수준이잖습니까? 저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홈페이지 같은 경우 당원들이 많이 실망도 한 것이 현실인데요, 말씀하신 지역의 사례들이 당 내에서 잘 유통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왜 더디고 원인은 무엇인지요?

 


노회찬: 저는 지역의 그런 사례들이 유통이 잘 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역에 가보면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려고 연락이 오거나 초빙해서 듣거나 사람들을 파견해서 배워가려는 경우가 꽤 많아요. 오히려 더 막힌 것은, 예를 들면 비정규직 문제나 장애인 문제 등 진보운동의 가치로 내세우고 싶고 말로는 강조를 많이 하고 있는 사업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획의 부족입니다.


 

이것은 과거부터 생겨난 문제인데, 우리 스스로 물론 돈도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일이 잘 안된 것을 돈과 사람 탓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그런 것을 돌파해낼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한데, 진보정당도 하나의 기획입니다. 그런데 추상적인 상태의 기획만 가지고서는 지지를 흡수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많이 막혀 있는 거죠.


 

각지의 당원들이 온라인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길들을 열어놓도록 당이 더 노력해야.


당 내에 좋은 기획을 실행할 사람을 발굴하는 데 양과 질 면에서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


 재질문: 그런 하나의 방안으로요, 당 내에는 여러 정책실도 있고 연구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인력과 당 재정이 부족하다면 당원들의 힘들을 최적화시켜서 활용할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의 정책 연구소나 정책실과 당과의 접촉면이 너무 옅고 좁지 않은가 하는 지적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 네, 충분하지 않겠죠. 물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계기가 있을 때 게시판에 열어놓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작업들이 있었고 당원들이 참여해서 여러 좋은 아이디어도 수렴할 수 있었는데, 좀더 안정적으로 또 풍부하게 확대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의 상근자 개념을 확대해서, 각지에서 얼마든지 발달한 온라인 등을 통해 활동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길들을 많이 열어놓아야, 당에서 지시하면 따라가고 못 따라가면 부담만 느끼는 동원형 참여가 아니라 자발적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용 있고 영양가 있는 참여가 바람직하고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당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고 2010년 전국적인 선거 단위를 고려하면, 당원들이 직업들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 다양한 직종의 당원들이 해석하고 바라보는 당 정책과 정치활동에 관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킬 계획은 없습니까?


 

노회찬: 2010년 사업계획을 지금 짜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물론 지방선거까지는 당력이 집중이 되겠지만 일상 시기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선거 과정부터 충분히 사업계획에 반영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20대 젊은 당원들이 단지 선거라고 해서 율동하고 선거운동 하는 데 동원되는 게 아니라, 진보정당 자체를 자기의 미래 직장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차세대 진보정당운동의 주체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노회찬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노회찬: 새로운 세대들의 진보정치 참여는 말씀 안 드려도 인정하고 중요하죠. 당의 노령화가 거기서부터 출발될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현재 20대들이 극악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도록 강요받는 불리한 처지에 놓인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이것을 돌파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재질문: 사실 노회찬 대표님처럼 대학교를 다니다가 용접공이 되보고, 진보정치에 입문하시고 이끌어오시고 하셨는데요, 지금 세대들도 물론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각 세대별로 다르잖습니까? 각 세대별로 진보정치 입문이나 계기, 과정들을 나름대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할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예를 들면 88만 원 세대라는 진단은 굉장히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개념이잖습니까? 세대를 진단하는 것은 되지만 그들이 정치 주체라고 하는 것은 좀 아니거든요.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정치 현실, 이런 것들을 발굴하고 계획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노회찬: 우선 운동으로 접근하면, 주류적 흐름을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과거에는 독재기 때문에 뛰쳐나온 것이고 또 전교조 교사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이 자각을 했고, 어떤 외부적 요인의 시대적 흐름으로서 자발성이 형성되면서 운동이 되었는데, 그런 큰 운동을 기획해서 만드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고요, 오히려 그런 운동을 끌어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활동가를 만들어내는 일도 병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진보신당의 청년 아카데미처럼 학습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부딪히는 취업이나 몇 가지 문제 중에서 학생 대중 속에서 파급력 있는 이슈를 기대하고 캠페인으로 운동하는 과정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거나 해서 활동할 수 있는 틀을 각 캠퍼스 단위로 형성시켜나가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그런 다음에서는 큰 기획에서 하나의 운동으로서 던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지금 같은 경우 학내의 거점 자체도 없는 상황이에요. 좋은 기획이 있어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죠. 중앙당에서 그런 기획을 해서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하려고 했는데 받아서 할 수 있는 쪽이 없어서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뭔가 사물이 변증법적인 법칙대로 양을 만들고 그 양이 질을 만들고 그 질을 가지고 또 양에 도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아요.



