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중국 정부가 <글로벌 슬럼프> 책, 출판 금지한 배경.... 일화 하나 소개:

 

2011년 10월 말에, <글로벌 슬럼프: Global Slump> 초벌번역과 수정번역을 다 끝내고, 데이비드 맥날리와 이야기나누다가 알게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로벌 슬럼프> 을 조금 읽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국의 자본주의화 과정과 소득 불평등을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이야기도 간간이 나옵니다만.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 <글로벌 슬럼프> 이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도록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 시점에서는 <글로벌 슬럼프>가 중국에서는 출판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언론,출판 검열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중국의 언론, 출판 정책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한국 영화, TV, <대장금>이, 장나라, 이정현 등 가수들은 중국에서 인기가 좋다는데, ..., 또 책은 아무렇게나 통과시키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글로벌 슬럼프>가 중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댓글 참고.





<글로벌 슬럼프>에서, 중국 자본주의 현실과 노동소득 격차를 설명하고 비판한 대목이 있습니다. 


91쪽 보면, 


중국은 “이제 세계 역사상 최대규모 이주의 한복판에 있다”.66 대략 1억 5,000만 명의 중국 농민들은 이미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2050년까지 3억 명가량의 농민들이 이러한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은 대규모의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에 속한다.


중국의 호구 제도(가구 등록제)하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로 간 이주자들은 도시에서 정규직 계약을 맺을 권리가 없다. 이들은 중국 제조업 일자리의 75% 를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 자녀들도 공립학교에 다닐 권리가 없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주택에 빼곡히 깃들어 산다.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 계급은 7억 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OECD의 부자 나라 30개의 노동력을 다 합친 것보다 1.5배 더 큰 수치다. 중국의 잉여노동은 OECD 국가들의 전체 제조업 노동력보다 3배 정도 더 크다.


30년간의 시장 주도 경제성장 이후 중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미국 수준의 대략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핵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표 2-3>은 이 임금 격차를 보여 주며, 또한 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들이 남반구 개도국으로 자본 투자를 그렇게 재배치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글로벌 슬럼프 91쪽) 





<글로벌 슬럼프> 책 97쪽에 보면, 중국이 지난 30년간 자본주의화, 자본주의 세계시장으로 나오면서 어느정도 소득격차를 발생시키고, 실제 그 사회적 갈등 상황이 어떠한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 『이코노미스트』의 자료에 따르면, 임금 및 봉급 생활자들에게 돌아간 국민소득 몫이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 그 낙폭이 가장 컸다”.(80)


 1990년과 2005년 사이에 노동소득, 즉 중국 노동계급의 총소득은 GDP의 50%에서 37%로 감소했다. GDP에서 노동소득 비중의 감소란 노동자들과 기업가•은행가•부자들 사이에 부의 이동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속히 발생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어디서나 그랬듯, 중국의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중국 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 냈다. 


중국 부자들은 비싼 나이트클럽과 최고급 식당가, 디자이너 쇼핑몰, 테마파크, 엘리트 사립학교를 중심에 끼고 있는, 사설 경비소가 딸린 고급 주택단지와 사치스러운 호화 소비구역에 살면서 자신들을 보통 대중들과 차별 짓는다. 중국 인구의 0.4% 를 차지하는 백만장자 25만의 가구가 중국 전체 부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비해 1억 명의 중국인들은 하루 1달러 남짓의 생활비로 생계를 유지한다. 겨우 중국 인구의 4%만이 공공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이러한 까닭에 중국은 에이즈 같은 세계적 유행병과 2003년 중증급성호흡증후군 SARS 위기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수억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은 주택이나 사회 서비스와 같은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중국은 아시아에서 두번째 로 불평등한 국가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의 증대로 인해 파업,폭동, 토지 투쟁 등과 같은 격렬한 사회적 투쟁의 흐름들이 생겨났다. [글로벌 슬럼프 97쪽]  


(그 이후) 

위 내용들을 번역하고 나서, 최근 중국 임금 정책들에 대한 뉴스를 보니까, 2015년까지 현재 노동자 임금을 2배로 인상하겠다고 중국의 인민일보가 발표했더군요. 


