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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성경에 나오는 <사랑> 구절에 대한 해석

by 원시 2015. 12. 24.


예수[성경] '사랑'이란 무엇인가? 대한 내 해석은 이렇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나와 우리의유한함불완전함 대한 깨달음이다. (2015.june.23.)

 

지식에 대한 경멸 풍조는 지배자들만 이롭게 한다. 지식을 백정 취급하듯이 천대하면, 동서남북 4 대신, 동서나 남북만 있는 것처럼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아주 제한된 선택지에 걸려 넘어진다. 누가 자빠지는가? 지배층이 아니라 지배받는 사람이다. 막상 저항해야 주체들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정치적 지혜가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초등학교 O, X식으로 끝난다. 이런 작전 가지고는 필패다.

 

역시 공식적인 학교 교육에서는지식 자체 즐거움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한계를 깨닫고 철창 탈출 해방 욕구가 강렬했을지라도. 제한된 지식을절대 으로 외우고, O,X 빨리 돌진하는 능력이 IQ 높은 행위이고 합리적 똑똑한 학생이라고 배웠다. 현재 한국 대학의 위기도, 근본적으로 자본의 공략에 무너지는 이유도, 지식 형성 과정에 대한 강조와 실천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식 자체를 알고 깨달아 나가는과정 대한, 특히 시행착오, 실패 과정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의미 부여는 거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사회적 지위와자기 인정 투쟁대상이고 생존 등급 판정이었기 때문에, ‘ 알아줘’ ‘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목숨 걸고 절대성을 부여한다.

사실 지식에 대한 경멸은, 우리 인간 자체의지적 호기심 대한 비하 그건 아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학문 강조하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지적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사랑을 모를 없다. 세상 지구 어느 누구보다도 학문 강조 가치관을 습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식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좌파건 우파건지식 경멸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 자본과 지식 자격증을 확보하고 있는 지배자들이 아주 좋아라쾌재 부르는 사회 현상이다. 장기적인 노예 재생산 과정이다.

 

물론 가끔가다가알아야 면장을 한다 이야기도 하지만, 이건 어쩌다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자기 편리할대로 가져다가 쓰거나, 그냥지식 수단화 뿐일 때가 많다. 마치 무슨 지식인성명서처럼.

 

지식 경멸 현상이 특히 좌파 사이에 퍼지는 , 결국 지배자들 좋은 일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지배자들과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선택적인’ ‘제한적인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현행 법률 ( 3 개입법 )정당하고 동시에 합법이라는 것이랄지, 노동자의 임금 크기는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된다 랄지,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이 이후에 발전한다랄지 . 지배자들이 만들어 놓은지식 절대 참으로 고정불변의 지식으로 외우다가, 결국 지식의 유한함과 불완전성에 대한 비판 의식까지도 버리게 된다.

 

문자나 언어, 수학, 음악, 미술, 영화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반항, 변혁, 혁명, 선거에 뛰어들 때는자기가 알고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들의 학력이 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는지식이다. 민중이건 시민이건 민초건 그들이 말하고 퍼뜨리는지식역시 불완전하고 유한하다. 지식을 경멸하는 습관은 민중의 의식 자체를 폄하하는 버릇이나 허무주의적 인식론으로 귀결된다.

 

이런 사람들이 멘붕이 오면, 정신 넋나간 소리를 하거나, 말년 김응용 감독처럼니들이 야구를 알아?” 회고적 향수적 태도로 일관하거나나도 해봐서 아는데인식론으로 끝나게 된다. 지배자들 좋은 시키는 반동적인 작태들이다.예수의 사랑론, 인식론은 사랑하는 주체의 유한함과 불완전함에 대한 명료한 깨달음이다.

사랑만큼 좋은 어디있겠는가? 흐린 오후에도 소낙비에도 눈이 와도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 워낙 그게 힘들어서 탈이다.

 




성경 구절 번역 - NJ원시


내가 사람들의 속세 언어들로도 천상의 천사의 언어들로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담기지 않은 내 말은 시끄러운 징소리나 양철판 깨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난 사람을 감동시키는 연설하는 재주를 가졌을지도 모르고, 아는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삼라만상의 법칙을 깨달을 수도 있다.


나는 또한 산도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자신감도 가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난 내가 소유한 그 어떤 것도 버릴 수도 있고, 또 포기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내 생명을 포기하고 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동이다.


사랑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다. 사랑은 시기질투가 아니고 잘난 체 하는 것도 오만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예의없이 무례한 것도 아니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며, 성질 급하게 화내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잘못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악’과 어울려 희희락락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진리’에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의 신념, 희망, 그리고 인내는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에는 감동을 주는 (설교나 연설) 메시지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다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범하게 말을 잘 하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 말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세상에는 아는 것도 참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지식 역시 유한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 습득 능력, 감동적인 연설을 할 줄 아는 능력과 재주 역시 다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 부분적인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했던 말 감정 생각은 모두 다 미숙한 어린 아이의 말, 감정, 생각이었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미숙했던 어린 시절처럼 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거울 속에 비친 희미한 이미지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듯이 명료하게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전체가 아니라 단지 어느 한 부분일 뿐이다. 나중에 그 지식은 전체가 될 것이다. 마치 신이 나를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그 날이 올 때까지 신념, 희망,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가 우리들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Good News New testament (the bible), Today's English Version: Corinthians 13 Love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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