민주노총과 당의 관계와는 별도로 당이 직접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야


노동위원회 주요 사업의 50% 이상은 민주노총 바깥에 있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으로 구체화시켜야


 

질문: 진보신당에서 내건 표어가 ‘평등, 평화, 연대, 생태’인데요,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 또는 노동조합이나 민주노총과 연대하면서 진보신당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어떤 부분인지요. 당내에 노동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는데요, 어떤 내용으로 노동운동과 결합하고 또 민주노동당 때는 하지 못했던 노동운동을 정당 차원에서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요?


 

노회찬: 우선 민주노총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인데 안팎으로 내우외환이라고 봅니다. 바깥으로는 유래 없는 억압과 탄압을 당하고 있고요, 안으로는 민주노총으로서는 폭넓은 대중을 규합하는 데 스스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어떻게 힘을 보태고 함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현재 민주노총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규합하고 대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질문: 그 부분을 창당하기 전에도 계속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평가를 해보면, 그 부분에 대해 당원들이나 노동자들이나 시민들에게 새로운 성과라고 소개할 부분들이 있습니까?


 

노회찬: 물론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당원들이 특별한 헌금을 해서 재정을 확보하고 여러 지역에서 지역의 비정규직 사례를 만들기 위한 사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족할 상황은 전혀 아닙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추구할 만큼 모델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관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벌어진 투쟁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는 활동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집요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재질문: 다른 나라 좌파들이 한국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심지어는 브라질이나 남아공의 노동운동보다 한국에 주목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보신당 같은 경우도 비정규직 데모하는 곳에는 참여하는 경우들이 보이지만, 정당 차원의 새로운 노동운동의 개념은 아직 미흡하지 않은가 합니다. 당원들을 참여자로서 이끌어내실 계획들은 있습니까?


 

노회찬: 노동자들이 당을 만들어낸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자기 입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당이 특별한 강제 속에서 노동 문제를 풀어왔고요, 반면에 독일처럼 당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온 나라들은, 당이 노동자들 속에 들어가서 노동조합의 필요성도 이야기하고 실제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는 당이 직접 노동운동을 조직하는 데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금속노동조합은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공장 앞에 당원들이 가서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노동 3권이 무엇인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당이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야지 민주노총을 통한 비정규직 사업이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재질문: 당 내의 노동위원회의 발족이나 기구는 언제까지 완성이 되겠습니까?



노회찬: 노동위원회 체계는 노동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다 마련되어 있다시피 합니다. 다만 노동위원장의 인선이 늦어지는 어려움이 있는데, 다음해 1월달 전국위원회 전까지는 인선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진보진영의 노동운동, 97년 이후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분석과 "노동"개념의 분화에 착목해야만, 새로운 노동운동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사진은 쌍용차 문제 해결 촉구에 나선 노동운동가들과 진보정당 사람들. 젊은 노동운동가와 진보진영의 후속 세대 발굴의 중요해보인다. )


 


재질문: 당내 노동기구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당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동위원회가 민주노총의 틀에 갇힌, 또 보수언론이 공격하는 식의 노동귀족이라는 좁은 의미의 노동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운동의 개념을 가지고, 당원들도 진보신당의 노동위원회가 내 문제를 풀어주고 있구나 하는 컨셉을 가졌으면 좋겠는데요.


 

노회찬: 우리가 가장 반성하고 있는 대목 중에 하나가, 과거에는 노동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있었고 사실은 노동과 연관된 사업을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그 점을 비판하곤 했는데, 그동안 민주노총에 일임하고 대변하는 식으로 활동을 해왔던 것이죠. 그래서 민주노총당이라는 오명이나 오해까지 받아왔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문제도 민주노총을 통한 비정규직 사업, 아니면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한 지원 이상의 상황을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자신을 위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못 심어줬죠.