http://english.people.com.cn/90001/90778/90860/7355021.html


2012년 총선, 대선 때문에, 또 한국 진보좌파정당 건설 문제로 어수선합니다만, 앞으로, 중국, 인도, 또 가까운 일본, 러시아 내부에서 정치운동과 연계, 연대 부분들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연대의 활성화가 한국 진보좌파정당의 뿌리를 깊게 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케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이야기를 한 것은 단순히 중국 자본주의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것만을 지적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속칭 민주당 386들, 그리고 맹물진보들-사이비진보세력들과 전혀 다른, 질적으로 다른 중요한 사회운동 영역을 개척하는 것과, 이 중국 문제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또 논의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006년 임금 비교표: 미국,중국, 한국 등 [글로벌 슬럼프] 책, 92쪽 

Comment +0


세계적 하청 시스템, 위기는 극복된 게 아니라 변형됐을 뿐
[서평] 글로벌 슬럼프,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가치 부분, 다른 말로 대출·주식·채권 등 다양한 형태로 표시된 지불 약속 증서는 자본의 미래 예상 수입이 하락함과 동시에 철저히 평가절하되고 만다. …… 미래의 특정한 날에 지불하기로 한 약속들이 서로 맞물려 수십 수백 군데서 어긋나고 만다. 나아가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자본의 발달과 함께 융성하게 된 금융체제 자체의 붕괴를 부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 - 칼 마르크스


19세기 쓰인 오래된 문장을 길게 인용하는 목적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특권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를 탁월한 예언가로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그의 분석을 곱씹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맥낼리는 오늘날 고통스러운 경제위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는 이 위기가 20세기 헤게모니 국가 미국을 포함해 세계체계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들과 그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의 빚을 국가의 빚으로 바꾸는 자본-편향적인 위기 극복 과정을 두고 (오바마의 경제 자문위원 래리 서머즈를 인용해)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문장을 반전시킨다. “인간의 삶에서의 후퇴가 있기 때문에 경제 통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백한 모순을 착목한 맥낼리는 지금의 위기를 ‘글로벌 슬럼프’(Global Slump)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와 그 특수한 정세(conjuncture)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은 좌와 우가 제각각 다르고, 2008년 가시화된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과 전망도 엇갈린다. 맥낼리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주류경제학자의 견해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그는 유로존 내 국가들의 위기를 거론하며 “은행권 위기는 주권국가의 채무 위기로 그 형태가 변화된 (것)”이며 “위기는 형태만 변화되었을 뿐이다”고 단정한다.

맥낼리는 ‘만성적 위기론’을 주장한 급진적 정치경제학자에 대한 반론으로 1982년 이래 25년간 꾸준히 상승한 이윤의 추세를 보여준다. 좌파 지식인들이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한 이후 40년을 통틀어 불황으로 보는 분석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기술적·공간적 재구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철저히 평가절하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반증’임과 동시에 ‘회복’인 것이다.

맥낼리는 자본주의 재조직화로서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세계적 하청체계의 강화’와 더불어 ‘금융화’로 보고, 이에 조응하는 통치전략으로 ‘노동 규율 강화’와 ‘인종·여성에 대한 억압’을 든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성과 인종을 기준으로 분할하면서 전체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세계적인 금융적 축적체계’이란 뜻이다. 그리고 맥낼리는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의 과잉 투자’, ‘이윤율의 저하’를 지목한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진단법과는 다르다. 브레너의 ‘장기 침체’나 하먼의 ‘공황’ 개념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팽창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세계경제를 이해할 때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몇몇 나라나 경제 대국들의 총합만을 살펴서는 안 된다는 것’, ‘세계 자본주의 평가는 국민경제 지표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것’, ‘2차 세계전쟁 이후 호황에 견줘서 이보다 못한 경우를 모두 공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5년간 신자유주의가 “⓵노동자 계급 조직들을 공격하고 개발도상국의 주권을 훼손함으로써, ⓶착취율을 증가시키고 제조업의 물리적 공간들을 재배치함으로써, ⓷거대한 전 지구적 신규 산업예비군을 창출함으로써, ⓸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대규모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⓹린 생산방식과 같은 작업조직과 노동 강화의 새로운 체제와 신기술들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 물결을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또한 맥낼리는 “1980년대 초반 이후의 이윤율 상승 추세는 자본주의적 경기팽창 물결을 실증해 주었다”며 “이러한 변화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본주의 금융의 대대적인 재조직화가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시작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주변부 국가부터다.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 수도 민영화에 반대한 운동이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적녹동맹’에 원주민이 결합해 새로운 ‘계급’을 보여줬다. 과거 프랑스의 노예 식민지였던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에서는 2009년 초반, 수만 명이 수십 일 동안 대중파업을 해 최저임금 인상 등 더 나은 노동 조건을 만들었다. 2006년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에서는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빈곤에 저항했고, 스스로 ‘민중의회’를 꾸려 도시를 운영했다. 맥낼리는 이 투쟁을 1871년 ‘파리코뮌’에 빗대어 ‘오아하카 코뮌’이라고 한다.

