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대선 (박정희 vs 윤보선), 1967년 대선 (박정희 vs 윤보선), 1971년 대선 (박정희 vs 김대중) 63,67년, 71년 서울에서 박정희는 3전 3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오래된 유권자의 역동적 표심, 아무도 모른다. 한국 유권자들을 무시하지 말라. (1)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전남 유권자였다. 57.2% 박정희. 윤보선(민주당 35.9%)였다. (2) 그러나 63년 당선되자마자 울산,포항,부산 등 남동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해 지역 불균형 심화됨. 1967년 대선에서 전남은 44.6% 박정희, 71년 김대중 대 박정희(34.4%)로 점차 점차 전남과 박정희는 결별해갔다. (3) 63,67년, 71년 서울에서 박정희는 3전 3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서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수파와 보수당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다. 박정희 63년 서울 30.2%, 67년 45.2%, 71년 40%.
2025. 3. 5.
속타는 김문수. 극중(克中)론과 신경제성장론, 안보가 국민화합의 길, 김문수의 '신 부국강병'은 시대정신
2025.feb.412-3 윤석열 내란,국회폭동 이후, 국어가 달라져 버린 국민의힘과 윤석열. 김문수는 얼마나 답답하겠냐? 저 말은 '속 터져, 낄끼빠빠 윤석열'언제 어떤 식으로 무릎을 꿇을 것인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박정희의 '하면 된다', 새로운 경제강국, 한국의 위대한 도전이 중국 앞에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극중(克中)론과 신경제성장론, 안보가 국민화합의 길, 김문수의 '신 부국강병'은 시대정신" (1)윤석열과의 단절 방식은, 민주당 '의회 독재 탓'으로 돌리며,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계엄을 찬성한 것은 아니다 (덧붙임)(2) 중국의 경제,군사력은 '극복' 대상이다. 극중론을 펼칠 것.(3) 신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찾아야지, 민주노총처럼..
2025. 2. 22.