 

이를 극복하자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고 따라서 노동위원회 주요한 사업의 50% 이상은 민주노총 바깥에 있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업, 인원, 예산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습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사업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거죠.


 

질문: 아무튼 두 가지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진보정당이 가지지 못했던 노동 분야의 리더십을 혁신하는 부분과, 새로운 노동 개념으로 포섭되는 직장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제가 있는 것 같은데 속히 노동위원회가 당원들에게 잘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대표님께 진보신당 당원들이 직업 숫자는 몇 명입니까 하는 질문도 던져보겠습니다. (웃음)



[당원이 라디오] 노회찬 대표를 만나다 제 3부 (b) -


 

인터넷 마인드는 전위,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포부를 듣는다 당 홈페이지 혁신과, 개인블로그 역시 1-2개 정도 집중 육성하겠다


 

질문자 지금 채팅창에서 "청년 유니온을 아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노회찬:


청년 유니온 활동하는는 2명을 만났었습니다.


 

질문자: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노회찬:


그 분들이 자신이 청년유니온 멤버라고 하면서 '청년유니온'을 아느냐고 질문하셨고요. 1인시위 같은 청년유니온 활동에 대한 지원을 부탁하더군요. 제가 청년유니온을 알기도 하고 또한 지원도 해주겠다고 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제 정치적 상식이 된 소셜 미디어, 문제는 진보정치가들이 얼마나 진보정치 컨텐츠를 가지고 시민들과 직접 대화에 나설 수 있는가? 그게 핵심적인 관건이 될 것이다. 내용없는 미디어나 성의없는 의사소통은 오히려 또하나의 미디어 쓰레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많다: 사진은 현재 미국내 인기있는 온라인 소셜 미디어 소개,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 이미 한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이름들이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2개 정도 블로그에 집중적으로 관리하려고 하고 있다. 


 


질문자:


네, 그렇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당에서 홈페이지를 개혁하고 있는 데요. 당원들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시죠?  


제가 노대표님 인터뷰 하기 전에 당원이 라디오 팀과 함께 노대표님의 인터넷 마인드를 알아보기 위해서 노대표님 블로그들을 다 가보았습니다. 다음,네이버,싸이월드,트위터,리얼 찬 등 총 7~8개 정도가 되더군요. 난중일기 쓰시던 곳도 있고요.


 


조금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네이버 같은 경우는 일일 방문자수가 38~40회 정도 되는 데요.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 싸이월드 같은 경우 작년에 최소한 4,000~5,000회 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당 대표님의 인터넷 마인드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히려 너무 분산시켜 놓지 않았는가? 장기적으로 시선을 받을 수 있는 블로그나 인터넷 공간 하나를 집중적으로 오랬동안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노회찬:


네, 제가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은 데요. 제가 작년 선거이후에 블로그를 한번 해보자 해서요. 지금 있는 블로그들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제가 직접 개설한 겁니다. 사진 올리는 것 하나하나 제가 다 배워서 만든 거예요.


 


질문자:


뱅가드잖습니까? 인터넷 뱅가드~(웃음)


 


노회찬:


(웃음) 그때 판단을 잘못한 거지요. 여기저기서 조언을 듣다 보니까 제 스스로의 판단을 모으지 못해서 여러군데다가 개설을 해 놓았습니다. 개설한 이후에 제가 고집이 좀 있어서 '직접 운영하겠다 . 직접 쓰고 올리겠다'고 하다가 감당을 못해서 지금 그렇게 된 것이구요.


 


지난 여름부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해서 지금 정상화 되어가고 있는 홈페이지 몇개를 제외하고는 다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블로그로 통합하기로 했고요. 통합할 블로그를 이미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공개할 시점을 좀 찾고 있는 상황이고요. 아마도 아주 조만간 공개되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없애지게 되어있습니다.


 


질문자:


노대표님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에서 진보정당운동을 하시는 미드필더들도 그렇고요. 중장기적으로 만나서 교감할 수 있는 친밀도가 높은 블로그들을 계획하고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당 홈페이지와 바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하실 계획은 있습니까?


