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나온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다. (좋은 영화 추천 바랍니다) 그러던 중에, 컬트조님이 <써니 Sunny>라는 영화가 괜찮다고 해서, 그걸 보고 간단히 영화 <써니>와 별로 상관은 없는 실화를 소개한다. <써니>는 세부 묘사가 좀 약한데, 그나마 복고형 영화 중에는 재미가 조금 있는데, 그건 특정 타겟형 주인공들의 경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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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 수학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스타였다. 3월 운동장에 갓 부임한 신임 선생님 소개가 있을 때부터, 탤런트 빰치게 단아하게 생긴 조옥 샘은 때꾹물 죽죽흐르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는 포니밋,소녀시대,원더걸스는 저리가라였다. 조옥 샘이 마이크를 잡고 소개를 하기전에도 뒷산에서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와~ 노래~노래” 3월이 그렇게 출발했다. 

고등학교 수업과 생활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시락을 2개 싸와서 그걸 먹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자율학습시간에 또 자거나, 도대체 공부는 둘째치고, 얘들을 집에 가서 자게하지 않은 이 체제 자체에 대한 불타는 저항의지는 솟구쳤다. 난 '대아 (반 친구들 60여명)'를 위해 '소아'를 희생키로 작심하게 되었다. 나는 <국민교육헌장>의 역사적 사명을 그대로 실천했으며, 이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상을 줘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험험)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수업시간에 얘들이 자거나 조는 것을 막기 위해, 적어도 한 10분 간격으로 속칭 “빵 터지는 발언들 (행동이 아니라 말로)”을 내가 하거나, 내가 컨디션 난조면, 다른 친구들을 들쑤셨다. 전술이야 뻔하지 않은가? 우리들의 타켓과 먹잇감은 각 학과목 선생님들이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대본은 준비하지 않는다. 그 상황 상황에 맞게 <상황극>을 하는 것이다. 진짜 유치찬란한 것부터, 공자왈 노자왈까지, 가끔 선생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난이도 낮은 10단위 농담의 경우, (a-b)³+(b-c)³+(c-a)³를 인수분해하라. 그러면, 신재민 학생이 칠판에 쓰면서 에이 플러스 비, 에이 제곱 마이너스 이런 식으로 쓰고 나옵니다. 선생님 “맞습니까?” 손을 번쩍 들며 “아니오” 그러면서 칠판에다 에이 더하기 비, 에이 제곱 빼기 이런 식으로 수식은 신재민과 똑같이 쓰고, 난 플러스 대신 더하기로, 마이너스 대신 빼기로 힘차게 외치고 들어와 자랑스럽게 착석한다. 난 사실 물러서지 않았다. 고2, 3 되어서도, 선생이 칠판에 마이너스 그러면 속으로 “빼기라니까 그러네...우리 말을 참 맘으로부터 아껴서야 하는데”... 

꼭 이런 난국에, “선생님 진도 나가죠?” 9번 리구열 학생, 웃는 교실 찬물 확~ 뿌린다. 이런 “진도” 학생에 대한 맞춤형 코멘트는 “어이 진도 너 부른다. 권순전 진도! 엄니한테 전화왔다!” (권순전은 실제 진도가 고향임) 그럼  주변에 깔아놓은 멤버들 “진도땍, 진도댁 전화 받어~” 

아무튼 그 날도 그렇게 사건은 전개되고, 웅성 숭성하다가 조옥 선생님께서 출석부를 집어들더니, 문을 열고 수업도중에 교무실로 그냥 퇴근해버리셨다. 

난리났다. 후방이 흔들거렸다. 교무실로 가서 사죄하자는 파, 담임이 알면 큰일난다. 아니, 이늠들아 이런 것부터 밀리면 우린 끝까지 밀리게 되어 있어 강경파 혹은 나몰라라파. 아무튼 우리는 교무실까지 가지 않았다. 청소 끝나고 담임 심선생님께서 아니나 다를까 1.5미터가 넘는 정말 쎅시하게 잘 빠진 탱자나무로 만든 매를 들고 왔다. 

“김일선 나와 ! 니가 수학 시간에 헛소리하고 그랬냐?” 사실 김일선과 원시소년은 이미 7반 심선생님반에서 이미 유명인사였으며 교무실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름들이었다. 바로 업드려!  심선생의 후려치기 타법은 김일선군의 허벅지에 거의 박혔다. 우리는 소리를 듣고 직감으로 매의 강도를 체험할 수 있다. 내가 고 1때 수업시간에 자는 얘들을 깨우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느라  그 수많은 학과목 선생들로부터 돌려맞은 매댓수만 해도 365는 넘는다. 매의 종류도 다양했다. 맨 살덩이부터, 검정 대나무, 대뿌리, 물걸레 자루(긴거), 빗자루(짧은거), 당구 큐대 (*도대체 이런 것은 어디서 다들 구해왔는지 원@@), 연 만드는 신호대... 태권도 형, 유도형, 신체 접촉형 다양했다.

김일선군, 동무의 비명소리는 동물원의 침팬지 치질터지는 소리였다. 탱자나무 휘어지는 그 활시위 소리는 흡사 한갑득류의 거문고 산조의 자진모리! 김일선군은 5대 맞고 그대로 개구리 대형으로 뻗어버렸다. 이 참혹한 순간을 보라. 눈을 찔끔 돌린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던가? 김일선 “일어나” 소리와 더불어 “아니, 원시가.....원시가.....” 음성은 떨렸고, “원시가 그래서 샘이 출석부 들고 나가...” 

“원시 나와” 바로 신체 접촉형이 시작되었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형 빰치기. 그러나 나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 '물러서면 안된다' “퍽” 소리는 허용할지언정, 한발짝 뒷걸음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소위 학교에 일진이니, 어깨 좀 들썩이는 얘들도 매 앞에서는 싹싹 비는 형, 조산원도 아닌데 그보다 더 크게 소리지는 형, ...내 스타일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었다. 그 때만은 “내 마음은 호수요” 원래 시인, 원시가 되는 것이다. 이게 싹싹 비는 것보다 때리는 사람 마음을 간담 서늘하게 하는 전법인 것이다. 소리없는 자가 강한 법이다. (*이건 낭만이지만,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문당했으면 그건 장담할 일이 아님) 

7교시 끝나고, 김일선군과 수도꼭지 시멘트에 걸쳐앉아, “야 임마, 그런다고 거기서 원시라고 말해버리면 어떡하냐?” “미안하다...” “많이 아프냐? 검정 줄 5개는 생겼겄다 임마” 검정 -> 푸르딩딩 -> 보라색채 -> 빨가스름해지고 -> 실핏줄이 보이다가 이런 식으로 매의 상처는 아물어간다. “침 발라 주까?” “됐어” 김일선군은 개구리 사지 벌벌 떨더니, 이제 찬물 마시고 좀 생기가 돌았다. 

배신자 김일선, 수돗가에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 임마” 햇볕을 쬐고,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고, 수학여행갈 때도 같이 사회도 보고, 교무실과의 전투는 그 해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난 지금도 당시 나의 역사적 임무에 대해서 옳았다고 믿고 있고, 내 허벅지 앞뒤, 발바닥은 여러가지 무지개 색깔로 가득찼지만, 반 친구들이 학교에 와서 자고 졸고 그런 꼴은 도저히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나름 <교실 혁명>을 역설했던 것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잠은 침실에서, 교실은 즐겁게 놀기~

배신도 가끔 때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후 화해의 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