중심부 국가에서도 저항은 이어졌다. 맥낼리는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국가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흑인, 이주민, 노동조합이 결합된 새로운 운동주체들과 이들에 의한 새로운 운동방식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여기서 맥낼리는 자신의 역할을 끝낸다.

맥낼리는 ‘이윤압박설’이나 ‘위기순환론’에 빠지지 않고, 세계경제를 분석단위로 설정하고, 이윤율의 운동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든 ‘새로운 계급(투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세계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자본주의의 동역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윤율의 운동’을 주장의 주된 근거로 삼으면서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이론적 모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맥낼리 자신에게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시간대가 부재하다는 데 기인한다. 그에게는 이윤율의 이론 궤도가 없기 때문에 경험적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슬럼프’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강상구/문화과학사/2000)을 읽은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사 강의’(백승욱/그린비/2006),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윤소영/공감/2006)과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http://bit.ly/sFH1Pk

Comment +0


[신간 탐색]금융자본주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2011 12/06ㅣ주간경향 953호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기관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고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올해 유로존 국가들의 국가채무 위기로 번지면서 오히려 여진이 증폭되고 있다.

캐나다 요크대학 정치학 교수인 데이비드 맥낼리는 <글로벌 슬럼프>를 두 가지 목적에서 썼다고 밝힌다. 먼저 저자는 “(2008년)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해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 동시에 이 책은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저항운동들, 전 지구적 정의를 위한 투쟁들, 반자본주의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책은 금융위기를 분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실천적 이론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집필된 것이다.

책의 영문판은 2010년에 나왔지만 2008년 금융위기의 진행 양상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2011년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응시한다. 2008년 위기의 핵심에 있었던 것은 금융기관의 악성 은행 채무였다. 2011년 위기의 핵심은 국가채무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저자는 “위기가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었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는 어떻게 국가채무 위기로 변이됐을까. 2008년 빈사상태에 빠진 은행을 구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수조 달러를 금융기관에 쏟아부었다. 동시에 경기부양을 위해 수조 달러의 경기부양 자금을 시장에 풀었다. 각국 정부는 이 비용을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국채는 나중에 이자와 함께 돌려줘야 하는 채무다. 국채 발행 규모의 증가는 곧 국가채무의 증가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2008년의 위기를 촉발시킨 악성 은행 채무는 결코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그 악성 채무가 정부의 공공 부채로 이전된 것뿐”이라고 말한다. 은행권의 위기가 주권국가의 채무 위기로 변이됐다는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의 채무 위기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연결된 위기들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을 저자는 ‘글로벌 슬럼프’라고 표현한다.

글로벌 슬럼프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은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국가채무의 증가를 공공 서비스의 대폭 삭감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공 서비스 약화는 1% 강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서민·노동자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는 세계 각국에서 강력한 대중투쟁의 파도를 몰고왔다. 그러나 저항은 쉽지 않다. 저자는 “노골적인 이윤 추구의 용병이 되어버린 정치풍토, 권력자를 지키기 위한 무자비한 폭력의 사용 등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와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신자유주의 권력에 대항해 진보좌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좌파는 그 열린 공간에서 정치에 대한 급진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빼앗긴 민주주의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http://bit.ly/ryMwzU