 


노회찬:


늦어도 1월 안으로 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부터도 그렇게 할 생각인데,제가 7~8년 이상 오래된 개인 홈페이지와 싸이월드에 있는 것 2개 하고, 나머지는 블로그를 하나로 합쳐서 연결을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예, 알겠습니다. 제가 당 홈페이지를 보면서 하나의 희망사항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노대표님 만큼 바쁘고 퇴근 이후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싸이클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하루에 5분정도 방문해서 홈페이지에 묶어놓고 원클릭으로 해서 노대표님의 블로그도 방문해 보고, 그러려면 홈페이지가 굉장히 세련되고 친절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신이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2010년에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노회찬:


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질문자:


아.. 믿어도 될까요?(웃음)


 


노회찬:(웃음) 


 


질문자: 불신들이 너무 많아서요. (웃음) 왜 그런가 하면요. 9월 30일날 된다고 했는 데,12월 말이되도 안되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양치는 소년처럼 '늑대야~'했는 데, 진짜 그렇게 될까봐 좀 우려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노회찬:


네,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자:


그러면 좀 믿어도 될것 같고요.


 



(진보신당 홈페이지, 창당 이후 전국적인 당 네트워크 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지역활동을 뉴스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당원들의 정치적인 요구를 당내 제도로 안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해야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는 진보신당, 2010년은 보다 더 열린자세와 당원들과의 협업 플레이가 요청된다)  


 

당 안팎으로 정책 연구소를 일상적으로 네트워크하려고 한다


 

다음 질문은 당 안밖에 연구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노회찬 대표님의 '마들연구소',심상정 전 대표의 '정치바로'라는 연구소도 만들고 했는 데요.


개인정치활동을 하시면서 연구소도 만들고 지역연구도 하는 그런 것은 좋은 데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차원에서 민주노동당 당시때도 나온 지적들인데요, 연구소들은 많았지만 실제 '중장기적인 계획을 가지지 못했다' 또 '당 밖에 있는 좋은 전문가 그룹을 당 안으로 적극적으로 연계시키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는가?'하는 평가들이 있습니다.



노회찬:


저는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내용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요.


 

질문자: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진보신당의 정책연구소를 강화시키는 대책은 있습니까?



노회찬:


정책위원회도 있고 연구소도 있습니다. 지금은 정책연구소 보다 위원회를 강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진보신당이 관심을 두고 있는 주요 정책분야에 대해서는 부위원장으로 전문가 그룹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정책연구원으로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정책위원회는 정책연구와 전문가들의 오거나이즈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그 분야의 정책전문가들과 네트워킹하는 그런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사실 그러한 일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선거때 보면 교수들 300여명이 달라붙은 당 규모로 보았을 때 상당히 많은 조직이 된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필요할 때 이외에 일상적인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측면들이 많습니다.


 


질문자:


그러니까. '지속성과 중장기적 전망이라는 부분들을 조금 못가져갔다'라는 것인가요?


 


노회찬:


네, 그런 부분에 대한 반성 위에서 노력을 하고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과거 정책연구하시다가 지금 생업으로 나가 계신분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지금 네트워크 차원에서 재조직화 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알겠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잘 되어서 당 밖에서도 '진보정당이 열린구조로 되어있다.'라는 의견들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그와 연결된 선거와 관려해서 진보신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노대표님께서 나가시고,경기도 도지사는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지만 심상정 전 대표님께서 출마예정이십니까?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노회찬:


그렇죠. 네.


 


질문자:


그렇다고 보면, 서울과 경기도의 정책이 떨어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굉장히 밀접한 부분들이 많죠? 그렇다면 정책과 공조라는 부분들이 2002년 선거나 2006년 지방 자치단체 선거와는 다른 어떤 형태로 2010 선거대책을 진보신당에서는 가지고 계십니까? 수도권, 그러니까 서울과 경기도가 공조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다가갈 그러한 계획은 가지고 계신지요?


 


노회찬:


첫번째는 지방자치단체들 서로의 정책공조가 중심이 되기는 어렵고요. 다만 우리가 지방선거를 임함에 있어서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공약' 또는 '공동공약'이라고 해서, 어느지역에서든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우리가 이것을 실현해 내겠다'라는 공동의 약속. 이런 것들이 있는 거고요.


 


두번째는 교육감 선거와 병행되기 때문에 단체장과 교육감의 상호 시너지를 북돋는. 시장으로서 혹은 교육감으로서 정책들이 서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함께 이런 것을 해 내겠다.라는 그런 분야가 따로 있고요.


 


세번째로 특성화 시켜 지역을 연결하고 넘나드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한강,북한강 관련된 문제라던가. 한반도 대운하 혹은 경인운하 등과 연관된 문제라던가. 또는 수도권 특유의 문제라던가. 이런것들에 관한 특성화된 공약을 별도로 준비하는. 그러한 과정에서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 후보가 함께 보조를 취한다던가 하는 것이 포함되는 등. 이러한 세가지 방면으로 공약과 정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 정치연구소의 내실화가 절실해보인다. 강연위주를 벗어나서, 연구원들이 다양한 진보 정치 주제들을 발표하고, 정책을 정치활동과 행동화로 나갈 수 있도록 진보정당의 정치활동의 현대화를 가속화시켜야 한다. 사진은 노회찬 대표가 활동하는 서울 노원구 마들연구소에서 개최하는 강연회 사진)


 

리더쉽과 팔로우쉽을 다 고려하면서, 진보정치가로서 리더쉽을 새롭게 만들고자 한다


 


질문자:


네, 알겠습니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당원분들이 많은 데요. 서울시,경기도지사 또 다른 광역시도당도 그렇고요. 선거에 당내 자발적인 참여가 저조해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요. 선거를 통해서 많은 참여를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바램을 말씀드립니다.


 


리더쉽과 관련된 건데요. 좀 크게 말씀드리면.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해 보면, '읍소형' 특성이 좀 많습니다. 전에 2002년 대선 선거시 마지막 토론할 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가 돈이 있습니까? 뭐, 학연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믿을 것은 국민여러분들밖에 없습니다. 좀 봐주십시오.' 이런 '읍소형'리더쉽을 발휘를 했고, 어느정도 호소한 부분이 있는 데요.


 


이명박 대통령 같은 경우를 보면 비즈니스 마인드고 해외에 나오더라도 약간 좀..속되게 말하면 '헤벌레 헤~헤~'하며 웃고. 이런 부분들이 많은 데, 실제로는 굉장히 성공 중심의. 성공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눈으로 많이 본다.라는 리더쉽이 많이 보이는 데요. 노회찬 대표님의 리더쉽은 뭐다. 이런 부분들이 있습니까? 어떤 부분을 부각시키고 싶습니까?


 


노회찬:


네, 리더쉽이 있고 팔로우쉽이 있는 건데요. 리더쉽은 그런 면에서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리더쉽은 이끄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끄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았을 때의 여러가지 내용들이고요.


전체적,객관적으로 보면 이끄는 사람들이 있으면 따라가는 사람들의 따르고 싶은 마음도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리더쉽만이 아니라 팔로우쉽 까지 함께 봐야 한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리더쉽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소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이 목표는 아니고요. '소통'은 하나의 수단인 것이죠. 하나의 길을 닦는다는 것은 단순히 도로의 건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닦여진 길에서 오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리더쉽의 가장 중요한 요체중의 하나는 '자연스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것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라 새로난 도로 위에서 힘을 끌어 낸다거나 또는 정성을 모아 낸다거나 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기초가 리더쉽이라고 보고요. 결국 그에 부응하는 팔로우쉽까지 연결될때 그 지역이 풍성해 지는 것이겠죠.


 


민주노동당 시절과 비교해서, 당내 의사소통 수준은 높아가고 있는가?


 질문자:


네, 알겠습니다. 리더쉽도 말씀해 주시고 팔로우쉽도 말씀해 주셨는 데, 2010년에는 당원들과 리더쉽과 팔로우쉽이 잘 마련되서 소통에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글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아이폰'을 당직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는 데요. 실제로 중앙당 당직자들과 의사소통은 직접대화로 혹은 업무보고 등 어떤 통로로 하십니까?



노회찬:


공.사석에서 다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


네, 그렇습니까?  그러면 민주노동당 때와 비교하셔서 이점은 당내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다 라는 성취의 부분은 중앙당 내부에 어떤점이 있습니까?