Comment +0


[책과 삶]신자유주의 붕괴, 자본과 타협보다는 저항을

글로벌 슬럼프…데이비드 맥낼리 지음·강수돌 김낙중 옮김 | 그린비 | 392쪽 | 1만7000원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우리의 가난은 그들의 풍요로움의 원천이고, 우리의 고통은 그들에겐 이득이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에 등장하는 대사다. 신자유주의 30년의 팡파르가 끝난 지금, 99%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400년 전의 연극 대사와 극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맥낼리(58)에 따르자면, 2008~2009년의 위기를 촉발한 악성 은행 채무는 “주권국가의 채무로 형태가 바뀌어” 사람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채무의 증가를 막고자 “긴축시대를 선포”했다. “연금, 교육예산, 사회복지, 공공 부문의 임금과 일자리를 대폭 삭감”하면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물론 그 압박은 99%의 몫이다. “세계적 은행들이 받은 구제금융 비용을 노동대중과 가난한 사람들이 대신 지불”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책을 쓰던 2010년에 벌어진 몇몇 사례를 거론한다. “라트비아는 교사의 3분의 1을 해고했고, 아일랜드는 공무원 연금을 22% 축소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90만 빈곤아동의 건강보험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주의 지켜내기”다. 자본주의 엘리트들의 부와 권력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정부 개입을 배제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삼았던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로부터 역사상 가장 많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당혹감으로 위세가 약간 꺾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지출의 대폭적 삭감”이라는 “가혹한 필연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리를 바꿨다. “이데올로기의 정당화 방식”을 변경함으로써 “위풍당당하게 경기후퇴를 견뎌내려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음흉한 속내가 숨었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것은 부자들에게 매우 이롭다”면서 “지출삭감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부자에게로 엄청난 부를 이전하는 장치”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99%의 비참한 삶을 담보로 “통계상 회복”이 겉으로나마 이뤄진다. 그것은 당연히 “대대적 해고와 임금 삭감, 사회 서비스의 대폭 축소를 통해 노동대중이 대가를 치른 결과”다.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걸어온 길을 책의 두번째 장에서 잠시 일람한다. 그는 1948년부터 1973년까지를 “유럽·일본·북미 등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주체들의 경기가 급상승하면서,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산량을 3배로 키운 서구 자본주의”는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이윤율 하락과 과잉축적이라는, 친숙한 패턴에 따른 호황의 둔화”와 필연적으로 직면했다. 이어진 “위기의 10년”을 거치며 “자본주의를 지켜내려는”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얘기다.

 

저자는 그것을 “자본에 의한 노동의 패배, 새로운 불평등의 도래”라고 규정한다. 각국 정부는 “노동 유연화”를 부추기면서 “고용주들이 노동자들과 노조를 공격하는 것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대량 해고와 공공부문 일자리 축소, 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구사하는 음흉한 전략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국 대처 정부의 수석 경제자문이었던 앨런 버드는 “실업 상승은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매우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용 불안정은 “규율과 처벌에 의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1980년대 초 북미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파업은 차례로 분쇄됐다. “칠레,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들의 노조 조직률도 어처구니없이 하락”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가 열성적으로 추진했던 “자본주의의 지리적 재편”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요약된다. 약자의 입장에 선 국가의 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삶으로 내몰렸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이었던 칠레”의 국민소득에서 노동자 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1970년대에는 47%였지만 1989년에는 19%로 급락했다”고 예시한다. “유사한 사태는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도 발생”했다. 캐나다·미국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혜택을 봤다는 멕시코에서는 “NAFTA가 체결된 지 15년 만에 인구의 80%가 빈곤 상태에 빠졌고, 상위 0.3%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50%를 차지”했다.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간 주범이 금융 부문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1973년 미국 경제에서 금융 수익은 전체 이윤의 16%였지만, 2007년에는 무려 41%를 차지했다”면서 “급증하는 부채의 부담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백인과 유색인종 간 차별과 분리에 근거한 종전까지의 대출관행으로는 이윤 창출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은행들은 “보다 약탈적인 편입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빈곤층 유색인종들은 과거에 받지 못했던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대가로 터무니없는 조건들을 감수”해야 했다.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금융 수탈의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는 와중에, 유색인종 노동자들은 더욱 강탈적인 착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성으로 “노동자 계급의 점진적인 소득 감소”를 꼽으면서 “인종차별을 받는 노동자 집단이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잘라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은 막강했다. IMF 관리들이 구조조정 대상국의 재무장관에게 들이미는 전형적 조항들은 “혹독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포함”한다. 예컨대 “공공 부문을 민영화할 것, 사회복지 서비스를 대폭 줄일 것, 수천명의 교사·간호사·사회복지사를 해고할 것, 생필품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철폐할 것, 금융 부문을 해외시장에 개방할 것, 최저임금을 인하하고 연금을 축소하며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것” 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겪은 나라들은 “100여개 국”이다. 그 결과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났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고용은 더 불안해졌다. 다국적 기업들은 공공 자산을 더 싼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됐고, 해외 은행들이 금융을 통제하게 됐다. 지역과 세계 엘리트들은 그 나라 바깥으로 재산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게 됐으며, 경제성장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교육과 보건 의료 수준은 급격히 추락했고 유아사망률은 증가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작금의 파탄이 “단순한 주기적 불황이나 체제의 일시적 일탈이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그가 말하는 “글로벌 슬럼프”는 “만성화한 전 지구적 경기침체”를 뜻한다. 그것은 ‘더블딥’과도 다르다. “(서로 연관된) 다차원적인 위기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가 국가 부채 위기가 터지고, 사회복지가 후퇴하고 실업률이 솟구치는 등 여러 종류 위기들이 장기간에 걸쳐 터져 나오는 것”이다. 결국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가 중환자실에서 보여주는 위태로운 증세들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가 앞으로의 변화와 관련해 주시하는 것은 “소위 서발턴(subaltern)이라 불리는 하위계급의 움직임”이다. “실업자,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우리 앞에는 세가지 길이 있다. “(하위계급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체제를 구하는 데 협조”한다면 “신-신자유주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자본에 의해 잠식되지 않은 공유지와 틈새시장, 사유화할 수 있는 공공 부문 등 “착취의 소재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위 주체들이 파시즘적 자본주의에 포섭된다면 “앞으로도 50~100년간 착취 구조가 건재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 다른 하나의 길은 “좀더 인간적인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되,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직접 제공하는 사회복지국가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모델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국가는 부채더미에 오르고 사적 자본이 막강해진” 현재의 상황에서 “공공 부문은 계속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먼저인가 이윤이 먼저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 앞에서 “둘 다 추구하겠다는 절충은 모순”일 뿐이며 “이분법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길’은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6장 ‘거대한 저항의 물결’에서 드러난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착취에 반기를 든 전 세계의 대항운동에 주목한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주,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 멕시코 오아하카 주에서 일어났던 대중봉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맹(SYRIZA)과 프랑스의 반자본주의 신당(NPA), 남미의 신좌파 운동, 점점 급진화 경향을 보이는 미국 각지의 노동운동도 상세히 거론한다. 그 모든 대항운동의 공통점은 “노동자 대중의 직접적 이해에 기반을 둔, 급진적이고 조직화된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중과 노동자의 공동체가 통제하는 새로운 형식의 사회주의를 고민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강조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계승자다. 