 


노회찬 :


민주노동당 시절에 소통을 가로 막았던 사실상 가장 큰 장벽은 정파의 갈등과 대립이었습니다. 똑같은 사항,똑같은 회의,똑같은 대화를 놓고서도 해석이 다르고 의도하는 바가 달라지는 소모적인 갈등이 굉장히 일상화 되어 있었고요. 저희들은(진보신당) 다른 부족한 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정파갈등 등으로 인한 소통의 장벽은 거의 없다라고 저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이 나아진 점이다 라고 보고요. 그래서 우리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판단이 부질하거나 그런 점들은 지금도 일을 하면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일할 마음이 않나는 대립과 갈등이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저는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


네, 알겠습니다. 지금 오래하셔서 많이 피곤하시죠. 그러면 당원이 라디오를 해 보셨던 소감과 2009년을 마감하면서 당대표로서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또 2010년을 앞두고 당원들에게 이말은 꼭 하고 싶다하는 것을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노회찬 :


예, 당원이 라디오 하면서 힘들다기 보다는 예정된 시간보다는 1시간 반을 좀더 넘어가는 데요. 제 생각에는 1시간이면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할줄 알았는 데요. 1시간 반이 다 넘어가도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대단히 큽니다. 주제가 대단히 광범위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특히 당원들이 관심이 많은 민주노동당과의 관계문제라던가 선거연대문제라던가 이런 부분에서 제가 충분히 말씀을 드리고 싶은 데, 공식결정이라던가 이런 것에서 다 녹여내지 못하는 못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면들이 좀 아쉽습니다. 다음에 제가 다른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고요. 그러한 아쉬움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당원이 라디오 많이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고요.


 


2010년 자중 속, 자애하는 마음, 진보정치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질문자: 2010년 당원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제가 2009년.2010년을 아우르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스스로를 믿는것.' 저는 그것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자기를 의심하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라고 보는 데요. 자신에 대한 긍정없이.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문제점을 덮자는 것이 아니거든요. 자신에 대한 긍정마저 없으면 한발자욱도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운 조건에서 소중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우리 당원들이 우선 자신부터 믿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희망도 믿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면서도 안될거라고 단정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우리들 스스로가 쌓아놓은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중해야겠지만 동시에 자애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만으로 끝나는 것은 큰 문제지만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런면에서 자중도 하면서 자신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질문자 :


네, 고맙습니다. '자중해야겠지만 자애해야만 진보정치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겠다'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당대표님이 당원들과 더불어 살려주시고 더 많이 활성화 시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동안 너무 고생하셨고요.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고요. 다음 기회에 좀더 주제를 좁혀서 더 깊은 이야기를 말씀하실 기회의 장을 다시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회찬 :


네, 수고하셨습니다.


 


질문자 :


네, 노회찬 대표님 바쁘실텐데. 성실,솔직,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고요. 늘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데, 그 부분은 다음기회에 한번 더 노대표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당원이 라디오를 위해서 애써주신 클라시커,하트,꿈책,윤희만 비서실장님 다 수고하셨고요. 멀리 파리에서 오페라를 보내주신 카르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번에 중앙당 25시, 시도당에서 선거출마 하시는 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밤까지 청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작: 새로운 데모연구회


인터뷰 날짜: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자료조사, 섭외, 편집: 꿈책, @여수, 박원규, 한재필, 다온혜윰  


기술지원: 클라시커


진행: 원시


음악: 하트, 카르멘


 


<당원이 라디오> 참여: http://cafe.daum.net/new-d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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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록 : 

(1) 안태근 검사 교회 간증은 기억하고, 교회 간증 이후 '구원 받고'  나머지는 다 기억상실


(2) 서지현 검사 성추행에 대해서도 "기억이 없다" "술 많이 마셔 기억이 없다"



(3) 기억상실증에 걸린 안태근 검사 2016년





법사위 ‘막장 드라마’ 연출한 우병우 사단

등록 :2016-11-17 05:03수정 :2016-11-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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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청와대에 엘시티 사건 보고했냐”는 질문에 “기억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하여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여,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면서도 조사받기를 꺼리며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검찰을 향해 “나는 왕이고, 너희는 신하야”라고 외치는 꼴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정치인들이 관련돼 있다는 사건을 강도높게 수사하라고 지시하며 반격을 시도한 셈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엘시티 사건과 관련한 거물 정치인들의 혐의를 법무부로부터 보고받고 저런 지시를 내렸다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이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그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노회찬 의원 (박근혜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통해 엘시티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지시한 거 아닙니까?

김현웅 법무장관 그거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언론에 수차례 보도됐기 때문에…

노회찬 의원 법무부나 검찰에서 엘시티 사건에 대해서 청와대에 보고한 바는 없습니까?

김현웅 법무장관 그건 제가 확인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노회찬 의원 이렇게 나오실 정도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현웅 법무장관 특정 사건에 대해 직접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을 해봐야…

통상적으로 검찰은 수사 보고를 법무부에 하고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는 이를 취합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다. “장관이 수사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김현웅 장관의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노회찬 의원은 김현웅 장관 뒤에 앉아있던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보고 여부를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기억이 없습니다”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노회찬 의원이 “뭐가 없다고요?”라고 물었지만 안태근 국장은 “기억이 없습니다”라는 답을 똑같이 반복했다.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야, 참~”이라는 어이 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노회찬 의원 기억이 없다고요?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요?

안태근 검찰국장 보고 안했을 수도 있고요.

노회찬 의원 보고 안했을 수도 있고요? 누가요?

안태근 검찰국장 제가 보고한 기억이 없습니다.

안태근 검찰국장의 불성실하고 어이 없는 답변 태도에 누군가 책상을 탕탕 내리쳤다.

노회찬 의원 보고 안했으면 안 한 거지, 보고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답변을 그따위로 하는 거에요? 아니면 아닌 것이고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안태근 검찰국장 그럼 모르겠습니다.

노 의원은 “막장입니다. 막장이에요”라며 질의를 마쳤다.

 안태근 검찰국장은 검찰의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국정원 파견근무 경험이 있는 공안·기획통인 그는 2013년 12월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검찰 인사를 주무르는 검찰국장에 발탁되며 승승장구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70684.html#csidx26b5b44fea603ecb74276173a8325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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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정의당 2016년 총선 슬로건을 읽고, 심상정 대표 앞


(국민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정의당) 크게 써주십시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싸우는 정의당) 

(정의당은 다릅니다) 쑥쑥 커라, 미래 정치 


1. 슬로건 제안: 

“ (더 이상 못참겠다) 일한대로 달라 !” “차별하지 말라, 일한대로 달라 !”

“(이제) 다같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다” 


진보정당 선거 으뜸 구호는 시민들의 공적 분노를 끌어모아, 당의 정치철학 ‘주조틀’로 걸러내어 ‘대안과 희망’으로 빚어내야 한다. 노동소득으로는 집도 못사는 대다수 시민들과 월급쟁이들, 일하고 싶어도 맘놓고 일할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의 좌절감과 의로운 분노를 통합정의당은 직접적으로 표출할 필요가 있다.


성난 청년들의 핏기빠진 얼굴을 보라 !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하는 노인들의 상처난 주름살을 보라 !  어쩌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많이 공부한 한국이 “어머니 자궁에서 무덤까지 계급투쟁”하는 전쟁터가 되었는가? 


법정 노동을 했으면 집값, 교육비, 병원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정의’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통합정의당이 만들겠다 !


“차별하지 말라 일한대로 달라”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정말 최소한의 요구일 수도 있다. 영어로 “equal work deserves equal pay” “labor income proportional to working hours”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로, 이 기초적인 요구사항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삶의 요구이자 다른 정치적 사회적 욕구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2. "이제 다같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다”

(All together well-being is Democracy !)


박정희 시대는 무조건 ‘잘 살아 보세’였다. 절대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에 어떻게 잘 살자는 방향도 없었고, 민주주의와 ‘잘살자’는 것도 연결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되돌려드립니다” 대선 때 공약만 하고, 깨끗이 다 잊어버렸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를 직접적이고 간결하게 비판해야 한다.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깡통찼습니다” “아버지가 이룬 경제성장, 1%, 아니 0.5% 금수저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박근혜 비판 이외에도, “이제 다같이 잘 사는 게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진보정당이 지향해야 하는 ‘민주주의’ 내용을 담아야 하고, 새누리당, 민주당, 보수적 중도 안철수와 차이를 표명해야 한다. 87년 ‘독재 타도, 민주 쟁취’가 또렷한 시대정신이었다면, 97년 이후는 ‘(1%만 잘 사는게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게 민주주의다’가 한국 정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통합정의당은 시대정신을 선취하고 이끌어 나갈 필요가 있다. 


3. 정치 정당에서 유권자가 판단하고 해야할 말을 슬로건으로 담을 필요는 없다. “크게 써주십시오” “쑥쑥커라, 미래정치”는 유권자가 통합정의당을 보고 ‘아 그래, 크게 써줄게, 쑥쑥커야지’라고 그들이 하는 말이다. 굳이 유권자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말을 슬로건으로 쓸 필요는 없다. 절대적으로 쓰지 말자는 법은 없다. 그러나 박근혜와 새누리당, 안철수와 민주당의 정치적 무능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담아야낼 수 있는 ‘정치적 내용’은 아니다.