그는 바야흐로 세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대항운동들을 “급진적 참여 민주주의”로 명명하면서 “새로운 진보 좌파 운동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좌파의 역사는 항상 새로운 좌파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과의 절충이나 타협을 거부하고 “민중과 노동자의 직접 참여를 통해 정치와 경제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를 상상하라는 것이 저자의 주문이다. 책의 말미에는 번역자들이 캐나다에 있는 저자의 집에서 나눈 대담을 수록했다.

http://bit.ly/v6Queg


Comment +0


[책과 세상] 경제 위기 원인은 자본가에게 있다
■글로벌 슬럼프(데이비드 맥낼리 지음, 그린비 펴냄)

얼마 전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시작과 동시에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버리는 일이 있었다.강의를 담당한 교수는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학생들은 "탐욕스런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가르친다"는 항의의 표시로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점령 시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기존 경제질서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거세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시간이 지나도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현재의 경제질서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것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정치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맥낼리 요크대 교수는 현 경제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경기침체라고 말하며 이 '글로벌 슬럼프'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이 슬럼프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신자유주의가 보여주지 못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저항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은 현재의 위기 원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며 살벌한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가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허리띠를 조르는 식으로는 위기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악성 은행 채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 부채로 이전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 재정위기에서 드러나듯이 은행권의 위기는 주권국가의 채무위기로 그 형태가 변화됐다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표들 중 공황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가장 명료한 것은 통화와 신용의 공급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투자와 지출이 향상될 때 신용은 확대되는데 선진 주요 7개국(G7)에서 상업 대출 산업 대출이 감소되는 등 경기침체로 진행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향후 한 세대 동안의 정치와 경제는 아주 새롭게 '재구성'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책은 이 '재구성'을 위해 사람들간의 연대와 저항 활동이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강제 퇴거당한 사람들, 인종차별과 분리로 인해 억압받은 사람들 등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에 기반한 정치를 위한 운동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동력임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이 때의 저항운동은 신자유주의가 보여주지 못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만 7,000원.
http://bit.ly/vV5Soi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