(통합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총선 슬로건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정의당) 크게 써주십시오

(노동법 개악 저지를 싸우는 정의당) 

(정의당은 다릅니다) 쑥쑥 커라, 미래 정치 


관련 주제 글들:  

http://bit.ly/1ZPgRDv  : 박근혜 월급 2천만원, 국민 노동소득 그 4분의 1 이하는 용납할 수 없다 

http://bit.ly/1ZPhcq2 : 한국 자본주의적 자산" 재분배, 자본주의적 소유구조와 법률에 대한 도전이고 재구성운동

http://bit.ly/1ZPhgGd진보정당원들이 보는 소득격차 한도, 3~4배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http://bit.ly/zOCASA  : 노동소득과 민주주의 / 다같이 잘 사는 것이 민주주의다

http://bit.ly/1ZPhop3  : "뼈빠지게 일해도 가난한가? 이제 다같이 잘 사는 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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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형제이니까, 무겁지 않아.

우리 갈 길이 끝없이 멀고, 
수없이 많은 구불구불 길.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 길을 간다.

하지만 난 나약하지 않아.
그를 등에 업고 그 길을 갈 만큼 힘이 세.
그는 내겐 짐이 아니야, 그는 내 형제이니까.
우리는 그 길을 그렇게 갈거야.

그 길에서 그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해.
아무런 부담없이 맘 편히 가는 것, 
그게 내 바램이다. 
우리는 꼭 목적지에 함께 도착할테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는 나에게 짐이되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는 내 형제이니까.

내가 슬픔에 잠겨버리면, 
사람들 마음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버릴 수도 있어.

우리가 가는 길, 끝도 없어.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
종착역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희.로.애.락을 나눌거야.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고 해도
난 지치지 않을거야.
그는 내겐 무거운 짐이 아니냐, 
왜냐하면 내 형제이니까.

그는 내 형제이니까.
그는 나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야. 
그는 내 형제이니까.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 by Hollies)

2002년 12월 잠시 한국에 간 날, 10년 전 이즈음. 대선 전에 처음으로 그와 통화를 했다.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적대감이 전혀 들지 않는 ‘정치적 편안함’, 자기정당성에 도취되지 않은 운동권. 드문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 그냥 맘편히 (민주노동) 당사에 놀러 한번 와요"
"예, 한번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정확히 10년간 계속되었다.

2012년 11월 24일. 마지막 텍스트 메시지. 대화 순서가 바뀌었다.
"You should know I like you a lot, man. I will see you in Korea [죽지 말고 살아주오]"
"Thank you"


2006년,과 2007년은 그에게 시련의 해였다. 자기가 10년 넘게 지은 집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웃으려고 했지만, 그러한 노력 뒤안길을 암세포가 엄습해버렸다. 토론토에 한번 오고 싶어했는데, 초대도 못했다. 2007년 4월 어느날 “서울 이재영”이라는 메일은 정치적으로 비관적이었지만, 말미는 늘 그처럼 낙천적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놀면 딱 좋은데 ^^. 어쨌거나 토론토에도 봄이 빨리 와야 하는데... 원시 돌아오기 전에 한국에는 봄이 올라나..." 그러나 2007년 이후 진보정당에 봄은 못 오고 말았다.


그에게 주어진 행복의 시간과 공간의 지속.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그의 미소일 것이다. 2012년 12월 12일. 그는 프로페셔널 운동권답게 전두환-노태우가 1212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에게 주어진 행복의 시간의 연장, 그의 미소가 구불구불한 계곡 사이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기쁨과 슬픔은 안개처럼, 바람처럼, 때론 비처럼 그 삭막한 여의도 빌딩들 사이로, 밤 10시 이후 정적이 흐르는 그 차가운 콘크리이트 철골 계곡 사이에 출몰할 것이다. 그는 맨 마지막 당 사무실을 정리하고 퇴근할테니.


우리들의 '영원한' 이재영 정책실장님 영전에 바치는 노래: 


http://youtu.be/7HFDAp8XVrk (그는 무겁지 않아, 내 형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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